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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48화 (248/352)

〈 248화 〉 외?전:고라니라니라니고라니!

* * *

“고!라니라니고라니! 안녕하세요! 라니 입니다!”

­언제 들어도 저 대사 오글거림;;

­ㄹㅇㅋㅋ

“그래도 어울리지 않아요?”

­ㅁ?ㄹ

­인사를 바꾸면 시청자가 좀 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정말로 인사를 바꿔야 하나? 이제 막 인방계에 뛰어든 하꼬 스트리머 라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네 사람밖에 없는 채팅창을 훎었다.

그래도 이런 특이한 컨셉이 있어야 사람들이 많이 봐준 댔는데...3일인데 아직 5명밖에 안되구...

라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나름대로 친구들 사이에선 수다 좀 떠본다고 자부하는 터라 입을 놀리는 것엔 자신이 있었다. 하꼬방을 탐사하는 잠수부들은 이 머리에 고라니 뿔이 달린 고라니 변이자의 방송에 잠시 정착하기로 했다.

이 하꼬, 꽤 가능성이...있어!

뿔이 워낙 어그로가 잘 끌렸던 것도 있고, 요 근래 변이자들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떠들썩한 차에, 방송을 시작한 하꼬라는 호기심이 발동할 법한 대상이 딱 나타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꼬방을 찾아다니며 구경하는 그들이 보기엔 라니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재능이 있었다.

외모는 변이자가 된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얼굴인지 꽤 예쁘장하기도 하고 머리에 달린 뿔이 워낙 존재감이 강렬해 시선을 잘 끌었다. 거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말빨까지 있으니, 아마 운이 좋다면 흔히 말하는 머기업까진 아니더라도 중견기업까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시청자들의 냉정한 평가였다. 콘텐츠라곤 저챗과 간단한 게임 몇 개가 전부인지라 콘텐츠 진행 능력은 아직 별 볼일 없고, 그냥 나도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뛰어든 조금 재능있어보이는 하꼬.

사실 그런 사람은 적지 않았다. 변이자라는 게 특이사항일 뿐이지. 방송 사이트 밑바닥에는 그런 사람들이 머기업의 수백, 수천 배는 더 많이 존재할 것이다. 라니도 변이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들과 같이 밑바닥에서 수면 위로 솟아오르기를 갈망하는 흔한 하꼬 방송인들 중 하나였다.

“생각보다 시청자분들이 많이 오셔서 다행이에요­사람들이 정말 운이 좋지 않으면 대기업은커녕 중소기업도 가기 힘들다고 해서 몇 번 해보고 없으면 그만둬야지 생각했는데, 5분이나 봐주시다니...정말 감동했어요! 감동의 의미로 제가 노래를 한 곡...”

­음방 멈춰!

­고라니 보이스로 음방 에바임;;

“엥, 그래도 이정도면 노래 잘 부르는 편 아니에요?”

­혹시 친구들이 노래방에 갈 때 라니님만 쏙 빼놓고 가지 않았음?

“어, 노래방을 친구랑 같이 가본지 너무 오래되서...”

중학생 이후로 같이 가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이 시국이 되면서 학교자체에 잘 안가게 되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친해질 타이밍을 놓쳐버린 아이들은 서먹서먹한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기도 했다.

­아앗...

­우리가 미안해...

“괜찮아요! 사람이 실수 할 수도 있죠!”

가라앉으려 하는 분위기에 라니는 다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급하게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것보다! 오늘의 컨텐츠를 할거에요! 오늘의 컨텐츠는~시공!”

­그거 망한 게임 아니었음?

­시공을...한다고?

“시공 아직 안 망했어요! 얼마나 재밌는 게임인데! 요즘 매칭이 잘 안 잡히기는 하지만...”

­레스토랑스가...말대꾸?!

­일단 ㄱㄱ

­시공하니까 ㄷㄹ생각나네.

­타스 언급 ㄴㄴ함

­아 ㅈㅅㅈㅅ

“아, 타스 언급은 하시면 안되요~누군지는 모르지만요...”

ㄷㄹ? 누군지 모르는 스트리머의 언급에 당혹스러웠지만, 고라니는 시청자에게 경고를 한 번 날린 뒤 게임을 틀었다. 고라니 수인에 시공이라는 혼란스러운 조합이었지만, 얼마 안 되는 시청자들은 흥미를 가지고 방송을 시청했다.

“첫판은 국밥으로 갈게요!”

라니가 고른 캐릭터는 탱커 중에서도 튼튼하기로 유명한 X한나였다. 패시브로 군중제어를 아예 무시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탱커인 요한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무난하게 기용할 수 있는 탱커였기에, 오브젝트 싸움이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쓸만했다.

본인의 딜이 매우 낮아서 딜러들이 딜을 잘 넣어줘야 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건 딜러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오 탱커 ㅋㅋㅋ

“아! 오브젝트 싸움해야 하는데...”

