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화 〉 외전:フトスト!(2)
* * *
“에포나. 밖에 나가면 명심할 게 있어. 첫 번째는 나를 엄마라고 부를 것. 그리고 절 때 헤으응! 같은 소리를 내지 말 것. 이 두 가지만 지키면 돼. 알았지?”
“응!”
에포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유진은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 에포나가 고쳐질 애였으면 이미 진작에 고쳐졌겠지. 당장 헤으응 거리는 버릇을 고치려고 수도 없이 시도했지만 전부 실패해 버렸지 않은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유진은 끈임 없이 에포나의 파멸적인 말버릇을 교정하려 시도했지만, 언제나 실패하곤 했다. 통산 100전 100패의 시도는 유진에게 ‘그냥 입을 막는 게 제일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리게끔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럼 옷부터 입자. 따라오렴.”
유진은 에포나를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에포나의 몸은 나리와 비교해서도 좀 작은 편이라, 유진은 아예 방에다 에포나용 옷장을 따로 사놓고 그 안에 에포나가 입을 옷을 집어넣었다. 에포나는 평소에도 유진의 방에서 자다시피 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산책이다 산책~”
“산책이 아니고 장 보러 가는 거야.”
“장?”
“먹을 식재료 사러 가는 거 말하는 거야.”
“그렇구나! 산책이다 산책!”
외출=산책으로 이해하고 있는 건가. 유진은 에포나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으며 에포나의 옷을 직접 갈아입혔다. 따뜻한 스웨터에 두꺼운 어린이용코트는 한눈에 보기에도 따뜻해 보였다. 실상 에포나는 유령마이기에 추위를 그리 타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해서 입힌 옷이었다.
“불편해!”
“그래도 참아. 안 참으면 안 데려 갈 거야.”
“왜?”
“다들 옷을 두껍게 입고 다니니까.”
“왜 두껍게 입어? 다 편하게 입고 다니면 안 돼?”
“편하게 입고 밖에 돌아다니면 얼어 죽거든.”
“왜?”
스무고개라도 하자는 건가. 유진은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어지럼증을 느꼈다.
“사람은 가벼운 복장으로 한겨울에 밖을 돌아다니면 얼어 죽으니까.”
“왜?”
“사람은 너무 추우면 죽어.”
“왜?”
“사람은 언젠가 죽어.”
“왜?”
“닥...에효.”
정신 나갈 것 같애! 유진은 당장이라도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애써 참아냈다. 그 다음에 에포나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자신이 없었으니까. 이게 육아의 어려움인가, 하고 유진은 소소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 나 옷 갈아입을 테니 침대에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응!”
에포나는 순순히 유진의 말을 따라 침대에 앉아 유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유진은 에포나의 관심가득한 시선이 신경쓰였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었다. 마리아에게서 배워온 변장용 마법으로 머리카락 색을 에포나와 맞춰 검은색으로 바꾼 것은 덤이었다.
“주인님!”
“엄마라고 불러.”
“엄...마? 나 엄마 있는데? 그럼 엄마가 둘이야? 신난다!”
엄마가 둘이라 좋으시겠어요. 유진은 무심코 말할 뻔한 대사를 입안에 다시 구겨넣었다. 저 순진무구한 꼬맹이를 어찌할꼬. 유진은 속으로 한탄했지만, 그래봤자 현실이 달라질 리가 없었다.
“이제 나가자. 시간이 좀 애매하니까 빨리 다녀와야 돼.”
“애매해?”
“저녁 시간이 얼마 안 남았잖아. 아, 나리도 데려갈까..”
생각해보니 나리를 잊고 있었네.
유진은 방을 나와 나리의 방을 향해 걸어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나리야, 장 보러 가는데 같이 갈래?”
“집에 있을래요.”
“그래. 그럼 집 잘 지키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문 열어달라고 하면 절대 열어주지 말고 엄마한테 먼저 연락하고. 한솔이 깨면 피는 냉장고에 채워놨다고 이야기 해주고.”
“알았어요~”
“그럼 다녀 올 테니 집 잘 지키고 있어.”
유진과 에포나는 서로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자 둘을 맞이한 것은 한겨울의 시린 칼바람이었다. 유진은 손을 꼭 잡고 걷고 있는 에포나를 슬쩍 보곤, 바람이 에포나에게 덜 닿도록 위치를 반대쪽으로 바꿨다.
“주인님, 왜 바꿔?”
“주인님 말고 엄.마. 엄마라고 안 부르면 당근 못먹게 할거야.”
“엄...마?”
“그래. 엄마!”
“엄마!”
“잘했어, 다시 한 번 말할게. 주인님이라고 하지말고 엄마라고 부르고, 헤으응 같은 말 쓰면 안돼. 알았지?”
“아라써!”
“그럼 다시 걷자.”
마트는 집으로부터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차로는 5분이면 되는 거리였지만, 에포나가 걷고 싶어하니 유진은 굳이 걸어서 마트를 가기로 했다. 요 며칠 사이 눈이 내리지 않아 이제 눈이라곤 구석에서 채 녹지 않은 눈밭밖에 없는 길은 한산했다.
이 근방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니기도 했고, 유진과 에포나가 지나는 길은 그중에서도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5분이라는 시간을 소모하고 나서야 유진은 마트에 도착했다. 에포나는 생전 처음 와보는 마트의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마트 한 켠에 비치되어 있는 당근더미였다.
“주인님! 당근!”
“엄마.”
“아! 엄마! 당근! 저기 당근이 엄청 많아!”
“그래그래. 당근도 사고, 양파도 사고, 대파도 사고, 우유도 살 거야.”
유진은 카트를 꺼내곤 에포나를 어린이용 좌석에 앉혔다. 혹여나 어디서 사고를 칠까 두려워 내린 결정이었다.
“이게 뭐야?”
“여기에 살 물건들을 담는 거야.”
“그렇구나.”
에포나는 의자에 앉아 유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유진이 웃으며 에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 녀석. 내 얼굴 뚫리겠다.”
“주인...읍!”
“내가 말했지? 엄마라고 말하라고. 엄.마.”
재빠르게 에포나의 입을 틀어막은 유진이 에포나에게 속삭였다. 다른 사람이 듣지 않았을까, 하고 주변을 둘러보던 유진은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와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고야 말았다.
“다시는 그러면 안돼. 알겠지?”
“응!”
목례로 가볍게 인사를 한 유진은 조심스럽게 카트를 밀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신없는 쇼핑을 시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