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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검제-79화 (79/141)

#079화.

“하지만 한계라는 건 분명 존재하오. 나무가 자라기 위한 필수 요소가 부족하다는 뜻이오.”

항상 상천이 생각하던 것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서기종과 낭호, 녹엽 등이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누군가를 가르치기에 조금씩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문파의 중심을 잡아주고 전체를 끌고 갈 수 있는 정신적 지주, 그런 사람이 백룡문에는 없었다.

백룡문은 젊었다. 그러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 부분이 항상 상천이 걱정하고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저는 그걸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뛰어넘어야 할 벽일 뿐입니다. 그것은 문주님께서 치열하게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일 겁니다.”

비호의 말에 상천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었다.

치열한 고민. 지금까지 계속해 온 것이기에, 그럼에도 아직까지 해답을 찾지 못했기에 갑자기 답답함이 몰려왔다.

그때, 앉아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여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상천을 바라보며 허리를 굽혔다.

‘또 뭔가?’

비호도 그렇고 장여진까지. 갑작스런 상황의 연속에 상천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에 온 후로 저희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도 많이 해봤지요. 그래서 나온 결론이 있어요.”

“결론이 무엇이오?”

“저희가 합산도문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에요.”

장여진의 대답에 상천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상천의 표정을 보며 장여진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합산도문은 제가 있던 합산도문이 아니에요.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제가 알던 사람들이 아니지요. 그런 곳에 돌아간다면 죽으러 가는 것밖에 안 되겠지요. 어찌 보면 개인적인 일로 이곳에 신세를 진다는 것에 굉장히 미안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생각은 없어요. 우리는 합산도문 사람이지만 앞으로는 백룡문이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장여진의 말에 상천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은 지금… 백룡문 사람이 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오?”

상천의 물음에 장여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반응에 상천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합산도문을 장악한 자들이 누구인지는 몰라요. 어떤 세력이며 어떤 목적으로 그랬는지도 알 수 없고요. 하지만 그들이 단순히 합산도문만을 목표로 삼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큰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백룡문 역시 그 싸움에 휩싸이게 될 거예요.”

그녀의 말에 상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의도를 알아차린 장여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원인이 저희가 백룡문에 있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합산도문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반월도문을 비롯한 사도련의 다른 도문들 역시 움직일 거예요. 세력 간의 싸움은 단순히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에요. 그 세력 안에 있는 모든 문파들이 함께 하는 싸움이죠. 백룡문도 사도련의 세력권 안에 있는 이상 그 싸움을 피할 수는 없어요.”

장여진의 말에 상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금까지 그것과 관련된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뚜렷하게 해결된 것이 없는데 또 하나 산이 생기는군.”

상천이 중얼거렸다. 그 정도로 문주로서 받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경험을 쌓은 사람들도 문주 자리에 앉으면 상당한 압박을 받게 마련인데 이제 스물을 갓 넘어 스물한 살에 불과한 상천이 받는 압박은 그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잘 이끌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저희는 앞으로 백룡문에 몸담으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드릴 생각이에요.”

“어떤 식으로든?”

“네. 저희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 건지는 문주님께서 판단하셔야 할 문제고요.”

상천이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신경 써야 할 일이 갑자기 늘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버겁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더욱 한숨짓는 경우가 많이 생길 것 같았다.

“어쨌든 앞으로 잘해봅시다.”

상천이 먼저 장여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에 잠시 멀뚱히 그 손을 바라보던 장여진도 이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백룡문에 새 식구가 생겼다.

***

오랜만에 나군천이 대전으로 열 명의 장로들을 불러 모았다.

근 일 년 만에 대전으로 모이라는 명을 받은 장로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묘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전에 들어선 장로들은 먼저 와서 태사의에 앉아 있는 나군천을 보며 서둘러 도열해 섰다.

“모두 모였나?”

“그렇습니다.”

반월도문의 수석장로인 상관궁(上官宮)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얼핏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나이였지만 실제로는 쉰을 훌쩍 넘겼다. 반월도문 내에서는 나군천 다음가는 실력자이기도 했다.

상관궁의 대답에 나군천이 밖에 대고 소리쳤다.

“군사를 들라 해라!”

잠시 후 하신이 대전으로 들어섰고, 장로들 사이를 지나 나군천의 옆에 섰다.

“얘기해 보도록.”

“예.”

나군천의 명에 하신이 고개를 숙이고는 장로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합산도문의 여식이 수하 세 명과 함께 귀주성 백룡문에 있습니다.”

“백룡문? 백룡문이라면…….”

상관궁의 물음에 하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우리 반월도문이 일 년간 지원을 하기로 한 그 문파입니다.”

