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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07화 (40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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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까지 밀어주는 건가? 운이 좋아도 너무 좋다 >

“이곳이 용암천(銘巖泉)입니다.”

성호 준이 용암이 고여 있는 공동의 중앙을 가리키며 말했다.

“용암천이면 용암이 솟구치는 샘이란 뜻이군.”

“강 수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용암이 솟아나지요.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간헐천(間歌川)의 형태로 솟구칩니다.”

“일정 주기마다 용암이 솟아난다는 이야긴데, 그걸로 성륜역의 화기(火氣)를 어찌 충당한단 말입니까?”

건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용암천의 규모는 고작해야 십여 리에 불과했다.

십여 리의 공간에 용암을 가득 채운다고 하더라도 그 기운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무리 후하게 따져봐도 이곳의 화기(火氣)로 성륜역의 오행에 균형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저 일반적인 용암이라면 당연히 강 수사의 말이 옳겠지요. 하지만 이곳에서 솟아나는 용암은 극도로 정제되고 함축된 화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퍼져 나가면 능히 성륜역 오행의 화기를 책임 질 수 있지요.”

“정제되고 함축된 화기라……"

“저리로 가십시다. 저기에 먼저 온 수사들이 모여 있으니.”

성호 준이 건우를 이끌고 공동의 중앙, 용암천 가까운 곳으로 나아갔다.

그곳에는 성호 준의 말처럼 수십 명의 수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우가 가까이 가 보니, 용암천의 표면에 갈라진 선들이 모여서 진법을 형성하고 있었고, 수사들은 그것을 연구하며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무얼 하는 것입니까?”

건우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성호 준에게 물었다.

“용암천에서 솟아나는 용암의 양을 늘리고 또 주기를 짧게 만들 방법을 찾는 중이지요. 그리고 임시방편으로 화기를 품은 상급 영석을 녹여 넣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 말은 이곳 용암천에서 솟아나는 정제되고 함축된 화기란 것이 진법을 통해서 조정된다는 말입니까?”

건우는 새삼 용암천 표면의 진법을 다시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 용암천은 일종의 공간 통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공간 통로라면?”

“어딘가 지극한 화기가 모여 있는 곳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곳의 진법이 통로를 열게 되면 어딘가에 있는 특별한 용암이 넘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저 너머가 어디와 연결되는 것인지는 모른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공간 통로가 열릴 때에 들어가 볼 만도 했을 텐데요?”

“들어간 이들은 있었어도 돌아온 이가 없었지요.”

“하긴, 아무도 들어가 보지 않았을 리는 없겠지요. 그런데 돌아온 이가 하나도 없다면, 용암천의 진법 너머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일단 다른 수사들과 인사를 나눈 다음에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건우의 질문이 길어지자 성호 준이 일단 말을 끊고 다시 수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건우와 성호 준이 다가가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수사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숫자를 헤아리니 건우와 성호 준 이외에 서른두 명이 되었고, 모두가 성령기 경지였다.

물론 그 중에는 성령기 완경에 있는 이도 있고, 건우처럼 성령기 초기에 있는 이도 있었다.

“화기를 보충해 줄 수사를 데리고 온다더니, 고작 성령기 초기 수사를 데리고 왔군?”

건우가 그들과 몇 걸음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추자 성령기 완경의 수사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성호 준에게 말했다.

그러자 성호 준이 살짝 건우의 눈치를 보며 그 수사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일단 여기 강건우 수사의 화기가 용암천의 진법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경지가 문제가 아니지요.”

“그 말은 저 강 모라는 수사가 용암천의 진법을 자극 할 수 있을 거란 말인가?”

“그거야 어찌 장담을 하겠습니까만, 특별한 수련 공법을 익히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요. 행륜관을 넘어 온 수사의 수련 공법이니 말입니다.”

“성륜역에 없는 공법이라면…….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하겠군.”

못마땅한 표정이었던 그 수사는 건우가 성륜역 밖의 수련 공법을 익혔다는 말에 흥미를 보였다.

