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14화
‘흐아, 떨린다!!’
그룹 LAK의 리더 제이의 홈마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올림픽 홀에 입장했다.
LAK를 덕질 하는 친구들 중 유일하게 티켓팅에 성공한 그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 사진만 제대로 찍어 와! 보정은 내가 한다! ]
[ ㅋㅋㅋ 웃기지 마셈. ]
어딜 데이터를 가로채 가려고?
아무리 친구라도 선을 넘는 짓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물론 나중에, 아주 한참 뒤에 호의로 몇 장 넘겨줄 수는 있지만 말이다.
[ 제바류 ㅠㅠㅠㅠ ]
[ 어허, 다나까로 부탁해 봅니다. ]
[ ……. ]
‘알량한 자존심을 굽히거라.’
[ X까 ]
답장을 확인하고 그녀는 미련 없이 핸드폰을 덮었다.
지금부터는 핸드폰이 아니라, 가방에 소중히 들어 있는 카메라가 활약할 때이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제이프예요?”
옆에 앉은 사람이 인사를 건네자, 제이의 홈마는 대번에 상대방이 응원하는 멤버를 파악해 냈다.
똑같이 제이를 좋아하다 보니, 굿즈 같은 것들이 겹친 것이다.
“네! 이것 좀 드실래요?”
“앗, 감사해요!”
쌀쌀해진 날씨에 보온병에다 커피를 담아 온 모양이었다.
같이 홀짝거리며 기다리고 있자, 곧 관객석이 꽉 차기 시작했다.
‘오케이, 자리는 딱 좋아.’
이선좌(이미 다른 고객이 선택한 좌석입니다)의 늪을 겪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이지만.
콘솔 바로 뒷좌석이라 몰래 사진 찍기에도 나쁘지 않은 자리였다.
‘뭐, 직선거리가 좀 길긴 한데.’
요즘 카메라 성능이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곧 조명이 꺼지고, 스테이지 뒤편에서 VCR이 흘러나왔다.
‘시작했다……!’
LAK는 탑 티어의 아이돌은 아니지만, 그래도 3년간의 활동으로 그에 거의 근접해 있는 상황.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거대한 함성 소리가 홀을 가득 메웠다.
“꺄아아아악―!”
“오빠!! 여기! 여기 봐 주세요!!”
그 행렬에 끼어 소리를 지르던 제이의 홈마는 빠르게 카메라를 잡고 그들을 찍었다.
‘어?’
그렇게 만족스러운 컷을 건진 그녀의 눈에 초대석 쪽이 들어왔다.
평상시라면 그냥 지인이나 관계자들인가, 하고 넘어갔을 터였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연생인가……?’
아니나 다를까, 초대석 주변의 팬들은 노래와 노래 사이에 그들을 흘긋흘긋 쳐다보고 있었다.
‘좀 먼데…….’
육안으로는 정확하게 얼굴 식별이 불가능했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어 줌을 당겼다.
그러자 그들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낯이 익은데…….’
다만 타 아이돌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그녀였기에 ‘ToT-win’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소속사 연생 애들인가 보네.’
그녀는 그들의 사진을 몇 장 찍어 두었다.
‘외모가 훈훈한데?’
그중에서도 흑발 머리를 한 연습생이 제일 눈에 띄었다.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느낌이 있다고 해야 할까?
‘제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문득 든 불경한 생각에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털었다.
‘미쳤나 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그녀는 다시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콘 끝나고 비계로 올려 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 *
에르제를 위시한 토트윈 멤버들은 초대석에 앉아 LAK의 무대를 감상했다.
아니, 감상이라기보단 분석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실력으로는 그들에게 뒤질 것이 없었으나, 아직 그들은 무대 경험이 전무했으니 말이다.
“카메라를 찾는 것도 그냥 하는 게 아니네. 안무랑 자연스럽게 엮었어.”
“방금 제스처는 원래 안무에 없었던 거지?”
