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151.당신의 뚝배기를 반으로 쪼개면 사랑이 올까요?(3)
* * *
여긴 도대체 뭔데 X명마냥 지형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냐.
나는 온갖 지형이 뒤죽박죽 섞인 공간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서 있는 부분은 폐허인데 한 50미터 앞에는 무슨 동화에서나 볼법한 아기자기한 커다란 버섯집이 서있고, 한 100미터쯤 앞에는 사막이다. 옆쪽으로 50미터는 정글이고.
“주인님 이거 바바!”
“에포나, 아무거나 막 물어오면 안...이게 뭐야?”
나는 에포나가 물어온 물건을 받아들었다. 아니, 이거 판타지 영화에서나 보던건데. 그 안개 만든 할배가 들고 다닌 지팡이랑 비슷한, 쓸데없이 멋들어진 고목나무 지팡이다. 이거 들면 마법 쓸 수 있나? 그 할아버지가 쓰던 거 생각하면 마법 쓰는 법 되게 복잡한 것 같던데.
“유진아. 저거...총 아냐?”
“뭐?”
세연이가 내 어깨를 붙잡고 가리킨 방향을 보니, 정말로 총 비스무리한게 나무토막들 사이에 묻혀 있었다. 뭔가 되게 익숙한 비주얼인데.
“와! AK48!”
“7아니었어?”
“저작권이 무서우니 바꾼 거야! 앞으로 이 총 이름은 48이라고!”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나는 나무토막들 사이에서 AK48을 꺼내 그 투박한 자태를 감상했다. 게임에선 줄기차게 보는 총인데 실제로 보니 감회가 남다르네. 이거 혹시 발사도 되나? 나는 폐허의 건물 벽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강렬한 격발음이 폐허에 울려 퍼졌다. 아니 진짜 총알이 있다고? 아니 그전에 여기에 왜 총이 있지? 마법 지팡이랑 총이 왜 같은 곳에 있는 거야? 혹시 판타지 세계의 전투 메타는 총법사가 유행했던 건가?
원거리 마법(총알)과 보조마법(지팡이)의 조합이라니, 요즘 판타지 세계도 풍류를 아는 모양이었다.
“주인님! 쾅 소리가 났어! 귀 아파!”
오랜만에 쏴봐서 잊고 있었네. 아이고...나는 깜짝 놀라 나한테 들러붙는 에포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진정시켰다. 애가 은근히 대범한 것 같은데 이런 거에 잘 놀란단 말이야. 애는 아직 앤가.
“헤으응...”
“...에포나, 내가 그런 소리 내지 말라고 했지?”
“...먄!”
“후...아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나는 마법 지팡이(물리)를 적당히 들고 폐허를 돌아다녔다. 아니 근데 그 저승사자는 어디 있어? 마리아는 안 따라왔나?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 외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았다.
좀 걸어봐야 하나. 나는 폐허를 벗어나서 좀 심신이 안정될 것 같은 동화풍의 공간에 조심스럽게 발을 뻗었다. 음, 뭔가 공기가 달라진 느낌인데. 나는 커다란 버섯으로 된 집에 다가갔다.
“계세요~?”
“...!@(*&$*!다!”
뭐라는 거야. 이번에도 또 그 이세계어인가 그거야? 여신님 없으면 번역 안 되는데 어떡하지? 바디랭귀지라도 동원해야 하나?
그런데 뭔가 좀 마지막 부분이 익숙한 느낌이었는데.
“...!@#!아가!”
화내는 듯한 목소리니까 대충 거절한단 뜻이겠지? 나는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좀 더 둘러봐야지. 커다란 버섯의 속을 파 만든 듯한 집과, 고풍스러운 느낌의 목재 건물, 더럽게 달아보이는 과자로 만든 집까지 그야말로 동화풍 집 총출동이네.
버섯모양 집은 동화보단 게임에서 많이 본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 넘어갈까. 나는 다시 에포나랑 세연이와 함께 동화풍 공간을 벗어나 사막으로 건너갔다.
“여긴 진짜 사막이네.”
사막은 무슨 타일마냥 정사각형 모양으로 가로세로 50M라도 되는 건지, 광활한 사막은커녕 상자에 담긴 모래 같은 느낌이었다. 참 아기자기한 사막일세. 뭔가 보드게임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주인님! 여기 땅이 푹푹 파여!”
모래니까 당연하지. 그러고 보니 에포나는 모래를 만져본적이 없던가? 바다를 간적도 놀이터에 간적도 없으니까...나는 에포나가 발로 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사막에는 별거 없을 거 같고,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는 게 좋겠네.
“유진아, 저쪽으로 가보지 않을래?”
나는 세연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았다. 사막 너머로 보이는 노오란 색 꽃밭이 보였다. 저게 무슨 꽃이래.
“에포나, 이번엔 저 쪽으로 가자.”
“알았어!”
우리는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지대를 넘어 꽃밭에 도착했다. 꽃을 하나 꺾어 관찰해보니, 민들레 같기도 하고 개나리 같기도 한 게, 내가 아는 꽃은 아닌 것 같았다.
