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58화 (58/499)

57. 모습을 드러낸 건우의 본명 법기

경화전주 모결소와 하문궐 장로는 축기기 제자 열여섯을 데리고 십이비승봉 밀역의 입역 시험에 들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통로는 지하 석굴.

하지만 막상 석굴로 입장하자 두 장로와 열여섯 제자들은 각각 석실 하나에 한 명씩 들어가게 되었다.

석굴 시험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결계가 그들을 하나씩 흩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흩어져 있는 이들이 함께 들어온 이들의 상황을 눈앞에서 보듯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황해서 어리둥절 사방을 살피는 축기기 제자는 물론이고, 조용히 가부좌를 하고 앉은 모결소와 하문궐의 모습까지.

“모두 정신을 가다듬어라. 지금부터 시험이 시작될 것이다.”

“시험의 내용은 너희가 있는 석실에서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것이다.”

“의념을 집중해 보면 눈앞에 모래시계가 나타날 것이다. 그 모래가 모두 떨어질 때까지 버티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그러니 최대한 버텨라. 그리하면 기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결소와 하문궐이 번갈아 호통을 치며 제자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석실의 벽과 천정이 안쪽으로 조여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축기기 제자들이 자리에 앉아서 의식을 가다듬고 벽과 천정을 밀어내기 위해 힘을 쓰기 시작했다.

열여섯 제자들이 갖가지 법술과 법부, 법기를 사용해서 다가오는 벽과 바닥, 천정을 밀어내려 애썼다.

얼음을 만들어 석실을 채우기도 하고, 몇 개의 창을 꺼내 길이를 늘려 버팀대를 만들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진법을 만들고 누군가는 보호막을 쳤다.

그렇게 제각각 살 길을 도모하는 가운데 모결소와 하문궐은 조용히 가부좌를 한 상태로 의념의 힘만으로 석실을 원래의 모습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단기의 두 장로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축기기의 제자들은 석실의 축소를 막기 어려워했다.

좁혀오는 벽과 천정의 압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안돼!”

퍼지직!

“흐윽!”

“주, 죽었다!”

“명경사제!”

결국 한 석실이 완전히 밀착되며 제자 하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섬뜩하게 들리는 압착음과 함께 붉은 핏물이 맞붙은 돌 틈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석실은 모두의 감각에서 사라졌다.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그 때, 제자들은 한 순간 모래시계의 모래가 주르륵 빠르게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시험자가 죽게 되면 그만큼 모래가 빨리 떨어진다. 네 한 몸을 희생해서 동기들의 시험 통과를 돕고 싶으면 그리 해도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없어도 모래시계의 모래는 느리지만 쉼없이 떨어져 언젠가는 그 바닥을 보일 것이다. 그러니······.”

모결소와 하문궐이 그렇게 상황 설명을 하는 중이었다.

“으아아아악!”

구궁! 뿌지지직!

또 한 명의 제자가 핏물이 되어 맞붙은 돌 틈으로 모습이 사라졌다.

모결소와 하문궐의 말이 아니어도 남은 열네 명의 축기기 제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동기의 희생으로 주르륵 떨어져 내리는 모래를 보며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생각이 많아졌다.

“대도는 무정하고, 수도의 길은 외로운 법이다.”

하문궐이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 * *

접객청의 섭주구는 가득효라는 이름의 성단기 초기 장로와 함께 스무 명의 축기기 제자를 데리고 목선을 탔다.

목선은 시험에 사용되는 비행 법기로 인원 모두가 배에 오르자 목선을 둘러 흑녹색의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시험이 시작되자 섭주구는 비대한 몸을 날려 뱃머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거기에 진법이 그려진 둥근 방석이 있었다.

“모두 자리를 찾아 앉거라.”

섭주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배의 앞쪽으로 향해 등을 돌리고 앉았다.

