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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퍼라도 (3)화 (3/157)

[데스퍼라도] 3. 아폴립스의 목검

데스퍼라도(Desperado)

아폴립스의 목검

"사냥놀이라....이런 큰일이군...."

헤수스는 오랜 방랑생활 하면서 이곳 아폴립스의 자생지가

있는 파가논 제국의 변방중의 변방에 흘러들어 와 제법 마음

에 드는 안식처를 발견했고 특히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어우러지는 전쟁놀이가 헤수스에게는 단비와 같은

즐거움이었다. 데카몬 전사의 기억을 가슴 한편에 깊이 묻어

두고 오랜 여행 끝에 이곳에서 고요한 대지의 기운을 들이

마시려 했다. 하지만 천진한 아이들의 놀이는 헤수스의 기대와

는 달리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같으니 그의 마음은 다소

착찹한 심정이었으리라.

전쟁놀이가 사냥놀이로 바뀌자 아이들의 표정은 전에 없던

희열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저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목검

을 꼭 쥐고 자신들의 사냥감인 렉을 찾아다니는 가드린의

아이들과 팔튼의 아이들의 합친 숫자만 하더라로 근 60여명

이나 되었다.

그들이 사냥감을 찾기 시작한지 체 5분도 되지 않아 렉은 이들

의 포로 신세가 되었다. 렉은 팬티만 덜렁 입었고 팔튼 아이들

은 그의 목에 밧줄을 옭아 메 질질 끌고 오기 시작했다. 그들

중 팔튼 마을의 대장 빌로마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봐 카란....오늘은 우리가 승리한 것 같은데...우린 이미 렉을

잡았다고, 하하"

가드린의 아이들과 카란 대장은 팔튼의 빌로마가 렉을 잡았다고

하자 그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팬티 하나 덜렁 입고 목에

밧줄이 걸린 체 끓어 앉은 모습을 본 카란 대장은 다소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젠장 ..어디서 잡았어?"

"후...바로 저 언덕 아래 시냇가에서..."

"그런데 왜 이놈이 옷을 벗고 있지?"

"후후...옷을 빨고 있더군....사실 어제 이놈에게 우리 팔튼 용사들

이 단체로 '쉬' 좀 했거든...하하...아무튼 옷을 빨고 있는 이놈을

뒤에서 덮쳤지. 자 오늘은 우리가 승리한 것 같은데..."

"빌어먹을! 렉! 이 새끼는 우리에게 전혀 도움조차 되지 않으니...."

"카란 이번엔 내가 한가지 제안을 할까?"

"제안이라니?"

"앞으로도 이런 사냥놀이를 계속 하는 게 어때.."

"계속이라....."

카란은 빌로마의 제안에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

"흠...이놈을 어제 나무에 묶어두고 나 혼자만 집에 들어갔더니

어머님이 이놈의 행방을 물으시더군. 사실 렉 이놈 말이야 우리

집에 빌붙어 살거든....한마디로 불쌍한 그지 새끼를 어머니가

집안으로 들여놓으셨는데...아무튼 잘됐군 이 참에 집안에 발을

못 들여놔야겠군...후후..그래 렉..넌 앞으로 이 숲이 네 집이나

마찬가지다. 바로 우리들의 사냥감으로 말이지."

"헌데 네 어머님이 렉을 찾으시면.."

"도망갔다고 하지 뭐! 아무튼 내일은 우리 가드린 마을의 용사

들이 이놈을 먼저 찾을게다.."

"하하 카란 어림없는 소리!"

잠시 후 팔튼 아이들과 가드린 아이들은 각기 제 마을로 돌아

갔다. 아까 시냇가에서 팔튼 아이들이 자신을 덮칠 때 생긴 멍

자국이 렉의 온몸에 여기저기 나 있었다. 더구나 목을 옭아 멨던

밧줄자국은 선명하리 만큼 붉게 목 주위에 나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에겐 정신적인 충격이 앞섰는지 그저 멍하니 땅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렉"

렉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여기 시냇가에 떨어진 네 옷이다. 어서 입거라."

렉은 어제와는 달리 헤수스를 보고도 벌벌 떨지는 않았다.