애초에 꽃알못이라 아는 꽃이 채 10개도 안된다마는, 참 이상한 꽃이네. 줄기 쪽도 자세히 보면 뭔가 좀 붉은 느낌...아니 꺾은 부분에서 피 떨어지고 있잖아.
어? 여기서 피가 왜 나와?
“에포나! 돌아와! ”
나는 급하게 꽃밭에서 뛰어놀고 있는 에포나를 부르고는, 꽃밭에서 뒹굴고 있는 세연이를 머리카락을 늘려 강제로 끌어당겼다.
“무, 무슨 일이야 유진아!”
“꽃에서 피가 나! 피가 난다고! 이거 딱 봐도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어서 튀자!”
“뭐?”
세연이는 내 손에 흥건한 피를 보고는 식겁하며 나에게 달라붙었다. 곧이어 돌아온 에포나와 함께 그 옆에 있는 숲으로 넘어가 꽃밭을 되돌아보니, 꽃밭이 위로 솟구쳐 오르면서 거대한 괴물의 얼굴이 드러났다.
꽃밭으로 위장한 괴물은 커다란 뱀 같아보였다. 특유의 세모꼴 얼굴인 것을 보니 독사겠지? 다 자란 아나콘다를 아기 뱀 취급해도 될 것 같은 거대한 크기의 뱀이 있다니,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 머리 위에 핀 꽃밭은 위장인 건가.
“거 참 화려한 머리카락이네...”
저게 꽃밭이 아니라 괴물 머리카락이었다 이거지? 지금 내가 머리카락을 뽑아서 저게 일어난 거고?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인데 저런 게 살아있는 거야? 산군 때 보다 더 인외마경이잖아! 저승사자새끼 다시 만나면 저 뱀새끼 입속에 쳐박아버리겠어!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
세연이가 불안스레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으, 여기는 또 뭐가 숨어있을련지. 숲 자체는 고요해 보이는데, 첫 폐허에서 앞앞옆뒤니까, 폐허에서 처음 본 숲과 이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한 칸에 한 지형이었지만, 한 지형이 몇 칸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저승사자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런 정신 나간 곳에서 더 있고 싶지는 않은데. 우리는 그 커다란 뱀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꽃밭으로 돌아갈 때까지 숨을 죽였다.
“유진아, 여긴 안전한 걸까...?”
나한테 묻지 마.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돌격소총 AK48을 어깨에 기댄 채로 깜짝 놀라 내 품안에 파고드는 에포나의 머리를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역시 동물테라피가 심신안정엔 최고지. 에포나도 내 품에 안기자 진정했는지 거친 숨이 곧 안정을 되찾았다.
“나도 모르지. 그러니까 일단 여기를 수색해 볼...까?”
말을 끝낸 순간이었다. 내 귀에 파공성이 들리더니, 내 머리에 충격이 들이닥쳤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긴장이 풀린 나는 반응을 하지 못해서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시발 뭔데. 뭔가 옆통수에 부딪히는 느낌과 함께 내 옆에 떨어진 물건을 보니, 화살이었다.
ARROW? OH...MY...무릎이 아닌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나는 경비병이 되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고.
머리에 박히지 못한 탓인지 화살촉이 찌그러지고 부러진 화살은 나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짜증나게 하기는 충분했다. 이젠 살다살다 화살도 맞아보네.
“누구야!”
대답대신 날아온 것은 또 다른 화살이었다. 근데 좀 느려보이는 게,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잡았네?
안전빵으로 머리를 들이대면서 화살을 잡아채려고 손을 휘둘렀는데, 나는 내손에 약간의 충격과 함께 잡힌 화살을 보며 눈을 의심했다. 내가 탈인간급인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날아오는 화살을 붙잡을 수 있는 정도였다고?
나 인간 자칭해도 되는 거야 이거?
“에포나, 뒤로 가있을래?”
“아라써!”
세연이는 어차피 귀신이니까 맞을 것 같지는 않고. 나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경계하며 AK48을 조준했다. 군바리 시절엔 박격포병 이었으니까 K1말곤 써본 적이 없지만, 뭐 총이 거기서 거기지.
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친 채로 외쳤다.
“화살 쏜 놈 나와! 안 나오면 쏴버린다!”
대답대신 돌아온 것은 화살 한발이었다. 나는 대충 화살을 이마로 받아내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미칠 듯한 폭음과 함께 총열이 불꽃을 내뿜자 총알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한 탄창을 비우는 대는 채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발사되지 않는 AK48을 버려버리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화살이 날아오지 않은 것을 보니 벌집이 됐거나, 아니면 최소한 도망쳤거나 둘중에 하나일 테니까.
화살을 잡아챌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공포감이 덜한 것도 있었다.
“@*!(#&$어...”
“...에반데.”
이러면 내가 썅년처럼 보이잖아. 나는 나무에서 떨어진건지, 활을 꼭 쥔채로 기절한 깐프 여자애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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