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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회귀해서 만능캐되다-193화 (193/211)
  • 193화. 최후의 전투 (4)

    대공은 일렉의 말에 반색하며 말했다. 요구 조건을 제시한다는 건 절반은 넘어온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면 뭐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그동안 금지되었던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흠, 알겠소. 내가 마왕이 된다면 그렇게 해주리다.”

    대공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허락했다.

    일렉의 사업은 다양한 에너지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그중 가장 큰 매출을 올리던 원자력 발전소 사업이 현재는 가동중지 상태였다.

    오래전 원자력 발전소 중 한 곳에서 방사능 유출사고가 난 이후, 마계 내 모든 원전이 가동중지가 되었다.

    그 뒤로 일렉은 소형모듈형원자로라는 것을 개발하여 가동 허가를 요청했다.

    마왕은 고려해보겠다고 했지만 마계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계속해서 미루기만 했다.

    언제 허가가 날지 알 수 없었기에,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해 소형모듈원자로를 개발했던 일렉으로서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생산하는 에너지의 70프로를 원자로에서 충당했었기에, 재정적으로 아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였다.

    “대공 전하의 약속을 믿겠습니다. 시원시원하게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도 군대를 보내겠습니다.”

    “고맙소.”

    그렇게 투스멕과 일렉이 대공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제 에이티와 플레어 차례다.

    그들은 예상외로 조건을 걸지 않고 순순히 응했다.

    “저는 군대 대신 자본을 보태겠습니다.”

    “저 또한 자본을 보태겠습니다.”

    “고맙소!”

    두 성주의 대답에 대공은 크게 기뻐했다.

    어차피 군대냐 자본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지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에이티와 플레어는 마계에서 알아주는 부유한 성주들이다.

    에이티와 플레어는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을 가진 부분도 있었지만 초기에 시장을 장악했다는 점이 컸다.

    경쟁 업체들이 여럿 있었기에, 정부에 밉보이면 위험했다.

    언제든지 후발주자들한테 밀릴 수도 있었다.

    마왕이냐, 대공이냐. 둘 중 어디든 붙어야 했다.

    에이티와 플레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들은 투스멕과 일렉이 대공에게 지지를 보내자 대세를 따른 것이었다.

    대공은 중립을 표방하던 다섯 성주 중 넷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온라인 회의를 마친 뒤 드디어 군대 출동을 지시했다.

    “헬릭스, 지금부터 마르바스를 향해 진격한다.”

    “알겠습니다.”

    대공의 결정에 헬릭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젤라에게 원하던 대답을 해줄 수 있게 되어 다행인 것이었다.

    “아빠! 고마워!”

    안젤라는 대공의 결정을 헬릭스에게 전해 듣고 크게 기뻐하며 안겼다.

    헬릭스가 품에 안긴 안젤라를 토닥거려주자마자 안젤라는 곧장 벗어나 장현에게 연락을 취했다.

    “장현! 대공군이 움직이기로 했어. 아버지와 내가 직접 부대를 이끌고 갈 거야.”

    “수고했어. 안젤라.”

    장현은 안젤라의 연락을 받고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대공군이 늦지 않게 출발한 것이다.

    드디어 마왕, 대공, 플레이어 세 개의 세력이 전장에 모이게 되었다.

    최후의 전투의 시작이지만, 이전과는 다르리라.

    대공과 헬릭스는 군대를 이끌고 마르바스를 향해 진격했다.

    그 뒤를 따라 이나연과 김덕배가 이끌고 온 캄온 공략 부대 또한 움직였다.

    마르바스 성에서는 아르헨, 마현, 테오, 제이미 등이 한 데 모여 있었다.

    마왕군이 공격을 감행해왔기에, 전투를 준비하고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장현에게 1회차의 경험을 전해 들은 공통점이 있었기에 서로를 신뢰할 수 있었다.

    연합왕국의 상당수 국왕과 그 밑의 플레이어들은 아르헨을 대표로 인정한 자들이었다.

    이미 킹덤의 왕좌는 아르헨이 차지했다고 내심 생각했기에, 그가 인간 플레이어들의 대표 행세를 해도 딱히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듯, 마음에 안 들면 연합을 떠나면 된다.

