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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69화 (169/352)

〈 169화 〉 149.당신의 뚝배기를 반으로 쪼개면 사랑이 올까요?(1)

* * *

“주인님! 산책가자!”

아침부터 내 귀청을 흔드는 요란한 목소리에 내 의식이 급부상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소리를 지르는 에포나의 민폐에 나는 귀를 틀어막으며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요즘 이불 밖이 위험해서...그런데...나중에...가자...”

요즘 이불 밖으로만 나가면 사건이 터진단 말이야...별 의미는 없지만 휴일이니까 푹 쉬고 싶어...

“꺆!”

얼굴 핢지마! 니가 개냐! 나는 내 얼굴을 사탕 마냥 핢아대는 에포나의 혓바닥 공세에 결국 졸음기가 전부 날아갔다. 쉬게 해줘...아직 추석 연휴야...

나는 에포나의 혓바닥공격에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 찝찝해. 도대체 저런 건 어디서 배워가지고...결국 나는 침대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안 나오면 얼굴에서 침이 뚝뚝 떨어질 지경이었으니까.

“세연아...지금 몇시야?”

나는 침대 옆에서 다 말린 빨래들을 접고 있던 세연이에게 시간을 물었다. 숙련된 솜씨로 착착 옷들을 개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로 세연이는 나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다.

“7시야.”

“주인님! 산책가면 안 돼? 밖에 날씨가 좋아!”

요 산책중독자 녀석. 요새 산책에 맛 들렸는지 평소보다 산책을 조르는 빈도가 늘었어. 나야 기분전환 좀 할 겸 조를 때마다 들어주고 있긴 하지만,

나는 반 장난 반 진심으로 에포나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 주었다. 에포나는 기분 좋은 듯 눈을 감고 내 손길에 몸을 맡겼다가, 이내 내 다리에 얼굴을 부볐다. 애가 애교 부리는 것만 배워오는 것 같네.

“응? 가자아~”

“으...기다려봐.”

귀엽긴 한데 매번 얼굴이 침범벅이 돼서 일어나는 건 좀 그래. 도대체 말이 왜 강아지 x튜브보고 따라하는 건지 모르겠어. 저번에 유라가 손! 가르치고 있던데 그게 문젠가. 조금만 있으면 왈왈 짖을지도 모르겠다. 왈왈 짖는 말이라니, X상에 이런 일이에서 바로 취재하러 달려오겠네.

어? 이건 좀 괜찮은데? 적어도 헤으응하고 울지 않으면 괜찮은 것 같아! 말 울음소리 치고는 좀 이상하지만 괴상한 거 따라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X루시 같은 거 따라하는 것보다는 개들 따라하는 게 수십 배는 나으니까 그냥 유라가 알아서 교육하게 놔두자...적어도 이쪽은 하는 짓이 귀엽잖아. 그쪽은 스릴 넘치게 바이올런스 하다고. 기행은 덤이고. 난 에포나를 그렇게 키울 생각이 없었다.

에포나가 이상한 짓을 할수록 피해는 내가 받으니까.

나는 수건을 집어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씻고 나와야지. 으, 대충 샤워하고 나와야지. 대충 씻고 나오니, 아침 댓바람부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지금 아침 7신데 이 시간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고? 유라나 한솔이면 먼저 메신저로 문자 보냈을 텐데.

애초에 유라나 한솔이는 우리 집 비밀번호도 아니까 문을 두드릴 이유도 없다.

“주인님! 누가 문 두드려!”

“세연아, 혹시 문 너머에 누구 있는지 확인해주라.”

세연이는 고개를 끄덕이곤 조심스럽게 문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몸이 반쯤 문에 박힌 듯한 모습은 호러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이었지만, 엉덩이만 저러고 있으니까 쓸데없이 야해...보이지는 않았다.

저것도 몸매가 어느 정도 되어야 좀 그럴듯해 보이지, 전체적으로 빈약한 세연이의 몸매로는 택도 없었다. 문 밖으로 얼굴을 슬쩍 내밀어보고 돌아온 세연이는 내게 돌아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승사자인데?”

“엥? 저승사자가 무슨 일로 왔대?”

또 뭐시키려고 그러나? 나는 현관문에 다가가 문을 살짝 열고 그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세연이의 말대로, 우리 집에 몇 번 찾아온 그 저승사자였다. 근데 저승사자가 이 시간에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

“안념하심까. 좋은 한가위 보내고 계심까?”

“뭐, 잘 지내고는 있는데...무슨 일로 왔어요?”

“추석 기념해서 인사도 할 겸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지 말임다.”

“안사요. 안돼요. 오지마세요.”

“저는 그런 파렴치한 인간, 아니 저승사자가 아니지 말임다?”

이야기? 뭔 이야기? 나는 곧바로 몸을 빼고 문을 닫았다. 저승사자 놈이 가져온 이야기 치고 멀쩡한 이야기가 없었단 말이야!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어! 가지세계든 뭐든 그냥 알아서 해결해줘! 난 그냥 건물주가 되고 싶은 것 뿐이라고!

“문 좀 열어주시면 안됨까...오늘은 정말 큰 일 아니지 말임다.”

