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81화 (81/141)

#081화.

시간이 흘러 한 달의 시간이 지나갔다.

상천은 밤만 되면 연무장에 앉아 규화공과 현기심법의 조화를 궁리했다.

첫날처럼 밤을 새지는 않았지만 새벽까지 수련을 하는 통에 피로는 많이 쌓이고 있었다.

게다가 실마리가 보이질 않으니 정신적으로 쌓이는 피로도 역시 상당했다.

그나마 꾸준히 규화공을 운기하면서 피로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과로로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 달의 시간 동안 상천은 별의별 방법을 총동원했다.

애초에 실험해 보았던 하단전에 두 개의 진기를 몰아놓고 충돌시키는 방법부터 하나의 진기를 역으로 돌리고 중간에 자연스럽게 만나게 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험을 해보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단기간에 무언가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천이 규화공과 현기심법의 조화를 궁리한 한 달 동안 백룡문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일단 백룡문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건물들이 그 형태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기초 공사가 끝나고 기둥들을 세우고 벽을 쌓아가면서 제법 그럴싸한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백룡문을 보며 문도들도 들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낮 시간.

상천이 비호에게 다가갔다.

그날 이후로 조금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서로 필요한 대화만 주고받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한풀 꺾이긴 했지만 한낮의 무더위 때문에 대청마루에서 땀을 식히고 있던 비호는 상천이 다가오자 먼저 말을 건넸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물어볼 것이 있소.”

“무엇입니까?”

비호의 물음에 상천이 그의 옆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흔히 대문파라고 하는 곳에서 배우는 상승의 무공과 우리 같은 작은 규모의 문파에서 익히게 되는 무공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시오?”

너무나 간단한 질문에 비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위력이겠지요?”

“그럼 그 위력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오?”

이어진 질문에 비호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 역시 상승의 무공을 익히고는 있지만 그런 것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어린 시절 사부가 가르쳐 주는 것을 당연하게 익혀왔기 때문에 그저 상승의 무공, 그리고 하급의 무공의 차이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비단 상승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하급 무공을 익히고 있는 사람들도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이었다.

상천과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음……. 사실 그런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비호의 대답에 상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짧게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익히는 사람의 자질에 따라 같은 무공이라도 위력에 차이가 날 수 있을 것이고… 상승의 무공에 비해 급이 떨어지는 무공은 일단 축기에서부터 차이가 납니다.”

그에 상천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하나 추측하는 것은… 상승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중단전과 상단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급 무공은 중단전과 상단전의 사용이 어렵지요. 하단전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중단전과 상단전?”

“그렇습니다. 하단전이 배꼽 아래 부분이라면 중단전은 명치 부근, 그리고 상단전은 백회혈이라고 하는 정수리 부근입니다. 중단전을 사용할 수 있고 그것을 넘어 상단전을 열 수 있으면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하고 이기어검이나 허공섭물 등 기를 이용해 사물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소?”

상천의 물음에 비호가 고개를 저었다.

“과거에는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무림맹의 맹주인 무당파의 현청 도장(賢淸道長)이나 사도련의 련주인 은남도문의 가백현도 초절정의 경지에 근접하기는 했지만 거기까지 오르지는 못한 것으로 압니다.”

비호의 말에 상천은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초절정이니 하는 경지를 바라보고 무공 수련을 하고 다듬는 것은 아니지만 어마어마한 벽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상승의 무공과 하급 무공의 결정적 차이는 축기와 중단전, 상단전의 사용 같습니다.”

“그럼 그대는 중단전과 상단전을 사용하고 있소?”

상천의 물음에 비호가 고개를 저었다.

“중단전은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상단전은 어렵습니다. 상단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임독양맥을 뚫고 초절정에 다다랐다는 뜻. 저도 감히 바라보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음……. 그럼 그대는 절정의 경지에는 올랐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일류급 무인보다는 나은 실력인 것 같습니다. 여 소저가 들으면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지만 여 소저는 일류급의 끝자락에 있는 무인이고 저는 그녀를 제압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럼 일류, 이류, 그리고 절정 등을 나누는 기준은 내공의 차이요?”

그에 비호가 또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내공의 차이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검법이면 검법, 도법이면 도법, 권법이면 권법 등 자신의 무공에 대한 이해도와 숙련도 등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호와의 대화를 통해 지금까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무공에 대한 많은 부분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고맙소.”

“아닙니다. 어차피 이제 백룡문 사람이니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면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비호의 말에 상천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장여진 일행이 백룡문에 찾아왔을 때만 해도 탐탁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사람도 좋고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고 있었다.

게다가 일단 기존에 있던 사람들보다 고수가 늘었기에 든든한 마음도 있었다.

“중단전이라…….”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난 듯 상천이 작게 중얼거렸다.