그러자 가득효 장로가 이번에는 배의 제일 뒤쪽으로 가서 방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이후엔 제자들이 각각 마음에 드는 방석을 찾아 앉았는데 스무 명의 제자와 두 장로가 방석을 채우자 다른 방석들은 신기루처럼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때를 맞춰 배가 계곡 너머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내 말을 들어라. 너희는 두 가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나는 의념을 이용해서 최대한 배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깃털보다 가벼워져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존재감을 지워내는 것이다. 스스로를 감춰라. 그렇지 않으면······.”

가득효의 목소리가 배에 타고 있는 제자들의 귀를 울렸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의 상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목선이 점점 낡아가며 삭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서 배를 이룬 나무의 옹이들에서 넝쿨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악! 이, 이게 뭐예요?”

그런 중 축기기 제자 중에 여자 제자 하나가 넝쿨의 가시에 팔이 찔렸다.

그 제자는 호들갑을 떨며 가시가 박힌 팔을 뿌리쳐 넝쿨을 털어내려 했다.

하지만 제자의 피를 먹은 넝쿨은 순식간에 자라나 그 팔을 휘감고 굵어지기 시작했다.

“아악!”

깜짝 놀란 제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었고, 또 도우려 하는 이도 없었다.

그렇게 되자 여자 수사는 경황 중에도 이를 부득 갈았다.

그리고 반대편 손을 허공에 휘저어 공간낭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서걱걱!

“으드드드득!”

서슴없이 휘두른 단검은 넝쿨에 감긴 팔을 잘라냈다.

이미 퍼렇게 독이 올라오는 팔을 포기하고 생명을 구한 것이다.

축기기에 오른 수사는 팔이 잘린다고 피를 펑펑 쏟아내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영기를 움직이면 지혈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수도계에서는 달아난 팔다리를 복구할 방법은 많이 있었다.

여제자는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판단하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잘려나간 팔을 흡수한 넝쿨은 곧바로 잠잠해졌다.

아울러서 그 넝쿨이 나온 옹이를 중심으로 배의 일부분이 새것처럼 매끈하게 변했다.

배를 타고 있던 다른 축기기 제자들은 이제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배는 점점 낡아간다.

그리고 한계에 닿으면 배를 타고 있는 이들이 추락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배의 넝쿨에 잡아먹히게 되면 배는 다시 복구되고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배의 이목에 들키지 않게 스스로를 감추며 또 한편으로는 몸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했다.

“이제 알았으면 최선을 다하거라.”

가득효 장로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운을 가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시험에 성단기의 장로들이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었다.

어차피 대신 희생될 제자들은 충분했다.

* * *

“다들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녹림도주 주시원이 허름한 석조 제단 위에 한 모금의 피를 뿜어 숨겨진 진법을 발동하며 말했다.

“각각의 시험 내용을 사제들에게 알려줬으니 알아서들 할 것입니다.”

“시험을 통과하면 무궁한 이득이 있을 것인데, 그것을 제자들이 알 수 있을까 모르겠군.”

“몇몇 영민한 제자들은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 시험이 수사들을 담금질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 하지만 대다수는 영문도 모르고 쫓기다가 더러 죽고 그러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긴 하지. 어차피 옥석은 구별을 해야 하는 법이니까.”

주시원이 그렇게 고유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정혈을 흡수한 진법이 빛을 내더니 허공에 뭔가를 응결하기 시작했다.

제단에 쌓여 있던 영기와 주시원의 정혈 기운이 만나서 하나의 패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실 이곳 제단까지 오는 과정에는 별다른 시험이 없었다.

주시원도 그것을 알고 고유진만 데리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오는 과정이 쉬운만큼 입역 패를 얻는 것은 어려웠다.

최소 영체기 수준의 정혈이 아니면 제단의 금제를 발동할 수 없고, 패도 응결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이곳은 영체기 이상 수사들의 프리페스 통로인 셈이었다.

“되었군.”

주시원은 제단 위에 떠 있는 입역 패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패가 빨려들 듯이 주시원의 손으로 날아왔다.

주신원은 패를 받은 후, 그것을 고유진 쪽으로 내밀어 영기를 투사했다.

그러자 패에서 허(許)라는 주술문이 떠올라 고유진에게 스며들었다.

