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172화 (172/352)

〈 172화 〉 152.당신의 뚝배기를 반으로 쪼개면 사랑이 올까요?(4)

* * *

“주인님! 죽인거야?”

“멀쩡한 것 같은데?”

긁힌 상처 몇 개 빼고는 멀쩡해 보이는데...나는 조심스럽게 기절한 깐프 소녀를 살폈다. 가죽으로 된 옷에, 허벅지에 매인 작은 화살통, 어린아이가 쓰기 딱 좋게 비교적 작은 사이즈의 활. 뭔가 코스프레 같네. 또 쏠지 모르니까 일단 활은 뺏어야지. 아무리 피해가 없었다지만 화살을 또 맞고 싶지는 않다고.

그나저나 깐프라니, 지형에 맞는 생명체가 거주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럼 뭐 평원에 가면 오크라도 볼 수 있나? 산가면 드워프가 있고? 도대체 뭐하는 곳이야 여긴. 저승사자 놈을 만나야 설명을 듣던지 말든지 할 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깐프 소녀를 안아들었다.

땅바닥에 널브러진걸 그대로 놔두기도 뭐하니까 나무에 기대놔야지. 그때였다.

“!@&!$(!져!”

“어우, 야 너무 날뛰지 마. 누가 보면 내가 해코지라도 하려는 것 같잖아.”

나 이래 뵈도 어린애는 안 건드린다고. 예스 칠드런 노 터치. 오케이? 나는 내 품에서 마구 날뛰는 깐프 꼬마를 내려놓았다. 깐프 꼬마는 발이 닫자마자 잽싸게 튀어나가 나무 뒤에 숨어 얼굴을 내민채 나를 노려보았다.

“주인님! 재 이상해! 무서운가봐!”

“!*@!^$!#져! !@**!$놈들!”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경계심 만빵인 것 말곤 하나도 모르겠어.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저 깐프 소녀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사실 다 큰 깐프 였으면 묶어놓고 심문이라도 했겠는데 어린애라서 차마 그러긴 뭐하고...

나는 고민 끝에 나를 손으로 가리키고 양 손을 들어 싸울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이정도 제스쳐면 대충 알아듣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서 깐프 꼬맹이를 보니,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나무 뒤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어떡하지? 다른 건 모르겠고 이곳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저 꼬마와 친해지는 게 제일 쉬울 것 같은데. 다른 제스쳐라도 취해봐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제스쳐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나랑 비슷해! 작아! 유라같아!”

비슷한 키긴 하지.

에포나는 마치 새로운 놀이대상을 발견한 강아지마냥 깐프 소녀에게 다가가 얼굴을 들이댔다. 역시 깐프는 깐프인지, 나를 볼 때와는 다르게 조금이나마 경계가 풀린 눈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관심을 표하는 에포나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우리 에포나가 여자애들이 껌뻑 죽을 만큼 깜찍한 외모긴 하지. 세상에 재보다 작은 말은 없을 테니까. 내가 팔불출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유치원생 사이즈의 쬐끄만 말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애교도 잘 부리는데 말야.

“!@*!#&(...”

“...근데 진짜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나도 하나도 모르겠어. 어느 나라 말을 쓰는 걸까?”

“글쎄? 저승사자가 말한 게 맞다면 저 애는 지구 사람이 아니고 가지세계쪽 엘프니까 그쪽 언어가 아닐까?”

“저쪽 언어는 왜 이렇게 다른 걸까...”

같은 세계가 베이스면 저쪽도 영어 비스무리한 걸로 말하면 안 될까? 왜 그리스 시절부터 영어 비스무리한 언어 있긴 했다며. 옛날에 역사시간에 배웠던 것 같긴 한데.

“글쎄...가능하다면 저 애 말고 다른 엘프를 찾던지 해서 그 오크가 쓰던 번역마법 쓸 줄 아는 엘프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설마 재 하나만 이 숲에서 살고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방금 거대 뱀새끼도 그렇고, 여기 꼬라지가 애 혼자서 살만한 환경은 아닌 것 같은데. 먹을 걸로 꼬시기엔 가져온 게 없고. 말은 안통하고, 제스쳐도 그렇고.

