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 외전:아테나 표류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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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아테나님, 여기서 뭐하세요?
“으음...”
따가운 햇살에 아나트는 눈을 떳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 당장이라도 얼어붙을 것만 같은 날씨. 날카롭게 불어오는 바람...이상함을 느낀 아나트는 몸을 일으키곤 주변을 살폈다.
“이게 무슨...”
낯선 광경이다. 아나트는 명석한 두뇌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그녀의 명석한 두뇌로도 현재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녀가 발을 딛고 있던 땅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바닥과 맞닿은 손바닥에서 푸른빛이 나고, 아테나는 한층 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재질이군요.”
건물을 이루고 있는 회색빛의 돌덩어리는 아나트에게는 생소한 재질이었다. 대리석이나 화강암, 벽돌과는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 재질. 아나트는 이 건물의 재질이 이 세계에서 만들어낸 인공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실험이 실패했군.’
원래부터 도박에 가까운 실험이었다. 잊힌 신들을 불러내는 마법진이 성공할 리가 없다고 확신하긴 했지만,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성녀가 무모한 짓을 할 때 말렸어야 했는데.
그 특유의 호기심과 장난기가 심한 성격에 사고를 치곤하는 성녀였지만, 이번에는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 잘못하면 꼼짝없이 이 세계에서 살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아나트는 온 몸을 에워싼 추위를 피하기 위해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쇳덩이로된 문을 연 아나트는 문을 닫고 계단에 앉아 손에 불덩이를 만들어 몸을 녹였다. 조금이나마 생긴 아나트는 따뜻한 불에 몸을 쬐이며 머리를 굴렸다.
다른 세계에 표류해버렸다.
그 것만은 확실했다. 그녀가 있던 세계와 다른 이 세계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무언가 텁텁한, 그리고 해로운 것들이 잔뜩 섞여있는 듯 한 공기는 숨 쉬는 것조차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선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만...하지만 단시일 내에 돌아갈 수 있을 리가...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학점이...”
이곳과 원래세계의 시간축이 얼마나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귀환이 늦어질수록 출석미달로 유급할 가능성이 높았다. 나름 학년 최고 우등생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렇게 쉽게 유급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이 곳이 어떤 곳인지 파악하는 것이 좋겠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아나트는 이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일단 도시를 탐색해 보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나트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건물은 생각이상으로 높은 곳이었는지, 아나트는 10여분을 걸어 내려가서야 가장 아래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윽고 1층으로 향하는 문을 발견한 아나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문 밖의 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인 것이냐...”
말이라고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길가를 질주하는 말없는 마차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 이상한 물건을 손으로 쥔 채 쳐다보는 사람들, 귀에 무언가 이상한 물건을 꽂은 사람들.
글자들은 알아볼 수 없다. 다만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낯설지 않은 문자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녀가 표류한 세계가 어떤 곳인지는 알 수 있었다.
“...뿌리세계.”
어처구니없게도, 그녀가 표류한 곳은 그녀의 고향, 지구였다. 그리스는 아니지만.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수가 없군.
아나트는 복잡한 눈으로 너무나도 변해버린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아나트는 풀과 나무 대신 돌덩이와 쇳덩이로 가득 찬 도시를 바라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일단 이곳이 어디인지는 둘째 치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적어도 이곳이 지구라는 것 자체는 확실해 보이지만, 정확히 어느 나라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문자를 알지 못하니 글이나 대화로 정보를 수집한다는 선택지 자체도 강제로 막혀버렸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눈동냥으로 사람들의 외견을 통해 최소한의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아나트는 정처 없이 길거리를 거닐며 사람들을 , 때로는 유리창 안쪽의 사람들을 보며 차근차근 추측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은 죄다 가면을 쓰고 다니는군. 이곳의 불쾌한 공기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케이크를 저렇게 진열해 놓다니, 사치스럽군. 그녀가 살던 곳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케이크는 만들기도 힘들거니와, 보관하기는 더더욱 힘들었으니까. 그녀가 아직 ‘아테나’로서 살아갈때도 케이크란 쉽게 먹어볼 수 있는 간식은 아니었다.
물론 그녀가 검소하게 살았던 것도 있지만, 그녀가 살던 시대는 케이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사치인 시대였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로 가야할는지...”
보랏빛머리를 휘날리며 걷는 그녀를 향해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지만, 그녀는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그녀에게 주변 시선따위는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당장 시선이고 나발이고 의식주가 불분명 해졌기에 그녀는 노숙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이곳이 뿌리세계라면, 신들은 남아있을지 모르겠군...”
어쩌면 그녀가 나타났다는 것을 눈치 챈 신이 있을지 모른다. 아나트로서는 꽤 희망적인 추측이면서, 동시에 도박이나 다름없는 기회였다. 현재의 그녀로서는 신과 싸워서 이길 방법이 없었다.
환생을 하면서 신으로서의 힘은 거의 다 잃어버렸고, 남은 것은 명석한 두뇌 하나뿐이었으니까. 아나트는 그나마 뛰어난 두뇌만으로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나름대로 원래 세계에서 쌓아둔 기반도 있었고, 해야 할 일도 있었다.
“무언가 쓸만한 것이...”
“*!*(&!#($^*!($?”
“이런...”
생각에 잠겨 있던 아나트는 몇 번 이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를 눈치 채고 생각에 잠겨있느라 숙였던 고개를 위로 올렸다. 파란색 옷을 입은 남성이 그녀에게 뭐라 말하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군...”
“!&$&*!$&!?”
“미안 하느니라.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느니라.”
“*@#*$&?”
뒤늦게 아나트가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한 다는 것을 깨달은 남성은, 말 대신 얼굴에 쓴 마스크를 가리켰다.
“...이곳 사람들은 죄다 저 가면을 끼고 있던데, 이곳에는 가면을 끼고 다니는 규칙이라도 있는 것인가?”
나도 저것을 껴야 하는가. 잠시 고민하던 아나트는, 잠시 얼굴을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다는 뜻이었다. 남성은 한숨을 쉬더니, 주머니에서 가면 하나를 꺼내 아나트에게 건네다.
신기한 재질이군...
비닐을 난생 처음 본 아나트는 경찰관에게 목례를 하며 친절에 감사를 표하고는, 비닐 속에 담긴 가면(마스크)를 흥미롭게 쳐다보다 비닐을 뜯어 경찰관이 쓴 것처럼 마스크를 썼다.
“!*@#$&($!? !*@$!^$&(%!.”
“...미안하구나. 하나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느니라.”
남성은 난감한 듯 눈살을 찌푸리다가, 다시 한 번 뭐라 말하고는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어서 이쪽 말을 배우던지 해야겠군.”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는 배워야 할 것 같다고 아나트는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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