허나 그의 모습을 보고 공포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검흔 자국이 있는 금속성의 전투복과 등뒤에 찬 무시무시

한 검도 검이지만 바로 헤수스의 길게 늘어트린 회색머리에 바짝

마른 얼굴 특히 그의 안광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빛이 너무 강렬

하여 바로 쳐다보지 못 할 정도였다.

"난 너를 그들로부터 도와줄 생각은 없다."

"....................."

렉은 말이 없었다. 단지 그가 자신 앞에서 사라져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네가 나이에 비해 혹독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해는 한다만.....

네 나약한 모습이 그들의 폭력적 성향을 불러 일으켰으니 네게도

책임은 있는 거란다. 결국 그들을 수습 할 수 있는 것은 원인

제공을 한 네게 있다."

"..................."

"흠.....내 말이 좀 어려운가....음...그래 쉽게 말해서 렉 너는 그들

과 맞서야 된다는 거지.....만약 여기서 도망치기만 하면 넌 평생

도망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단 말이지....후....이번 말도

네가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것 같은데...."

헤수스는 렉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내심 답답

했다. 무릎을 끓고 땅바닥을 그저 쳐다보고 있는 렉을 한참

지켜본 헤수스는 무엇인가 그의 앞에다 떨어트려 놓았다.

그건 바로 목검이었다.

"심심해서 한번 만들어 보았는데.....내겐 별로 쓸모가 없으니

네가 갖도록 하거라."

헤수스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벼운 섬광과 함께 사라졌다.

순간 아폴립스의 나무 위에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후 이렇게 깜쪽 같이 사라져야지 저 꼬마가 안심을 하겠지.

만약 내가 자신이 기댄 나무 위에 산다는 것을 안다면 불안할

테니...'

제법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헤수스의 마음은 점점 답답해

지기 시작했다.

'흠..몇 시간이 흘렀건만 저놈이 내가 준 목검을 집으려고 생각

조차 안 하니.. 혹시 렉 저 아이는 알 수 없는 충격으로 자신의

방어본능 마저 상실한 거 아닌가. 진짜 모르겠군.....내일이면 또

다시 렉을 사냥하기 위해 아이들이 몰려올텐데.....더구나 한번

눈을 뜬 아이들의 폭력 본성은 그 강도가 더욱 높아지면 높아

졌지 절대 수그러들지는 않을텐데..진짜 걱정되는군...'

헤수스는 어제 과음을 한 탓에 오늘은 일찍 잠이 들었다. 제법

시간이 흘러 날은 어느새 새벽의 푸르스름한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갈증이 나서 잠시 눈을 뜬 헤수스는 잠결에 물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헤수스는 갑자기 렉이

생각이 났는지 나무 아래를 흘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자신이

준 담요만이 덜렁 있고 렉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허..이놈이 이른 새벽부터 어디를 갔지....뭐 어디 멀리 갔을

리는 없겠고. 흠...마저 잠이나 자야겠다.'

헤수스는 잠이 다시 들었다. 사실 렉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아까 낮에 자신이 주었던 아폴립스의 목검 또한 없어진 사실을

모른 체....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제법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누군가가 검을 잡고 한 동한 서 있었으니 바로 렉

이었다.

지난밤 렉은 한밤중에 잠이 깼다. 푸르스름한 빛을 띤 체

바닥에 놓여있는 목검이 렉의 눈에 신기하게 들어왔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검을 잡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허나 푸른빛은

이내 사라지고 원래의 칙칙한 색으로 돌아왔다. 그러한 연유로

목검을 잡기 시작한 렉은 솜털처럼 가벼운 아폴립스의 목검에

점차적으로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지금 새벽녘이 밝아 올

때까지 그 목검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사실 아폴립스의 목검은 현재 파가논 제국의 황실자제나 고위

관료 자제들 심지어 근위병의 훈련용 또는 실전용으로도 사용

되고 있었다. 나무치고는 그 강도가 철검과 비등될 정도로 강

하지만 무게에 있어선 솜털같이 가벼우니 실제 빠른 기동력을

필요로 하는 백병 전투용에 있어서 만큼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그로 인해 파가논 제국은 아폴립스의 목검을 실전용으로 분류해

놓기까지 했다.

한편 렉은 갑자기 허공을 향해 목검을 휘 둘러보았다..

"쉭!!"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상당히 경쾌하게 들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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