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66화 (6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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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투.

    섹스 배틀이라는 것이 나타난 뒤로 우리네 삶은 크게 변했다.

    단순히 섹스에 대해 더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생활이 우리들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다. 전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우리나라의 섹스리스 부부들도 오랜만에 부부 금슬을 회복했고, 타인의 육체에 해를 끼치는 범죄율이 크게 줄어들었다.

    "섹스 배틀 덕분에 섹스의 비중이 줄기는 했지만. 그 덕에 대화가 많아졌으니 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겠지. 하지만……."

    물론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우선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라며 수많은 사이비 종교가 튀어나왔다. 심지어 기존의 종교들도 자신들의 신이라며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 물론 올곧은 종교인들은 꿈에 현혹된 이들을 꾸짖으며 진실 된 신앙은 마음에 있다고 설파했다.

    어찌됐건 사회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러 전문가들도 언론을 통해 급격한 사회 문화가 변화하며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이 올 것이라 경고했다. SNS에도 성투난무에 대한 불편과 불만이 쏟아지며 조금씩 그럴 기미가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심을 가지고 종교를 이용하려던 사기꾼들은 금세 정체가 들통 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치 혀로 순진한 사람들을 현혹시킨 그들은 돈은 물론이고 그들의 몸까지 탐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부각시킨 신에 의해 벌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절단.

    거짓으로 현혹한 사람의 육체를 탐하는 것 또한 성투의 율법에 어긋났다. 그들 스스로 강제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겠지만, 위력에 의한 행위도 성투는 강제적인 행동이라 판단했다. 당연히 단 한명의 예외 없이 그들의 성기는 잘려나가고 말았다.

    "큭! 하여튼 정신 나간 놈들이 많다니까."

    더 고소한 점은 성투의 율법을 어기고 징벌을 받은 상처를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가 없었다. 아니, 붙이고 싶어도 붙일 게 없었다. 성투에 의해 잘린 성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현대판 내시의 난이라……. 기사 제목 한 번 끝내주네."

    스마트폰 속에 뜬 기사는 정말 재미있었다. 예비 참가자인 미성년자를 건드렸다가 뿌리까지 날린 경찰관부터, 술에 취한 참가자를 모텔로 끌고 갔다가 과다출혈로 죽은 이까지. 별의 별 사례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너무 사실적인 묘사에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숙여 내 물건의 안위를 확인해 볼 정도였다.

    한동안 포털 사이트를 뒤지며 이런 저런 기사들을 읽어 보았지만, 딱히 새로울 게 없었다. 여전히 명동과 강남에 나타난 특이 몽마들은 활개치고 있었고, 덕분에 그 주변 상권이 들썩인다는 게 전부였다. 아무래도 나도 건물주다보니 자연스레 이런 쪽 기사를 읽게 됐다.

    "이거 불안불안 한데. 명동이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괜찮지만, 강남은 좀 그런데. 그래도 이리 저리 옮겨 다니지 않아서 다행인데. 영 불안하네."

    얼른 누구라도 나타나 블랙 햇을 때려잡아 줬으면 좋겠다. 아, 블랙 햇은 강남에 나타난 바바리 몽마의 별명이었다. 명동에 있는 SM 코스프레 몽마는 블랙 휩이라 불렀던가?

    더 이상 볼만한 기사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슬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그래봐야 전화기와 지갑을 챙기는 게 전부였지만.

    "남성형 몽마는 어찌 못해도. 여성형은 때려잡을 수 있어야겠지. 하루 푹 쉬었으니까. 한 번 제대로 달려 보자고!"

    오늘따라 유난히 기운이 넘쳤다.

    현관문을 나서는 내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그토록 가벼웠던 발걸음을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만근의 바위가 올라간 것처럼 무거워졌다. 보고 싶은 한편 보기 싫은 눈앞의 여자 때문이었다.

    싱글싱글 웃으며 대문을 나서던 나는 문 앞에 서 있는 나 원장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나 쌤이 왜?

    작은 의문도 잠시 나는 괜히 더 밝은 척 나 원장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활짝 웃었다.

    "나 쌤. 오랜만이야!"

    "……응."

    "근데 무슨 일이야? 아니, 것보다 왜 대문 앞에 가만히 서 있어? 그냥 들어오면 되지."

    내가 아무리 모태솔로라도 나 원장이 왜 들어오지 못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알면서도 이런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가슴이 뾰족한 바늘에 찔린 듯 아렸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밝은 표정을 지었다.