    킹덤으로 돌아가도 막거나 붙잡지는 않을 것임에도 떠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 있으면 백신을 제공받을 수도 있고, 확진된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안전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연합왕국의 국왕들 사이에는 내분의 움직임이 보였다.

    마왕군이 마르바스 성을 포위하고 공격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목숨에 위협을 받으면 대표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체 네오디움 왕국의 사람들은 어디 갔습니까?”

    사람들을 모아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블록 국왕이었다.

    그는 일전에 장현에게 공동사업에 끼워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앙심을 품고 장현이 추진하는 건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그는 속이 좁은 자였다.

    속 좁은 자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기억해두었다가 앙갚음을 하려고 한다.

    그는 장현의 도움으로 백신도 제공받고 진단키트와 보호막 형성 마스크를 비롯한 무기 등의 아이템까지도 제공받았다.

    그런데 그것을 감사하기는커녕, 레이드에 참가하고 연합에 들어온 것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자 권리로 여겼다.

    지금 장현을 비롯한 네오디움 왕국의 인사들이 모두 캄온 연구소로 떠난 후 마왕군이 마르바스를 공격하자, 블록 국왕은 장현을 의심했다.

    아르헨이 인상을 찡그리며 블록 국왕에게 대답했다.

    “네오디움 왕국의 국왕과 장현은 백신 제작에 필요한 임상시험 연구소를 확보하기 위해 갔소. 그것은 왜 묻는 거요?”

    “네오디움 왕국 사람들이 떠나고 마왕군이 우릴 공격했습니다. 이게 그냥 우연이란 말입니까?”

    “네오디움 왕국은 반란군과 대공의 지원을 받기위해 이동한 것입니다.”

    아르헨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대답했다.

    블록 국왕은 홀로 오지 않았다.

    킹덤 내 다른 국왕들과 몰려왔다. 그들은 레이드에 함께 참가했던 국왕들이었다.

    킹덤 왕국들 중 레이드에 참가하지 않은 곳들은 킹덤의 사업에서 배제되었다. 그들은 이름만 왕국이지, 사실상 자체 사업도 없는 도시에 불과했다.

    자연스레 레이드에 참여한 왕국들을 중심으로 킹덤이 운영되었다.

    아르헨을 대표로 한 장현의 동료들이 킹덤의 주도권을 쥐었지만, 레이드에 참여한 왕국들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장현은 아르헨에게 마왕군과 최후의 전투를 치를 때까지 플레이어들의 전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회차 때, 내분으로 인해 인간 플레이어들의 수가 줄어들은 것이 결국 최후의 전투에서 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아르헨 또한 다른 왕국들에 신경을 썼다.

    사업거리도 나눠주고, 백신도 제공해 주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배려해 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이들은 지금 마왕군과의 전쟁을 코앞에 두고 힘을 합치기는커녕 분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1회차 때 왜 인간들 간에 내분이 일어났는지 이들을 보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블록 국왕이 아르헨의 말에 반박했다.

    “그렇다면 마족 반란군과 대공군은 왜 지원을 오지 않는 겁니까. 우리가 마왕군과 싸워 전멸하고 나서, 그때서야 대공군이 지원 온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블록 국왕의 말에 다른 국왕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마족이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르헨은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 블록 국왕의 입을 박살 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참아야 했다.

    인류의 대표라는 지위를 가진 이상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순 없었다.

    “이것 보십시오. 블록 국왕. 장현이 자발적으로 반란군과 협상을 맺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회의에서 이루어진 결정으로 장현과 네오디움 왕국에 백신을 제조해달라고 요청한 거였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이 캄온 연구소로 가지 않았습니까. 대체 왜 네오디움 왕국을 의심하는 겁니까?”

    “그야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지금 네오디움 왕국의 주요 인사들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혹시 그들과 연락이라도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블록 국왕의 말에 아르헨은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입을 닫았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얼마 전부터 통신이 끊어졌다. 시스템 알림은 물론 메시지 전송도 안됐다.