­오브젝트 왜 아무도 안 오냐 ㅋㅋㅋㅋ

“탱커가 들어갔는데 원딜들이 뒤에 쭉 빠져 있으면 어떠케!”

딜러들이 사리기만 하다 오브젝트 싸움에서 계속해서 패배하자, 게임이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오브젝트를 여러 번 빼앗겨 라인과 레벨이 잔뜩 밀려버린 지금은 이미 승산은 0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와 보기만 해도 암걸리네 ㅋㅋㅋㅋ

­혼자서 오브젝트 견제하다가 산화하는 거 보니까 눈물나네 ㅠㅠ

“으, 딜러들이 딜만 잘 넣었어도 할만 했는데...”

­액땜이라고 생각하는 게 맘 편함.

­캐리하려면 뭐다? 딜러다

“으으...그러면 딜러 갈에요! 이번 픽은! X이너!”

­무난하네

­무난한 픽 좋아하시나 봐요

“일반매칭은 죄다 랜덤이라 무난한 게 좋아요! X메 같은 거 골랐는데 힐러가 없으면...”

­ㄹㅇㅋㅋ

­서포터 없는 원딜은 죽어야지 ㅋㅋㅋㅋ

“맵도 무난하고...이번엔 캐리 해볼게요! 팀원 렙도 엄청 높...네요? 3040레벨...?”

저게 찍는 게 가능하긴 한 레벨인가? 까마득한 숫자에 아직 600레벨인 라니는 놀라며 영웅을 확인했다.

와, 딜탱이시네. 엄청 잘하시려나.

­시공 망령 등판 ㄷㄷ

­근데 닉네임 뭔가 익숙한데

­ㅇㅇ 맞는 듯. 찐 레스토랑스 그분 맞음 ㅋㅋㅋㅋㅋ 와 이걸 만나네 ㅋㅋㅋ

“어, 그게 누구에요? 프로게이머에요?”

­시공에 프로게이머가 어디 있음 ㅋㅋㅋㅋ

­타스 언급이라 말해주기 좀 그럼

“에이, 괜찮으니까 누군지만 말 해주세요.”

­듀라라고 머기업 스트리머? 버튜버? 하여튼 있음. 진성 레스토랑스임.

­본인 사비로 대회까지 열려고 하는 중임 ㅋㅋㅋㅋ

­ㄹㅇ 실력은 몰라도 시공 애정만큼은 국내 원탑임

“대회요?”

­ㅇㅇ 본인이 좀 더 준비해서 몇 달 후에 연다 했음.

­나중에 참가 신청 ㄱㄱ

“좋은 정보 감사합니닷! 나중에 꼭 신청할게요!”

라니는 말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시작한 게임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쩌면 하늘이 주신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라니는 생각했다.

‘여기서 캐리하면 관심을 가지고 언급이 나오겠지? 그러면 사람들이 관심이 생겨서 내 방송을 볼지도 몰라!’

그리고 캐리 ‘당했다.’

“어, 저게 되는 거에요?”

­혼자서 다 줘 패고 다니네 ㅋㅋㅋㅋ

­거의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다니는 거 실화냐

­언제부터 게임이 레오리로 바뀜?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학살의 현장에 라니는 딜을 넣을라 치면 듀라가 고른 영웅의 풀콤보를 맞고 산화하는 적 딜러를 보며 급하게 돌격했지만, 때릴 수 있는 건 살아남아서 겨우 도망치는 탱커를 몇 대 쪼아대는 것 뿐이었다.

“와, 이겼는데 그냥 캐리 당했네요...”

­레벨값하네 ㅋㅋㅋ 벽 넘나들면서 상대 암살하면서 차이 벌리고 렙차 나니까 힐러 힐시키면서 혼자서 두 명씩 찢고 다니니까 답이 없네 ㅋㅋㅋ

­이게 딜탱? 그냥 전살자잖아 ㅋㅋㅋ

결국 게임을 캐리해서 이름을 알리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며 X위치를 켠 라니는, 듀라의 방송을 검색했다.

시청자만 1만 3000명. 감히 비교하기도 미안할 만큼 엄청난 숫자였다. 채팅창에서는 폭포가 떨어지듯이 수많은 채팅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쉴 틈 없이 터진다. 누구라도 빠져들 만한 미성은 덤이었다. 실제 얼굴대신 요즘 유행이라는 버튜버 판떼기가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게 딱히 문제될 거리는 아니었다.

“부럽다...”

나도 언젠가는. 비교조차 미안해지는 차이에 라니는 눈물을 글썽였지만, 소매로 닦아냈다. 시작한지 얼마 안 됐으니까 나도 몇 년이면 대기업 스트리머가 될 수 있을 거야! 오늘따라 뿔의 무게가 더 부담스러워 고개가 꺾일 뻔했지만, 라니는 목에 힘을 주고 버텨냈다.

오늘도 자칭 고라니(아님) 스트리머 라니는 현실의 쓴맛을 삼키며 하루를 살아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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