이로서 고유진 역시 밀역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영체기 수사라면 스스로 패를 만들어 가질 수 있고, 영체기 수사가 데리고 온 인물이라면 서넛 정도는 그 패를 이용해서 입역 자격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자, 그럼 가 볼까?”

“네, 스승님.”

주시원은 원하는 것을 모두 얻고 나자, 다시 허공에 손짓을 해서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만들었다.

욕심 같아서는 제단을 박살내서 다른 누군가가 사용하는 것을 막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밀역은 화신기 완경의 수사 열두 명이 힘을 모아 만든 곳이다.

그런 곳에서 만용을 부리는 것은 죽고 싶지 않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주시원은 시험 공간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열리자 미련을 버리고 훌쩍 몸을 날렸다.

그리고 고유진이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고유진이 그곳을 떠나기 전에 작은 옥간 하나를 바닥에 던져 놓은 것을 먼저 떠난 주시원은 알지 못했다.

* * *

건우 일행의 시험도 이제는 끝을 보고 있었다.

장기로 장로는 돌다리를 열 걸음 정도 남겨 놓은 상태였고, 그 네 걸음 정도 뒤에 건우가 있었다.

건우 뒤로는 축기기 후기의 녹영림 제자 둘이 두, 세 걸음씩 차이를 두고 따르고 있었고, 그 뒤로도 축기기 중기의 제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원래 스물이었던 축기기 제자의 수는 이제 열 명도 되지 않았다.

건우를 포함한 축기기 후기 제자가 셋, 그 뒤로 축기기 중기 제자가 다섯이었다.

결국 지금까지 열두 명의 축기기 제자가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는 소리다.

당연히 그들을 떨어뜨린 것은 허빈자 장로였다.

“예서 꾸물거릴 것이냐? 이번에는 네가 떨어지고 싶으냐?”

허빈자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온 몸이 땀에 절어 손바닥과 무릎이 까진 채로 엎드려 있는 것은 공여려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같은 몰골을 하고 있는 장무기가 있었다.

“가, 갈 수 있습니다. 사숙님.”

“저희는 저희는 아직 남은 수가 있습니다.”

공여려와 장무기가 안간힘을 쓰며 허빈자에게 외쳤다.

그리고 정말 느린 속도로 앞으로 앞으로 움직였다.

허빈자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멀리서부터 무너지던 돌다리가 이제는 거의 바로 뒤까지 허물어지고 있었다.

허빈자의 뒤꿈치까지 저 돌다리가 무너지면 그 때는 망설이지 않고 공여려를 다리 밖으로 차 버릴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아아! 장사형!”

“여려 사매!”

장기로와 공여려가 서로의 바닥을 짚은 왼손과 오른손을 겹쳐 잡으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축기 중기의 제자들에 비해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축기 중기에 오른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공여려와 장무기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손해를 보는 것이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장무기가 공여려의 손을 더욱 힘주어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쌍수 수련의 비기를 사용해서 경지를 잠시 끌어 올릴 결심을 한 것이다.

바로 그 때였다.

“허빈자 사형.”

장기로가 허빈자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허빈자가 표정 없는 얼굴로 장기로를 쳐다보며 물었다.

“제가 좀 죄송스런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한 말씀?”

“그렇습니다.”

“뭔가?”

“지금 남은 제자들을 보십시오. 모두가 녹영림의 제자입니다.”

“음? 그게 어쨌다는 거지? 원래 녹영림이 인재를 받아들여 수련에 매진하게 하는 곳이네. 당연히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일 뒤에 있는 두 아이는 지금은 녹영림에 들어 있지만 실상은 사의전 아이들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저 무기는 제 직전 제자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그럼 누구를 버리자는 겐가?”

허빈자가 장기로를 노려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 물음이 장기로의 뜻에 반대한다는 의미로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장기로의 뜻을 물어보는 정도.

순간 건우는 맹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치 짜 맞춘 듯이 장기로의 시선이 건우에게로 향했다.

“너는 가지고 있는 공간낭을 이리 내밀거라.”

