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몬스터 사냥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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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혁의 질문에 줄리앙이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몬스터 사냥꾼들이라 불리는 족속들이 있습니다.”
“몬스터 사냥꾼?”
강력한 몬스터들만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집단의 존재는 상상하는 것만으로 남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네. 의뢰를 받아 몬스터를 처리하거나, 제 스스로 희귀한 몬스터를 찾아 사냥하는 자들이 따로 있습니다. 그들만큼 몬스터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없습니다.”
“어딜 가면 만날 수 있지? 아니, 우리 영지에도 그런 자들이 있나?”
줄리앙은 자신의 주인이 당장에라도 몬스터 사냥꾼을 불러들일 기색을 보이자, 짙은 우려를 보였다.
“생업이 몬스터를 쫓는 것이라 그들의 지식과 경험이 자작님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지에 그런 불한당 같은 자들을 들이는 것은 만류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신랄하기만 한 줄리앙의 평에 그는 도리어 호기심이 생겼다.
“그들은 영주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무도한 자들이며, 밥먹듯이 불법을 자행하는 범죄자들입니다. 그들이 머물다 간 마을에는 늘 살인과 방화, 강간 사건이 일어나며 심한 경우에는 마을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왕왕 존재합니다. 그런 자들을 영지로 들이는 것은 자칫 자작님의 평판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듣자하니 몬스터 사냥꾼들이라는 자들은 일이 없을 때는 거의 도적이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던 모양이다. 줄리앙이 거듭 우려를 표하자 그도 조금은 고민하는 심정이 되었다.
“근데 대관절 찾으시는 정보가 무엇이기에 그 천하의 불한당 같은 자들마저 영지에 들일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아, 뭣 좀 찾을 게 있어서.”
“중요한 겁니까?”
“나한테는.”
잠시 망설이던 김선혁은 자신이 페어리 드래곤을 찾고 있음을 적당한 이유를 대 설명해주었다. 당장 용의 존재와 용기병장의 능력에 대해 설명해줄 수는 없었지만, 줄리앙이라면 이 정도의 사실쯤은 말해주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탓이다.
“페어리 드래곤이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줄리앙이 페어리 드래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녀에게 자세히 설명하라 다그쳤다.
“어릴 적 유모가 해준 동화에서 들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아...”
왠지 모를 허탈감에 김선혁이 도로 자리에 주저앉자 줄리앙이 드물게 미안한 얼굴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 이야기라도 해드릴까요.”
“끄응. 안 듣는 것보다는 낫겠지.”
당장 페어리 드래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판국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가 가만히 줄리앙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옛날 옛적에 페어리 드래곤이 살았습니다.”
“음?”
줄리앙은 황당하게도 자신이 들었던 유모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 말할 듯 보였다. 어린아이에게나 통할 법한 서두에 그가 뜨악한 얼굴을 해보이니, 그녀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변명을 주워섬겼다.
“자작님께서 이야기 해보라고...”
“맞아. 맞아. 계속 해봐.”
웃음을 참느라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 놀림이라도 받았다 여긴 것인지 줄리앙의 얼굴이 냉담해졌다.
“동쪽 숲에 살던 페어리 드래곤은 어느날 갑자기 혼자 남겨졌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인간 마을에 내려갔습니다. 친구가 생겼지만 그 친구는 페어리 드래곤을 이용만 할 줄 알았지, 진심으로 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용당할 대로 이용당하다 버림받은 페어리 드래곤은 화가 나 자신을 배신한 친구를 산 채로 잡아먹고는 친구의 친구와 부모, 이웃들을 전부 영원한 잠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복수를 마친 페어리 드래곤은 다시 숲으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한 것인지 처음의 구현동화 같은 어투는 사라지고 설명을 하는 줄리앙의 어투는 지독할 정도로 사무적이고 차가웠다. 덕분에 그녀의 색다른 모습을 더 이상 구경하지 못하게 된 그가 아쉬운 표정을 해보였다.
