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47.뭐하고 있냐 몸통아! 어서 와서 붙지 못하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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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인터넷 방송인 수메리, 학교 폭력 가해자로 밝혀져...]
[‘학투’ 이젠 스포츠, 연예계를 넘어 인터넷 방송까지...]
[수메리 학폭 폭로 사건 완벽 정리]
[새로운 학투 폭로 돼...]
[새로운 학투 사건...이번에는 스트리머?]
시발. 담배연기가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천장에 고인다. 평소라면 창문을 열어서 환기시켰겠지만, 지금의 성아라에게 그럴 정신은 없었다. 당장 화면을 빼곡하게 채운 뉴스기사들을 보면서 깨질 것 같은 머리를 겨우 굴려가며 이 상황을 파악하기를 한 번,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크게 번지는 내용에 한 번.
방을 가득 채운 자욱한 연기 만큼이나 3년차 스트리머, 수메리의 상황은 암담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행적이 누군가에 의해 폭로되면서 시작된 폭로전, 인터넷 이슈를 나르고 부풀리는 사이버 렉카들이 이슈를 부풀리면서 저녁뉴스에까지 보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통이라면 이렇게 사건이 커지지는 않았어야 했다. 인터넷 방송계에서 이슈가 되는 수준이었다면 그냥 사과한 번 때리고 몇 달 벌어놓은 돈으로 놀다가 복귀하면 그만. 웬만한 논란이라면 그렇게 묻혀버렸겠지.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다. 몇 달간이어진 학교폭력 미투로 인해 사람들은 학교폭력을 저지른 유명인들에 대해 매우 민감한 태도를 보이는 중이었다. 그나마 거의 잠잠해질즈음에 터져버리다니, 이렇게 되면 그녀에게 관심이 집중 될 수밖에 없었다 . 달갑지 않은 관심이었다.
이럴거면 차라리 한창 학교폭력 미투가 진행중일때 고백 하고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유야무야 넘어갔을텐데. 수메리는 후회했다. 피해자를 괴롭힌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그딴 병신년들 손 좀 봐준게 뭐가 대수라고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내뱉고 싶었지만, 나름 3년차 방송인인 만큼 할말 못 할말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어릴 때 일 가지고 인제 와서 지랄이라니, 정말 좆같네.'
성질같아서는 폭로한 년을 린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는 했지만, 이미 피해자 포지션에서 그녀를 공격하는 폭로자에게 반격할 방법은 없었다. 있다면 이 폭로가 거짓주장이라고 반박하는 것 하나 뿐이지만...수메리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폭로는 적나라할 만큼 사실만을 폭로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녀의 SNS계정 밑바닥에 잠들어 있었던 증거사진이 온갖 사이트에 퍼지면서, 그녀의 이미지는 겉잡을 수 없이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피해자이자 지금은 죽고 없는 이세연의 친구라고 밝힌 폭로자는 정보를 아주 천천히 순차적으로 공개하며 수메리와 그녀의 친구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우연히’ 유출된 사진은 수메리를 포함하여 3명의 가해자를 지목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같이 이세연을 괴롭혔던 삼인방이었다.
지이잉
스마트폰이 진동하는 소리에 수메리는 폰을 들어 화면을 켜고 내용을 확인했다. 같이 일진 짓을 했던 친구의 톡이 와 있었다. 몇 달만의 톡이라 평소라면 반가워하며 수다를 떨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수메리는 떨리는 손으로 톡의 내용을 확인했다.
[야 진짜 ㅈ댔어 우리]
[시발 ㅈ같네 어떤 년이 까발린거야?]
[누가 과거 일을 인제 와서 들추는 거야ㅠㅠ 나 지금 회사 분위기 안 좋아져서 밥도 혼자 먹어ㅠㅠ]
[넌 그거면 됐지 난 지금 진짜 ㅈ댔어! 지금 갑자기 회의 들어갔는데 분위기 보니까 폭로때문인 것 같은데 망했어]
경찰들이야 워낙 철밥통이니 짤리지야 않겠지만, 아무런 뒷배도 없는 일개 경찰이 이렇게 큰 이슈에 가해자로 주목받으면 제 식구 감싸기도 힘들었다.
