소설리스트

단월검제-80화 (80/141)

#080화.

“좋네. 일단 천중문의 심법인 현기심법에 대해서 설명하겠네. 현기심법은 심신을 안정시키고 차분하게 만드는 데 뛰어난 효능이 있다네.”

거기까지 들은 상천은 천중문의 현기심법과 규화공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현기심법의 주된 목적은 거기에 있지 않다네. 뛰어난 효능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공을 쌓기 위한 심법인만큼 내력을 쌓는 데 효과적이지. 상승의 심법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빠른 속도로 내력을 쌓을 수 있지. 대성한다면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을 쌓을 수 있네.”

서기종의 설명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규화공을 십성까지 익힌 지금 상천의 내력은 일 갑자에 못 미쳤다. 아직 십이성 대성까지 갈 길이 남아 있긴 하지만 십이성 대성을 한다 한들 일 갑자의 내공을 쌓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규화공에 대해서 듣고 싶군.”

설명을 마친 서기종이 상천에게 규화공에 대해 물었다. 단월검이나 백룡권, 천유보는 자주 봐왔기 때문에 그 특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규화공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규화공도 비슷합니다. 다만 제가 느끼기에 규화공은 심신 단련에 주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검법을 펼쳐 내면서 운용을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쌓이는 내력의 양도 현기심법이 조금 더 나은 것 같고요.”

“전반적으로 비슷하긴 하다는 뜻이군.”

“예.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춘풍 같다고 해야 할 겁니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느낌의…….”

“현기심법도 비슷하네. 다만 춘풍이 강풍으로 바뀌기도 하지. 그 부분에 차이가 있는 것 같군.”

“그런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심법을 합친다. 전설처럼 내려온 몇 번의 경우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네. 비슷한 성향의 두 심법을 합치는 것이 더 안전할지, 아니면 서로 다른 성향의 심법을 합치는 것이 더 안전할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 불가능한지 가능한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해봐야 합니다. 해내야 하고요.”

굳은 의지가 담긴 상천의 말에 서기종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규화공과 현기심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모두가 잠든 것을 확인한 상천은 홀로 밖으로 나왔다.

낮 시간에는 이것저것 할 일도 많고 워낙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여 개인적인 수련을 하기엔 어려웠다.

이렇게 모두가 잠든 시간이 조용히 홀로 수련하기 딱 좋았기에 상천은 밤에 수련하는 것을 좋아했다.

연무장 위로 올라서는 상천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주로 연무장에서 수련할 때면 검법을 수련했지만 오늘은 아닌 듯했다.

연무장 위로 올라간 상천은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작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정면을 응시했다.

스멀스멀.

상천의 눈앞에 오랜만에 환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서 있는 것이 아닌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현기심법의 구결이…….’

상천이 머릿속으로 서기종으로부터 전해 들은 현기심법의 구결을 떠올렸다.

비록 현기심법을 익힌 것은 아니었지만 전해 들은 구결과 내공의 성질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들을 바탕으로 눈앞에 만들어낸 환영의 단전에 내공을 만들어내었다.

‘진기의 흐름…….’

그런 후 상천은 현기심법의 진기 흐름을 떠올렸다. 그러자 환영의 단전에 있던 진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진기가 움직이는 경로가 비슷하기는 했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에 유의하며 상천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환영의 몸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진기가 점차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소주천의 경로로 진기를 천천히 이끈 상천은 진기가 한 바퀴 돌아 다시 단전으로 돌아올 때 쯤 규화공을 떠올렸다.

그러자 환영의 단전 한쪽으로 규화공의 진기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단전에 두 개의 진기가 자리하자 환영이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벌써 무리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상천의 눈에 단전 안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현기심법의 진기와 규화공의 진기가 보였다.

비슷한 성질을 가진 두 개의 진기였기에 하단전에 모두 밀어 넣어 보았지만 생각과 달리 두 진기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했다.

결국 현기심법의 진기가 소주천의 경로를 모두 돌고 하단전으로 돌아올 때 환영이 심하게 부들부들 떨면서 사라져 갔다.

“흠… 단순히 한곳에 몰아놓는 걸로는 안 되는군.”

당연히 안 될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정작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자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합치려면… 새로운 구결을 만들어내야 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상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가지 심법을 파고들어 새롭게 구결을 만들어내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상천이 고민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어 가장 먼저 눈을 뜬 사람은 공혜였다.

식구가 늘어난 만큼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도 늘어났기에 그전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그녀였다.

졸린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온 공혜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다시 한 번 눈을 비비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연무장 위에 주저앉아 있는 상천의 모습이었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딱 봐도 시간이 꽤 지난 것처럼 보였다.

과거 상천이 백룡문에 와서 종삼과 함께 생활할 때에는 이런 경우가 많았지만 그런 것을 모르는 공혜에게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저기서 뭐 하는 거지? 모기도 많은데.”

공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무장 쪽으로 다가갔다.

“으아아아!”

그때 상천이 절규와 함께 머리를 미친 듯이 헝클어뜨리기 시작했다.

그에 다가가던 공혜가 움찔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뭐, 뭐가 잘 안 되나 보다.’

