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57화 (57/499)

56. 밀역(密域), 입역(入域) 시험이 시작되다

후우우우웅! 푸홧!

눈앞이 캄캄해지며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긴 그 순간, 녹림도주 주시원이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을 급하게 공간 이동시켰다.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지만 법보에 무리를 주는 것이라 잘 쓰지 않는 기능인데 상황이 다급하니 주시원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시원은 멀리서 밀려오는 해일 속에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해양 요수를 느낄 수 있었는데 영체기 중급 이상으로 보이는 요수였다.

그래서 굳이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비행 법기의 능력을 사용해 피한 것이다.

건우는 그 때, 아득한 정신을 겨우겨우 가다듬으며 아공간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그런데 다행히 만년침향목선이 공간이동을 하고 주위 경치가 바뀌는 것을 보며 가까스로 그것을 멈출 수 있었다.

“모두 선실로 들어가라. 해양 요수를 피해 한동안 최고 속도로 이동을 할 것인 즉.”

공간이동을 마친 주시원이 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주시원의 명령에 건우를 비롯한 축기기 제자는 물론이고 성단기의 장로들까지 모두 만년침향목선의 선실로 내몰렸다.

주시원은 강력한 의념을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 전체에 펼쳐서 제자들의 행동을 강제했던 것이다.

그는 모든 제자가 선실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안에서 외부의 상황을 알 수 없도록 선실을 격리해 버렸다.

건우는 몰랐지만 주시원은 그런 조치를 통해서 혹시 숨어 있을지 모를 밀정의 정보 유출을 막고자 한 것이다.

그 후로 여섯 달, 주시원은 모든 제자를 가둔 상태로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을 홀로 움직였다.

덕분에 주시원 이외의 어떤 제자도 그들이 어디를 어떻게 가고 있는지 몰랐고, 이후에 봉쇄가 풀리고 선실 밖으로 나와서도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뭔 하늘에 별도 없어!”

반년이 지난 후, 바닷가 해안에서 하선을 할 때, 축기기 제자 중에 하나가 그렇게 푸념을 늘어놨다.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은 바닷가의 넓은 백사장에 내려 앉아 있었는데, 하늘과 물이 모두 검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게다가 그 검은 빛은 곳곳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서로 부딪히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검은 뇌전이 공포스럽게 공간을 갈라놓고 있었다.

주시원은 제자들을 데리고 어딘지 모를 이상한 공간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강력한 비행 금제가 있다. 그래서 각자 둔광을 써서 이동을 하도록 한다. 모두들 주변을 잘 살피며 나를 따르거라.”

제자들이 모두 내리고 만년침향목선을 수습해 작게 줄여 소매에 넣은 후, 주시원이 제자를 모아 그렇게 말했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건우는 긴장한 상태로 주변을 살피며 도주와 장로들을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이 이상한 공간에서는 의식의 힘도 제약을 받아서 평소의 1할 정도밖에 의식을 펼치지 못했다.

그것을 확인한 건우는 자연스럽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 *

“사형, 이상한 곳입니다. 이곳은 다도해역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장사형, 여기가 혹시 그 흑해 아닐까요? 하늘도 검고, 바다도 검은 것이 그렇게 보이는데요?”

“흑해의 환경이 흉하다고 하지만 이토록 이상하지는 않을 게다. 흑해는 바다가 검기는 하지만 하늘까지 저렇지는 않지.”

장무기는 흑해에 대해서 들은 바와 이곳의 모습을 비교하며 고개를 저었다.

건우는 옆으로 따라붙은 공여려와 장무기의 모습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내심으로는 호통을 쳐서 멀리 쫓아버리고 싶지만, 종문의 사형제 사이에 그런 꼴을 장로나 도주들에게 보여서 좋을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시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이동하자 바다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메마른 암석지대가 나타났다.

크고 작은 언덕들이 연이어 있고, 간혹 깊게 갈라진 틈과 뾰족하게 솟은 바위들이 있는 곳이었다.

바위들 모두가 검은 색이고 날카롭게 쪼개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자칫하면 바위에 베일 수도 있어 보였다.

그런 곳을 다시 며칠 동안 이동했다.

“다행히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많이 다를 것이다. 장로들은 앞으로 나서라.”

검은 바위 지대를 나아가다 주시원이 걸음을 멈춘 곳은 폭이 몇 킬로미터는 되어 보이는 계곡 앞이었다.