애초에 내부에서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각종 업무상 트러블을 자주 일으키는 등 평판이 좋지 않았던 사람이라 경찰측에서도 그녀를 감쌀 생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경찰청에서는 그녀를 지방경찰서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좌천이었다.
욕설과 분노가 마구 뒤엉킨 톡방을 끄며, 수메리를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치고 싶었지만, 한 번 웃어주면 수십만원이 들어오는 장사를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메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최대한 사태를 무마시키기 위해 소위 말하는 사과 방송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 뿐이었다.
수메리는 담뱃대에 담배를 비벼끄곤 카메라에 보이지 않도록 옆으로 밀어냈다. 최대한 반성하는 모습을, 좋은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래야 성난 여론이 조금이라도 진정될 수 있었다.
하필이면 사진이 포함된 글이 전부 떠진 거라, 사진속의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며 빨뺌할 수도 없었다. 사진속에서 웃고 있는 세 명의 소녀와 그 아래 쪽에 얼굴을 숨기고 주저앉은 상처투성이 소녀의 모습은 이미 수천, 수만번 복사되어 인터넷 곳곳에 뿌려졌다.
사람들도 거의 모르는 계정인데 어떻게 알았을까. 이제 계정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러다 강제로 은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수메리를 화나게 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수메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수습 잘못하면 그대로 나락간다. 어쩌면 나락이 아니라 경찰서에 갈수도 있겠지. 급하게 고용한 변호사의 말로는 도덕적으로 비난은 받을지언정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했지만, 지금 상황은 법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인터넷 여론이 법을 신경쓸때는 자기들한테 납득가지 않는 처벌이 내려졌을 때 뿐이다.
지금까지 착하고 바른 이미지로 먹고 살았던 스트리머가 학교 폭력 가해자로 알려진다는 사실 자체가 방송에 치명적이었다. 당장 며칠 사이에 그녀의 X튜브 영상 댓글창은 시청자들과 유입된 사람들끼리 싸움을 벌이느라 난장판이 되어버렸고, 평소의 2배가 넘는 조회수 대신 싫어요가 네자릿수에 육박했다.
[학교 폭력에 대해 사과합니다.]
수메리는 몇 번이고 방송 제목을 썻다가 지웠다. 더 절실함이 느껴져야 했다. 완전히 납작 엎드려서 여론의 눈길을 피할 시기였다. 수메리는 그리 영리하지 않은 머리를 굴려 사과문을 쥐어 짜냈다.
[수메리입니다. 학교 폭력을 저지른 과거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수메리입니다. 과거 학교 폭력 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사과문이라도 써서 올려야 할 것 같아 올립니다. 제가 한 짓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어리고 철없던 시절에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저지른 일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행사하고 그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것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 분들에게는 직접 사과할 생각입니다. 받아 주지 않는다해도 사과할 생각입니다. 그것이 제가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이 모든 문제는 제 잘못이며 저지른 것은 전부 제 책임이며, 저는 반성의 의미로 3개월간 자숙하겠습니다.
저를 사랑해주신 팬 여러분, 그리고 피해자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깔끔한 사과문이라고 수메리는 생각했고, 이 정도면 그녀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고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남은 건 3개월 동안 쉬면서 복귀할 각을 재는 것 뿐. 담배갑에서 담배를 꺼내며, 라이터로 불을 붙힌 수메리는 멍하니 폰을 쳐다보다, 이를 갈며 폰을 집어던졌다.
“이런 시발년들이...”
“이야, 잘 불타네.”
호일에 감싼 고구마를 넣어서 굽고 싶을 정도로 활활 불타는 게시판을 보며 나는 팝콘을 대형 스푼으로 퍼먹었다. 아직 몸뚱어리가 철제의자에 묶여서 쇼생크 탈출을 찍고 있는 중이라 손으로 먹을 수가 없었다. 음식을 머리카락으로 직접 집어서 먹기에는 위생적으로 거부감이 들고, 인형옷을 입고 지느러미로 퍼서 먹기에도 좀 그랬다.