    내 노력이 나 원장에게 닿았는지 그녀도 평소처럼 활짝 웃으며 웃음을 흘렸다.

    "혹시 죽었나 해서. 겁나서 못 들어갔지. 그래도 살아 있네?"

    "그럼 살아 있지. 내가 원래 좀 살잖아?"

    "그 썰렁한 농담을 하는 거 보니 컨디션도 좋아 보이고."

    "……나 쌤도 컨디션이 좋나보네. 대놓고 저격하는 걸 보니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들은 자연스레 나 원장의 병원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원래 얼마 되지 않는 길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짧게 느껴졌다. 금세 우리는 병원 앞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 순간 우리는 다시 어색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누가 수다스러운지 내기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거 참. 진짜 괜히 고백했나?

    뒤늦게 고백했던 게 후회스러웠다.

    결국 나는 나 원장의 어깨를 툭 치며 예전처럼 흉내 내는 수밖에 없었다.

    "에이, 나 쌤. 내가 한 번 차였다고 찌그러질 놈인 줄 알아? 기다려 봐. 내가 올……해는 무리고. 아무튼 당신 꼬셔서 뻥 차버릴 테니까."

    "흥! 웃기시네! 누가 꼬신다고 넘어가 준데? 어림도 없네요!"

    "오케이. 그럼 내기 하자. 내가 꼬시면 내 소원 들어주기로."

    "좋아! 그 소원 받고, 벌칙 하나 더!"

    "오올, 나 쌤. 패가망신이라는 말 못 들어 봤나 봐?"

    다행히 어색한 분위기를 해치울 수 있었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얼마동안 나누었을까.

    나 원장이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따스했다.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여자였다.

    "아무튼 괜히 걱정했어. 병원에 안 오길래 난 또……."

    "또? 또 뭐? 뭐라고 하려고 했을까?"

    나 원장의 말꼬리를 잡으며 내가 살살 그녀를 놀리자, 그녀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아차! 너무 나갔다.

    뒤늦게 선을 넘었음을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옆구리에 나 원장의 야무진 손가락을 허용한 뒤였다.

    "아악! 이 깡패 의사야! 그만 좀 꼬집어!"

    "나쁜 놈. 걱정한 사람 놀리니까 재밌냐! 재밌어!"

    "……재미. 아니, 없어. 아냐. 진짜 아니라니까? 나 샘. 나 못 믿어?"

    나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 나올 뻔 했다. 나 원장을 놀리는 건 언제나 재밌었다. 보스가 없었더라면 아마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을지도 몰랐다.

    더욱 살벌하게 변하는 나 원장의 눈빛에 서둘러 말을 바꿨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양쪽 옆구리를 사이좋게 꼬집혀야했다.

    워매, 손이 고추네. 청양고추야.

    양 손바닥으로 옆구리를 벅벅 문지르며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홱 돌리고 있는 나 원장에게 항변했지만. 돌아오는 건 콧방귀요, 무시뿐이었다. 아니, 완전히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나 원장이 살짝 걱정했다는 기색을 드러내며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꿍얼거리듯 말했다.

    "그래도 병원에 자주 와. 자주가 힘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들려. 이거 주치의로서 명령이야! 명령!"

    "어이고. 나 원장님. 됐거든요? 이제 우울증 약도 안 먹고. 희망도 봤고. 괜찮다니까."

    "그럼 연락이라도 좀 해! 이 멍청아! 사람 걱정하게 하지 말고!"

    "하여튼 디게 못 됐다. 나 쌤. 나 차인지 얼마 안 됐거든?"

    "그, 그건……."

    기세 좋게 억지를 부리던 나 원장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에효. 하여튼 쓸데없이 착해 빠져서. 그래가지고 어떻게 살아갈래?

    나 원장은 나를 동생으로 여긴다고 했지만, 내가 볼 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오빠라면 모를까."

    "응? 뭐라고?"

    나 원장의 어리둥절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뻔 했다.

    인마! 롸잇 핸드! 스탑!

    다행히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최악의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자연스레 스트레칭 하는 것처럼 움직인 나는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나 원장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꺼냈다.

    "아냐. 앞으로 답문 꼬박꼬박 보낼 테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마. 서른 넘은 남자를 걱정하는 여자가 어딨어? 그리고 요즘 좀 바빠서 병원에 들릴 시간이 없네. 그래도 언제 한 번 시간 내서 도시락 사가지고 꼭 들를 게. 됐지?"