“뭔 동화가 그렇게 살벌해.”
“동화라는 게 대부분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종류의 것이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저쪽 세상의 동화라는 것들도 실상을 따지고 보면 살벌하고 무서운 것들뿐이었다. 말문이 막힌 그가 화제를 돌렸다.
“동화에서는 페어리 드래곤이 어떻게 생겼다던?”
“아주 작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반짝이는 보랏빛 비늘에 나비를 닮은 날개, 그리고 마술을 부리는 뿔, 그게 동화 속의 페어리 드래곤의 모습입니다.”
혹시 정보가 될까 해서 들었지만, 막상 듣고 보니 그게 사실인지 판단할 지식이 없었다. 결국 그는 줄리앙의 어린 시절을 잠시 엿보는 데 만족하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몬스터 사냥꾼이라는 자들을 한 번 찾아봐. 일단 찾고 나서 그들을 마을에 불러들일지 말지 생각해볼 테니까.”
“끄응. 원하신다면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원체 한 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는 족속들이라 시간이 다소 걸릴 수 있음을 양해해주시기를.”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 보이는 그녀의 몸짓이 어쩐지 거칠었다. 자신이 애 취급을 받았다고 토라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모습마저도 어린 아이의 치기처럼 보여 김선혁은 기분 좋게 웃었다.
“애는 애 다워야지.”
당장 그 애한테 영지의 대소사 대부분을 떠넘긴 그가 할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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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는 무사히 개발이 완료되었다. 아인스트 제네거는 김선혁이 말하지 않았던 동력 전달 장치마저 개발하여 완성된 형태의 제분 장치를 보여주었다.
“과연! 마법사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현자라더니, 정말이었군요!”
“사실은 중앙에서 받은 자료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는지 꽤나 완성품에 근접한 설계도가 있더군요. 덕분에 시행착오를 조금은 덜 거칠 수 있었습니다.”
강가에 지어진 허름한 오두막에 설치된 수차를 본 그는 감탄했다. 하지만 아인스트 제네거는 처음에 보였던 열의는 온데간데없는 모습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아인스트 제네거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왕실에서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수차의 개발과 시험은 인정하지만, 라인펄 영지 외에는 추가적으로 수차를 설치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말입니다. 또한 수차의 관리는 영주가 할 것이며, 영지민들에게 임의로 사용권을 주어선 안 된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말입니다.”
수차를 이용한 제분소만 있어도 제분 작업에 들이는 공을 줄여 영지민들의 생활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으련만, 뜻밖에도 왕실이 딴지를 걸고 나섰다. 그는 뒤통수라도 맞은 듯한 심정이 되어 아인스트 제네거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 외에도 자작님께 따로 전언이 있었습니다.”
아인스트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신 왕실이 추가적으로 보낸 공문을 보여주었다.
“대체 왜...”
공문을 본 김선혁은 갑갑한 얼굴을 해보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온갖 미사여구로 가득한 왕실의 편지는 딱 한 줄로 요약이 가능했다.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은 허가하나, 평민들과 그 혜택을 공유하는 것은 금지한다.’
결국 혼자 만들어서 혼자 쓰라는 이야기였다. 이제껏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왕실의 입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억지스러웠다.
“어쩌면 말입니다...”
아인스트 제네거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근방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자작님이 오시기 이전에도 몇 차례 대소환이 있었다는 건 알고 계시지요? 그때 각 나라들이 꽤나 골머리를 썩은 모양입니다. 당시 이방인들이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며 온 나라를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거기에 휩쓸린 사람들이 큰 소란을 일으켰다더군요.”
“아...”
듣는 순간 김선혁은 직감했다. 이방인들이 내세운 얼토당토않은 주장이 무엇인지, 왜 왕도에서 개발된 신물물들이 하나같이 사치스럽고 귀족적인 것들뿐인지, 명확하게 깨달았다.
