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화 〉 만우절 만세!
* * *
“...뭔가 이상한데.”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면 낯선 천장이 보이는데?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나는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상황파악이 도저히 되질 않았다. 저번처럼 뭐 이세계로 차원이동 하기라도 한 건가? 근데 그런 것 치곤 천장이 현대에서나 볼법한 양식인데...
몸을 일으킨다. 나는 거기서부터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좀 무거운데. 나는 고개를 내려 밑을 내려다보았다.
어, 잠깐, 밑을?
“머리가...붙었다고? 아니 그전에 내 가슴이 언제부터 이렇게 컸...?”
내가 나름 가슴이 있긴 한데 이정도로 크진 않은데? 아니 그전에 내 모가지 왜 붙어있어? 내 아이덴티티가 갑자기 이렇게 사라져도 되는 거야? 뭔데? 도대체 무슨 상황인데? 누가 설명 좀 해줘!
이럴 땐 설명충이 좀 등판해줘도 되잖아! 누가 3줄로 요약해서 설명해 줘!
“쮸!”
“...뭔가 익숙한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내 눈에 묘하게 익숙한 축생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나를 보며 울어대는 짐승을 보며,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충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성전환에 이어서 이번엔 영혼까지 뒤바뀌냐...”
인생 참 주옥같네!
“쮸!”
“어휴...”
나는 웅녀가 애지중지 하는 봄이를 대충 무릎에 올려놓고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일단 내 몸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은데. 웅녀가 내 몸에 들어간 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난감하고 내 몸이 텅 비어있어도 그것대로 난감한데.
제 3자가 들어갔으면...어우 끔찍해라.
뭐든 간에 일단 연락을 해봐야겠는데, 웅녀 휴대폰 비밀번호를 몰라서 폰으로 연락을 못해...컴퓨터도 비밀번호가 걸려있어서 못쓰고. 총체적 난국이네 진짜.
“아오...”
“쮸!”
“그러고보니 얘는 어쩐다...”
나 아기 곰 돌보는 법 같은 건 전혀 모르는데. 선반에 분유통이 있는걸 보니까 분유 맥이나 본데, 나 분유 타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젖을 물려본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웅녀한테서 젖이 나올 리도 없고...대충 미지근하게 만들어서 맥이면 되겠지?
“잠깐 기다려봐 꼬맹아. 내가 금방 밥 먹여줄 테니까.”
일단 분유통을 꺼내서...젖병에 물이랑 타서...이거 얼마나 넣어야 돼? 분유통에 만드는 법 써있겠지?
나는 분유통에 적힌 방법대로 분유를 탔다. 다행히도 분유통에 방법이 꽤 세세하게 써있었기에 나는 무난하게 분유를 탈 수 있었다.
“쮸!”
“그래그래 알았어.”
잘 먹네. 애기는 밥 잘 먹을 때가 제일 예쁘지.
“일단 애 밥 다 먹이면 어떻게든 집에 가보든지 연락을 해보든지 해야겠는데...”
저쪽이 연락을 먼저 하길 바라는 게 편하겠지만 웅녀랑 내가 서로 몸이 바뀌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니까 내가 연락할 방법이 필요한데. 근데 휴대폰도 못쓰고, 컴퓨터도 못쓰고...상황 참 귀찮네.
이럴 땐 세연이라도 있으면...
아, 그래, 세연이!
“세연아! 혹시 근처에 있어?!”
“쮸?!”
“샤?!”
“아니 여긴 도대체 어디...웅녀?”
“나야 나!”
“...유진이야?”
내 부름에 소환당한 세연이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세연이랑 나는 영혼단위로 묶여있으니까 가능할까 싶었는데, 다행이네. 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연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와...대박.”
“대박은 개뿔. 난 심각해 죽겠다고. 애들 밥도 해줘야 하고 방송도 해야 되는데...”
골치아파 죽겠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가지고. X의 이름은도 이제 한물갔다고. 어? 요즘은 쉽고 빠른 순애가 대세란 말이야. 쓸데없이 바디 스왑해서 간 보는 전개는 고구마라고 욕먹는단 말이야.
“너 근데 우리 집에서 불려온 거지?”
“응.”
“내 몸 상태 봤어?”
“어...청소하느라 어제 밤부터 본적 없는데?”