차라리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 밝히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머리를 붙잡고 목에서 떼어냈다. 옆구리에 머리를 끼고 깐프 소녀에게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깐프 소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

아, 다시 기절했다. 나는 게거품을 물며 기절한 꼬마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세계 사람이라도 듀라한을 보고 놀라지 않는 건 무리인가 보네.

“...안 놀라는 쪽이 이상한 게 아닐까?”

“그렇긴 한데, 이세계인이니까 조금 놀라는 선에서 끝날 줄 알았어.”

아. 일이고 뭐고 집 가서 시공 일겜이나 한판 돌리고 싶다. X랙하트 항만도 여기보다는 덜 주옥같을 거야. 나는 근처 나무에 깐프 소녀를 눕혀놓고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일단 이 애가 깨어나야 뭘 하든지 말든지 할 수 있으니까.

­­­­­­­­­­­­­­­­­­­­­­­­­

“!#@구...?”

“주인님! 눈 떳어!”

“말 안해도 알아. 음...안녕?”

“!@!$리@#*!#^$해?”

깐프소녀는 고양이 마냥 튀어오르며 내 무릎에서 벗어나 거리를 둔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깐프라기 보단 팍 튀어오르는게 고양이 같네. 무슨 말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자세히 들어보니까 조금은 어떤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한데. 수인 때도 그렇고 귀에 익으니까 대충 뉘앙스 같은 게 느껴지기는 했다. 대충 날 보고 놀라는 것 같은데. 하긴 머리 분리쇼를 했는데 안 놀라면 그게 더 신기하겠다.

나는 아까처럼 양손을 들어 항복의 제스쳐를 취했다. 이정도면 대충 알아듣지 않을까? 깐프 소녀도 이제는 좀 진정한 모양인지, 내 제스쳐를 보고 미심쩍은 눈길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지?”

뭐라는 지는 모르지만 일단 고개나 끄덕여주면 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여 깐프 소녀의 말을 긍정했다.

“!@*&!$&*^@*#냐?”

어, 대충 내가 누구냐고 묻는 것 같은데.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내 예상이 맞는 듯, 깐프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몇 마디를 더 찌껄이고는, 내게 다가왔다.

“#@$^@&!#^나...?”

움직이면 왠지 경계할 것 같아서 움직이기도 뭐하네. 나는 소녀가 내 주변을 돌며 내 주변에서 코를 킁킁대는 것도 지켜보았다. 뭐지. 혹시 깐프들은 사실 누구보다 동물적인 야성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게 딱 강아지 같은데. 머리 쓰다듬어 보고 싶네.

“주인님이 누군지 궁금하나봐!”

그건 나도 안단다. 이 망아지야.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 하면 이 꼬마를 구슬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뭔가 머릿속에서 개쩌는 아이디어가 나와야 하는데...

“...구슬릴 필요 없이 숲을 불태우면 다른 깐프들이 알아서 튀어나오지 않을까?”

“유진아...너가 그런 사람일 거라곤 생각 안했는데...”

“그냥 해본 소리야! 내가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리가 없잖아!”

“만약에 100억 주면?”

“당근빳따죠! 아니 당근빳다 안하지! 나를 뭘로 보고!”

내가 그렇게 나쁜년으로 보여?

“주인님 대단해!”

도대체 뭐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내 앞에서 토끼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이 꼬마부터 어떻게 해야지!

먹을거라도 줘 볼까. 혹시 몰라서 좀 챙겨오긴 했는데. 나는 등에 매고있던 배낭에서 사탕을 꺼냈다. 당 떨어질까 봐 가지고 다니던 건데, 어린애 꼬실 때는 사탕만한 게 없지. 덧붙여서 누룽지맛 사탕이다.

나는 사탕 하나를 집어 소녀의 앞에 조심스레 내밀었다. 소녀는 여전히 나를 미심쩍은 눈길로 쳐다보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내밀어진 사탕 쪽으로 힐끔힐끔 시선을 돌렸다. 사탕이 뭔진 대충 아는 건가. 아니면 사탕에서 나는 단내 때문일까.

나는 깐프 소녀가 사탕을 잽싸게 채갈때까지 계속해서 손을 내밀었다. 깐프 소녀는 사탕 껍질의 감촉에 조금 놀라더니, 집어든 사탕을 껍질 채로 입에 집어넣으려 했다.

