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45.뭐하고 있냐 몸통아! 어서 와서 붙지 못하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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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박령은 원혼이다. 원혼이란 생전의 원한을 잊지못하고 현세에 남아버린 원혼. 생전에 죽음을 맞이한 장소에 묶여 있어 그들의 원한이 청산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아주 가끔, 정말 기적 같은 확률로 그들에게도 복수할 기회가 찾아오곤 했다.
원혼이 어떻게 그 기회를 놓칠 수 있을까. 그녀는 의도치않게 동거인의 몸을 빼앗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집을 뛰쳐나왔다. 정신을 차렸을때는 이미 뒷골목을 헤메고 있었다. 중간에 사람을 마주치기는 했지만, 그녀는 잠시 훎어보곤 무시했다.
애초에 그런 걸 신경쓰기엔 세연은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도 그럴게, 갑작스레 동거인의 몸을 빼앗게 되었으니까. 어두운 뒷골목을 방황하며 세연은 차츰차츰 기억을 더듬었다.
군데군데 구멍나고 찢긴 기억이지만, 그녀에게 필요한 기억을 떠올릴 정도로는 충분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구역질나는 악몽같은 기억이지만, 이때가 아니고 언제 떠올릴 수 있을까.
나를 괴롭힌 녀석들은 어디에 있을까.
내 과거를 인터넷에 퍼트려버린 년들은 어디에 있지?
그녀는 오랬동안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찾아다녔다. 희미한 와이파이 신호처럼 의식이 자주 흐트러지긴 했지만, 그녀가 찾는 정보를 얻기에는 충분했다. 그녀에게 넘치는게 시간이었다. 일도 하지 않는 지박령이 바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최근에는 새로운 동거인과의 계약으로 청소와 설거지, 빨래를 도맡아 하게 되었지만, 그래 봐야 1시간 남짓한 일이었다.
그렇게 찾은 주동자들은 정말 잘 살고 있었다. 심지어 경찰이 된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계정 세탁은커녕 고등학교 시절의 계정을 그대로 쓰고있어서, 오히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녀를 죽음까지 몰아세운 것은 그저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버리고 만 이세연은 울부짖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부모가 없는게 잘못이야? 아니면 그냥 조용히 있었던게 잘못이야?’
‘도대체 왜 괴롭힘 받았던 걸까.’
‘내 인생을 망가트리려한 이유가 뭘까.’
‘정말 잠깐의 재미? 그것 뿐이야?’
‘나는 재미를 위해서 지옥에 던져진 거야?’
그녀의 희미했던 의식속에서 묻혀버렸던 원한이 고개를 들고 소리질렀다.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죽이고죽이고죽이고죽이고죽이고죽이고죽이고죽이고죽이고죽이고죽이고...
몸을 빼앗은 순간 그녀에게는 한톨만큼의 망설임도 없었다. 죽인다. 하지만 유진이는 어떡하지? 세연은 이제 만난지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그녀와 친구가 되어준 듀라한, 이유진을 떠올렸다. 조금 짖궂기는 하지만, 같이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며 노는 것은 즐거웠기에 아주 잠깐, 세연은 뒷골목의 끝자락에서 그녀가 뛰쳐나온 집을 쳐다보았다.
죄책감이 그녀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이유진. 그녀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녀에게 안된 일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죄책감이 생기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수년간 농축된 원한을 지박령이 어떻게 제어할 수 있겠는가? 땅에 묶여있던 몸이 자유를 되찾은 순간 그녀를 구성하는 요소중 하나가 사라진만큼 그 빈자리를 원한이 채웠고, 원혼답게 과거의 원한에 얽매이는 귀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끝에 있는 게 파멸뿐이라도 그녀는 달려야만 했다.
빼앗은 몸은 그녀의 원한을 가속시켰다. 머리가 없지만 그게 큰 문제인가. 복수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사람이 머리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니까. 머리가 없어도 그녀는 보고, 듣고, 맡고, 만질 수 있었다. 귀신일 때의 시야는 여전히 그녀에게 감각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뒷골목을 빠져나오며 그녀는 뒷골목 한구석에 나뒹굴던 오토바이 헬멧을 목 위에 씌웠다. 복수를 방해받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목없는 사람이 세간의 이목을 지나치게 끌 것이라는건 원한에 반즈음 미처버린 그녀도 아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의 동거인 뿐이라는걸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헬멧을 고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의 혼을 구성하는 엑토플라즘으로 헬멧을 고정시키면 될 뿐이니까. 그녀는 그렇게 하루종일 걸어 그녀가 오래전 살았던, 그리고 도망쳤던 도시에 도착했다.
경기도 광주.