그리고 장기로는 마치 맡긴 물건을 되돌려 달라는 듯이 태연하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건우는 급히 의념을 끌어 올리고, 몸에 쌓은 영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호? 아직도 그만한 여력이 있었더냐? 제법이구나.”

그 모습에 장기로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것은 제일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허빈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우가 펼친 의념은 성단기 완경인 허빈자도 놀라게 할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다.

“확실히 숨긴 것이 있다는 소리렸다? 그럼 그 비밀은 네 공간낭 안에 모두 들었겠구나. 어서 내 놓거라!”

장기로는 도리어 그 모습에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으며 건우를 압박했다.

그렇지 않아도 입역 시험의 엄청난 압력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건우에게 더해진 성단기 중기 수사의 압박.

“으으윽!”

건우는 자연스럽게 무릎이 굽혀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 중에 장기로의 손에서 흡입력이 발생해서 건우의 허리에서 공간낭을 끌어가려 했다.

건우는 더욱 의념을 끌어 올려 장기로의 영기와 의념에 저항했다.

“노오옴!”

그런 건우의 저항에 장기로가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

다른 축기기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건우를 단번에 제압하지 못하는 추태를 보인 것이다.

이제는 굳이 놈을 제압만 할 생각을 버렸다.

필요한 것은 놈의 공간낭이지 살아 있는 몸뚱이가 아니다.

어차피 다리 아래로 던질 놈이 아닌가.

살려서 이리저리 고문을 하거나 추혼술을 펼쳐 비밀을 알아낼 것이 아니라면 그냥 죽이는 쪽이 편할 것이다.

검은색 장삼을 입은 장기로의 등 뒤에서 검은 해골이 떠올라 입을 벌리고 소리 없이 포효했다.

건우는 그 순간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느꼈다.

‘죽는다!’

후우우우우웅!

그렇게 느낀 순간, 건우의 몸을 가리며 신묘한 주술 문양이 가득한 삿갓 모양의 반투명한 황금빛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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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의 앞을 막아선 황금빛 방패는 삿갓 조개의 패갑을 고스란히 닮아 있었다.

장기로의 해골이 날린 공격은 독기와 사기가 뭉쳐진 검은 색의 화살이었다.

그것은 뇌전처럼 건우를 향해 쏘아졌는데, 삿갓조개 패갑 방패가 그것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검은 화살은 방패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서 흩어졌고, 그렇게 퍼진 독기와 사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으으윽!”

“마, 막아! 독이다!”

“영기를 끌어 올려 스스로를 보호해라!”

축기기 제자들이 깜짝 놀라며 저마다 형형색색의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그런 중에 허빈자가 뒤쪽에서 손을 휘저어 바람을 일으켰다.

그 바람이 독기와 사기를 돌다리 밖으로 몰아냈다.

“노옴, 역시 숨기는 것이 있었구나. 그것 역시 한민 장로가 남긴 것이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했더니 성단기 장로나 되시는 분이, 제자의 주머니를 노리시는 모양입니다.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장기로가 시커멓게 변한 낯빛으로 고함을 지르자, 건우 역시 장기로를 비꼬며 맞섰다.

“노오옴.”

“놈이고, 년이고. 명색이 성단기 장로요, 같은 종문의 사숙이 되어서 어찌 이런 짓을 한다는 말입니까? 이 사실이 알려지면 종문에서 벌을 내리지 않을 거 같습니까?”

“벌? 벌이라고? 네 놈이 감히 종문 장로의 유진을 얻어 숨기고 그것을 종문에 알리지 않은 죄는 생각지도 않고, 그것을 나에게 따져?”

“아전인수도 그 정도면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할 겁니다. 나는 한민 장로에게서 얻은 것을 모두 종문에 바쳤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은 모두가 내 스스로 얻은 것들이지요. 그런 것을 오래 전에 죽은 장로를 핑계로 빼앗으려 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 이 놈!”

“지랄! 나를 죽이려고 하는 놈을 끝까지 존중하란 말입니까? 나는 그런 짓을 할 정도로 마음이 넓지 않습니다. 어차피 죽을 마당에 뭐가 무섭겠습니까?”

