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06화 (406/499)

(406)

< 내가 필요하면 대가를 내 놔라 >

“강 수사께서도 이미 아시고 계시겠지요?”

“뭘 말입니까?”

“이미 성륜역 화토금수목, 오행의 기운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리려는 시도를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그러니 당연히 성륜역 오행의 균형에 관심을 가지셨을 것이고……

“관심이 있었으니 지금 토금수목 네 기운은 이전보다 강성해졌는데 화(火)의 기운은 도리어 위축된 상태임을 알 것이다. 뭐 그런 이야깁니까?”

건우도 이미 알고 있던 일이라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역시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려.”

“그래서요. 그런 상황에 이 강 모가 무슨 쓸모가 있답니까?”

건우는 성호 준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 마땅치 않다는 듯이 계속해서 어깃장을 놓았다.

“강 수사께서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 듯합니다. 제가 강 수사를 이런 외진 곳에 추천을 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성호 준은 자신이 건우를 린룡의 수기(水氣) 강화 사업에 끌어들이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외진 곳에 가도록 만들었던 것을 사과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사과한다고 무에 달라질 것이 있답니까? 의미 없는 말일 뿐입니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사과에 마음이 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실로 이 성호 준이 크게 잘못했습니다. 그러 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되었습니다. 나 역시 린룡족과 교류를 하겠다는 헛된 생각에 준 수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그 선택을 누가 억지로 하게 만든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 지금 상황에 대한 책임도 나 스스로 져야 할 뿐입니다.”

“허어, 건우 수사의 노여움을 풀 길이 없겠습니까? 짐작하시겠지만 이번에 제가 온 것은 바로 그 화 속성 기운을 북돋우는 일에 건우 수사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 니다.”

“그런 일에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성호 준이 거듭 자세를 낮추어 청하는 말에도 건우의 냉랭한 표정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거 어찌 이러십니까? 과거 장우 수사가 행륜관의 삼천삼백삼십삼 계단을 오를 때에 그 시험관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저입니다. 그 때, 장우 수사의 화속성 공법이 굉장했었지요.”

“그래서요?”

“건우 수사가 그 장우 수사와 연관이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건우 수사는 백양태삼림을 거쳐서 고령토 대지를 지나 이곳 성륜해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성호 준이 이야기하는 세 곳은 모두 오행 속성과 관련이 있는 지역들이었다.

그러니 성호 준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 건우가 오행 속성의 변화에 관여한 것이 아니냔 의심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그게 이 일과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당연히 건우가 그런 의미를 모를 수 없으니 반응이 거칠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건우 수사가 이번 일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장우 수사를 찾기 위해 건우 수사의 종적을 쫓다 보니 건우 수사 역시 화속성 공법에 아주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 니다.”

“제 뒷조사를 하셨다는 말이군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당장 상황이 급해서 건우 수사를 통해 장우 수사를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찾으려 해도 장우 수사는 태삼림 이후로 완전히 사라져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으음."

성호 준은 다른 뜻은 없었다고 극구 건우의 뒷조사를 한 것에 대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애썼다.

건우는 성호 준의 말에서 그가 장우의 죽음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을 따지자면 태삼림에서 죽은 것은 장우가 아닌 백양오죽목령인 분혼이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그는 장우를 지우고 스스로 건우로 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성호 준의 생각처럼 장우가 태삼림에서 죽었다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건우 수사가 그리 화속성 공법이 뛰어나다면 결국 건우 수사가 장우 수사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리고그 추측은 지금까지의 조사에 따르면 거의 사실에 가깝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 결론이란 것도 추측을 확신한 것일 뿐, 그것이 곧 사실은 아니지요. 그리고 장우 수사와 나의 문제는 다른 이들이 왈가왈부 할 일도 아니고 말입니다.”

