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56화 (56/499)

55. 이게 법기 맛보기 전쟁이여

건우는 먼저 사의전주인 장기로가 상대하고 있는 바다뱀 모습의 해양 요수를 바라보았다.

장기로는 엄지손톱 크기의 흑옥구슬을 엮은 목걸이를 무기로 사용해서 바다뱀 요수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삼백 개가 넘는 그 흑옥(黑玉) 구슬은 하나하나가 해골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작은 해골의 떡 벌린 입 사이로 머리카락을 꼰 것 같은 줄을 통과시켜 만든 목걸이였던 것이다.

장기로는 특이하게 검은 색의 장삼을 걸치고 있었는데 가끔씩 몸 주변에 반투명한 검은 해골바가지가 나타나 입을 벌리고 소리 없는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 때마다 연푸른 색의 바다뱀 요수의 몸에 검은 얼룩이 뿌려지듯 나타났다.

= 죽어라!

하지만 성단기 바다뱀 요수는 몸에 생긴 검은 얼룩을 금방금방 흡수해 버렸다.

건우가 보니 그 검은 얼룩은 사기(邪氣)를 가득 품은 독이었다.

하지만 바다뱀은 그 독을 무서워하지 않고 도리어 흡수해버리는 것이다.

건우가 보기에 장기로의 상대로 바다뱀 요수는 상성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기로 옆에는 또 다른 성단기 수사가 있었다.

모결소라는 이름의 그 장로는 법부나 법기 따위를 만드는 경화전(瓊化展)이라는 곳의 전주였다.

완합종 장로 특유의 하얀 장삼을 입은 모결소는 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를 지닌 여자 수사였다.

그녀는 짧은 자루가 달린 은색 손거울을 무기로 삼아 장기로와 함께 바다뱀 요수를 공격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거울에서는 수시로 붉은 광선이 쏘아져 바다뱀의 비늘을 불태우고 녹이는 중이었다.

건우는 그 은색의 손거울 표면에서 일렁거리는 주술 문양들에 집중해 보았다.

“굉장한 법보로군. 법보들 중에서도 최상급이겠어.”

건우는 그 법보에 생기는 주술문양을 알아보진 못했지만 그 은색 손거울이 굉장한 보물이란 것은 알 수 있었다.

모결소 장로가 그리 힘을 쓰지 않고도 매서운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법보의 힘이었다.

그 덕분에 바다뱀은 연신 불리한 상황에 몰리고 있었다.

건우는 장기로와 모결소의 싸움에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는 온 몸에 가시가 돋은 300미터 크기의 가시복 요수가 보였다.

그것을 상대하는 이는 거지같이 헤어진 장삼을 입은 허빈자였다.

녹영림의 림주인 그도 이번 원정에 따라온 것이다.

듣기로는 허빈자는 대외 활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수련에만 관심이 있을 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 원정에 따라 나선 것은 도주 주시원이 그에게 영체기에 오를 수련 공법을 보상으로 주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허빈자는 거대 가시복 해양요수를 상대로 허공을 밟으며 이리저리 둔광을 펼치고 있었다.

허빈자의 무기는 팔뚝 길이 정도의 짧은 목검이었는데 그는 멀리서 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찌르고 베고, 치고 때리는 근접 공격을 하고 있었다.

별로 대단할 것이 없어 보이는 투박한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싸움은 일방적으로 허빈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의 목검에 가시복의 가시들이 숱하게 잘려나갔다.

가시복 요수는 때때로 요기가 가득 담긴 투명한 독무까지 뿜어냈지만 허빈자는 손짓 몇 번으로 그 독부를 응축시켜 단을 만들어 챙기고 있었다.

성단기 완경이라는 허빈자는 확실히 강한 수사였다.

건우는 그 싸움을 한참 지켜봤지만 허빈자의 비기를 엿볼 기회는 얻을 수 없었다.

그만큼 허빈자와 가시복 해양요수 사이에는 간극이 컸다.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긴 건우의 시선은 허빈자에게서 떠나 이번에는 거대 해파리 요수와, 거대 아귀 요수를 차례로 살폈다.

그 두 요수는 한곳에 뭉쳐 있었고, 남은 세 명의 성단기 장로들이 그 두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중이었다.

거대 해파리는 수많은 촉수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창이나 채찍처럼 쓰고 있었고, 아귀 요수는 큰 입을 벌릴 때마다 칠흑 같은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세 명의 장로는 성단기 초기의 장도 둘과 고유진 대장로였는데 두 마리의 성단기 해양 요수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건우는 그들을 돕기 위해 법기를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마침 불가사리 요수를 처리한 섭주구가 그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되자 전세는 급격히 녹림도 장로들 쪽으로 기울었다.

