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150.당신의 뚝배기를 반으로 쪼개면 사랑이 올까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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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세계?”
그게 왜 여기서 나와?
“그렇슴다. 가지세계의 영혼은 저희가 처리할 권한이 없지 말임다. 그래서 유진양의 도움이 필요한 것임다.”
“아니 유도리 있게 처리하면 안 돼? 저승이 그런 것도 못할 정도로 꽉 막힌 곳이었어?”
뭐 그냥 유도리있게 처리하면 될 걸 굳이 나를 불러서 시키려고 하는 걸까. 애초에 난 지나가던 잡귀들 강제성불 시켜본 게 다인데 그런 걸 시키면 내가 어떻게...나는 시선을 돌려 거실 한켠에 놓인 가방을 슬쩍 쳐다보았다.
...수고비도 두둑하게 챙겨주는데 역시 해야겠지?
“저희도 처리 가능했다면 이렇게 부탁까지 하지 않았을 검다. 이게 아주 복잡한 문제라서 말임다...일단 저승사자는 그 영혼을 인도할 수 없슴다. 다른 세계의 영혼이라 권한도 없고, 저희 말을 듣지도 않을 검다.”
“아니, 그냥 지옥참마도 같은 거 들고 가서 인도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안 따라오면 조져버린다 같은 느낌으로?”
“그게 됐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슴다...상대가 무척 골치 아픈 존재라 말입니다. 저희 같은 일개 저승사자들로는 답이 없지 말임다.”
“아니, 그러면 결국 빡센 일이라는 거잖아.”
“...아님다. 저희야 권한문제로 어려운 거지 귀하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님다. 그저 검으로 쓱싹하고 오면 되는 일이지 말임다.”
거 말은 참 쉽게 하시네. 내가 저번에 그랬다가 아주 개고생을 해서 솔직히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 자체가 그다지 신뢰가 가질 않는다. 말은 쉽지, 세상에 저 정도 돈을 받고 쉬운 일이 있다면 그거야 말로 진정한 루팡이지.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저 가방에 든 게 큰돈이긴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나? 까놓고 말해서 두 세 달이면 비슷한 금액을 벌 수 있을 텐데? 내가 수금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번다고는 생각해.
보나마나 이거 일 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부상은 부상대로 다 당할 것 같은데.
“솔직히 별로 내키지는 않은데...”
저승사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도포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저승사자가 도포에서 꺼낸 것은 거실 한켠에 놓여있는 것과 같은 서류가방이었다. 저승물ㅈ...아니 사자는 식탁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조용히 내 쪽으로 밀었다.
내가 이런 돈에 넘어갈 성 싶냐!
“이야기 좀 더 해봐, 아니 해주세요.”
“유진아...추해.”
닥쳐. 너도 월세 내고 10만원만 남아보면 내 행동을 이해하게 될거야!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거라고!
“흠흠...지금 저승이 틈새를 막느라 너무 바빠서 인력을 빼기도 힘들고, 명부에 적힌 영혼들만 데려가는 데도 저승사자들이 과로사할 지경임다.”
“저승사자도 과로사를 한다고?”
저승사자가 죽으면 어디로 가지? 저승사자도 이미 죽은 거 아니었나? 드라마나 영화보면 그렇던데. 여긴 현실이니까 좀 다르겠지만. 죽은 자를 인도하는 존재들이 죽을 수도 있구나...
“정확히 말해서 죽지는 않고 반쯤 죽은 상태가 되지 말임다. 여기는 4대 보험이나 노동법 따위는 없지 말임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함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라 취급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가지세계의 영혼 쪽을 귀하에게 맡기고 싶은 거지 말임다. 거절하시면 어쩔 수 없이 저희 저승사자들이 구를 수밖에 없슴다...가방도 다시 챙겨가야 하지 말임다.”
“내가 언제 안한다고 했어? 섭섭하게 왜 그래~”
뭐 왜 뭐. 눈 부라리지 마라. 진짜 안한다고 한 적은 없잖아. 대놓고 거절하는 기색을 풍기긴 했지만. 어쨌든 돈...아니 이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라도 이 몸 희생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알겠슴다. 시간은 어떻게 되심까. 이게 이틀 정도는 필요하지 말임다.”
“내일까지 쉬니까 오늘 바로 가면 되겠네. 근데 어디로 가는데?”
평범한 장소에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커피를 홀...아 다 마셨네. 한잔 더 탈까.
“세계의 경계임다. 그곳에 영혼들이 모여 있지 말임다.”
이름만 들어도 거창한 장소네. 뭔가 RPG게임 최종결전 같은 데에서 나올 법한 지명이잖아. 도대체 그런 곳이 왜 현실에 존재하는 건데. 아니 다른 차원 비스무리한게 있는 시점에서 그런 장소가 있어도 이상할 게 없기는 하지만.
“그래서 거기는 어떻게 가야 되는데? 이름을 들어보니 평범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제가 안내해드리겠슴다. 저 유령마한테 한번만 가르치면 들어가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검다.”
나는 구석에서 한가롭게 당근을 뜯어먹고 있는 에포나를 쳐다보았다. 에포나도 자기가 불리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저승사자를 쳐다보았다.
“귀하 말대로 보통 방법으론 경계에 도착할 수 없슴다. 물리적으로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임다. 하지만 갈 수단이 몇 개 존재함다.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안은 첫 번째는 특수한 도구로 넘어가는 법, 두 번째는 신들의 힘으로 넘어가는 법. 세 번째는 저승을 통해 건너가는 법임다.”