“이 노옴. 죽음보다 더한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 네 놈의 영혼을 뽑아서 수 천 년을 두고 괴롭히며 갉아 낼 것이다. 그리고 네가 숨긴 것이 뭔지 반드시 찾아내고 말리라.”

장기로는 건우가 따박따박 대꾸를 하며 맞서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얼굴을 구기며 이를 갈았다.

“뭐하는 겐가, 정리를 하지 않고. 시간이 없어.”

그 때, 허빈자가 장기로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뒤쪽에서부터 무너지는 다리가 이제 몇 걸음 남지 않은 곳까지 허물어져 있었다.

“고작 축기 따위가 감히! 어디 이것도 버틸 수 있는지 보자.”

말과 함께 장기로가 영기를 끌어 올리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기로의 등 뒤에 세 개의 검은 해골이 나타나 입과 눈에서 검은 뇌전을 쏘아냈다.

세 해골이 각각 입과 두 눈에서 검은 뇌전을 쏘았는데, 그것이 또 하나로 꼬이며 날아왔다.

촌음의 시간 속에서 건우는 그런 뇌전의 변화를 읽어냈다.

앞서의 검은 화살과는 격이 다른 공격이었다.

“막아라(防)!”

건우가 급히 고함을 질렀다.

치이잉! 치르르륵!

건우의 외침에 반투명했던 황금 삿갓 방패가 기음을 내며 복잡한 법문들을 표면에 만들어냈다.

그리고 동시에 세 겹의 방어막이 솟구쳤다.

쿠과과과광!

“크아아악!”

하지만 건우가 만든 세 겹의 황금 삿갓 방패는 장기로의 검은 뇌전에 박살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건우의 몸이 다리 위로 떠올랐다.

몸이 허공에 뜬 순간, 건우는 허빈자 앞에서 웅크리고 있던 공여려와 장무기가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저 년놈들! 숨겨 놓은 힘이 있었어!’

건우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건우의 몸이 허공에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어엇?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혹시 아시겠습니까?”

장기로가 깜짝 놀라며 허빈자를 쳐다봤다.

“갑자기 사라지다니. 다리에서 떨어진 것과는 다르군.”

허빈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의식을 펼쳐 주변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말했다.

장기로 역시 뭔가 숨어 있는 것이 있는지 살피고 있었지만 의식에 걸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이제 어쩔 거냐? 그 놈이 사라졌는데도 압력엔 변화가 없다. 그럼 이 아이들······ 아니군. 쌍수 수련의 묘용으로 힘을 끌어 올렸군. 애초에 그랬으면 이런 사달은 없었을 게 아닌가.”

허빈자가 시험에 대해서 따지다가 공여려와 장무기가 압력을 거뜬히 이겨내고 있는 모습에 혀를 찼다.

공여려와 장무기가 장기로와 짜고서 건우를 노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장기로는 공여려와 장무기, 둘을 핑계로 일을 도모했었던 것이다.

“그것 참,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군요.”

“밀역의 시험장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일 수는 없겠지. 항상 변수는 생길 수 있다.”

장기로의 말에 허빈자는 별 것 아니란 투로 말했다.

“그럼 그 녀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시험은 명확하다.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는 것. 거기에 더해서 신체의 한 부분은 항상 다리에 닿아 있어야 할 것.”

“조금 전에 그 녀석이 문제가 생긴 것은 제 흑뢰전을 막다가 두 발이 모두 다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란 말입니까?”

“게다가 옆으로 날아간 것이 아니라 뒤쪽으로 몸이 떴으니 시험 평가에 변수가 생긴 것일 수도 있지. 이런 시험에서 누가 뒤쪽으로 몸을 날린단 말인가?”

“하긴 그렇습니다. 시험에서 고려한 상황에 설정되지 않은 경우의 수가 발생하여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런 추측도 별 의미는 없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부질없는 말일 뿐. 어서 가기나 하게. 뒤쪽이 거의 무너졌군. 내가 이 아이들을 던져버리고 앞으로 가기 전에.”