속으로 중얼거린 공혜는 조용히 주방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와중에도 상천은 연무장 바닥에 주저앉아 뭔가 안 풀린다는 듯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상천은 인부들이 오기 전에 얼른 운기를 통해 피로를 조금 몰아내고는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는 인부들이 일을 하는 모습, 그리고 문도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부지런히 오가며 살펴보았다. 특히나 수련하는 문도들을 지켜볼 때에는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천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공혜가 점심 식사 후 그에게 다가갔다.

“안 피곤해?”

“음? 왜?”

“보니까 새벽부터 일어나서 연무장에 있던 것 같은데.”

“괜찮아.”

공혜의 걱정에 상천이 웃으며 대답했다.

“언제 일어나서 나갔어?”

“음…….”

공혜의 물음에 상천이 어색하게 웃으며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물었다.

“설마 안 잤어?”

“그렇게 됐네.”

“정말? 그런데 안 피곤해? 그게 말이 돼?”

“괜찮다니까.”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한 상천이 공혜를 안심시키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른 들어가서 좀 자.”

“괜찮다니까. 잠 안 와.”

“얼른!”

공혜가 허리에 손을 얹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공혜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인지 근처에 있던 녹엽이 다가오며 물었다.

“아저씨, 세상에 어젯밤을 꼬박 새우고도 안 피곤하다잖아요. 그게 말이 돼요?”

“진짜야? 안 잤다고?”

녹엽의 물음에 상천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안 졸려? 불면증 있나?”

“그런 건 아닌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얼른 들어가서 눈 좀 붙이라니까 말을 안 들어요.”

그러자 녹엽이 상천을 질책이라도 하는 듯이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음〜 그러는 거 아냐. 자고로 여자 말 들어서 나쁠 것 없다고 했어.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서 자라고.”

“정말 난 괜찮은데…….”

“말 안 들으면 저녁 밥 안 줄 줄 알아요!”

공혜의 엄포에 상천은 울상을 하며 터벅터벅 방으로 걸어갔다.

그런 상천의 뒷모습을 서기종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잠이 안 온다던 상천은 방에 들어가서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두 시진가량 자고 저녁때가 되어서야 일어난 상천은 비몽사몽의 표정을 한 채 밖으로 나왔다.

“다들 뭐해?”

밖으로 나온 상천은 다들 밖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물었다.

“일어났어? 안 졸린다더니 잘 자던데?”

장난기 섞인 공혜의 말에 상천에 배시시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웬 거야?”

상천이 널찍한 공터에서 익고 있는 고기들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서기종이 옆에서 넌지시 말을 건넸다.

“장 소저가 사 왔네.”

“예?”

서기종의 말에 상천이 장여진 쪽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듣지 못했는지 장여진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고기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자〜 익었다!”

병목이 다 익은 고기를 접시에 담아 아이들에게 먼저 주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 그런지 아이들은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분주하게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러다 체할라! 다들 천천히 먹어! 아직 많으니까!”

병목이 열심히 고기를 구우며 말했다.

“캑! 캑! 이놈의 연기는 왜 자꾸 나한테만 오냐!”

병목을 도와 옆에서 고기를 굽던 배동삼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계속해서 자신 쪽으로만 향하는 연기를 쫓기 위해 손부채질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 자리를 보며 상천도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만에 다 같이 웃으며 식사를 하니 상천 자신도 마음이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상천은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문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동안 스스로 너무나 여유없이 지내온 것 아닌가 하는 자책도 들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을 때 서기종이 옆에서 물었다.

“밤새 뭘 한 건가?”

“알면서 그러십니다.”

상천의 대답에 서기종이 놀라며 조용히 물었다.

“현기심법을 수련했나?”

서기종의 물음에 상천은 대답 대신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에 궁금증이 일은 서기종이 대답을 재촉했다.

“했나?”

“뭐, 비슷합니다. 단순히 하단전에 규화공의 진기와 현기심법의 진기를 몰아넣는 것만으로는 안 되겠더군요. 하나로 합쳐 보려고 별짓을 다 해봤지만 안 됐습니다.”

상천의 말에 서기종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현기심법을 수련하는 것도 모자라 진기를 합쳐 봤다니. 수련을 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지만 하루 만에 진기를 쌓고 실험까지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천재라 한들 진기를 하루 만에 쌓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네, 괜찮은가?”

“예,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상천의 말에 서기종은 더욱 놀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상식에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머릿속은 공황상태가 되고 있었다.

자신이 밤새도록 어떤 방법으로 그런 실험을 했는지 모르는 서기종의 그런 반응에 상천은 재밌다는 듯 소리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왜 그러나?”

“아닙니다. 후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상천을 보며 서기종이 물었지만 상천은 대답을 피했다.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있군, 뭔가 있어. 뭔데 그러나?”

“나중에 때가 되면 그때 말씀드리죠. 후후.”

호기심이 동한 서기종이 계속해서 캐물었지만 상천은 대답을 회피했다.

상천이 그렇게까지 나오는데 서기종도 더 이상 캐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즐거운 저녁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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