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46.뭐하고 있냐 몸통아! 어서 와서 붙지 못하고!(6)
* * *
3년 만에 흔히 말하는 시청자수 2천명을 넘은, 대기업 반열에 든 스트리머 수메리, 본명 성아라는 소위말하는 잘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매달매달 직장인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의 돈도 들어오고, 필사적으로 관리한 이미지 덕에 사건사고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성형까지 한 만큼 그녀의 얼굴을 보고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사람도 없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시청자 수는 순조롭게 늘어가는 중이고, 이제는 다른 대기업 스트리머들과도 얼굴을 트게 되어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는,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시청자만 수천명씩 되는 스트리머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오늘도 수많은 x수들의 돈을 뽑아먹기 위해서, 수메리는 방송을 켰다. 늘 그렇듯이 시작은 수금을 위한 저스트 채팅 시간이었다.
“방이 왜 이렇게 춥지...?”
에어컨 너무 세게 튼거 아니에요?
에어컨 온도 높이셈
내가 에어컨을 틀어놨던가? 수메리는 채팅창에 올라온 채팅을 따라 벽 한켠에 걸린 에어컨을 쳐다보았다. 에어컨은 꺼져 있었다. 에어컨이 꺼져 있다고? 수메리는 알 수 없는 오싹함을 느꼈다. 지금은 초여름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꽉 쥔 손바닥이 축축해서 기분이 나빠졌다.
도대체 뭘까. 수메리는 자기도 모르게 커튼으로 가려놓은 유리창을 쳐다보았다. 보이는 것은 아기자기한 연노랑빛 커튼뿐. 수메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씩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한 걸음. 두걸음. 세걸음.
다가갈수록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4층짜리 건물의 4층에 살고 있는 만큼 창 밖과 담장너머 길거리 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밖에서 이 창문을 쳐다보고 있더라도, 도촬을 대비한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고 방송을 하고 있는데다 방에는 흡음재가 잔뜩 붙어있는 만큼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는 것은 힘들었다.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지 않는 이상에야 이렇게 가까이서 인기척이 느껴질 리가 없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비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수메리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걷어볼까? 커튼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과 공포심이 동시에 떠올랐다.
“...찾았다.”
수메리는 자리에 주저 앉아 입을 틀어막았다.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머릿속에서 경종이 미친 듯이 울려대고 있었다. 생존본능이 보내는 신호였다. 명백한 이상행동에 채팅창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옛날에 했던 몰카의 재림인가, 아니면 정말 무슨 일이 생긴건가 하는 의견이 채팅창 내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어느쪽이던 시청자들은 이 흥미로운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수메리는 어느순간 인기척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몰라 커튼을 슬쩍 열어보았지만 바깥은 평화로웠다. 마치 방금전까지 느껴졋던 시선이 착각이었다는 것처럼. 다시 초여름이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찌르기 시작했다. 몸 전체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탓에 이대로 방송을 진행 할 수 없을 것 같아, 수메리는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샤워를 하고 오기로 했다.
찝찝한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로, 그녀는 욕실로 향했다.
“야 내 치킨 훔쳐먹은 년아 빨리 튀어 나와라! 지금 나오면 소금 샤워 정도로 용서해줄게!”
“그러다 민원 들어오겠습니다. 차라리 위치 추적기 하나 더 삼켜 보시겠습니까?”
그게 낫겠네. 나는 요원 누나에게서 단추만한 추적기를 하나 더 받아 입안에 집어넣었다. 요원 누나는 들고 있던 패드로 내 몸뚱어리의 위치를 파악했다. 이 근방에 있는 4층짜리 빌라근처에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5분정도 걸으면 될 거리였다.
“주동자중 하나였던 성아라의 현 거주지로군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곘습니다만, 정확히 찾은 모양입니다.”
뭐, 고등학교때부터 집이 안바뀌었으면 알만하지. 그리고 귀신이니까 뭐 어떻게든 알지 않을까? 호러영화나 괴담 같은거에선 멀리 이사가도 기어코 찾아오는게 귀신인데 그런 거 따져봐야 의미도 없다. 애초에 비상식적인 현상에 상식을 들이대봐야 의문만 늘어날 뿐이다. 그냥 적당히 넘기고 문제 해결에나 집중해야지.