건우는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들이 용암천의 진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하긴 그랬으니 지금 화기만 부족하여 성륜역의 영기 균형이 깨지는 일이 생겼겠지. 그나저나 내가 익힌 극화공의 화기로 저 용암의 진법을 다룰 수 있다면 강룡족의 단금공(銀金功) 외에도 더 많은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 와, 순간적으로 그런 계산부터 하시는 거예요?

‘그게 뭐? 당연한 거지.’

- 물론 저도 칭찬해 주고 싶어서 하는 말이었어요. 최고예요.

“강 수사. 우리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이리 와서 용암천 표면의 진법을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강 수사가 익힌 공법의 화기로 진법을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을 해 보시지요.”

그 때, 성호 준이 건우를 보며 화기의 실험을 권해왔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용암천을 향해 다가갔다.

어차피 진법이 자신의 화기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쓸모는 그리 크지 않게 평가될 것이다.

물론 이후에 다시 진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울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에는 진법을 움직이는 것만 한 것이 없었다.

건우는 차분하게 용암천으로 다가가 표면의 진법 문양을 살폈다.

가뭄에 갈라진 땅바닥처럼 갈라진 용암천 표면의 무늬가 진법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무척 커서 한눈에 모두 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건우는 의념을 불러일으켜서 용암천 표면의 진법을 살펴보기로 했다.

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런데 건우의 의념이 공동 전체로 퍼져 나가자 용암천의 진법이 심상찮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엇? 진법이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그런 거 같은데요?”

“그럼 저 강건우란 수사가 진법에 영향을 줄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게 신기하긴 합니다. 그저 의념을 펼쳤을 뿐인데, 진법이 반응을 보이다니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저 진법은 특정한 화기에만 반응하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아닙니다. 지금 저 반응은 강 수사의 의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의념에 스며 있는 화기 때문입니다.”

“그런 걸까요? 하지만 의념에 있는 듯 없는 듯 담겨 있는 화기에 저토록 격한 반응이라니,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만큼 저 자의 화기가 용암천의 진법에 맞춤한 것이란 뜻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생각지 못한 반응에 모든 수사들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맡은 임무를 완수할 가능성이 생긴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으음. 진법이 용암의 표면에 있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려?”

그 때, 건우가 고개를 돌려 성호 준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앞서 수사들을 대표해서 앞으로 나왔던 성령기 완경의 수사가 손을 들어 성호 준을 말리며 입을 열었다.

“그것을 한 번에 알아내다니 제법이구나.”

“뭐라 불러야 하겠습니까?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예가 아닌가 합니다만?”

그런 수사를 똑바로 노려보며 건우가 말했다.

그러자 건우의 말을 들은 수사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고작 성령기 초기의 수사가 완경의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다니.

수도계의 관례에 비추어 보아도 옳지 못한 행동임에 분명했다.

“놈, 예의를 배우지 못했구나!”

그가 그렇게 건우를 향해 노여움을 드러내는 것은 일견 당연한 모습이기도 했다.

“쯧, 세상에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내가 지금 성령기 초기라 한들,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자 건우도 이전과 달리 말을 낮추며 그 수사를 향해 의념을 쏟아내었다.

“크윽, 아, 아니. 어찌 이리 강력한 의념을!”

이에 그 수사는 건우의 의념을 이기지 못하고 안색이 창백해지며 말을 더듬었다.

“시끄럽다. 이제 너와 나의 차이를 알았다면 너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어라.”

이에 건우가 그 수사를 향해 일갈하고는 다시 용암천 표면으로 시선을 돌리려 했다.

“자, 잠깐만.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이다. 내 사과의 의미로 지금껏 우리가 파악한 진법의 모습을 알려주겠다. 그리고 나는 축융(祝融) 일족의 나부려(坐蓋藜)라 한다.”

그런데 건우에게 한소리를 들은 성령기 완경의 수사 나부려가 도리어 사과를 하며 스스로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는 말과 함께 곧바로 허공에 영기를 응결시켰다.