바닥은 의식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계곡이었다.

의식의 힘이 제약을 받는 곳이라 해도 건우의 의념 공간을 생각하면 그 끝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깊다니 계곡의 규모가 굉장했다.

건우가 그렇게 의식을 펼쳐 주변을 살피고, 안개로 가득한 계곡 아래를 의식으로 더듬는 동안 주시원이 장로들과 뭔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축기기 제자들이 듣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결계를 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건우가 의식 탐색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주시원과 장로들을 지켜보는 동안에 주시원이 장로들에게 옥간 하나씩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대장로인 고유진을 제외단 여섯 장로는 옥간을 받아들고 돌아서 축기기 제자들을 향해 다가왔다.

“이제부터 너희는 우리를 따라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섭주구가 대표로 나서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장로들은 둘씩 짝을 지었는데 섭주구는 성단기 초기의 가득효라는 장로와 짝을 지었고, 허빈자는 장기로와 짝이 되었다.

그리고 남은 모결소 장로와 하문궐이라는 장로가 나란히 섰다.

“이제 너희 중에 각자 함께 가고 싶은 장로가 있는 제자들은 우선 나와 보거라.”

여섯 장로들이 둘씩 짝을 지은 후, 섭주구가 축기기 제자들을 보며 말했다.

그 때 건우는 장로들이 아니라 그 뒤쪽에 뒷짐을 지고 있는 도주와 고유진 장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주시원과 고유진은 따로 축기기 제자를 데리고 갈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어쩔 수 없이 건우가 섭주구 장로 쪽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사형은 당연히 우리와 함께 가야죠? 사형은 녹영림의 제자니 허빈자 사숙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게다가 저희와도 친하니 함께 가요.”

공여려가 큰 소리로 떠들며 건우의 팔을 잡아 끌었다.

건우는 와락 찌푸려지는 인상을 억지로 펴며 공여려를 노려봤다.

“맞습니다. 사형. 당연히 저희와 함께 가야죠.”

그런데 그 순간 장무기 역시 건우의 곁으로 붙어서며 재촉했다.

그 소란에 장로와 제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몰렸다.

건우는 허빈자의 시선을 느끼고 어쩔 수 없이 공여려에게 이끌려 앞으로 나섰다.

그 후, 축기기 제자들은 섭주구 쪽에 스물, 허빈자 쪽에 스물, 모결소 쪽에 열여섯이 모였다.

모결소 장로 쪽의 수가 적었지만 따로 인원을 재배치 하는 일은 없었다.

그 정도 숫자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고 여겼는지, 그 차이도 능력의 차이니 알아서 감수하라는 뜻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저 계곡을 넘어서 밀역의 시험을 치른다.”

건우와 공여려, 장무기를 비롯한 스무 명의 축기기 제자를 앞에두고 장기로 장로가 입을 열었다.

“사부님, 밀역의 시험이 무엇입니까?”

장무기가 그런 장기로 장로를 보며 물었다.

축기 중기에 불과한 장무기지만 그가 장기로의 제자이니 자연스럽게 발언권이 높아진 것이다.

“밀역, 정확하게는 십이비승봉(十二飛昇峰) 밀역(密域)이라 부르는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네 개의 출입패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각각의 경로를 따라서 목적지에 닿아야 한다. 그것을 밀역에 들기 위한 시험이라 말한 것이다.”

“그럼 그 시험의 내용에 대해서는 미리 알 수 있습니까?”

“도주님께서 이렇게 따로 내용을 정리해 주셨다. 그러니 너희는 우리만 믿고 따라오면 될 일이다.”

장기로 장로가 곁에 있는 허빈자 장로를 슬쩍 곁눈질로 보며 말했다.

사실 허빈자의 경지가 성단기 완경으로 성단기 중기인 장기로에 비해서 높은 위치다.

당연히 주도권을 허빈자가 가져야 할 것이지만 허빈자의 성격이 내향적인 면이 있어 장기로가 앞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저희는 사부님과 사숙만 믿고 따르면 되는 것입니까?”

“어허, 어찌 일이 그렇게 쉽겠느냐. 시험을 치르는 동안에 예상치 못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니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사부님.”

“자, 다들 저리로 가자꾸나.”