이쯤 되면 건우가 거들 일이 없어진 셈이다.

건우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축기기 제자들이 상대하는 저계 요수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법기인 칠부팔진궤(七符八陣櫃)에 의념을 불어 넣으며 수인을 맺었다.

쉬쉬쉬쉬쉬쉬!

그러자 곧바로 칠부팔진궤(七符八陣櫃)의 뚜껑에 어지러운 주술문이 떠올랐다가 부적으로 만들어져 벗겨져 나왔다.

자세히 보면 주술문은 뚜껑에서 한 치 정도 떨어진 상태로 나타났는데 그 상태로 고정이 되어 법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주술문을 고정하는 것은 칠부팔진궤(七符八陣櫃)의 뚜껑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안개였다.

안개는 표면에서 떨어져 있는 주술문과 결합하며 하나의 법술부적, 즉 법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순식간에 벌어져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 크기의 법부 십여 장이 만들어졌다.

그 부적들은 돌방석에 앉은 건우 앞에 펼쳐져 방패처럼 앞을 막아섰다.

나타난 부적의 수는 열여덟.

뇌속성 기운을 담은 부적이 여섯, 수속성 기운을 담은 것이 여섯, 무속성으로 물리적인 폭발을 일으키는 부적이 여섯이었다.

건우가 수인을 바꿀 때마다 칠부팔진궤(七符八陣櫃)에서 만들어지는 부적의 종류도 달라졌던 것이다.

칠부팔진궤(七符八陣櫃)라는 이름 앞부분의 칠부(七符)가 뜻하는 것은 일곱 종류의 부적.

칠부팔진궤(七符八陣櫃)는 필요할 때에 법기에 저장된 일곱 종류의 부적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가랏!”

건우가 다시 수인과 함께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건우의 앞에 도열했던 법부들은 일제히 날아가며 뒤섞이다가 저계 요수들이 몰린 곳에 멈춰 법부로 이루어진 진을 만들었다.

그것이 법기의 이름 두 번째에 있는 팔진(八陣)의 의미였다.

일곱 종류의 부적을 빠르게 만들어 그것을 조합해서 여덟 종류의 법부진을 만드는 함.

그것이 칠부팔진궤(七符八陣櫃)였던 것이다.

“수뢰폭(水雷爆)!”

법부들이 제자리를 잡자마자 건우가 다시 술법의 시동어를 외쳤다.

콰광! 콰르르르르릉!

키이이익! 케엑! 키락! 츠르!

건우의 시동어와 함께 열여덟 법부들이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폭발은 개개의 부적이 터지는 종류가 아니었다.

법부들이 이루고 있던 진법 자체가 폭발하는 것.

그 때문에 위력은 수십 배로 증폭되었다.

수속성 법부의 폭발에 뇌전 속성 법부의 기운이 더해지고, 거기에 물리적인 폭발의 힘까지 실렸다.

그 폭발이 저계 요수가 몰린 백여 미터 범위를 날려버렸다.

폭심 가까이 있던 저계 요수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폭심에서 벗어난 요수들도 큰 상처를 입고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굉장하네요.”

“그러게. 건우 사형이 저런 법기를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녹영림 교류에서 이런저런 법기나 법부를 많이 구했다고 들었지만 저런 것이 있다는 이야긴 들은 적이 없어요.”

“나도 저런 형태의 법기는 지금까지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저걸 건우 사형이 만들었을 수도 있겠군.”

“네? 직접 만들었다고요?”

“그게 아니면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하는데, 설마 저런 법기를 숨기고 있었다고? 그게 더 말이 안 되지. 여려 사매도 전에 경진후와 경미후 두 사람이 건우 사형의 공간낭까지 확인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그러네요. 그 때, 건우 사형 수준이 두 분의 눈을 피해서 무슨 수작을 부리긴 어려웠겠죠.”

“그러니 저 법기는 건우 사형이 남몰래 구했거나 혹은 직접 만들었다고 봐야지.”

“그러네요. 알려지지도 않은 법기를 어디서 구했다고는 믿긴 어려우니까요.”

“맞아. 그래서 나도 저걸 직접 만들었을 거라고 하는 거야.”

공여려와 장무기는 건우의 활약에 깜짝 놀라며 이런저런 궁리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럼 저게 건우 사형의 본명 법기일까요?”

“저렇게 특이한 법기라면 당연히 그렇겠지. 위력도 뛰어나고 쓸모도 많아 보이잖아.”

“그러네요. 장사형, 우리도 빨리 본명 법기를 만들어요. 네?”