적어도 그녀가 아는 한, 주동자들은 이 도시에 그대로 거주하고 있었다. 당장 그녀가 찾았던 경찰관이 된 주동자도 이 도시의 파출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SNS에 올렸으니까. 다른 사람은 대학원생이랑 직장인이 되었다고 했던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세연은 도시 안쪽을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알아봤어?”
“네. 생각보다 지독하더군요.”
요원 누나는 조수석에서 패드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지느러미로 패드를 붙잡은 나는 한솔이의 도움을 받아 수집한 자료를 하나하나 읽어보기 시작했다.
정보는 SNS에 올려진 잡담의 비중이 컸다. 대놓고 SNS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자빠졌네.
뭐? 세연이가 왕따였다고? 건방져서 ‘참교육’을 했다고?
얼마나 빡대가린 거야? 심지어 아카이브를 떠서 가져온 것도 아니고 그냥 SNS에서 과거의 행적에 대한 내용을 캡쳐했을 뿐이다.
지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걸 보면 어지간히 빡대가리였거나, 설마 누가 10년 가까이 지난 일을 캐낼거라 생각하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와...와...이거...
“이거 그냥 씹새끼가 아니라 그레이트 씹새끼였네!”
아니 집단 따돌림 주동자가 심지어 지금은 경찰이네? 거 견찰 꼴 좀 봐라. 참 잘~돌아간다. 나머지 한 명은 회사원, 한 명은 스트리머? 와! 머기업!
“진짜 쌍년들이네요.”
한솔이도 어지간히 화났는지, 미간을 잔뜩 찡그린채로 욕을 내뱉었다. 나한테 이야기한 것 까지 포함하면, 이 세 쓰레기는 말도 못할 짓을 1년 넘게 했다는 건데...듣는 것만으로 혈압이 오른다. 눈앞에 있었으면 무심코 내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고 풀스윙을 날려버릴 정도로.
“아쉽게도 추적기는 제 기능을 상실한 모양입니다. 약 10분전부터 신호가 끊겼습니다.”
위액속에 담가졌는데 멀쩡하게 남아있는 게 더 이상했다. 그래도 충분히 제역할은 했으니까 충분히 훌륭한 임기응변이다. 나한테 위장을 움직여서 추적기를 위벽이 닿지 않는 위치에 붙이는 재주가 있는것도 아니고.
“마지막 신호는 현재 스트리머를 하고 있는 성아라양의 집 근처에서 잡혔습니다. 미리 요원을 배치시켜 놓기는 했습니다만...”
요원 누나가 말끝을 흐렸다. 뭐 걸리는거라도 있나? 그냥 잡으면 되는거 아니야? 아무리 내가 인외라지만 내 신체능력은 보통 성인남성보다 좀 더 뛰어난 정도인데? 그 정도면 실체를 가지고 있는 몸을 가진 지금 제압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 않을까?
“방금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육안을 제외하면 어떠한 관측장비에도 관측이 되지 않고 노이즈가 껴서 전자기기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지금 감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입니다.”
에반데.
슬슬 밤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여름 초입이라 해가 늦게 지기는 하지만, 그것도 한두시간 정도면 캄캄해질게 뻔했다. 그전에 찾아서 설득을 하던지 제압을 하던지 해야했다.
정말 살인사건 일어나면 범인은 나로 지목될게 뻔하단 말이야! 죽인건 저 햄버거 성애자 귀신이지만 지문이나 DNA는 전부 다 내 걸로 나올거라고!
나는 범죄자가 되고 싶지 않아! 들키지 않으면 장땡이라지만 그게 어디 쉽겠냐고! 지금 저 쌍년들 저지른 짓거리를 보면 절대 사지 멀쩡하게 못 살아! 분명 끔살당할 거야! 칼로 푹찍푹찍할 수도 있고 창문에서 던져버릴 수도 있고 의자 같은 걸로 죽을때까지 두들겨 팰지도 모른다고!
심지어 폰으로 검색해보니까 지금 방송 중인데, 지금 걸려버리면...
절대 수습할 수 없다.
이제야 조금씩 생활이 안정을 되찾아 가는데 이렇게 끝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군. 꺼내지 않으려 했는데...
“혹시 편의점에서 내가 말한 거 사올 수 있어?”
“어떤것...말입니까?”
나는 요원 누나에게 내가 원하는 물건을 조용히 말했다.
요원 누나는 잠시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옆의 남성 요원을 편의점으로 보냈다. 요즘 편의점은 별의별게 다 있어서 좋단 말이야...
진짜. 내 일만 아니었으면 뚝배기를 깨버리던 옥상에서 던져버리던 알바 아닌데.
나는 세연이가 있다는 한적한 주택가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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