장기로는 대충 상황 설명을 마쳤다 여겼는지 제자들을 이끌고 계곡의 끄트머리로 다가갔다.

곧 몇 걸음만 나가면 아득한 단애 밑으로 떨어질 곳까지 나아간 장기로.

그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더니 허공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성단기 수사의 정혈을 내어 술법을 펼치는 것이다.

건우는 장기로가 허공에 그리는 술법문을 바라보며 아공간 입구를 투명하게 열어 루야에게 그것을 기억하도록 했다.

워낙 복잡하고 또 현묘한 변화가 깃든 것이라 한 번 보고 기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루야는 그런 면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일종의 절대 기억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봐야 할까?

건우의 의념을 받은 루야가 아공간 입구에 붙어서 장기로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기억했다.

“어? 다리가, 다리가 나타난다.”

그 때, 축기기 제자들 중에 하나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처럼 수 킬로미터의 폭을 지닌 계곡 사이에 검은 색의 돌다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기로가 술법문양을 그리고 법문을 외워 숨겨져 있던 통로 하나를 연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주시원과 고유진을 비롯한 다른 장로들 무리도 비슷한 방식으로 밀역 입구로 가는 길을 열고 있었다.

건우는 그 입구들이 모두 제각각인 것을 눈여겨보았다.

이쪽은 검은 색의 좁고 긴 다리가 나타났는데, 도주와 고유진 장로 앞에는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통로 입구가 있었다.

그리고 섭주구 장로 앞에는 낡은 목선이 나타났고, 모결소 장로의 앞에는 지하로 통하는 동굴이 나왔다.

각기 다른 형태의 통로는 그곳의 시험이 모두 제각각일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제 가자.”

입구를 여는 과정을 모두 마쳤는지 장기로가 조금 피곤한 안색으로 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허빈자 장로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지 뒷짐을 지고 제자들을 먼저 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건우는 축기기 후기의 제자로 스무 명의 제자들 중에서 세 손가락에 꼽을 실력자였다.

다른 제자들을 앞세우고 뒤로 빠지기엔 눈치가 보이는 입장인 것이다.

건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제일 앞으로 나서서 장기로 장로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건우가 움직이자 곧바로 장무기와 공여려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모든 축기기 제자가 다리 위에 올라서자 허빈자가 뒤를 점하고 다리에 올라서서 한 모금의 피를 토해 허공에 뿜었다.

우우우우웅!

“어엇?”

“이게 무슨?”

그리고 그 순간 다리 위에 있던 제자 몇이 갑작스런 압력에 무릎을 휘청거렸다.

건우도 압력의 변화를 느꼈지만 의식의 힘을 끌어올려 그 압력에 대항했다.

“당황하지 마라. 이제부터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 때, 장기로가 제자들을 향해 돌아서며 고함을 질렀다.

“너희도 느꼈겠지만 이 다리에는 영압이 있다. 이 영압은 의식의 힘과 육체의 힘, 어느 것으로든 저항할 수 있는 힘이다. 육체가 강하다면 그 힘으로, 의식이 강하다면 그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

“사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장기로의 말에 장무기가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쯧, 이제 시작일 뿐이니 경솔하게 판단하지 마라. 앞으로 나아갈수록 압력은 강해질 것이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멈추는 제자는 다리 밑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장무기의 가벼운 언행을 꾸짖은 장기로가 폭탄 선언을 했다.

“미, 밑으로 떨어뜨린다고요?”

공여려가 깜짝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렇다. 그러니 뒤처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뒤쪽에 허빈자 장로가 따라오며 가망이 없다 싶은 제자를 탈락시킬 것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장기로의 말에 제자들이 뒤쪽에 있는 허빈자 장로를 돌아봤다.

허빈자 장로는 아무 표정도 없이 뒷짐을 지고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차피 시험이 시작된 이상, 뒤로 가서 벗어날 수도 없다. 그러니 딴 생각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거라.”

장기로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통보를 하고는 몸을 돌려 다리 위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폭이 2미터 정도 되는 다리는 앞 사람을 추월할 공간이 충분했다.

축기기 제자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쯤 나아갔을 때, 조금씩 강해지던 압력이 제자들의 걸음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그것이 제자들의 마음에 부담을 만들고, 그럴수록 의식이 흐트러진 제자들은 강한 압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서 가지 못할까!”

결국 뒤쪽에서 허빈자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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