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화 〉 외전:아테나 표류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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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2일차, 한 건물 옥상에서 마법으로 침낭을 펴고 잠이든 아나트는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빛에 눈을 떴다.
성가신 태양이구나.
아테나는 문득 뭐만 하면 자기자랑을 해대던 아폴론을 떠올렸다. 그냥 놔두면 하루 종일 자기자랑만 해대는 나르시스트 녀석이라 짜증나기는 했지만, 이럴 때는 그가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머나먼 타지에 표류하는 입장에서는 누구든 그리워지는 법이니까.
아나트는 잠도 깰 겸해서 마법으로 차가운 물을 만들어 얼굴을 씻고, 어제 알아낸 것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을 깨기 위한 가벼운 워밍업이었다.
먼저, 아나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이 세계의 발전된 기술이었다.
말 없는 마차에, 마도구들 보다 정교하고 복잡하게 움직이는 장치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린 작은 네모난 장치. 우연히 주운 물건이었다. 금이 가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고장난 물건인 것 같지만, 그 구조만으로도 아나트의 학구열을 끌어올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은 연구보다 생존이 우선이니, 호기심은 접어두도록 하죠. 일단...”
...배가 고프네요.
이 세계의 돈도 없고, 식량을 수급할만한 자연이 근처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아나트는 하루를 쫄쫄 굶은 상태였다. 마력으로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다지만 아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기에, 아나트는 들짐승을 잡아서라도 식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상하리만큼 고양이가 많았죠. 고양이는 맛이 없는데...”
원래 세계보다 뚱뚱한 고양이들이 많아 먹을 것이 많아보였지만, 아나트는 원래 세계에서 야생 고양이를 잡아먹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맛은 없는 주제에 쓸데없이 잘 도망도 잘 치는 생물이다.
하지만 고양이 이외의 다른 동물들은 잘 보이지도 않아 사냥이전에 발견이 가능할지도 미지수였다.
“...최악이에요. 어딜 가든 사람이 넘쳐서 섣불리 행동하기가 힘들고, 이곳의 강은 굉장히 더러워 씻기는커녕 더러워지기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마법으로 청결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기분이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임시거처를 찾아야만 했다. 이런 날씨에 노숙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아나트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목표를 정하기로 했다. 1순위는 당연히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지금 당장은 생존이 중요했다. 아무리 명석한 두뇌를 가진 그녀라도 굶주림에는 장사가 없었다.
하지만 그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난관도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굶주림을 해결하려면 사냥을 하든지, 아니면 돈을 구해서 사먹던지 해야 하지만 어느 쪽도 그리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녀가 살던 도시도 도시 내에서 사냥은 금지되어 있었고, 그건 이 도시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아나트는 생각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무기를 든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냥은 보류. 돈을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유심히 지켜본 결과, 아나트는 이 작은 물건으로 무언가를 해야 가게에 출입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낸 상태였다.
결국 어느 쪽이든 아나트는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최소한, 사냥을 하려면 도시를 벗어나야 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길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멀리 보이는 풍경을 보고 이동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길이 언제나 직선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마법을 쓰면 조금이나마 더 수월하겠지만, 아나트가 하루를 투자해서 확인한 결과 이곳에서 마법을 쓰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그녀 입장에서 보면 이제는 구닥다리라 불러도 될법한 잔재주에 가까운 마법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진짜 마법을 다루는 인간은 어딘가에 숨어 있거나, 마법자체가 잊혀져 버려 아주 희미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라고 아나트는 판단했다.
마지막 희망은 이종족이었다. 인간은 언어체계가 다르지만, 이곳의 이종족들은 아직 그들의 언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남아있었다. 아나트는 일단 이종족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 해본다는, 다소 무모한 방법을 실행해 보기로 했다.
이곳에서 고민하고 있어봐야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건물에서 나온 아나트는 일단 이종족들을 찾기 위해 건물에서 내려와 길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이제 막 해가 뜬 탓인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아나트는 첫 번째 타겟으로 양복을 입고 있는 개 수인에게 다가갔다. 개 수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 아나트는, 늑대수인들의 언어로 말을 걸었다.
“*긍지높은 펜릴의 자손이여, 혹시 내 말을 알아듣는가?”
“!*@&$(!*&$?”
못 알아듣는 군. 아나트는 그녀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그녈 바라보는 개수인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고는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였다.
두 번째 타겟은 머리에 난 뿔이 인상적인, 거구의 남성이었다. 거구에 수염을 늘어트린 외모가 인상적인 타우족은 그녀의 세계에서는 꽤 보기 힘든 종족이었다. 그녀가 다니는 아카데미에서도 타우족은 세 명 밖에 없었으니, 이 세계에서도 보기 힘들 거라 생각한 아나트였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더듬더듬 타우족의 언어를 떠올리고는,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던 타우족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턱수염이 멋지네요. 혹시 별을 잠깐만 같이 보시겠습니까?”
“!*@*$$?”
이번에도 실패인가. 아나트는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오늘 하루 동안은 계속 시도해볼 생각으로 거리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이곳의 언어만 사용하는 모양이군요...”
아나트가 반나절 동안 수십 명의 이종족들에게 말을 걸고 나서 얻은 결론이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군요.’
그녀가 사는 곳에서도 그녀처럼 여러 언어에 정통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각 종족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으니까. 그것도 그녀가 여신이었던 시절 배웠던 지식에서 기인하는 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보통 사람이라면 수인족의 언어는커녕 엘프어도 떼기 힘들었을 것이다.
수인족의 언어는 복잡하고 빙빙 돌려 말하는 경향이 강해서 배우기 어렵기도 했고, 수인족 자체가 숫자가 많은 편이 아니다보니 쓸 일도 적었다.
그래도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들이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곳에서는 확실히 그녀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완전히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래도 조금 정도는 더 시도해봐야 갰군요. 아직 엘프족을 만나지 못했으니.”
엘프족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마는, 장수종인 엘프의 특성상 아나트는 엘프어를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나트는 엘프족을 최우선으로 찾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아나트는 한 공원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꽤 많이 돌아다니는 작은 공원이었다. 그래도 정체모를 인공물들과 건물들로 가득한 곳에서 조금이나마 자연이 살아있는 곳에 오게 되니 아나트는 절로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꼈다.
아나트는 공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녀는 쉬는 동안에 엘프어를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엘프어를 쓰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엘프어를 구사하려면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엘프족 인사말은 뭐였더라...’
“*대자연의 은혜가 그대와 함께 하시기를...”
아나트가 무심코 엘프족의 안사법을 내뱉었을 때였다.
“*언니, 엘프어 할 줄 알아요?”
“*뭐?”
아나트는 깜짝 놀라 숙였던 고개를 올려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아나트는 정말 작은 망아지를 탄 엘프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기적이라고 하기에는 어처구니없는 만남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