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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5화 (15/307)

제15화

15화

사이렌 소리가 새벽 공기를 울린 지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이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에르제를 찾았다.

그리고 곧 병원 의자에 앉아 있는 녀석을 찾아내었다.

“서은우!!”

에르제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이윤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게……. 하윽, 힘들어 죽겠네. 아무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새벽에 혼자 싸돌아다녀!?”

“산책이었어요.”

그 말에 이윤이 빠르게 다가와서는 조그맣게 이야기했다.

“어떤 아이돌이 새벽에 산책을 다녀……!! 그러다가 큰일 나면 어떡하려고?”

“잠이 오질 않아서요.”

에르제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밤공기를 쐬면 잠이 좀 올까 싶어서.”

“안 돼. 아무튼 안 돼. 오늘 이후로 절대 안 돼.”

3번의 안 돼가 한 문장에 들어가 있다니.

말을 참 번거롭게 한다고 여기며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하아아, 내가 진짜…….”

하지만 ‘기억상실’이라는 천연 방패 앞에서 이윤도 더는 뭐라 하지 못했다.

“나중에 데뷔 앨범 발표하고, TV에 나오다 보면 숙소 앞에 진 치고 있는 팬들도 있을 거야. 혹시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생길 거고…….”

이윤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뭐 그거야 사인해 주고 사진 찍고…… 팬 서비스로 어떻게 넘길 수 있다고 해도, 혹시나! 아주 만약에 해코지라도 당하면 큰일 날 수 있어.”

인간이, 자신한테 해코지를?

솔직히 지금 보유하고 있는 혈기만으로도 손쉽게 인간을 찢어 죽일 수 있는 것이 뱀파이어다.

하지만, 그걸 굳이 같은 인간인 이윤한테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에르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윤은 조금 전 그와 했던 통화 내용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래서, 그 다친 사람은? 무사히 병원으로 데리고 온 거지?”

“네. 타박상이 좀 있고, 약하게 뇌출혈도 있었대요. 가만히 뒀으면 죽었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잘했어.”

이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에르제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겨 주었다.

“그 사람 그대로 두고 왔으면, 문제가 더 커졌을 거야. CCTV나 블랙박스에 찍혔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확률이 낮지만 용의 선상에 오를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아이돌이 다친 사람을 방관했다!’라는 어그로가 끌릴 수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그의 대처는 현명했다.

“그냥 산책을 나가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사람 하나 살렸다고 생각해야지.”

이윤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하고 올게. 여기 가만히 있어.”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윤은 의사와 환자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렇게 5분가량, 병원 내에 설치되어 있는 TV를 보고 있자.

이야기를 끝냈는지 이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다만 혼자가 아니었다.

에르제가 데리고 온 남자의 부인과 딸이 이윤과 함께였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정말…….”

“감사합니다……. 흐윽…… 끅.”

모녀는 에르제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감사하다는 말과 죄송하다는 말을 동시에 전했다.

‘…….’

에르제는 말없이 손을 내어준 채로 서 있었다.

그저…… 안쓰러웠다.

끝내 지켜주지 못해 세상을 떠난 일족들의 얼굴이 그들과 겹쳐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병원 복도의 한복판에서 인사를 나눈 에르제와 이윤은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서 차에 올라탔다.

“…….”

“…….”

잠시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윤이었다.

“사채업자……한테 당했다고 하더라.”

“그렇군요.”

사채업자는 과거 에르제가 있던 세계에서도 존재했던 이들이다.

과도한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주고 갚지 못했을 때에는 어떠한 짓거리도 서슴지 않았던 이들.

왕실이나 기사단 측에서 주기적으로 퇴치를 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돈 없는 이들을 괴롭혔다.

“에휴.”

이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왕 좋은 일 하는 거, 병원비까지만 내주고 왔다.”

실질적으로 그들의 돈을 갚아 주지는 못해도 병원비만으로도 어느 정도 도움은 되었으리라.

“대표님도 허락하셨고.”

