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외전:지박령과 듀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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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귀신은 내가 아니라 네가 아닐까?’
세연은 가끔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기껏해야 좀 음산할 뿐인 자신과는 다르게, 유진은 귀신도 깜짝 놀랄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좋은쪽이던 나쁜쪽이던. 머리가 떨어진 채로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으니까. 귀신들도 저렇게 충격적인 비주얼을 가지고 있는 귀신은 생각보다 드물다. 어쨋든 귀신들도 생전에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름대로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세연은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며 잠을 자는 유진을 침대 머리판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나면, 세연은 가끔 이렇게 유진이 침대에 누워 자는 모습을 내려다보곤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잠자는 얼굴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비단보다도 부드럽고 보석마냥 반짝거리는 새하얀 머리카락, 토파즈를 박아넣은 것 같은 황금색 눈동자, 잡티하나 없는 아기같은 새하얀 피부. 완벽하다 못해 눈을 의심케 하는 신체비율. 동화 속 공주님도 이렇게 아름답지는 못하리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는 것은 유진의 얼굴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세연은 생각했다.
세연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인간이 예술품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경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동거를 허용했다. 지박령이 된 후로 입에 대보지도 못한 햄버거의 유혹도 유혹이었지만, 처음 당해보는 소금세례는 그녀의 미약한 반항을 단번에 포기하게 만들만큼 무서웠다. 소금 알갱이가 닿은 부위에 정전기가 일어난 듯 찌릿한 느낌은 익숙해려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할 수 있는건 지박령 특유의 분위기로 입주자를 압박해서 제발로 나가게 하는 것 말곤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그녀의 압박을 아랑곳하지 않는 상대라면 답이 없었다. 세연에겐 유진이 천적이나 다름 없었다. 거기에 유진은 그녀를 만질 수도 있었다. 폭력을 휘둘러 그녀를 옆 방으로 쫒아낼 수도 있었지만, 유진은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그녀를 폭력으로 쫒아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퇴치되어야 할 지박령에 불과함에도.
그녀를 쫒아내기 위해 부적을 태우던 무당과 집주인과는 천지차이였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름 동등한 위치에서 대우해주는 유진은 세연에게 괴짜로 받아들여졌다. 비단 그녀를 받아들인 유진의 결정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시간 없다며 시리얼을 입에 부어넣고 우유를 입안에 부어 먹는다던가, 삼겹살에 케첩을 뿌려 먹는다던가. 방송 컨텐츠를 준비한다며 뜬금없이 혼자서 이상한 상황극을 한다던가, 이해하지 못할 괴상한 말을 내뱉는 등의 기묘한 행동들이 그녀의 생각을 뒷받침 했다.
그렇게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지 한 달, 세연은 나름대로 상황에 만족했다. 유진은 계약을 깔끔하게 지켰다. 그녀에게 지급되는 햄버거가 천원도 하지 않는 싸구려라는 것을 알지만, 세연은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를 위해 제사나 기일을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유진은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세연은 생전에도 깊은 관계를 맺어본 사람이 없었다.
고아라서, 음침해보여서, 낡은 옷을 입고 있어서, 물려받은 교복을 입고 있어서, 이유는 정말 많았다. 친구는 있었던 적이 없었고, 고아원에서도 친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타고나기를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를 사귈만한 사교성도 부족했다.
이상한 짓을 자주 하기는 해도 생전에 만난 악랄한 인간군상들에 비하면 유진은 천사나 다름 없었다. 계약대로 햄버거도 제공해주고 일을 끝내면 멍이나 때리고 있던 세연에게 심심하면 X튜브라도 보라고 예전에 쓰던 낡은 폰을 빌려주기도 했다.
유진의 권유로 오랜만에 만져본 스마트폰 속 세상은 그녀가 살아있을 때보다 더욱 넒어져 있었다. 이래저래 나름대로 스마트폰 세대였던 세연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이 없을때마다 폰을 만지작 거렸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인터넷 세상은 5년도 안돼서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코인? 코로나? 미투? 모르는 것 투성이라, 세연은 스펀지처럼 수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였다.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귀신인 것도 있어서, 머리가 굳지 않았다는 점이 바뀐 시대를 받아들이는 것을 가능하게끔 했다.
바뀐 세상에 적응한 그녀는 그렇게 X수가 되었다. 유진은 세연이 그녀의 방송을 지켜보던 X수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가끔 채팅을 치며 호응을 유도했단 사실도.
