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8.나는 머리가 없다
* * *
“...그래서 유진아, 어떻게 된거니?”
“...나도 몰라. 여자가 되면서 머리도 같이 떨어졌어...”
나도 설명할 길이 없다.
하루 아침에 뜬금없이 은발 미소녀 여중생(추정)이 된것도 설명이 불가능한데, 뚝배기가 몸뚱아리와 이별하고도 살아있는걸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건 아인슈타인이 살아돌아와도 해명 못해. 과학을 넘어 판타지의 영역인데 이걸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는 할까?
공원 화장실에서, 나는 겨우겨우 붕대로 다시 머리를 고정하고 매우 충격을 받으신 엄마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오래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이후로 본적 없는 얼굴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 엄마가 울고 계셧지. 그 때 이후로는 정말 처음이다. 이래저래 굴곡 없는 인생이었으니까, 기억에 남을 충격적인 일이 별로 없던 탓이다.
근데 왜 갑자기 굴곡이 90도로 꺾이냐고.
“일단 집에 가서 이야기 해. 엄마.”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계속 이야기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너무 눈에 띄는 얼굴이고, 여기는 공원 화장실이다. 진지하게 이야기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나와 엄마는 조용히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엄마의 임기응변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내 머리가 분리되는 모습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공원 화장실까지 조용히 들어오지는 못했을 테니까. 사람 머리가 공원 한복판에서 떨어지면 필연적으로 혼란과 경악, 비명이 난무하는 공연장이 되었을 테니까. 적어도 내 귀에 들리는 비명은 그 여자애의 비명밖에 없었다.
여러분, 중형견 이상부턴 입마개 합시다.
니 개새끼는 네 개새끼지 내 개새끼가 아니에요. 응?
내 머리가 떨어진 덕분에 그 여자애에겐 제대로된 사과 하나 받지 못했지만,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내 머리가 떨어진게 더 중요하니까. 그 상황에 재빠르게 목 윗부분을 가린 엄마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게 모성애라는 건가.
다행히도 공원에서 집은 10분정도 걸으면 도착할 만한 거리였다. 나와 엄마는 말없이 공원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노을이 슬슬 지기 시작하는 시간, 나와 엄마 사이엔 발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왜 말 안했니?”
집에 도착했을 때,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엄마였다.
“...놀랄까봐 그랬어.”
나는 궁색한 변명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들키지 않는다면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숨길 수 있다면 최대한 숨기는게 좋다. 내 생각은 그랬다. 머리가 몸뚱아리와 분리되는 상황이 일반적인 상황도 아니고, 당사자도 충격이지만 그걸 보는 사람은 어떨까.
안그래도 걱정이 많으신 분인데 여기서 걱정거리를 하나 더 늘려드리고 싶진 않았다.
불효자 스택은 고등학생때 충분히 쌓았으니까. 아 이제 불효녀지.
말하지 않으려던건 아니다. 언젠가는 말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게 말하기 쉬운일이 아니다. 이유진이 이유/진이 되었는데 그걸 쉽게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좋게 말해 머리가 분리된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정체모를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레고르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겉으로는 인간 카테고리에 속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게 어이가 없다. 그래도 내심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슬라임이나 좀비같은 거였으면 내가 있는 곳은 집이 아니라 연구실이었을 테니까. 어쩌면 TS는 머리가 떨어진것에 대한 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왠 남정네 머리가 분리되는 것 보다는 은발 미소녀의 머리가 분리되는게 비주얼 상으로는 덜 충격적이니까.
그게 지금 상황에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게 문제지만.
분노와 비통함, 체념이 담긴 한숨이 나온다. 수많은 감정들이 들끓어 속을 태우지만, 겉모습만은 멀쩡함을 가장한다. 사회 생활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테크닉이다. 동시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뿜어져나오려는 탄산을 억지로 틀어막은 것처럼 속이 꽉 막힌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내 앞에 앉아계시는 엄마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내가 말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와 엄마 사이에 소리대신 아주 짦은 침묵이 오갔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니?”
몇 분간의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엄마였다.
글쎄, 어떻게 해야할까?
형태를 이루지 못한 말이 입속에서 탈출구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목구멍으로 다시 돌아간다. 사실상 취업길은 막혔고, 신분조차 없는 무국적자. 이보다 더 최악인 조건은 없다. 이유진의 1%조차 남지 않은 지금 나는 새롭게 신분부터 만들어야 했고, 신분을 만들어도 학력은 없으니 결국 정상적인 취업길은 막힌 셈이었다.
