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286화 (286/352)

〈 286화 〉 외전:フトスト!(3)

* * *

“엄마! 저게 뭐야?”

“아아, 저것은 파프리카라는 것이다. 몸에 좋지.”

“저건?”

“아아, 저것은 오이라는 거다. 몸에 좋지.”

“그럼 저건 뭐야?”

“아아, 저건 버섯이다. 몸에 좋지.”

“저거는?”

“아아, 저건...”

유진은 에포나가 물어보는 질문에 하나하나 일일이 답해주면서 장을 보았다. 조금 정신없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에포나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굴었고, 그것이 귀엽기는 했으니까.

최소한 헤으응 거리며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빌어먹을 망아지는 아니었기에 유진은 관대한 마음으로 에포나의 질문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최소한 엄마라고 부르게 했으면 엄마다운 노릇을 하는 것은 다연한 일이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에포나의 계속되는 질문세례는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흐뭇한 얼굴로 에포나를 쳐다볼 정도로 귀여웠기에, 유진은 종종 느껴지는 시선을 무시하면서 필요한 식재료들을 하나하나 카트에 담았다.

고기부터 신선한 야채까지, 온갖 재료들이 카트를 채우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할인 품목들이었다. 유진은 푸짐하게 요리를 해 먹을 생각이었다.

어디보자, 내가 뭘 안 샀더라.

유진은 머릿속으로 장보기 리스트를 떠올리며 잠시 야채코너에서 멈춰 섰다. 당근 스튜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은 거의 다 구매했기에, 이제 가장 중요한 재료인 당근을 살 차례였다. 유진은 할인 중인 당근 코너 앞에 서서 당근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물론 적당히 골라서 만들어도 아무도 모를 테지만, 요리재료를 대충 쓴다는 것은 유진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런 마트에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식재료를 구하는 힘들겠지만, 가능하면 최상의 재료를 사서 요리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마인드로 유진은 당근들을 하나하나 엄선하여 포장용 비닐에 집어넣었다.

“주...”

“엄.마.”

“엄마, 그거 이상해.”

“응? 뭐가?”

“냄새가 신선하지 않아.”

유진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당근을 주식으로 먹고 사는 에포나의 말이니 나름 신빙성은 있다고 여겼다. 평소에도 당근의 상태에 나름 민감하게 굴었으니 어느 정도 판별은 할 수 있겠지, 하는 판단에서였다.

“이건?”

“그건 괜찮아!”

“그럼 이거.”

“그거도!”

당근 판별사 에포나의 도움을 받아, 유진은 당근을 잔뜩 샀다. 카트의 3분의 1을 채우는 무식한 양에 사람들이 묘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유진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시선에 일일이 신경 쓰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었다.

애초에 관심으로 먹고 사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정도 관심에 주춤할 유진이 아니었다. 방송인은 필연적으로 상상도 못할 숫자의 시선에 노출되는 법이니까. 이 정도 관심에는 아랑곳 않고 행동할 수 있어야 방송인을 할 수 있었다.

유진은 카트를 몰고 지나가다 할인코너를 발견했다. 아마 떨이겠지만, 돼지고기를 싼 값에 파는 모양이었다. 유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에포나에게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일러두고는 할인코너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자! 지금부터 반값! 반값할인!”

유진은 할인코너의 물건들을 쭉 훑다가 찌개용 고기를 하나 골랐다. 삼겹살을 고르자니 그다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고, 다른 고기는 집에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없었던 찌개용 부위를 하나 산 것이었다.

“일단 필요한 재료는 다 산 것 같고...에포나, 이제 갈...에포나?”

왠지 조용하다 했어. 유진은 잠시 할인코너를 다녀온 사이에 사라진 에포나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적어도 유진의 시야범위가 닿는 범위 내에서 에포나는 보이지 않았기에, 유진은 진심으로 미아 찾기 방송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에포나라는 이름이 마음에 걸렸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좀 평범한 이름으로 지을 걸 그랬나. 애 이름으로 에포나는 좀 그렇잖아. 애도 리온처럼 이름을 따로 만들어놓아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유진은 주변을 돌아다녔다. 눈에 띄는 곳에 없다면, 아마 눈에 잘 안띄는 구석이나 멀리 가버린 게 아닐까. 유진은 납치의 가능성까지 생각하며 바쁘게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에포나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거야...”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보통이라면 울면서 애를 찾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유진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듀라한이었다.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 멘탈에 살짝 금이 가기는 했지만, 유진은 애써 침착했다.

유진이 마트의 절반을 뒤졌을 때였다.

“...헤으응!”

...그냥 돌아갈까.

유진은 익숙한 소리에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심지어 목소리는 사람들이 몰린 방향에서 나오고 있었기에, 유진은 한숨을 쉬며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카트를 끌고 그 방향으로 향했다.

“에포나?”

“어, 주인님이다.”

혹시 너 나 싫어하니?

유진을 사고뭉치 애를 데려온 엄마 정도로 보던 사람들이 주인님이라는 단어에 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단어선정이 너무 기묘했기 때문이리라. 에포나는 그 와중에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듯, 눈을 반짝이며 유진에게 안겨들었다.

유진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삼키고 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여기 마트는 이제 오지말자. 좀 더 가면 X스트코도 있는데 굳이 여기서 물건을 살 필요는 없지. 그리고 되도록 에포나는 놓고 와야지.

주변 사람들이 웅성웅성 댔지만 유진은 방송을 하며 얻은 철면피로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에포나를 안아 올리곤 다시 카트 위에 앉혔다.

“에포나, 내가 카트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지?”

“하지만 주...읍읍.”

“엄.마.”

안녕 내 평판. 이제 방금 광경을 본 사라들은 나를 자식에게 주인님이라 부르게 하는 괴팍한 부모나 자식교육 글러먹은 부모쯤으로 보겠지. 아무리 유진이 철면피라도 이 정도로 평판이 맛이 가버리면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였다.

재수 없으면 아동학대로 신고 받지 않을까...하고 유진은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어린아이가 으레 치는 괴상한 단어선정 정도로 이해했다. 어린아이가 괴상한 단어를 주워듣는 대로 쏟아내는 것은 나름 평범한 광경이었으니까.

그게 헤으응이라는 괴상한 소리라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기는 했지만, 유진은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을 참으며 양손에 짐을 가득 든 채로 마트를 나왔다. 계산해 주던 직원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양손에 짐을 든 채로 나온 유진을 보곤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에포나.”

“왜?”

에포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모습에, 유진은 순간 욱 하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다시 필사적으로 가라앉혔다. 며칠 전에 읽었던 육아관련 영상에서도 애들한테 충동적으로 굴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지 않았던가.

유진은 아직 남아있는 정신줄을 붙잡은 채로 에포나에게 말했다.

“에포나, 집에 가서 혼날 준비 하렴.”

“나 아무 것도 안했써!”

“말 안 들었잖아. 말 안 들었으면 혼나야 하는 거야.”

“나 주인님 말대로 했는데?”

“엄.마.”

“이상해! 주인님은 엄마가 아닌걸?”

“밖에서는 그렇게 부르라는 소리야.”

...휴, 됐다.

이제와서 돌아올 평판도 아니고. 유진은 저 순수한 망아지가 뭘 하든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에포나의 순수한 눈망울을 보니 화낼 생각도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유진의 평판이 내려가는 슬픈 결과만을 남기고 오늘의 장보기가 끝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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