“한솔아, 너는 이 주변 돌아다니면서 사람 만나면 죄다 최면으로 돌려보내주라.”
“네. 그렇게 할게요.”
내가 내 몸뚱어리랑 맞다이 까는걸 다른 사람한테 보일 수는 없으니까. 그럼 가볼까. 나와 요원 누나는 한적한 주택가를 가로질러 학교폭력 주동자중 하나였다는 스트리머의 집에 도착했다. 근데 이거 어딨는거냐. 건물 안인가?
“어디지?”
“아직 건물 바깥쪽에 붙어있는 것 같습니다.”
뭐야. 설마 벽을 타고 올라가기라도 하...나? 나는 빌라의 외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충 3층즈음에 시커먼게 붙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재 뭐하냐?
멀쩡한 계단 놔두고 왜 벽타고 오르고 있는 거야? 오토바이 헬멧은 또 어디서 구해왔고? 그리고 흑화한 거 티내냐? 왜 몸에 시커먼 오오라가 흘러나오는건데? 이세연 얼터 그런 거냐?
바퀴벌레처럼 벽 타지 말고 내려와서 대화(물리)로 해결하자!
“세연아~내려와서 얌전히 몸 돌려주면 일주일 햄버거 압수로 끝내줄게~”
내 자비로운 제안을 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세연이는 계속해서 벽을 타고 올라갔다. 근데 벽에 묻어있는 거 피 아니야?
저년이 남의 몸을 함부로 쓰네? 저거 진짜 나랑 해보자는 거야? 저걸 어떻게 떨구지? 아니 떨궈도 문제네? 결국 내 몸이라 저 위치에서 떨어지면 내 몸만 조지는 꼴인데? 머리만 멀쩡하면 아마 괜찮겠지만 한동안 병원신세를 지게 될 미래가 보였다.
“뭐 방법 없어?”
“총으로 맞추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장난해? 그럼 내 몸이 다치잖아!”
그리고 총 쏜거 걸리면 어떻게 감당할건데! 여기가 미국인줄 알아? 그리고 총맞고 떨어지면 몸이 걸레짝이 될게 뻔한데 이 누나 은근히 막나가네?
“그럼 던져드립니까?”
“뭐?”
“저 정도 거리라면 던져서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거리를? 내가 축구공도 아니고 못해도 20미터 가까이 되는 거리를 던져서 맞추는게 가능해? 혹시 투포환 선수였어? 내 머리 이래 뵈도 5kg은 되는데? 황당한 말에 누나를 쳐다보았지만 요원 누나는 담담한 얼굴로 점점 올라가고 있는 내 몸뚱어리를 쳐다보았다.
아니 뭐, 머리가 분리된 채로 살아있는 듀라한도 있는데 힘쎄고 강한 누나가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그렇지...
“시간이 없습니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만에 하나 들어가기라도 하면 더 이상 수습할 수 없습니다. 거리가 모자라면 이유진양이 머리카락을 늘려 들러붙으면 됩니다.”
“알았어...”
살다살다 이젠 하늘도 날아보겠네. 아까 편의점에서 사놓은 물건을 내려놓고, 인형옷을 꽉 채운 머리카락을 줄인 다음 요원 누나의 손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요원 누나는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집어 들었다.
손 크다아...여자의 손이라기보단 남자같은, 거칠고 투박한 손바닥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럼, 던지겠습니다.”
시야기 급격하게 회전한다, 던지기 전에 힘을 싣는 과정인 듯했다. 정신없이 머리가 돌아가니 존나게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애 누나눈나누나눈나 나 죽어!
나 죽어어어어어어!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것 마냥 바람이 내 얼굴을 밀어내는 느낌이 든다. 정신없이 회전하는 시야 끝에 검정색 물체가 보인다.