그가 영기를 응결시켜 만든 것은 거꾸로 세운 원뿔 모양의 진법 구조도였다.

건우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 진법 모양을 살펴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저거 ! 소세야에서 봤던 거 같은데?’

그리고 그는 그 진법의 중앙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특별한 문양을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

맞아요. 소세야 화산 유적에서 봤던 그거. 선계의 모든 화기가 모인다는 염화도(炎火道)를 나타내는 문양 이라던 것과 비슷하네요.

‘그래, 염화궁에서 도망쳐서 수련 장소를 찾던 중에 봤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저 진법이 소세야와 연관된 것은 아니겠지?’

당연하죠. 소세야가 아니라 어딘가 있을 염화도와 연관이 있는 거겠죠.

‘그래. 그렇겠지.’

건우는 몽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염화도란 이름은 무척 흔하다.

그리고 그 이름은 대부분 화산이나 불, 화기(火氣)와 연관이 있는 지역에 붙는다.

하지만 지금 건우와 몽이가 이야기하는 염화도는 그런 일반적인 곳이 아니었다.

건우가 소세야에서 수련장소를 찾아다니던 중에 발견한 오래된 유적.

거기에 선계에서도 가장 화기가 충만하다고 하여 진선 이상의 경지가 아니면 그 경계에 다가가는 것도 위험하다는 화염 속성의 성지(聖地), 염화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다섯 갈래로 갈라진 듯 단순하게 표현한 불꽃의 모양을 염화도의 상징이라고 전한 기록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있다는 진법에 바로 그 다섯 갈래 불꽃 문양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도 건우가 이미 그 불꽃 모양의 상징을 알고 있었기에 숨겨진 문양을 발견할 수 있었을 뿐, 그냥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도록 감춰놓은 것이었다.

- 문양을 알고 의식하지 않으면 절대 찾을 수 없도록 숨겨져 있는 거지요?

‘그렇지. 알지 못하는 것은 눈으로 봐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그런데 저게 있다는 소리는 저 진법이 결국 염화도의 어느 곳으로 통한다는 소리일 확률이 높겠지?’

- 와, 그럼 이전에 진법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한 수사들도 설명이 되네요. 염화도는 진선경도 쉽게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곳이라 했잖아요. 그러니 그보다 못한 경지의 수사들이었다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겠지. 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익힌 극화공의 화기가 저 진법을 작동시킬 수 있다는 건 거의 확실하겠구나. 극화공의 화기가 진법과 잘 맞아.’

- 우와, 그럼 강룡족의 단금공을 빨리 얻을 수 있겠네요?

‘그 뿐이겠냐? 아까 생각했던 대로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겠지. 하하하.’

건우는 슬그머 니 극화공을 끌어 올리는 한편, 의념 공간을 분리하여 한 곳에 극화공의 화기를 가득 채워 넣었다.

그리고 그 화기를 몸에 두르며 나부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운이 좋았습니다. 내가 익힌 공법이 진법과 잘 맞는 모양이군요.”

나부려의 사과를 받았기 때문일까, 건우의 말투가 이전처럼 존대로 바뀌어 있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처음부터 강 수사가 우리와 함께했으면 오행의 균열이 크게 어긋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건우의 태도 변화에 축융족 수사 나부려도 마음이 놓였는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 준룡족의 성호준도 한 다리 걸치려는 듯이 끼어들었다.

“하하하. 그거 정말 잘 되었습니다. 이거 이제 시름을 덜 수 있겠군요.”

건우는 그런 성호 준을 보며 활짝 웃었다.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어차피 성호 준과 협상을 해 왔는데 지금 상황에선 자신이 갑의 입장에서 성호 준을 대할 수 있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성호준을 울리지는 마세요.

‘난 그런 생각은……'

- 네, 알아요.

< 이렇게까지 밀어주는 건가? 운이 좋아도 너무 좋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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