“알았습니다. 장우 수사를 거론하는 것이 불쾌하신 듯하니, 그 이야기는 그만 하지요. 다만 건우 수사가 장우 수사의 화속성 공법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은 부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찌 되었든 성호 준은 건우가 뛰어난 화속성 공법을 익혔다는 것만 밝히면 된다는 모습이었다.

“내가 극화공을 익힌 것은 인정하리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나에게 화기(火氣)를 키우는 일에 보탬이 되라는 것입니까?”

건우도 그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이미 자신도 성륜역의 동부 지역에 있는 화기(火氣) 영역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제안을 가지고 누군가 찾아올 것을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그러니 이쯤에서 못이기는 척 성호 준의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이었다.

“면목이 없는 일이지만 바로 그것을 부탁드리려고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꼭 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성호 준이 이전과 달리 극진한 태도로 깊이 고개를 숙였다.

건우는 그런 성호 준을 보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데 말입니다, 성륜역에 화속성 수련 공법을 익힌 수사가 나 밖에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어찌? 그리고 따지자면 나보다 훨씬 경지가 높은 수사들도 많지 않습니까?”

이 궁금증을 풀지 않고는 덥석 미끼를 물고 동부 지역으로 가기가 꺼려졌다.

“화속성 수련 공법을 익힌 수사야 많이 있지만 그 중에 성령기 이상을 찾으면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설마 태령기 이상의 수사들 중에 화속성 공법을 익힌 수사가 없지는 않을 텐데요? 게다가 지금 당장 성륜역 영기의 전체 균형이 깨어질 마당에 태령기 수사들이라고 사태를무시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을 바로잡는데 태령기 수사들이 나서는 것만큼 간단한 방법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당장 성륜역에서 오행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 수사들 전체의 수련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태령기 수사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는 일이다.

그들 역시 미세한 차이지만 수련에 지장을 받게 될 것이다.

또 경지가 높을수록 그런 미세한 차이조차 꺼려질 수밖에 없음을 건우는 잘 알고 있었다.

“건우 수사는 이럴 때 보면 수도계의 때가 묻지 않은 수사처럼 보입니다.”

“무슨소립니까?”

“생각을 해 보십시오. 태령기 후기나 완경의 어르신들이 지금 상황에 직접 나서서 오행의 균형을 잡겠다고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나선다고 해봐야 득 될 것도 별로 없는데 말입니다.”

성호 준이 건우를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득은 되지 않아도 손해는 반드시 생길 텐데요?”

“그래도 솔선수범해서 나섰다가 자칫 위험해 질 수도 있으니 그냥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겠다는 분들이 많지요. 물론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그 분들 중에 누군가가 나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때는 분명 다른 태령기 수사들에게 그만한 보상을 약속 받은 후겠지요.”

“그것 참, 설마 그렇기야 하겠냐고 물어야 하는데 그런 말이 안 나오는 상황이라니 ! 옳습니다. 그런 경지의 수사들이 쉽게 나서진 않겠지요. 스스로 나서는 대신에 성호 준 수사 같은 이들을 부려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겠군요.”

“아, 그게 저……?”

건우가 상황이 훤히 보인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자 성호 준이 마땅한 변명을 찾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곧 건우가 대략적인 상황을 이미 짐작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원래 중간에 끼어 있는 어중간한 놈들이 고달파지는 법이지요. 태령기 정도 되는 수사들이 누구를 믿고 일을 맡기겠습니까. 당연히 성령기 수사들이 제일 만만하고 부리기 좋겠지요.”

“이미 짐작을 하셨습니까? 하하. 이거 참.”

건우의 말에 성호 준은 그렇게 말하며 살짝 한숨을 쉬었다.

성호 준이라고 무슨 책임 의식이나 주인의식이 있어서 성륜역의 오행 불균형을 바로 잡겠다고 뛰어 다니겠는가.

그 모두가 윗사람들이 그를 재촉하는 탓이었다.

“뭐 어쨌거나 내가 꼭 필요하다는 모양이니, 그럼 나도 이제 성호 준 수사에게 요구 사항을 말하겠습니다.”