“그럼 내 몸에 웅녀가 들어갔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이거네.”
그럼 내가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나...근데 나 X카오맵 안보고 우리 집까지 못 가는데. 이미 디지털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져서 버스 노선 보고 집 못 찾아간단 말이야. 그래도 그거 말곤 답 없으니까 찾아가 보던지 해야지.
근데 봄이는 어떡하지?
집에 혼자 둬도...되나? 샤샤였나? 개랑 같이 두고 갈 수밖에 없는데...어쩔 수 없지. 빠르게 용건을 해결하고 여기에 돌아오던지 돌아가게 하던지 하는 수밖에.
나는 웅녀의 옷장에서 옷을 몇 개 꺼내 침대에 늘어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당연히 씻기 위함이었다...나는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섰다. 근데 가슴 진짜 크네.
한솔이랑 비교해도 좀 더 큰 것 같은데? 실제로 맨가슴을 본적이 없으니 정확한 비교는 무리지만, 웅녀의 가슴은 작은 키 탓에 더 커보였다. 150cm라고 했으니까 정말 작긴 하네. 내 몸이 160초중반쯤 되니까, 10cm넘게 시야가 낮아진 셈이었다.
옷을 전부 벗고 거울 앞에 서니, 그 커다랗고 야한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이거 무게감이 장난 아니네. 어깨가 안 결리는 게 신기할 지경이야...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씻기는 해야지. 나는 조심스럽게 웅의 몸을 씻기 시작했다.
“진짜 불편하네.”
작고, 크다. 그리고 애는 다른 의미로 사람들의 시선을 엄청 큰다. 하긴 나도 보기 드문 커다란 가슴을 가진 애가 걷고 있으면 한 번쯤 시선이 갈 법하지. 나라도 그랬을거야. 그러니까
난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한다 이 말입니다.
내 주먹이 용서할지는 모르겠지만!
콱 마 노골적으로 쳐다보면 성희롱이야 그거! 피해자의 눈물 맛 좀 볼래?
“유진아, 요 역에서 내리면 돼.”
아 그래. 나는 세연이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이제야 좀 눈에 익은 장소가 보이네. 여기서 XX번 버스 타면 우리 집 앞까지 가니까...이제 곧 집이네. 여기서 상황이 더 꼬이지만 마라.
그럼 진짜 골치 아파지니까. 내 몸에 웅녀가 빙의해 있는 게 그나마 나은 상황이야. 다른 놈이 들어가 있거나 하면 진짜 답이 없어지는데. 그전에 이거 돌아올 수는 있겠지? 마리아한테 물어보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 같기는 한데...
“유진아, XX번 버스 왔어.”
아, 진짜네. 내가 그렇게 오래 생각에 빠져있었나? 아까 1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왔던 것 같은데. 나는 버스에 올라타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15분 정도면 도착할 테니까 그 동안 어떻게 할지 더 고민이나 해야지.
솔직히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것 같지는 않지만...이건 전문가의 소견이 필요한 일이라고. 마리아라던가 헤카테나 아니면 그 망할 모리안이라던가.
육체 NTR은 그년 전문이잖아. 역시 이런건 전문가 소견을 들어보는 게 맞겠지.
몸 뻇으려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내면에서 줘 패면 되는 거고.
[이번 역은...역입니다. 다음 역은]
생각할게 많다보니 시간도 빨리가네. 나는 버스에서 내려 나에겐 정말로 익숙한, 집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조용하네.”
지금 시간이 10시니까...원래라면 일어나서 아침 먹고 방송 준비를 하든 뭘 하든 하는 시간인데. 평일이니 평소대로라면 나랑, 에포나랑, 나리가 깨어 있겠네. 한솔이는 한창 잘시간이고...
나는 우리 집 대문 앞에 서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내 상황을 다시 깨닫고 초인종을 눌렀다.
몇 분 정도가 흐른 후에, 우리 집 문이 열리고 나리가 나타났다.
“어, 웅녀언니다.”
“나리야. 내가 사실 네 엄마야.”
“...오늘 만우절이라고 농담하는 거에요?”
“아닌데, 진짠데.”
“에이, 재미없어요.”
아니, 진짜야. 나는 전혀 믿어주질 않는 나리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