이윤이 씁쓸한 어투로 말하고, 백미러로 보이는 에르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 이름으로 내줬어.”

“……저는 돈이 없는데요? 그리고 이윤도 박봉…….”

“당연히 회사 돈으로 했지!”

박봉이라는 말에 발끈한 이윤은 이내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는지 피식 웃었다.

“회사 돈으로 냈으니까 나중에 네 정산에서 깔 거야.”

“……!!”

에르제가 이윤을 차갑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이돌이 정산으로 돈을 받는다는 사실은 윤치우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제 동의도 없이 돈을 쓰고 정산에서 깐다니 이윤은 사채업자예요?”

“야, 넌 말을 해도!”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를 털어 버리고 둘은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 * *

[ ‘ToT-win’ 멤버 서은우, 사람을 살리다! ]

[ 딸의 감사 메시지 “덕분에 아빠를 잃지 않았다.” ]

등의 인터넷 기사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그날로부터 이틀 뒤인 오전부터였다.

환자로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서은우의 얼굴을 알아보았고.

그렇게 SNS상에서 먼저 퍼지기 시작하자 기자들도 냄새를 맡고 병원에 왔다 간 듯했다.

“아직 데뷔도 안 한 애를 어떻게 알아봤대?”

“그…… LAK 콘서트 때, 누가 비계로 초대석에 있는 우리 애들 사진을 올렸나 보더라고요.”

“끄응.”

장 대표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렀다.

애초에 LAK의 초대석 자리에 토트윈 애들을 앉힌 이유가 그런 식으로 바이럴 마케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길 바라서였다.

“하필 그게 또 그렇게 됐나.”

“……죄송합니다.”

“아냐. 네 잘못도 아닌데.”

장 대표는 기사와 댓글을 확인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원래라면, 오히려 회사 쪽에서 바이럴 마케팅으로 써먹을 수 있는 카드였을 테지만.

그동안 자신과 자신이 런칭했던 남자 아이돌 그룹의 행보 때문에 망설이던 사안이었다.

― 벌써부터 인성 영업 들어갔네.

┖ 사람이 다쳤는데 인성 영업이라니, 말 참 심하게 하네.

┖ 그럼 인성 영업이 아니고 뭐임? 아이돌이 새벽에 밖을 왜 돌아다니는데? ㅋㅋㅋㅋ

┖ 진짜 배배 꼬인 인간들 많다.

이런 뉘앙스의 댓글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대부분은 옹호하는 반응이기는 했으나.

초반에는 무난하게 끌고 가려던 계획이 틀어지고, 강한 어그로가 걸린 상황.

장 대표가 고민을 하고 있자, 이윤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그래도 여론은 좋은 상황입니다.”

“……알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저희 쪽에서도 밀어붙이는 게…….”

“뭐? 진짜로 인성 영업이라도 하자고?”

인성 영업이 아니라 있는 사실 그대로잖아요.

그런 말이 이윤의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장 대표도 그런 이윤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는지 마른세수를 하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 흐름 타서 밀어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이기는 한데, 일단은 그대로 두자. 그냥 데뷔하기 전에 의도치 않게 어그로 끌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어.”

“……대표님……!”

“윤아.”

“…….”

“알잖아. 벌써부터 ‘천사표’, 이런 이미지 붙으면 곤란한 거.”

고집스러운 그의 어조에 이윤이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천사표 같은 이미지는 당장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무거운 굴레와도 같다는 것을 말이다.

“은우 심성이 진짜 천사 같아서 단 한 번도 문제 안 일으키고 그러면 또 몰라도…….”

기억까지 잃었잖아.

장 대표가 끝을 흐린 말 속에는 그런 의미가 들어 있었다.

이번에도 새벽에 몰래 혼자 밖으로 나갔고 말이다.

“이해했습니다.”

“그래.”

이윤이 동의하자, 장 대표도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인상을 풀었다.

“오늘 애들 뮤비 티저 풀리지?”

“뮤비 티저랑 단체 이미지도 같이 풀립니다.”