“...ㅇ...ㅏ...ㅅ...”
날이 더운 탓인지, 아니면 그냥 잠꼬대인지 유진은 입맛을 다시며 몸을 뒤척였다. 입가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보기 흉한 꼴이었지만, 외모가 외모인지라 세연의 눈에는 그것도 귀여워 보였다. 얼굴이 그녀의 동생 뻘 수준으로 어려보인다는 점도 그녀가 귀여워 보이게 하는데 일조했다.
투정부리는 여동생을 가진 기분이랄까, 세연은 고아원 시절에 그녀를 잘 따르던 여자애가 있었단 사실을 떠올렸다. 희미하지만, 빛바랜 기억속에 자리 잡은 추억이었다.
머리가 뒤척임을 버티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쿵, 하고 묵직한 소리와 함께 떨어진 머리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머리가 너무 단단한 나머지 1미터 가량 높이에서 떨어지는 것 만으로는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유진은 아직도 자기 머리가 수시로 침대 아래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유진의 잠버릇은, 머리가 혼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베개 위에 올려놓았던 머리가 어느샌가 가슴팍에 누워있고, 심하게 몸을 뒤척일 때면 어느 샌가 다리사이로 내려가 있다. 또 시간이 지나면 이번에는 발밑에 머리가 떨어져 있는 것이다. 머리라는게 타원형이긴 해도 구체에 가까운 형태라 생기는 일이었다.
머리가 너무 단단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 하니 머리가 떨어져도 잠을 깨지 않을 뿐이다. 세연은 유진의 머리가 떨어질 때마다 다시 베개위에 돌려놓았다. 나름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유진은 세연에게 고아원에서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던 시절을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가끔 소식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세연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길다면 긴 지박령 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이다.
생전의 일에 집착하면 안된다고.
생전의 일을 잊지 못해 지박령이 된 세연이었지만, 그렇기에 그 사실을 더 잘 알았다. 세연은 완전히 원한에 잠식되어버린 지박신이 되기 전에, 가슴에 맺힌 한을 청산하고 성불하고 싶었다. 누가 갈곳으로 가지 못하고 붙잡혀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까. 지박령도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되어버리는 것이지.
하지만 의지만으로 그게 가능했다면, 세연은 지박령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증오는 가슴속에 묻어둘 수 없는 감정이다. 피해자는 당한 일을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산자도 그러한데 죽은 자는 더더욱. 귀신은 영원히 증오에 먹혀 미처버리든, 아니면 다 포기하고 사라지든 2가지의 선택지 밖에 없었다.
하염없이 유진이 얼굴을 지켜보던 세연은 몸을 돌려 창가로 향했다. 슬슬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햇빛이 그녀의 몸을 통과해 유진이 누워있는 침대에 얆은 줄을 그었다.
세연은 커튼을 살짝 젖혀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정말 오랬동안 본 풍경이어서, 이제는 굳이 바깥을 보지 않고도 떠올릴 수 있는 풍경이었다. 햇살이 따스하게 세상을 감싸는 풍경속에서 따스함을 느끼지 못하는 귀신의 몸으로 세연은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한때는 이 세상에 속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세연에게는 이제 너무 먼 일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변할일 없는 방 한구석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은 생전에 가지고 있던 감각을 완전히 잊게 만들었다.
“...으.”
유진이 몸을 뒤척이며 내는 신음소리에 세연은 시선을 돌려 유진을 쳐다보았다. 곧 깨어난다는 신호였다. 유진은 직장을 다닐때의 습관으로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갖고 있어 언제나 깨어나는 시간은 비슷했다. 세연은 장난스레 침대 머리판 위에 머리를 늘어트린채로 유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눈을뜨면 깜짝 놀라겠지? 세연 자신은 잘 공감하지 못하지만, 귀신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든 기본적으로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니, 아무리 그녀를 무서워하지 않는 유진이라도 이런식으로 놀리면 자주 놀라곤 했다.
세연이 가끔 부리는 장난스러운 심술이었다. 산자에 대한 증오를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방법이었다. 귀신은 살아있는 자를 질투하는 법이었으니까. 세연도 결국은 귀신이었다. 그것도 한이 많아 지상을 떠나지 못하는.
“...간지러...워...”
세연의 입가에 미소가 실렸다.
본인도 눈치채지 못한 미소였다.
그렇게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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