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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24화 (24/157)
  • 24화. 1942년 (2)

    무거운 침묵만이 감도는 회의실 안.

    주코프는 이곳에 모인 이들의 면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참모차장 바실렙스키 중장부터 칼리닌 전선군 사령관 이반 코네프 상장, 브리

    얀스크 전선군 사령관 예료멘코 상장, 그리고 서부전선군 사령관 겸 모스크바

    방위군 총사령관을 맡은 주코프 자신까지.

    여기에 있는 이 네 사람이야말로 모스크바 전투의 승리를 만들어낸 최고의 공

    신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거둔 놀라운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

    했다. 그 이유는 바로 스탈린의 명령 때문이었다.

    “일단, 서기장 동지께서 내리신 전면 총공세 명령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을

    거요.”

    “···예.”

    주코프는 어두운 표정으로 답하는 장군들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들이군. 물론 상황이 어렵다는 것쯤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소. 하지만 서기장 동지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러니 이제 대책을 생각해봅시다. 어차피 대공세에 나서는 것은 정해진 일

    이니, 어떻게든 승산이 있는 방책을 강구해봐야 하지 않겠소?”

    담담하게 승리를 논하는 주코프의 태도에 다른 이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확실히 주코프의 말대로였다.

    비록 무리한 명령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패배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지금까지 조용히 작전 지도만 바라보던 바실렙스키

    중장이 입을 열었다.

    “주코프 동지, 그렇다면 이런 작전은 어떻습니까?”

    “좋소. 뭐든지 한번 말해보시오.”

    “예, 현재 독일군의 방어선은 북쪽의 르제프와 남쪽의 수히니치(칼루가와 류

    티노보 사이에 위치한 소도시)까지 완만하게 돌출된 상태입니다.

    그러니 북쪽의 칼리닌 전선군과 남쪽의 브리얀스크 전선군으로 양익 포위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1월 대반격 (바실렙스키).png

    “흠···.”

    바실렙스키의 말에 주코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의 작전대로 남

    북 양쪽으로만 공세 능력을 집중시킨다면 전력이 소모된 지금의 소련군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소련군에게 그런 정교한 협동작전을 실행할만한 능력이 있느냐

    였다.

    “다른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바실렙스키 동지가 말한 양익 포위가 정

    말로 가능하겠소?”

    “재미있군요. 지금까지 나치 놈들이 실컷 써먹었던 전술을 그대로 되돌려주자

    는 것 아닙니까?”

    “일점을 돌파해내는 것 정도라면 우리 병사들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양측의 전선을 연결하는 것이 문제지만, 그것도 연락을 지속하면서

    협조한다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거둔 승리 덕분인지 코네프 상장과 예료멘코 상장은 자신감을 보였

    지만, 주코프는 고개를 저었다.

    “다들 포위 작전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군. 일점을 돌파한 후 전선을 연결한다

    고? 그래, 뭐 말로는 뭔들 못하겠소. 하지만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오.”

    주코프는 그렇게 말하며, 지도 위에 놓인 깃발을 하나 집어 들었다.

    “좋소. 그럼 여기, 칼리닌 전선군의 16군을 선봉으로 삼아서 뱌지마까지 돌파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우선은 독일놈들의 9군을 밀어내고 진격을 해야겠지. 그 과정에서 9

    군은 르제프 서쪽으로 밀려날 것이고, 칼리닌 전선군은 오스타시코프-르제프-

    뱌지마까지 우측면이 길게 노출된 상태가 될 것이오.

    이 부분을 진격하는 16군과 이를 지원하는 30군만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오.”

    주코프의 말에 코네프와 예료멘코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스타시코프부터 뱌지

    마까지는 직선거리로만 따져도 약 224km.

    이 거리를 2개 야전군으로, 그것도 진격하면서 동시에 지켜낼 수 있을까? 결

    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오.

    그 다음에는 두 개의 전선군이 서로 긴밀하게 협조해서 포위망을 닫아야 하

    오. 그리고 포위망에 갇힌 적을 천천히 섬멸해야 하지.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다 각 사단장, 군단장들의 노련한 경험과 냉철한 판단을

    요구하는 일들이란 말이오.”

    정치 장교 놈들이 알면 불온한 생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서

    주코프는 소련군의 작전 수행 능력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머릿수는 많고, 싸우려는 의지는 충만하지만 딱 그것뿐인 놈들이지. 병사든,

    장교든 눈앞의 적에 급급해서 전술적 수준 이상의 작전을 수행할 만한 지휘관

    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코프는 바실렙스키의 작전에 내심 끌리면서도 찬성할 수 없

    었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실행할 능력이 없다면 결국 무용지물인 법이니까.

    “그럼 두 사람에게 다시 한번 묻겠소. 정말로 가능하겠소?”

    재차 묻는 주코프의 말에, 코네프와 예료멘코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이 모

    습을 지켜보던 작전의 입안자, 바실렙스키가 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동지.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동지의 말씀대로 어려

    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전면 총공세에 비하면 차라리 승산이 있지 않겠습

    니까.”