    "도시락 싸서 오는 게 아니고?"

    "정말 내가 싼 도시락을 먹고 싶어?"

    "……아니. 아무튼 약속했다?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사람 걱정하게 하지 마. 알았지?"

    "아이고. 아지매에엑! 야! 그만 좀 꼬집으라고!"

    괜히 너스레를 과하게 떨다가 또 다시 꼬집힌 양쪽 옆구리를 동시에 농락당했다. 덕분에 쪽팔리기 그지없는 비명을 질러야했다.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나 원장은 헤헤 거릴 뿐이었다.

    아오, 웃는 얼굴에 침 한 번 제대로 뱉어 봐?

    악마의 유혹이 솟구치는 그 순간 천사의 자애로운 손길이 내려왔다.

    나 원장이 한 발자국 내 품으로 들어와 나를 가볍게 포옹하며 등을 쓸어 주었다.

    "미안, 미안. 내가 또 누구랑 이런 장난을 쳐. 아무튼. 아무튼……고마워. 고영아."

    아, 좋은 냄세. 참 좋다.

    순간 나 원장의 살 내음에 취했지만, 다행히 요 근래 여러 일 덕분에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어? 나 쌤. 지금 나한테 넘어 온 거야? 그럼 내가 내……아냐. 아냐. 그냥 해 본 말이야. 등은 꼬집지 말아 줘."

    "킥! 하여튼……. 정말 다행이다. 난 너가 나 미워하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나는 나 원장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으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에이, 나 쌤을 내가 왜 미워해?"

    나 원장이 내 대답에 만개한 미소를 보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약속 지키고! 알았지?"

    "알았으니까, 얼른 좀 들어가지? 병원 운영은 아예 포기 한 거야? 저번에 한 몫 단단히 잡았다고?"

    나 원장의 몸을 돌리며 등을 떠밀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병원으로 돌아갔다. 중간 중간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는 게 꼭 놀이터에서 엄마를 찾는 아이의 눈빛 같았다.

    저렇게 마음 약해서 어떻게 살려고. 쯧.

    속으로 혀를 차며 나는 손을 훠이 저으며 뻗었다. 이내 나 원장이 병원 안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제야 아는 억지로 웃느라 무리한 얼굴 근육을 풀 수 있었다.

    "에효……. 괜히 고백했어, 괜히."

    도로로 향하며 나는 또 다시 후회했다. 고백도 사람을 봐가면서 해야 했다. 나 원장 같은 타입의 여자에게 더욱 더.

    나름 현명하게 어차피 넘어가야 할 고비를 넘긴 나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사냥이나 하자.

    ***

    음격.

    다들 레벨이라 부르는 음격은 꽤 중요한 수치였다. 보스는 이 음격을 여러 가지 변수의 상수로 이용했고, 당연히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빌어먹게도 음격이 높으면 손해 보는 것도 존재했다.

    바로 경험치였다.

    "그나마 평민은 다행이지. 귀족 되면 그땐 진짜 지랄 나겠는데?"

    보스는 일종의 경험치 페널티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평민 계급까지는 자신보다 5단계 아래의 몽마를 사냥할 때 본래 획득 경험치의 절반밖에 얻지 못하는 제한을 걸었다.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만약 귀족 계급을 갖게 되면 자신보다 낮은 레벨의 몽마를 사냥해서는 경험치를 얻을 수 없었다. 최소한 같은 레벨은 돼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1의 경험치도 얻을 수 없었다.

    "그나마 아이템 노가다는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만. 그래도 좀 너무하네. 이거 갈수록 필경은 높아지는데 마리 당 습득 경험치가 줄어드는 거 아냐?"

    하드코어도 이런 하드코어가 없었다. 평민으로 승급하고 이런 저런 혜택을 주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신세 한탄을 한다고 해서 보스가 이런 페널티를 없애 줄 리가 없었다.

    결국 스스로 극복할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닥사로는 한계가 있지 싶은데. 아무래도 보스몹을 잡아야하나? 아, 자유 임무도 꼬박꼬박 챙겨야겠네. 이런 식이면 레벨 업 보상이 점점 더 소중할 테니까."

    결론은 하나였다.

    더 열심히 사냥해야했다. 아니, 단순히 열심히 사냥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했다.

    "지금 이 격차를 끝까지 유지하려면. 그러려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위험을 감수해야했다.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사냥이 필요했다. 안정적이라는 말은 소극적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모험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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