엄마의 도움으로 신분을 다시 어찌어찌 만든다고 해도, 문제가 너무 많다. 정상적인 취업은 이제 글렀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이제 남은건 인터넷 방송뿐이야!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인터넷 방송하는데 학력이나 신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차라리 이쪽이 더 가능성이 있다.
“인터넷 방송이나 해보려구.”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 일을 돕는게 좋지 않겠니?”
역시나, 예상했던 말이 돌아왔다. 확실히 얼마 안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목수일을 하셧고, 대학생 시절까지는 고향에 내려가면 많이 거들면서 배웠으니 아주 문외한도 아니다. 가구를 주문에 따라 만들기만 하는 일이었으므로 사람과 마주칠 일이 비교적 적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이 몸으로?”
“못할건 없지 않겠니?‘
확실히 못할건 없었다. 공사판에서 일하는 형틀공이라면 모를까, 가구를 만드는 일은 대게 개인 주문으로 만드는 일품이고, 고향집 작업장에서 이루어 지는 일이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될 일이 없었다. 이미 오랬동안 옆에서 작업을 도운 적이 있으니 적응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거라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도시 맛을 본 사람이 시골로 내려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도시의 편리한 인프라는 한번 맛 본 이상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중국집부터 치킨집, 피자집까지 배달음식이 넘쳐나고, 조금만 걸어가면 번화가가 있고, 온통 풀밭인 논밭밖에 없는 농촌과 화려한 조명이 밤을 비추는 도시. 젊은이는 다 도시로 떠나버렸어~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압도적인 인프라의 차이는 비싼 물가에도 도시에서 아둥바둥 터전을 잡고 살아가게 만드니까.
인터넷 방송이 실패한다면 꼼짝없이 내려가야만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못해도 1년정도의 유예는 있다. 1년안에 듀라한 스트리머로서 성공하면 되는거야!
“나는 여기에 남을게. 아직 자금에도 여유가 있고, 생각보다 불편하지는 않더라. 머리가 떨어진건 좀 많이 놀라기는 했는데 익숙해지니까 괜찮아.”
헬멧을 벗듯이 붕대로 고정된 머리를 뽑아낸다. 고정할 머리를 잃은 붕대가 풀어헤쳐져 어깨를 간질인다. 엄마가 흠칫 놀라며 충격받은 얼굴을 하셧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웃어보였다. 스마일. 스마일.
“이렇게 보여도 밥 먹는데도 문제 없어.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를 떼어놓고 밥을 먹어도 위장으로 넘어가더라. 그러니까 생활에 곤란한 문제는 없어.”
있어도 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있다고 말하면 당장 끌려갈게 눈에 보이니까. 마음 약한 것 같아 보여도 한번 결심한 것은 끝까지 해내는 김여사님이시다. 아니 뭔가 어감이 좀 이상한데. 이건 뭔가 좀 그러니까 말을 바꾸자.
“유진아. 네가 여자가 되어도, 생판 모르는 얼굴이 되어도, 머리가 떨어져도 넌 내 자식이란다.”
“정말 내가 유진인지 알 수 있는 증거가 없는데도?”
“네 말투, 행동이 내가 알던 아들과 똑같단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니?”
“...고마워.”
몸에 새겨진 버릇은 몸이 바뀌어도 그대로라는 건가.
“엄마는 가볼게. 밥 잘 챙겨먹고, 옷도 사람답게 입고 다니고, 전화도 자주하고...”
목소리가 작아진다. 회색빛 현관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 나는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술렁이는 머릿속이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가장 우려했던 일 중 하나가 그나마 무난하게 끝을 맺었다. 아마 한동안은 별 일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이래저래 피곤한 하루다. 뭔가 더 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를 향해 뛰어든다.
“아파...”
내 명치...살려줘...
머리를 껴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치를 강타한 통증이 찾아온 뒤에야 깨달은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침대를 굴러다닐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머리만큼이나 몸뚱아리도 정상은 아닌지, 고통은 금방 잦아들었다.
누워서 3년째 쓰고있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6시.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저녁이고 뭐고 먹을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그냥 이대로 자자. 하루종일 혹사된 두뇌가 휴식을 호소하고 있다. 오늘은 저녁이고 뭐고 일단 자자.
지금 자면 새벽에 일어나서 고생할 것 같지만, 방송준비라도 하지 뭐.
눈을 감고 조용히 잠에 빠져든다. 내 의식이 완전히 수면아래로 가라앉기 직전에, 나는 한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오늘 내가 휴방공지를 때렸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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