    “···그건 그렇지.”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결국 반격 당해서 실패로 끝날 총공세에 비하면 성공 확률이 낮더라도 양익

    포위에 도박을 걸어보는 편이 나을 테니까.

    주코프가 다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코네프와 예료멘코도 다시 한마디씩

    거들었다.

    “참모차장 동지의 말이 옳습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놈들의 배후를 끊거나

    작은 포위망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비록 어려운 작전이긴 하지만, 지금은 아군뿐만 아니라 나치 놈들

    도 병력이 소모된 상태입니다. 충분히 해볼만 합니다.”

    그 말에 주코프는 코네프와 예료멘코, 두 사람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래, 어쩌면.’

    지금까지 함께 모스크바를 지켜낸 두 사람을 바라보며, 주코프는 이내 결단을

    내렸다.

    “···좋소. 그럼 이번에 도착한 물자와 보충병들은 두 전선군에 우선적으로 배

    치해주겠소. 우리도 한번 해봅시다!”

    “예!”

    *****

    “일어나라, 니콜라이. 진격이다.”

    “···예.”

    땅바닥에 누워 선잠을 자던 니콜라이는 소대장 동지의 말에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철모를 뒤집어 쓰고 주변을 둘러보니, 소대원들도 더럽

    고 초췌한 몰골로 총을 둘러메고 있었다.

    ‘진격이라···.’

    한달 전, 조국을 지키겠다는 사명 하나로 모스크바에서 시작했던 진격은 어느

    새 클린과 트베리를 지나 이곳, 르제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의 소대원들은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거의 한 달이나 되는 시간 동안 200km

    에 달하는 거리를 싸우며 걸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진격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모스크바 인근에서 나치

    놈들을 완전히 몰아낼 때까지? 아니면 조국의 영토를 모두 회복할 때까지? 그

    것도 아니라면 베를린에 도달할 때까지?

    소대장 동지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도, 니콜라이는 허무한 기분을 감출 수 없

    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빌어먹을 전투가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전원 물러서지 마라! 오늘은 반드시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예!”

    앞에서 큰 소리로 병사들을 독려하는 소대장 동지의 외침에 니콜라이는 철모

    를 깊게 눌러 썼다.

    쾅! 콰광!

    그러는 와중에도 정치 장교가 말했던 그 고지 위로는 무수히 많은 포탄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주 신나게 때리는군.”

    “이번에는 포병 동무들이 일을 잘 해줬으면 좋겠는데요.”

    니콜라이가 오기 전에 고지 공세에 나섰던 어떤 선임 병사의 말에 따르면 저

    곳에서만 거의 1개 중대가 갈려 나갔다던가.

    그렇게 수백 명의 병사들이 죽고 또 죽은 끝에, 재수 없게도 니콜라이의 차례

    까지 와버린 것이다.

    ‘과연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니콜라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포탄이 떨어지는 고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와

    중에, 어느새 요란하던 폭음이 멈춰 버렸다. 아군 포병대의 선제 포격이 끝난

    것이었다.

    ‘젠장···.’

    이제 포격이 끝났으니 남은 것은 돌격뿐이리라. 그의 예상대로, 소대장 동지

    가 하늘을 향해 권총을 갈기며 외쳤다.

    “자, 전우들이여! 조국을 위해 나아가자! 돌격 앞으로!”

    “우라아!!”

    니콜라이는 스스로에게 기합을 넣듯이 힘차게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목표 지점인 고지까지의 거리는 약 300m. 게다가 오르막길인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힘차게 달려도 최소 1분은 걸릴 거리였다.

    그 말인즉슨, 1분 동안은 적의 사격에 노출된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러나 고

    지를 절반까지 올라가는 와중에도 적의 공격은 전혀 없었다.

    “하하! 아무래도 포병 동무들이 일을 제대로 해준 모양이군! 다들··· 억!”

    투타타타타타타타타!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고지 위에서 마치 전기톱 같은 소리가 요란하

    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엎드려!!”

    귀를 찢는 끔찍한 소리에 니콜라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바닥에 던졌다.

    다행히도 니콜라이는 운이 좋았다. 마침 그가 몸을 던진 곳에 포병 동무들이

    만들어준 구덩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전우들은 그처럼 운이 좋지 못했다.

    “으아아악!!”

    “젠장, 포병 놈들은 도대체 뭘 한 거야!”

    “사, 살려줘!!”

    주위를 둘러보니 항상 그의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소대장 동지가 그 자리에

    서 걸레짝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와 함께 진격을 거듭해왔던 수많은 전우들이

    한줌의 핏덩어리로 변해서 바닥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하하, 하하하하···.”

    그 모습을 본 니콜라이는 총을 내려놓고 두 손을 들었다.

    훗날, ‘르제프 고기 분쇄기’라고 불리우는 지옥의 전선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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