***

장우량이 지부장들을 본산으로 불러들여 회담을 하기로 한 날짜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지부장들이 하나둘 합산도문에 입성하기 시작했다.

지부장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에 본산에 들어서는 지부장들의 표정에는 긴장이 역력했다.

정문을 통해 들어서는 지부장들을 장우량은 자신의 집무실 창문을 통해 모두 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보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기일을 이틀 남겨두고 모든 지부장들이 본산에 도착했고, 초운학 역시 하루 전날 본산에 입성했다.

또한 지부장들을 맞이할 준비 역시 착실히 진행되어 모두 끝난 상태였다.

회동 전날 밤.

초운학은 장우량과 장무진, 장세진을 자신의 거처에 불러 모았다.

“준비가 잘 끝났다니 다행입니다.”

“당연한 말씀을.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장우량의 물음에 초운학이 미소를 지었다.

“갔던 건 형식적인 일일 뿐입니다. 그래야 저들도 큰 의구심 없이 본산에 올 테니까요.”

초운학의 대답에 장우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자그마한 일이 하나 있었던 것 같던데…….”

초운학이 장세진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간 밖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는 모를 줄 알았던 장세진은 그의 말에 몸을 한차례 움찔했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하하하!”

장세진은 일단 어색하게 웃으며 잡아뗐다. 하지만 전말을 모두 알고 있는 초운학은 차가운 눈빛으로 계속해서 장세진을 바라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그 기세에 눌린 장세진은 결국 더 이상 잡아떼지 못하고 사과를 했다. 그런 그를 장무진은 한심스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앞으로는 함부로 행동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또 한 번 경거망동한다면 봐드릴 수 없어요.”

“예…….”

장세진이 목까지 움츠리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형들은 전부 준비해 뒀겠지요?”

“물론입니다!”

방금 전까지 초운학의 기세에 눌려 움츠리고 있던 장세진이 이번에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대답했다.

“좋습니다. 내일이군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한 초운학이 장세진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장여진에 대한 건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합산도문을 완벽하게 집어삼키고 나면 그다음은 귀주성입니다. 그때까지 반월도문이 낌새를 채서는 안 되겠지요? 은남도문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장세진의 목소리가 다시 작아졌다.

“그럼 내일을 위해 침소에 들지요.”

“예. 쉬십시오.”

장우량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하자 장무진과 장세진 역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세 사람이 밖으로 나가고 초운학은 미소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합산도문의 연회장은 문주인 장우량과 지부장들의 만찬 준비로 분주했다.

얼마나 성대한 만찬을 하려고 하는지 길게 늘어져 있는 식탁 위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지기 시작했다.

사시 초가 되자 지부장들이 하나둘씩 연회장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연회장에 들어선 지부장들은 눈앞에 펼쳐진 진수성찬에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본산에 불려와 한자리에 모인 적도 없거니와 이렇게 진수성찬을 먹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지부장으로서 오랜 시간 생활을 해왔지만 지금 연회장에 차려진 음식 중에는 먹어본 음식보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더 많았다.

휘둥그런 눈으로 연회장에 들어선 지부장들이 정해진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우량이 장무진과 장세진을 대동하고 연회장에 들어섰다.

잠시 동안 앉아 있던 지부장들은 세 사람의 등장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예를 갖추었다.

장우량이 자신의 뒤로 장무진과 장세진을 대동하고 지부장들의 자리를 지나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서서 지부장들에게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장우량의 손짓에 지부장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그와 함께 자리에 앉은 장우량이 지부장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작 이런 자리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이제야 여러분을 모시게 되었소.”

장우량의 말에 지부장들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좋지 않은 일도 있었고, 이번에 이뤄진 파격적인 인사 때문에 다들 의아해하실 것 같아 이런 자리를 마련하였으니 오늘은 일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마음껏 즐기다 가셨으면 하오.”

“감사합니다!”

장우량의 말에 지부장들이 일제히 감사의 말을 전했다.

짝짝!

장우량이 미소와 함께 손뼉을 치자 지부장들의 뒤에 서 있던 시녀들이 그들의 잔에 술을 채웠다.

모두의 잔이 채워지자 장우량이 자신의 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크게 외쳤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께서 합산도문의 영광을 위해 힘써주시기 바라오!”

“예!”

힘찬 대답과 함께 지부장들이 술을 한 잔씩 들이켰다. 그와 함께 장우량도 술을 한 잔 들이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연회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의 궁금증을 먼저 해소시켜 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장우량의 말에 대부분의 지부장들이 웅성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장우량이 밖에 대고 소리쳤다.

“군사를 들라 하라!”

장우량의 말이 끝나고 연회장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학사건을 쓴 초운학이 들어섰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인자한 미소를 지은 그는 천천히 걸어 장우량의 옆에 섰다.

“새롭게 합산도문의 군사가 된 초운학입니다.”

초운학이 지부장들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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