“그런데 합산도문의 여식이 그곳에는 왜?”

“그전에 일단 합산도문의 현 상황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하신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합산도문을 의문의 세력이 점령했습니다. 아직까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신의 말에 장로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도련이 득세하고 자리를 잡은 이후로 그 어떤 세력도 사도련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천하의 무림맹도 자신들을 어쩌지 못하는 수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사도련의 일익인 합산도문을 누가 점령한단 말인가?

“좀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겠소?”

상관궁의 물음에 하신이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심어놓았던 세작들의 보고와 얼마 전 직접 만나고 온 합산도문 여식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나온 결과가 그 정도일 뿐입니다.”

“다 죽었단 말씀이시오?”

반월도문 삼장로인 혁련제(赫連帝)가 물었다. 넓적한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만큼이나 성격이 불같았다.

나군천과 성격이 비슷하긴 하지만 충성심이 강해 충돌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우리는 이제야 알았단 말이오? 그 정도 세력이 움직였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 리 없을 텐데.”

“일단 합산도문 영역 내에서 벌어진 일이고 겉으로 보이는 무력 충돌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하신의 대답에 혁련제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게 가능하단 말이오? 군사께서 무언가 잘못 알고 계신 것은 아니고?”

혁련제의 물음에 하신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자 나선 사람이 나군천이었다.

“말이 지나치군.”

“죄송합니다.”

나군천의 한마디에 혁련제가 바로 사과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물밑에서 일을 벌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지난해에 합산도문에서 벌어졌던 그 일이 발판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신의 말에 장로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인 생각이라고는 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장로들 모두가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삼장로.”

“예.”

갑작스런 나군천의 부름에 혁련제가 서둘러 대답했다.

“유사시에 대비해 문도들의 수련을 총괄하라.”

“알겠습니다.”

“이장로.”

“예.”

“현현각(玄玄閣)의 정보력을 총동원하라. 합산도문의 움직임을 면밀히 감시하도록.”

“알겠습니다.”

반월도문의 정보력을 책임지고 있는 현현각을 총괄하는 이장로 공유단(孔裕端)이 공손히 대답했다.

“그리고 군사.”

“예.”

“옹안지부장에 기별을 넣어 은밀히 백룡문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라.”

“굳이 그러셔야 하겠습니까?”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 유일하게 나군천의 말에 토를 다는 하신이었다. 하신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어차피 백룡문은 귀주성 깊숙한 곳에 있고 옹안지부에서도 가까우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듯합니다.”

“합산도문 역시 쥐도 새도 모르게 당했다. 우리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어.”

“물론입니다. 하지만 굳이 백룡문에까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장우량이나 장무진, 장세진 등이 모두 죽었다면 장여진이 우리 품에 있다고 해서 딱히 활용 가치가 높지는 않습니다. 백룡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 생각에는 백룡문 쪽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내부 감시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하신의 말에 나군천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다. 군사는 수석장로와 함께 내부 단속에 힘쓰도록.”

“알겠습니다.”

지시 사항을 모두 하달한 나군천이 장로들을 한 번 훑으며 입을 열었다.

“수석장로, 이, 삼장로에게만 지시를 내렸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은 손 놓고 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다들 내일 당장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도록.”

“예!”

나군천의 말에 열 명의 장로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

오늘은 제법 하늘에 구름이 끼고 흐려 그리 덥지 않아 모두가 낮 시간임에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상천과 서기종은 방 안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이러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랜 장고 끝에 상천이 서기종에게 심법을 청했고, 서기종이 고민 끝에 그것을 수락하면서 천중문의 심법인 현기심법(玄氣心法)의 전수를 위해 마주 앉아 있는 것이었다.

“후,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군.”

비록 이제는 천중문의 사람이 아니라고는 하나 사문이었던 곳의 무공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서기종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아닐세. 어차피 내가 선택한 것이니. 알려주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네.”

심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듯한 서기종의 말에 상천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는가?”

“예. 물론입니다.”

“현기심법을 배워서 어떻게 하려는가? 전에도 말했지만 규화공을 익히고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내공심법을 익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네.”

서기종의 말에 상천이 진지한 어조로 대답했다.

“짐작하셨겠지만 두 개의 심법을 합칠 생각입니다.”

“…….”

상천의 대답에 서기종은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두 개의 심법을 합치는 것은……. 아닐세.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확신이 있으니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서기종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천은 백룡문의 일개 무인이 아니었다.

문주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자.

그런 상천이 장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면 믿고 따라줘야 했다.

단순히 문주이기 때문에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다.

문주의 자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천 스스로 잘 알고 있고 절대로 문도를 생각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해 그런 위험한 도전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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