“그래. 앨범 예판 걸고, 제일 중요한 데뷔 쇼케이스에만 신경 쓰자. 애들 연습하는 거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일단락을 지은 장 대표는 이윤에게 이제 나가 보라고 손짓했다.

* * *

그날 저녁.

토트윈의 멤버들은 뮤직 비디오 티저의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거실에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태현우가 에르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은우야, 너 콘셉트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

“?”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자, 태현우는 양 손바닥을 펼쳐 그의 등 뒤에 가져다 댔다.

“천사 말이야, 천사.”

“맞아여! 뱀파이어는 내가 할 거임!”

안단테가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손을 들며 반응했다.

태현우가 그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아이고, 우리 단테. 뱀파이어가 하고 싶어쪄요? 근데 이걸 어쩌나~. 코트 같은 거 입으면 질질 끌릴 거 같은데여?”

“…….”

안단테는 평상시 민주혁이 애용하는 효자손을 들고 와 도망가는 태현우의 뒤를 쫓았다.

“정신 사나워.”

민주혁의 말에도 둘은 5바퀴 넘게 거실을 뱅글뱅글 돌았다.

게다가 “그 짧은 다리로 날 쫓아올 수 있겠어?”라고 태현우가 한 번 더 도발하는 바람에 무려 2바퀴가 더 추가되었다.

“172나 177이나……. 거기에다 단테는 비율이 좋아서 다리 길이는 비슷해 보이는 것 같은데.”

민주혁의 말에 최종적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은 것은 안단테였다.

그렇다고 태현우가 분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가 천사에서 여기까지 온 거지.’

에르제는 순수하게 의문을 품으며 볼을 긁적였다.

인간들의 의식 흐름을 따라가기엔 아직 멀었나 보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가라앉은 뒤, 핸드폰을 들고 있던 윤치우가 입을 열었다.

“이제 자리에 앉자. 영상 올라갔어.”

팬들 혹은 팬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전에 윤치우는 먼저 뮤직 비디오 티저를 재생했다.

완성된 뮤직 비디오는 이미 확인했지만, 트레일러 티저로 올라가는 것은 그들로서도 지금 처음 보는 것이다.

콘티로 보는 것과 편집 작업이 마무리된 영상을 보는 건 큰 차이가 있었다.

“오…….”

도입부부터 태현우가 입을 동그랗게 모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시작 포맷은 비슷해 보였으나, 한 명씩 등장했던 개인 티저 클립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5명이 동시에 나왔기 때문이다.

확실히 영상 속 인원이 늘어난 만큼 분위기가 달라졌다.

5개로 컷 분할이 된 상태에서 가운데를 향해 그들 5명이 걸음을 옮겼다.

길의 끝에서 만난 그들이 강한 빛을 내뿜는 하얀 문으로 사라지는 순간.

핼러윈을 맞아 분장을 하고 있는, 많은 인파가 영상에 등장했다.

각자 웃고 떠드는 소음이 가득한 곳.

곧 그 소리 위로 ‘HaLLo’의 inst 버전이 천천히 덮어 갔다.

퓨처 베이스 장르의 독특한 청량감이었다.

그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눈치챈 멤버들의 모습이 나오고.

다시 한번 그들의 원래 모습이 치지직, 하며 강하게 튀었다가 사라졌다.

“……!!”

그들은 동시에 앞쪽에 만들어진 무대를 향해 뛰었다.

사람들 사이의 좁은 틈을 뚫고 들어간 그들이 무대 위로 모여 대형을 갖췄다.

그러고는 그들 5명의 얼굴이 가까이 보이게끔 클로즈업 되는 화면.

씩 웃는 그들의 모습과 그 밑에 흰색 글씨로 휘갈겨지는 ‘ToT-win – HaLLo’라는 글씨.

뮤비 티저는 그렇게 끝이 났다.

“…….”

“…….”

영상이 끝났지만, 다들 입을 열지 않았다.

여운이 남기도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윤치우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영상이 사라진 자리에 댓글창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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