“당시 개발된 물건들 중에 꽤나 쓸 만한 물건들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 지금에 와서는 왕실 마법사단의 서고에서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소란에 학을 뗀 왕족들과 귀족들이 전량 폐기한 것이지요.”
“결국 평민들이 더 윤택한 삶을 누리게 되면, 피곤한 건 지배자들이라는 소리군요.”
제 영지의 사람들이라도 배불리 먹일 생각에 한껏 들떴던 마음이 무너지자, 김선혁의 말투가 신랄하게 바뀌었다.
“자, 자작님!”
듣기에 따라 큰 곤욕을 치를 수도 있을 말에 아인스트 제네거가 기겁을 했다.
“알겠습니다. 왕실의 지침대로 하지요. 이 수차는 제가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굳이 왕실의 의향을 무시해가면서까지, 무리하게 개발을 진행할 이유는 없지요.”
그가 금세 말투를 달리 하여 왕실의 명을 받들겠노라 대답을 해주자, 아인스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제네거 경은 꽤나 예전의 일인데도 용케 알고 계셨군요.”
“아시다시피 일찍이 마법적 재능이 그다지 없음을 깨달은 터라, 이런저런 서적을 많이 파고들었지요. 그러다보니 얻어걸린 지식일 뿐입니다.”
아인스트의 겸양에 그가 몇 번이나 더 칭찬을 해주다가 문득 지나가듯 물었다.
“그래서 그때의 이방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순한 생각을 품고 있던 자들은 전원이 처형...”
분위기에 휘말려 말을 하던 아인스트 제네거가 입을 다물었다.
“처형당한 게로군요.”
처음부터 노린 것이었을까. 지금 보니 전혀 나아지지 않은 김선혁의 냉랭함에 늙은 조사관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지금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해주시지요. 혹시라도 이 이야기가 새어나가면 제 입장이...”
“걱정 마십시오. 다른 곳에 가서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제야 조사관의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다.
“그 대신 제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하지만 김선혁의 말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비밀을 지켜드릴 테니, 이전의 대소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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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영주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급소만을 가린 갑주는 재질을 알 수 없었으나 통일된 기색이 없어 난잡하기만 했다. 풀어헤친 머리는 며칠을 감지 않아 잔뜩 떡이 져 있었고, 누런 잇새로 흘러나온 말투는 불량스러웠다.
줄리앙이 수소문 끝에 불러들인 몬스터 사냥꾼들의 모습은 예상과는 한참은 동떨어진 불결한 모습이었다. 그 어디에도 항거 못할 괴수를 맞아 싸우는 용자들의 용맹함이나 비범함은 보이지 않았다.
“건방지다! 감히 뉘 앞이라고 그리 건방지게 고개를 드느냐!”
무릎은 꿇었지만, 빳빳이 든 고개가 거슬렸는지 줄리앙이 대번에 그 무례함을 꾸짖었다.
“이거 원체 배운 게 없는 무지렁이들이라, 어찌 예를 더 갖춰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납작 엎드려 극도의 공경을 표하면서도 그 자세가 불량스러워 보이는 게 신기한 재주가 있는 사내였다.
“네 이...”
줄리앙이 다시 나서려 하자 김선혁이 손을 들어 만류했다. 딱 보아하니 아무리 윽박질러도 그다지 태도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았던 탓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 스스로도 영주의 권위에 크게 연연해 하지는 않는지라 책 잡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대들이 몬스터에 대해 가장 잘 안다지?”
“하는 일이 몬스터 똥 뒤지고 추적해서 멱을 따는 일이다 보니, 남들보다 조금은 더 알고 있습죠.”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몬스터 사냥꾼들의 불량스러운 태도를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용의 아종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다행이군. 마침 물어볼 게 있었던 참이라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혹시 페어리 드래곤에 대해 들은 것이 있는가?”
========== 작품 후기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글에 투자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정시를 지나 연재하니 죄송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대충 분량만 채워서 올릴 수도 없는지라, 독자분들의 너그러움에 기대볼 뿐입니다. 부디 너른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후 연참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