허빈자가 무너진 다리가 바로 뒤까지 온 것을 확인하고 공여려와 장무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움찔 놀란 공여려와 장무기가 서둘러 앞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손바닥이 까지고, 무릎에 피가 나면서 기어가던 것을 이제는 느리기는 해도 두 발로 걸어가고 있었다.

허빈자는 다시 한 번 강력한 의식을 펼쳐 마지막으로 주변을 살폈다.

밀역 입구에 도착한 후로 의식의 제약이 심해서 평소보다 훨씬 약해지긴 했지만 성단기 완경의 의식은 매우 강력했다.

그런 허빈자의 의식이 다리 위와 아래, 좌우까지 꼼꼼하게 훑었지만 결국 건우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허빈자는 고개를 저으며 뒷짐을 지고 앞으로 걸어갔다.

마침 그 순간 허빈자가 있던 자리가 부스스 허물어져 내렸다.

* * *

“우와, 저 빌어먹을 것들!”

건우가 투명한 입구를 통해 밖을 내다보며 가슴을 쳤다.

울화통이 터질 듯이 가슴이 답답했던 것이다.

건우는 장기로의 두 번째 공격, 흑뢰전이 날아올 때, 그것을 막고 버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아공간 입구를 열고 모험을 한 것이다.

도주 주시원의 비행 법보를 타고 오는 동안에 건우는 성단기 장로들은 물론이고 영체기의 주시원 도주까지 아공간 입구를 감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완전히 확신하긴 어려웠지만 도박을 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그래서 흑뢰전과 부딪히는 순간 몸을 띄우며 곧바로 아공간 입구로 들어온 것이다.

이후에는 투명한 입구를 통해서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지켜봤다.

장기로가 공여려와 장무기를 이용해서 건우에게 강도질을 하려고 했다.

그를 위해서 공여려와 장무기가 행렬의 제일 뒤쪽에 쳐져서 버티기 힘든 듯이 연기를 한 것이다.

“두고 보자. 지금까지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이다.”

반드시 앙갚음을 해 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건우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런 중에 건우의 눈에 허빈자의 등이 보였다.

벌써 허빈자는 저 만치 멀어져 곧 계곡 반대편에 닿을 듯 했다.

장기로는 이미 반대편 절벽 위에 올라서서 다리를 벗어나는 제자들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젠장!”

결국 공여려와 장무기가 돌다리를 모두 건넜고, 그 뒤를 따라서 허빈자의 발이 절벽 위에 닿았다.

그 순간 허빈자를 따라오며 느리게 무너지던 다리가 일순간 가루로 바스라져 흩어졌다.

- 어떻게 해요? 다리가 없어졌으니 건우님이 저기까지 갈 방법이 없잖아요.

루야가 그 모습에 걱정이 되는지 건우의 얼굴 옆으로 다가가 희미한 빛을 깜빡이며 물었다.

크르르르릉!

멍뭉이 역시 자신이 건우를 걱정하고 있음을 알아달라고 울음소리를 냈다.

“아공간 밖으로 뛰면서 앞쪽에 다시 아공간 입구를 만들면 안 될까? 아공간 입구로 나가서 아공간 입구로 들어오는 거지. 그럼 그 간격만큼 이동을 할 수 있을 테니까.”

- 하지만 여기선 둔술도 쓸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안 해 보면 모르는 거지. 저 바라 저 놈들 떠나는 거. 놓치면 곤란하지 않겠냐?”

- 차라리 놓치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이제 완합종과는 적이 된 거 아니에요?

“아니, 솔직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완합종의 적이 된다는 거야? 썅, 내가 주시원 도주를 만나서 장기로 놈이 했던 짓을 몽땅 까발려 버릴 테다.”

- 정말요?

“하아, 아니다. 그래봐야 나같은 축기기 제자보다는 장기로의 가치가 더 높겠지. 그러니 도주도 내 편을 들기 보다는 장기로의 편을 들 가능성이 높겠지.”

- 잘 아시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하고 그래요?

“답답해서 하는 소리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완합종과는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잖아.”

- 그건 그렇죠. 하지만 건우 님은 별 걱정 없잖아요.

“응?”