    “지금 메시지 전송 기능이 안 되고 있습니다. 장현 등 네오디움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마르바스 내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메시지 전송이 안 됩니다.”

    “그것도 네오디움 왕국 일행이 마르바스를 벗어난 이후부터지요.”

    “블록 국왕,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지금 마왕군이 우릴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까지 내분을 일으키려는 이유가 있겠지요. 얘기해 보세요.”

    아르헨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하자, 블록 국왕은 미소를 지었다.

    “마왕군이 우릴 공격해온 이유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그들이 우릴 공격하기 시작한 건 장현이 마르바스의 마족들에게 연설을 한 직후입니다. 마왕은 분명 장현에게 분노했기 때문에 우릴 공격하는 겁니다. 그러니 모든 잘못을 장현에게 덮어씌우고, 우리는 그와 생각이 다르다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나도 그 자리에서 연설했다는 것을 잊었나 보군요.”

    아르헨이 블록 국왕에게 싸늘한 어조로 살기를 흘렸다.

    블록 국왕의 말은 결국 장현을 마왕에게 바치고 투항하자는 소리였다.

    아르헨은 이자를 이대로 두면 틀림없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날 것이라 여겼다.

    아르헨의 말에 블록 국왕이 차분히 얘기했다.

    “아르헨 국왕은 장현과 다르지요. 아르헨 국왕은 백신을 개발했다는 것과 마르바스 성주에게 위임을 받았다는 것만 연설했습니다. 마왕에게 반기를 든 장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단 말입니다.”

    “흠, 다른 분들도 블록 국왕의 뜻에 동의하시는 겁니까?”

    아르헨은 블록 국왕과 함께 온 여섯 명의 국왕들에게 물었다.

    “당면한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중 하나가 대답했다. 나머지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백신을 맞은 것으로 아는데, 그걸 누가 개발했는지는 잊으셨나 보군요.”

    “백신을 개발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만, 마왕에게 반기를 든 것은 우릴 죽음으로 몰아넣은 행위입니다. 그는 우리와 사전에 상의하지도 않고 일을 저질렀습니다. 거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지요.”

    “후, 알겠습니다. 여러분의 뜻이 그러하다면, 제가 블록 국왕에게 인간의 대표 자격을 양보할 테니 마왕에게 가서 용서를 구해보도록 하시지요. 마왕이 허락하면, 그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도록 해보십시오.”

    아르헨의 말에 블록 국왕과 동조하는 국왕들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아르헨! 장현을 버릴 셈이야?”

    제이미가 소리치며 만류했다. 아르헨은 그저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 이어 다시 한번 블록 국왕 무리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더러 직접 가란 말입니까? 부하들을 시켜 의사를 물어보겠습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인간의 대표 자격은 국왕인 사람에게만 부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부하에게 인류 대표 자리를 넘길 순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그 정도 각오도 없다면 인류의 대표 자격을 줄 수는 없습니다. 물론 말에 책임도 못 지는 사람들의 얘기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겠지요.”

    단호한 아르헨의 말에, 블록 국왕은 각오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인류의 대표 자격으로 마왕에게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당장 가시죠.”

    아르헨의 허락이 떨어지자, 블록 국왕과 그 일행들은 사절단으로 마르바스를 나섰다.

    테오는 마르바스 성을 둘러싼 보호막 마법진을 유지한 채 항복사절단만을 성 밖으로 보냈다.

    그들이 나가고 난 이후, 테오와 제이미는 아르헨에게 물었다.

    “아르헨, 대체 무슨 생각이야?”

    “저들은 어차피 분란을 일으킬 자들이야. 이참에 정리해두는 것도 좋겠지.”

    “저들이 마왕에게 가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클 거야. 설령 마왕이 저들의 항복을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만은 않아. 그럼 저들을 따를 사람들과 우리와 함께 할 사람들을 구분 지을 수 있겠지. 저런 놈들은 함께 있어 봤자 좋을 거 없어. 아군의 사기를 깎아먹거나, 최악에는 자기편 뒤통수까지도 치겠지.”

    아르헨의 마지막 말에 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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