말이 길어진 탓인지, 저승사자는 헛기침을 하곤 말을 이어나갔다.
“...첫 번째는 번거로워서 폐기. 세 번째는 저승을 오가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시간이 촉박한 지금 상황으로서는 무리임다. 그래서 저희는 두 번째 방법을 쓸 검다.”
“뭐? 누구 힘을 빌려서?”
“잘 아시는 분임다.”
그게 누군데? 대충 누군지 예상은 가지만. 내 비좁은 인관관계를 생각하면 누굴 말하는지 알 수 밖에 없다.
“지금 바로 가지 말임다. 이야기는 미리 해놓았으니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오시지 말임다. 그, 유령마랑 수호령도 데리고 가셔야 함다.”
“알았어. 10분만 기다려. 그동안 커피라도 한잔 더 마실래?”
“감사함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포트에서 커피를 한잔 더 내려 저승사자의 앞에 내려놓았다. 적당히 준비해서 나가야지. 옷은 저번의 라이더 슈트면 되나? 조금이라도 방호에 도움이 될법한 걸로 입는 게 좋겠지?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이네. 근데 뭔가...”
마리아는 전보다 묘하게 상기된 표정이었다. 잘 보니까 화장한 것 같은데. 옷도 뭔가 좀 단정해진 느낌이고. 단적으로 말해 노출도가 줄어들었다. 표정이 어색한 걸 보니 본인 작품은 아닌 것 같았다.
“외출한다니까 아주머니한테 붙잡혀서 이렇게 입히셧네요...하아...”
다행히도 회복은 되신 모양이네. 나는 새삼 내가 막 TS될 적의 일을 떠올렸다. 그 때도 엄마가 나를 옷걸이로 만들었었지. 최근에도 유라가 그 깐프랑 작정하고 옷걸이로 만들었었고. 나는 그냥 편하게 입고 싶어...
“잘 어울리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입고 다니는 게 어때?”
오히려 너무 숨긴 나머지 몸매가 더 부각되긴 했지만. 그런 다이너마이트 보디는 노출을 줄인 정도로는 숨길 수 없는 것임다.
“불편한 옷은 싫어요. 신경 쓰여서 움직일 때도 번거롭고...”
하긴 롱스커트에 그렇게 입고 있으면 뛰기도 힘들겠다. 사실 나도 그래...
“...저도 있지 말임다.”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존재감 어필 굳이 안 해도 돼. 축 늘어지지 말고.
“주인님! 저 사람 나 알아!”
“뭐?”
내 옆에서 유심히 마리아를 쳐다보던 에포나가 갑작스레 내뱉은 말에 모두의 시선이 에포나에게 향했다. 뭐? 안다고? 오늘 처음 보는 걸 텐데? 내가 마리아를 만날 때 에포나를 데리고 온 적이 없었으니, 그 전에 만난 적이 있단 소리였다.
“주인님 만나기 전에 나한테 이것저것 가...”
“애, 애가 이상한 소리를 하네요! 처음 보는 애인데!”
“자수하면 광명을 찾슴다...”
아니, 그렇게 대놓고 티 안내도 이미 다 들통났거든? 누가 봐도 나 수상해요 하는 행동 하지 말고 그냥 실토하지 않을래? 누가보면 내가 칼부림이라도 할 줄 알겠다? 모두가 짜게 식은 눈으로 마리아를 쳐다보자, 마리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우리, 잠깐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지 않아?”
“어...제가요?”
“너가 애한테 이상한 울음소리 가르쳤구나?”
“제, 제가 그런 걸 가르쳤을 리가 없, 없잖아요?”
“하지만 이 냄새는 그 사람 냄새인데?”
그 말에 마리아는 황급히 에포나의 입에서 손을 뗐지만, 이미 들킨 상황이라 의미는 없었다. 그저 우리들의 시선이 더 짜게 식었을 뿐.
“그렇다는데?”
“...그래요. 제가 키워서 보냈어요.”
결국 마리아는 더 이상 발뺌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인정했다. 아니 뭐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길거리도 아닌데 반응이 왜 저럴까. 물론 ‘헤으응’하고 우는 걸 가르친 건 좀...그렇지만.
“그런 걸 가르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애한테 뭐 가르칠 거면 좀 정상적인 걸로 가르칩시다. 예?”
“이, 이젠 제 소관도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어, 어쨌든 빨리 진행하죠! 시간이 촉박한 일이니까요!”
마리아는 갑작스레 검지를 깨물더니, 피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10방울 정도 바닥에 떨어졌을까,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마법진 비스 무리한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마법진이 맨홀뚜껑정도 크기가 되었을 때, 마법진 내부는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무지개색 빛이 인상적인 기묘한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이거 들어가도 돼? 쓸데없이 무지개색 총공격이라 왠지 들어가면 망아지 친구들이 튀어나와서 환영해줄 것 같은데.
“제가 먼저 들어가겠슴다. 바로 따라오시면 됨다.”
저승사자는 그 말을 남기곤 배관을 타고 내려가는 빨간 배관공처럼 마법진 안으로 뛰어내렸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눈을 딱 감고 에포나를 안은 채로 뛰어내렸다. 한무낙하를 할 것 같았던 겉모습과는 다르게, 마치 물속에 있는 듯한 부유감이 느껴졌다.
나는 바닥에 발이 닿는 느낌이 들자 에포나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눈을 뜨곤 주변을 살폈다.
“...뭐야 여긴.”
저긴 동화풍, 저긴 폐허, 저긴 고딕, 저긴 근대...온갖 것이 뒤죽박죽으로 섞인 공간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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