그렇게 애처롭게 말해도 저승사자가 산 듀라한 집에 들어오는 건 좀. 내가 괜히 저번일로 뒤끝이 남아서 그런 게 아니고 순수하게 내 안전을 위해서니까 그냥 돌아가 줘. 내가 저번 산군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1억을 줘도 이젠 안 해! 아니 못 해!

“그럼 잠깐만 문구멍으로 눈만 대주실 수 없슴까.”

“...그 정도야...”

나는 조심스럽게 문구멍에 눈을 들이댔다. 문 너머에서 딸깍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승사자가 문구멍 쪽으로 서류가방을 들고는,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었다.

“들여보내 주실 수 없슴까?”

“어서 안 들어 오고 뭐해요?”

나는 저승사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문을 활짝 열었다.

서류가방 빼곡히 들어찬 신사임당은 못 참지! 노오란색 다발이 10개는 넘는걸 보니 다발당 500만이라 계산하면 무려 5천만원이다. 이러니까 정치인들이 뇌물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네!

현금으로 신사임당 다발을 꽉꽉 채워서 보여주는데 어떻게 안 받고 배겨? 역시 백년 넘게 저승사자 일을 한 짬이 있어서 그런지 사회생활 할 줄 아시는 구만.

뭐 왜 뭐. 세연아 뇌물 수수 받는 부패한 정치인 보는 듯이 쳐다보지 마라. 이 돈이 네 빵이 되고 패티가 되고 토마토가 되고 양상추가 되는 거야. 팍 씨. 눈치 빠르게 나에게 건네진 서류 가방을 거실 한 구석에 세워두고, 나는 평상시 보다 공을 들여서 커피를 내렸다.

저번에 커피 머신 사둬서 다행이야. 나는 고급 원두를 기계로 갈면서 생각했다. 순식간에 거실이 향긋한 커피냄새로 가득 찼다. 나는 다 내린 커피 두개를 들고 탁자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저승사자는 조심스럽게 잔을 들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커피를 홀짝이며 맛을 음미했다. 표정을 보니 꽤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전보다 더 향긋하지 말임다.”

“기계를 새로 장만해서 그렇죠 뭐.”

“저희도 하나 장만해야 겠슴다...요즘 차사들 사이에서 커피가 유행이라서 말임다.”

“주인님! 나도 마셔볼래!”

“이거 엄청 쓴대?”

“괜찮아!”

말한테 커피 줘도 되나? 뭐 그냥 말이 아니고 유령마니까 괜찮겠지. 나는 머리카락을 늘려 싱크대에서 종지 하나를 꺼내 그 위에 내 커피를 조금 부었다. 에포나는 내가 종지를 건네주자 기세 좋게 종지 속 내용물을 핢았다.

“써! 맛없어! 이거 독약 아냐?”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쓰다고.”

나는 냉장고에서 당근을 꺼내 에포나의 입에 물렸다. 켁켁거리던 에포나는 당근을 입에 물려주자 당근을 오도독 씹기 시작했다.

“잘 돌봐주고 계신 것 같슴다.”

“뭐...그냥 애완동물 돌보듯이 하는 거지.”

“그건 그렇고 말임다. 오늘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지 말임다.

또 저번처럼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로운 일을 짬때리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근데 이미 돈을 받아버려서 발 뺄 수도 없는데. 내가 대놓고 경계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저승사자는 안심하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님이 그렇게 웃어봐야 그 다크서클 낀 눈에 창백한 얼굴이라 안심은커녕 심장에 좋지 않거든요? 너 저승사자야! 저승사자라고! 웃으면 그건 그냥 살벌한 미소란 말이야!

“이번 일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님다. 다만 유진양 밖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서 말임다...”

힘든 일? 힘드으으으으은일? 내가 저번에도 비슷한 워딩을 들었던 거 같은데 저 정말 불쾌하거든요? 내가 그거 때문에 수백만 원의 후원을 날려먹고 2주가량 입원을 해야 했거든? 또 괴랄한 거 시키려고 하면 그냥 돈이고 뭐고 나가리야 나가리.

내가 아무리 돈에 미친년 취급 받아도 목숨 걸린 일은 안 해! 안한다고! 아무리 내가 신체능력 개쩔고 이능력있는 듀라한이라지만 목숨은 하나란 말이야!

“...표정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잘 알겠슴다. 이번에는 정말 별 일 아님다. 그냥 저희 쪽에서 권한이 아예 없어서 도움이 필요한 것임다.”

도대체 뭘 시키려는 걸까. 요괴퇴치? 아니면 뭐 가지세계에서 이상한 놈들이라도 쳐들어 온 건가? 저승사자는 말하기 전에 커피를 한번 홀짝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불 시킬 영혼들이 있는데, 저희에게 권한이 없지 말임다...”

“뭐 서양쪽 귀신이라도 돼? 그런 거면 그쪽 저승사자한테 맡기면 되는 거 아니야?”

“그게 곤란해서 말임다. 유진양한테 맡기려는 영혼들은 이 세계의 저승사자에게는 건드릴 권한이 없어서 말임다. 지금으로선 유진양 정도밖에 해결해 줄 분이 없지 말임다.”

“도대체 무슨 영혼인데 저승사자가 처리를 못해?”

“...가지세계의 영혼들임다.”

저승사자가 말한 것은,당혹스러운 이야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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