“잠깐!”

나는 재빠르게 사탕을 하나 더 꺼내 껍질을 까는 것을 내 외침에 깜짝 놀란 깐프 소녀의 눈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다행히도 깐프소녀는 잘 알아먹은 듯 조심스럽게 껍질을 까더니, 사탕을 입에 집어넣었다.

“!@!!”

표정이 퍼지는 걸 보니 맛있나 보네. 와! 호감도작 성공!

깐프 소녀의 경계가 한결 풀린 걸 느낀 나는 팔을 이리저리 휘적이며 말이 통하는 상대를 찾는 다는 뜻을 필사적으로 전했다. 깐프 소녀는 대충 내 제스처를 알아들은 건지, 꽃밭 맞은 편 방향을 가리키곤 걷기 시작했다.

뭐 일단 따라가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우리는 깐프 소녀를 따라 숲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혹시 구하러 오셧슴까?”

“아니 우리도 잡혀왔는데?”

“유감임다...”

“농담이야. 안 묶인거 보면 대충 눈치 챘잖아. 너는 왜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거야?”

나는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저승사자를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애는 또 뭐하길래 이런 꼬라지냐. 명색이 저승사자라는 놈이 잡혀서 묶여있기나 하고. 깐프 마을에 온건 좋은데 처음부터 위기냐고.

“그게 말임다. 이곳 영혼들과 마주쳤는데 말이 안통해서 말임다...아무래도 요괴로 오해받은 것 같슴다.”

아니 너도 말 못해? 그럼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는 우리를 둘러싼 깐프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왜 이렇게 분위기 험악해. 당장 전쟁이라도 벌일 것 같은데. 이거 엘프들 마을에 온게 아니고 깐프족 마을에 온건가. 당장이라도 마차바퀴보다 큰 것들은 전부 죽여라!하고 외쳐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분위긴데.

“!@*Y$(!#나!”

“!@&!#^*%$!지?”

“~!@!^*#...!@!#다!!!”

당장이라도 말타고 평야를 질주하며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기세를 내뿜는 엘프들을 보며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진짜 뭔데. 생긴건 다 에르후처럼 생겼으면서 왜 분위기는 X모어 같냐고.

“니도 말 못해? 아니 그러면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우리끼리 온거야?”

“그거야 모리안 여신님 믿었지 말임다...그분이 알아서 번역해 주시지 않슴까?”

“...봉인 됐는데?”

“잘못들었슴다?”

“봉인됐다고.”

“제가 지금 잘못들은 거지 말임다?”

“제대로 들은거 맞아.”

“망했슴다.”

그건 나도 알아 이 새끼야. 이 새끼 믿는 구석이 뭔가 했는데 내 안에서 어둠의 X희 마냥 살아가는 육식주의자 여신님 믿은 거였구만. 근데 여신님 봉인 중이라 답 없는데? 이거 완전 영어 못하는 한국인 미국에 떨궈놓은 거랑 뭐가 달라.

진짜 환장하겠네.

“그럼 뭐 다른 방법 없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말임다...”

“뭔데?”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주지 말임다.”

지금 장난해? 나는 개소리를 내뱉는 저승사자를 경멸을 담아 노려보았다.

“진짜임다. 유진양은 가능함다.”

무슨 사이비종교도 아니고. 사이비 종교도 그것보단 그럴듯한 개소리를 내뱉을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비나이다비나이다 제가 저 깐프들이랑 말이 통하게 해주세요 아바다 케다브라 알 이즈 웰 부처님 X툰님 공자님 X리스님 예수님 X레토스님 알라신님 하나님 한울님 마르크스님 X쿠아님 아무튼 누구든 말 좀 통하게 해주세요 제발!

“!@*#&!$라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수상한 놈들이 분명합니다! 전부 처형하죠!”

“그러지마!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나한테 사탕도 줬어!”

“뭣이? 그 귀한 것을?”

“응응! 진짜야! 조금 고소한 맛이었어!”

...아니 이게 왜 되는데? 갑자기 뻥 뚫려버린 귀에 나는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었다.

“시발 도대체 뭔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