“관객들 반응을 보면서 일부러 넣은 것 같아여. 즉흥적으로.”
확실히 다년간의 짬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닌지, LAK의 무대에서 배울 점은 많았다.
그들은 복화술을 하듯 무대에 눈을 고정시킨 채 입만 뻐끔뻐끔하며 대화를 이어 갔다.
혹시나 선배 아이돌 무대에서 저들끼리 떠든다고 태도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런 멤버들 사이에서 에르제만 멍하니 무대를 보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처럼 분석하는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무대 자체를 감상하는 중이었다.
그에게는 무대 장치 하나하나가 전부 신기한 것들뿐이었다.
“저기 뒤에 영상이 나오는 마도구는 뭐야?”
“VCR이야. 곧 나올 무대에 대한 힌트나 예고 같은 거?”
“힌트?”
“음…….”
영어 공부를 시켜야 하나.
에르제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윤치우는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하며, 그의 질문에 하나하나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저기, 사람들이 흔들어 대는 반짝거리는 마도구는?”
“마도구가 아니라…… 응원봉이라고 불러.”
“최면이라도 거는 건가.”
좌우로 흔드는 모습이 최면술사들이 하는 행동과 비슷해 보였다.
윤치우가 피식 웃었다.
“나중에 네가 그 대상이 되었을 때 확인해 봐.”
“정신계 쪽은 면역인데?”
“뭐?”
그렇게 윤치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무대에 한 사람이 올라왔다.
LAK 멤버 전원이 아닌, 그들의 리더라고 하던 제이였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씩 웃었다.
곧 밝은 분위기의 곡이 흘러나왔다.
― 푸르른 하늘을 기억해.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
제이의 솔로곡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보다 응원봉을 흔드는 속도가 줄어들어 있었다.
노래의 느린 박자에 맞추어 흔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관객석을 바라보고 있는 에르제의 팔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
황급히 에르제가 무대 쪽을 바라보았다.
‘뭐지?’
순간 느낌이 이상했는데.
다른 멤버들을 살폈으나, 특별히 이상한 점을 느낀 것 같지는 않은 듯했다.
조금 더 제이의 무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정도?
‘기분…… 탓인가?’
그러나 기분 탓이라고 넘기기에는 방금 느껴진 기운은 너무나도 소름이 끼쳤다.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끼면서도 에르제는 뭔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느껴진 기운이라 명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추측을 해 보자면, 이곳 어딘가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 정도.
‘익숙한 느낌이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뱀파이어의 기운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0.1초였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용의 선상에만 올려 둬야겠어.’
에르제는 관객석에 앉아 있는 이들 중에서 눈에 띄는 몇몇과 LAK 멤버의 면면을 기억해 두었다.
혹시나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꾸욱―.
괜히 신경이 쓰여 주먹을 꾹 쥐자, 옆에 앉아 있던 윤치우가 그의 팔을 부드럽게 잡았다.
“티 나.”
“?”
뭔 소린가 해서 쳐다보니, 윤치우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트레일러 티저가 공개된 시점이라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을 거야. 주먹에 힘 빼.”
“아.”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치우가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은우, 네가 LAK한테 가진 적대감은 무대에서 쏟자. 목표는 LAK 팬들을 우리가 빼앗아 오는 걸로.”
……그거 때문 아닌데.
“알겠어.”
에르제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가기로 했다.
* * *
LAK의 컴백 콘서트가 끝난 뒤.
토트윈 멤버들은 숙소로 돌아와 다시 한번 그들의 무대를 분석한 뒤에야 잠이 들었다.
에르제는 관에 눕듯이 양팔을 가슴 위에 올린 채 누워 있다가 모두가 잠에 든 것을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일어났다.
‘깰 일은 없겠지.’
곤히 잠든 숨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기다렸으니 저번과 같은 상황과 맞닥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냉장고를 열다가 민주혁과 마주친 상황 말이다.
‘어차피 밖으로 나갈 거지만.’