“요구사항이라고요?”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보상도 없이 나서서 애를 쓸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어디 강 수사가 바라는 것이 뭔지 한 번 들어 보십시다.”

성호 준도 이미 건우에게 주도권이 넘어간 것을 인정하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건우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린룡의 수린공(水臟功), 강용의 단금공(銀金功). 이 둘을 익힐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면 동쪽의 화산지대로 따라 가리다.”

“수린공과 단금공?”

건우의 말에 성호 준이 고개를 갸웃거 렸다.

비록 린룡과 강용의 대표 수련 공법이라곤 하지만 따지자면 내어주지 못할 정도의 비전 신공도 아니었다.

어차피 각 속성을 타고 난 용인족이 아니면 대성하기도 어려운 공법이라 외부 인사에게 기회를 준다고 해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는 공법들이었다. 그런 사실은 성호 준도 같은 용인족이기에 알 수 있었던 일이었다.

“안 된다고 하면 나 역시 성호 준 수사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두십시오.”

성호 준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건우는 그렇게 최후 통보를 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성륜역에 이렇게 장거리 전송진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건우가 잠깐의 영기 파동과 함께 엄청난 거리를 이동한 후에 놀란 표정으로 성호 준을 보며 말했다.

그는 지금 린룡족의 영역인 성륜해 중심에서 단 한 번의 이동으로 성륜역 동부의 화산지대로 공간 이동을 한 참이었다.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상황을 고려하여 전송진을 발동시켰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급하지 않았다면 절대 사용할 수 없었던 전송진입니다.”

“절대 사용할 수 없다고요? 하긴 린룡족이 워낙 폐쇄적인 이들이긴 하지요.”

“그것도 있지만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소비되는 수련 자원이 어마어마하고, 또 허가를 받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허가라……. 하긴 그게 더 어려운 문제긴 하겠군요.”

건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이곳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절대 강룡족의 단금공(銀金功)은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먼저 구해드린 수린공 역시 결과가 나쁘다면 회수될 수도 있음을 알아두십시오.”

“한 번 줬으면 그만이지 회수는 무슨! 내가 설마 린룡족을 두려워 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성호 준의 말에 건우가 살짝 화난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다.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요. 성륜역의 어떤 수사가 우리 여섯 용인족을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아무튼 수린공이든 단금공이든 제대로 익히려면 건우 수사도 이곳에서 좋은 성과를 내야 할것입니다.”

성호 준은 그렇게 강조하고는 장거리 전송진이 있는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건우 역시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갔다.

- 와, 뭔 결계를 이렇게 빈틈없이 펼쳐 뒀데요? 이러니 바깥으로 의념을 뻗어내질 못하잖아요.

그런 건우의 뒤를 새로운 지역에 대한 호기심으로 흥분한 몽이가 바짝 뒤따랐다.

‘수린공은 어찌어찌 손에 넣었는데, 단금공을 얻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둬야 한단다. 그러니 너도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고민을 좀 해 봐.’

- 그래도 수린공을 얻은 게 어디에요. 따지고 보면 성륜해에 머물렀던 보상을 확실히 받은 거라고 할 수 있잖아요. 원래 그 공법을 얻기 위해 그곳에 갔던 거니까요.

‘뭐, 따지자면 그렇지. 그리고 이제 이곳 화산지대에서도 제대로 하면 단금공을 얻게 되겠지. 성호 준이 그렇게 철석같이 약속을 했으니 믿을 수도 있고.’

- 네, 건우님은 잘 하실 거라고 믿어요. 전 항상 건우님 편이니까요.

‘그래, 너는 내 사고의 일부기도 하니까.’

건우는 그렇게 몽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성호 준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고, 얼마 후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화산 공동에 올라설 수 있었다.

- 우와, 또 지하! 우리 건우님은 지하를 별로 안 좋아하시지 않아요?

몽이의 표정에 근심이 어렸다.

< 내가 필요하면 대가를 내 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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