대놓고 3개월 후에 잠잠해지면 복귀한다고 사과문에 적는건 뭐 더 불타고 싶다는 걸까? 그때즈음이면 확실히 조용해지겠지만, 나는 여기서 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이 왜 인터넷에서 장작 지피는걸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
한 명은 회사에서 고립, 경찰 년은 좌천, 스트리머는 나락. 일타 삼피도 이렇게 깔끔할 수가 없었다. 스마트한 복수란 이런 거지. 가지고 있는 걸 전부 잃게 만드는 것, 혹은 살아도 산게 아니게 만드는 것. 이런 세상에서 상대를 죽여서 복수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래 봐야 ‘안타까운 피해자’로 둔갑되는 일이 많으니까.
“사악하시군요.”
“다 자업자득인데 뭘.”
자기가 저지른 업보가 돌아온 것 뿐이지. 나는 그저 글을 이곳저곳에 올리고 사진을 업로드해서 이슈를 만들어낸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세연이 이름으로 다른 피해자들에게 연락해서 지원사격을 받기도 했고.
그래도 나름 잔뼈가 굵은 덕인지 꽤 봐줄 만한 사과문을 쓰기는 했는데, 친구를 팔아먹은 바람에 이제는 가해자들끼리도 공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두명이 얼굴 팔고 다니는 방송인은 아니라서 일방적으로 스트리머쪽이 쳐맞는 그림이 되기는 했지만.
이젠 정말 나락이다. 지금까지의 폭로만으로도 충분히 나락이었지만, 공범들의 폭로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주동자라며 손가락질 하는 상황. 아주 재밌네. 하루 사이에 아예 고등학교 시절 X톡 대화내용을 올려서 물귀신 작전을 벌일 줄은 몰랐는데.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세연아, 이제 만족했어? 저 세 명은 이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게 될걸?”
평생 돈 걱정 없는 부잣집 아가씨라면 모를까, 요원 누나가 건네준 파일에는 셋다 평범한 가정집 출신이라고 적혀 있었다. 집안까지 같이 풍비박산 나겠군. 뭐 그건 내 알바가 아니긴 하지만.
의자에 묶여 꿈틀거리던 내 몸뚱어리가 점점 얌전해졌다. 3일동안 의자에 묶여 발광하던 세연이가 드디어 진정한 모양이었다. 진짜 질기다 질겨. 복수해준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믿지를 못하니.
“이제 몸 돌려줘. 그리고...”
이제 원한도 해결되었으니까 성불하는 건가? 내 가슴팍에서 세연이의 혼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랄까, 평소와는 좀 다르네. 조금 더 밝은 느낌이랄까. 평소의 어두침침한 모습과는 다르게 푸른 바다같은 청량함이 느껴진다.
동시에 몸의 감각이 돌아왔다. 시험삼아 머리카락으로 포박을 풀고 움직여보니 온몸이 좀 욱신거리기는 했지만, 멀쩡하게 움직였다. 나는 직접 손으로 인형옷에서 머리를 꺼내 목위에 올려놓았다.
되게 그리운 느낌이네 이거. 머리를 목 위에 올려놓고 세연이를 보니, 내 모습을 보며 작게 미소짓고 있었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미안 하면 빨리 가. 잘 지내고.”
나 이제 방송하러 갈 시간이야. 세연이는 내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창가를 향해 걸었다. 창가를 통과해 베란다를 넘어 허공을 걷던 세연이가 뒤를 돌아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 인사해주었다. 세연이는 다시 뒤돌아 점점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시야에서 세연이가 사라지자,
뭔가 아쉽네...
“수고많으셧습니다. 좀 아쉽군요. 귀신을 한 번즈음은 보고 싶었는데.”
“못 보는 게 훨씬 좋을걸.”
재같이 착한 귀신 보기 힘들어. 좀 민폐를 끼치긴 했지만.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해서...”
“잘 가...라쿤 박사한테 고맙다고 이야기 좀 해주고.”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 요원 누나를 배웅하고 방에 돌아오니, 뭔가 허전했다.
기분이 울적하다. 그래도 방송은 해야지...더 휴방하면 있던 시청자들도 다 떨어져나갈지 몰라.
평소처럼 컴퓨터를 켰다. 생각해보니까 이게 며칠만의 방송이지? 거의 5일? 6일?
방송 프로그램을 켜고, 마이크 위치를 조정한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방송시작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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