에르제는 슬그머니 방의 창문을 열었다.
다시 한번 태현우가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에르제는 곧장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파드드득―.
곧 박쥐로 변신한 에르제는 새벽하늘을 갈랐다.
‘피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지?’
그리고 그곳은 자신이 처음 눈을 떴던 병원이다.
덕분에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가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 되었다.
‘축복의 정체를 알아내야 해.’
만약 인간의 몸이라서 피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면, 피를 마시는 순간 곧바로 거부반응이 일어날 테고.
축복에 의한 것이라면, 피를 마시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저 ‘갈증’만 없어지는 것이니까.
‘찬찬히 지켜보려고 했는데,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없겠어.’
이번에 뮤비 촬영과 콘서트를 다녀온 뒤로 든 생각이었다.
데뷔를 하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바빠질 거라는 게 눈에 빤히 보였으니 말이다.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돌아가야겠어.’
에르제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렇게 5분가량을 날아가던 중 아래쪽에 이리저리 얽혀 있는 빨간 선이 보였다.
공기 중으로 퍼진 피 같았다.
‘혈향?’
아래로 활강해서 냄새를 맡자, 피 냄새라는 것이 더욱 확실해졌다.
최단거리로 날아가는 중이라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었는데, 골목 안에 웬 중년 남자가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이쪽이 더 편할지도.”
그냥 지나치려던 에르제는 곧장 골목 안으로 들어와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쓰러져 있는 남자 쪽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끄으…… 으윽.”
남자는 신음 소리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숨도 간신히 쉬고 있는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상태.
‘딱 좋아.’
이러면 굳이 병원에 숨어들어서 실습용 수혈팩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에르제는 골목 벽에 쓰러지듯 앉아 있는 남자의 사각지대로 돌아갔다.
혹시라도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가까이에서 그의 상태를 확인한 에르제가 혀를 찼다.
‘맞은 상처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맞은 부위나 상처의 정도로 보니 여러 명한테 얻어맞은 모양이다.
‘이 세계에서도 골목에서 범죄가 벌어지는구나.’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도 범죄 길드가 일을 벌이는 곳은 대개 뒷골목이었으니 말이다.
짧은 생각을 마친 에르제는 그의 왼편으로 붙어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저번에 송곳니도 안 나왔었지?’
그렇다면 물지 말고 이미 남자가 흘린 피로 확인하는 것이 좀 더 손쉬울 터.
“으…… 으으……. 제발…… 돈, 돈을 드릴 테니…….”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쉿.”
에르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남자의 팔에 난 상처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아 냈다.
그러고는 입으로 천천히 가져갔다.
혀에 닿은 피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스륵, 하고 사라졌다.
‘…….’
거부반응에 대비해 잔뜩 긴장하고 있었으나, 피를 섭취한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축복 때문이었어.’
경과를 지켜보던 에르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이렇게 되면, 축복은 진짜 의미 그대로 축복이 되었다.
어감 자체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쪽 세계에서 살아가기에 최상의 상황이 되었다.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원하는 때에 피를 섭취해서 생명의 연장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
‘거기에다 주기적으로 피가 필요하지도 않아.’
움직이는 데 제약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결론을 얻고 나니, 눈앞의 남자가 마음에 걸렸다.
‘그나저나 이 사람은 어떻게 하지?’
이대로 두면 분명 생명이 위험할 것이다.
심하게 맞은 것도 맞은 것이지만, 일단 날씨 자체가 상당히 쌀쌀했으니까.
이대로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
‘재생 능력으로 고쳐 놓을까……?’
아니다.
이건 기각.
분명 맞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을 텐데, ‘눈떠 보니 멀쩡하네?’와 같은 시나리오는 그리 좋은 해결 방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해결책을 고민하던 에르제는 손가락을 튕기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인간 세상의 일이니 인간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깔끔할 것이다.
[ 다친 사람을 발견했을 때. ]
에르제는 인터넷에 그렇게 검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