- 안 되면 여기서 수련이나 하세요. 수미세계를 드나들면 수련 자원을 모으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그렇긴 한데, 문제는 입장료지. 영석이 별로 없으니까.”

- 혹시 알아요? 운이 좋으면 수미세계의 반영세계에서 영석을 발견할지도 모르죠. 거기 없는 게 없잖아요.

“운 좋게 수사의 보물창고를 발견하게 되면 그럴 수도 있지. 정말 운이 좋아야 겠지만.”

- 아무튼, 너무 그렇게 조급해 하지 말라고 드린 말씀이에요.

컹컹컹컹!

“그래, 루야도 고맙고 멍뭉이도 고맙다. 그런데 멍뭉이 너는 언제까지 축기 중기에서 빌빌 거릴 거야? 빨리 후기에 올라야지!”

왕! 왕왕왕! 키이이잉!

“시꺼. 내가 가끔씩 수련에 도움이 될 것들도 주고 그러잖아. 뭐 네 주 공법이 육체 단련술인 연체술과 독 계열 공법인데 그걸 못 구해서 좀 문제긴 하다만.”

늑대와 독룡의 피를 이은 멍뭉이는 육체를 강화하는 것과 독을 다루는 것에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쪽으로 수련을 해야 하는데 적당한 공법을 구하지 못해서 기본적인 수련만 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건우와 달리 신수와 신룡의 피를 타고난 덕분에 수련 속도가 빠른 편이긴 했다.

그저 건우의 기준에서 느리다고 여길 뿐.

- 건우님, 지금 그렇게 말을 돌릴 때가 아닌 거 같습니다. 건우님 일행은 모두 모습을 감췄습니다. 이제 이곳을 벗어날 궁리를 해야 합니다.

그 때, 루야가 아공간 밖의 상황을 살피다가 건우를 재촉했다.

“좀 전까지는 그냥 여기서 수련이나 하라며?”

- 그거야 벗어날 방법이 없을 때 그렇게 하자는 거죠. 하지만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움직여야죠. 저 빌어먹을 것들에게 복수 안 할 거예요?

“안 하긴! 당연히 해야지.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 따위는 잊을 수 있어. 하지만 장기로와 짜고 내 목숨을 노린 것은 용서할 수 없지. 그 년놈들은 선을 넘었어.”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아공간 입구를 활짝 열고 다리가 뻗어갔던 방향을 보고 뛰쳐 나갔다.

퍽! 쿠당탕!

“아이고.”

하지만 다음 순간 건우는 아공간 입구에서 투명한 벽에 부딪힌 듯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건우가 깜짝 놀라며 손을 휘저어 아공간 입구로 내밀었다.

“어라? 되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뜻밖에도 손을 밖으로 내밀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몸 전체를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밀역의 입역 시험을 치르는 고계 수사의 금제가 건우의 진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이거 그게 필요한가? 장기로가 다리를 만들 때, 썼던 그 거?”

건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루야를 바라봤다.

장기로가 시험을 시작할 때, 다리를 만들던 술법문양은 루야가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 때, 장기로는 손가락을 깨물어 정혈을 뽑아 술법문양을 만들었다.

지금 건우는 성단기 수사가 정혈을 뽑아 발동시킨 술법을 흉내 내기엔 많이 부족했다.

게다가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 그 술법을 짧은 시간 안에 온전하게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면 나가린데······.”

건우가 맥빠진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로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 건우님!

컹컹컹컹컹!

그러던 어느 날, 건우가 수미산겨자씨 밑에서 진염결 수련에 빠져 있을 때, 루야와 멍뭉이가 급하게 건우를 찾았다.

건우가 깜짝 놀라 의식을 펼치자 열어놓은 아공간 입구에서 동동거리고 있는 루야와 멍뭉이가 보였다.

건우는 의념을 발동시켜 곧바로 그 곁으로 이동했다.

“무슨 일······. 어라 다리가 생겼어?”

건우는 둘에게 무슨 일인가 물으려다가 입구 밖으로 보이는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완전히 무너졌던 다리가 새로 생겨나 있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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