“자라나라아머뤼카라악!”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카락을 늘려 내 몸뚱어리의 허리와 목, 어깨에 머리카락을 감았다. 그리고 머리를 라푼젤 마냥 있는 힘껏 늘리기 시작했다. 바닥까지 닿도록. 머리카락 끝에 손아귀 힘이 느껴졌다. 요원 누나가 내 머리카락을 잡은 모양이었다.
요원 누나 힘 쎄던데 내 머리카락이 뽑히는건 아니겠지? 요원 누나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서 힘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올라가는것만은 멈출 수 있었다.
“야, 포기해라? 니 복수하고 싶은건 알겠는데, 네가 그러면 나도 곤란해 지거든? 내가 대신 복수해줄 테니까 포기하지?”
“...내...복수야...”
“니 복수고 나발이고 그럼 너 혼자 하든가! 내 몸 들고 하는 건 뭔 심보야? 내가 소금 뿌린게 그렇게 좆같았냐?”
“...내가...해야만...해...”
아 거참 끈질기네! 이해는 하는데, 그거랑 별개로 내가 좆되는 건 안될 일이었다. 내 앞날이 아직 창창한데 이런데서 좆될 수는 없어!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이런 대치상황을 오래 끌 수도 없었다. 들키면 좆되는 건 우리였지 세연이가 아니었다.
망할 귀신년! 진짜 집에 가서 보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수틀리면 강제로 떨어트리기라도 해야겠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머리카락을 조종해 내 몸뚱어리의 옷 사이로 머리카락을 집어넣었다. 니가 어디까지 참는지 보자.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움직여 몸 곳곳을 간지럽힌다. 내 몸뚱어리가 움찔거리는게 느껴졌다. 역시 감각이 있었구만. 나는 몸뚱어리의 주도권이 저쪽에 있는 탓인지 간지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3분간의 간지럽힘 끝에 점점 내 몸이 버티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있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더 격렬하게 내 몸을 간지럽히면서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결국 벽을 붙잡을 손까지 떨어져 버린 나와 세연이는 중력의 법칙에 따라 자유낙하하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최대한 늘려 내 몸을 고치처럼 감쌌다.
머리는 뭐 괜찮겠지. 이런 4층짜리 건물이 아니라 63빌딩에서 떨어져도 멀쩡할 것 같은게 내 뚝배기니까 이 정도로는 안다칠거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높은곳에서 떨어지는 감각은 무서워서, 나는 눈을 감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나와 내 몸뚱어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혔다. 통증은 없었다.
내 머리가 콘크리트에 부딪히면서 콘크리트를 파고들어 금이 갔을 뿐이다. 마치 영화에서 운석이 떨어진 것 같은 모습이다. 내가 묠니르냐.
...이거 내가 변상해야 돼? 이 정도는 기밀관리본부에서 해주겠지?
“...목표 제압을 완료했습니다.”
요원 누나가 보고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전에 누나 나 머리좀 꺼내줘...콘트리트 사이에 머리가 끼어서 못 나가겠어...
“내 머리좀 들어줘...못 꺼내겠어...그리고 아까 챙겨둔 물건도 건네주고.”
“...필요 없지 않습니까?”
“내가 이 상태로 계속 있을 수도 없고, 확실히 제압해놔야 안 도망갈테니까.”
당장 이런 고치를 유지하는 것도 고역이다. 생각보다 섬세한 조작이 필요해서 신경쓰이는 데다, 안에서 저항하는 몸뚱어리 때문에 버티는것도 힘들다.빙의 버프라도 있는건지 그냥 벽에 손가락을 박다시피해서 오르는걸 보면 감당이 안된다. 다시 도망치면 일이 심각해진다. 그냥 여기서 강제 리타이어 시켜서 제압하는 게 답이다.
요원 누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구석에 놓았던 검은비닐봉투를 가져와 내 앞에 내용물을 꺼내놓았다.
안주가 없는게 아쉬운데, 어쩔 수 없지.
나는 보드카의 뚜껑을 열고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보드카도 팔아서 좋다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