공여려는 건우의 법기를 보고 조급증이 들었는지 그렇게 장무기를 졸랐다.

“본명 법기라고 꼭 만들 이유가 무엇이냐. 좋은 것을 구해서 연화시켜 본명 법기로 삼아도 된다. 사실 직접 만드는 것보다는 그 쪽이 더 좋을 수도 있지. 특히 법기를 넘어 법보를 구하게 된다면 한 단계를 건너뛰는 것이니 그 얼마나 좋으냐.”

“하긴 그러네요. 이번에 가는 곳이 마침 보물이 가득한 곳이라니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겠네요.”

“그러니 너무 부러워하지 말아라. 그래봐야 법기 수준일 뿐이다. 우리는 법보를 취해서 바로 본명 법보로 삼도록 하자꾸나.”

“호호. 네 그렇게 해요 사형. 아, 저기!”

공여려는 말을 하던 도중에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한 쪽을 가리키며 날카롭고 차가운 속성을 쏘아냈다.

빙속성 영기를 이용해서 저계 요수를 공격한 것이다.

그에 맞춰서 장무기 역시 검을 휘두르며 암록색의 기운을 쏘아냈다.

둘이 쓰고 있는 검들은 완합종의 제자들이 적당한 공헌점수로 구할 수 있는 하급 법기였다.

그런 것을 쓰고 있으니 과시욕이 넘치는 공여려가 좋은 법구(法具)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장무기는 공여려가 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요수를 잡는데 열을 올렸다.

그는 사의전 전주의 제자라 그런지 주로 독기를 이용한 공격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가 내쏘는 암록색 기운 역시 영기에 여러 다른 기운과 독기운을 섞어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축기기 제자들이 저계 요수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며 상황을 정리해 갈 무렵이었다.

콰과과과광! 파파지지직!

우르르르릉! 푸쉬쉬쉬쉬!

쩌저저정! 콰릉!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큰 폭음과 뇌전이 지져지는 소리, 바람 빠지는 소리, 뭔가 얼어붙는 소리 등이 한꺼번에 들렸다.

그와 동시에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이 크게 요동쳤다.

깜짝 놀란 수사들이 모두 몸을 가누기 위해 애를 써야 할 정도였다.

“제자들은 정신 차려라!”

우우우우웅!

그 때, 녹림도주 주시원의 고함소리가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곧바로 하나의 결계를 만들며 만년침향목선을 둥글게 에워쌌다.

“무슨 일이지?”

“그러게?”

“저기 저걸 봐라. 성단기 거대 해양 요수들이 도망치고 있다.”

“그러네? 도주님이 쫓아내신 건가?”

“아니야. 그게 아닌 거 같다. 저기 봐. 저기 뒤쪽!”

제자들이 어리둥절하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데 누군가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의 선미 쪽을 가리켰다.

건우는 누각에 가려 뒤쪽을 볼 수 없는 위치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지키던 돌방석을 벗어날 수도 없는 상황.

“뭐지? 엄청난 것이 다가오고 있다.”

“해일!”

“바닷물이야! 바닷물이 거대한 벽이 되어 밀려오고 있어.”

“여기가 얼마나 높은 곳인데 여기까지 바닷물이 올라와?”

“젠장 보면 알잖아!”

건우는 축기기 제자들이 떠드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이 해수면에서 수천 미터 위에 있는데도 위험할 정도의 해일?

건우는 그런 건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상상이 필요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의 선미 쪽 좌우로도 밀려오는 해일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미친!”

건우는 깜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아공간 입구를 열었다.

그리고 아차 하며 도주 주시원과 다른 성단기 장로들을 살폈다.

혹시 그들이 아공간 입구가 열린 것을 알아차릴까 걱정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건우의 아공간 입구를 알아차린 사람은 없어 보였다.

건우는 선미 쪽을 보는 척 하면서 계속 녹림도주 주시원의 모습을 살폈다.

의념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그저 눈과 귀를 이용해서 잠깐씩 그를 살피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주시원은 건우의 아공간 입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다. 성단기나 영체기도 내 아공간 입구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양이네. 이게 은색 입구였으면 들켰을지도 모르는데.’

건우는 아공간 입구를 습관적으로 투명하게 연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저 해일을 어떻게 할 거냐고.’

건우는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다시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으로 밀려오는 해일을 쳐다봤다.

그 짧은 시간에 거대한 해일은 금방이라도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을 집어삼킬 듯이 가까워져 있었다.

“제, 젠장.”

건우는 순간 등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해일이 다가올수록 천지의 영기가 제 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꾸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그 해일 안에서 기묘한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에 타고 있는 모든 수사들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건우도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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