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8화 (8/352)

〈 8화 〉 7.나는 아무래도 ㅈ된 모양이다

* * *

7.자나깨나 개조심

“좀 여자애 같은 옷은 없는거니?”

“응.”

“옷 좀 많이 사야겠구나. 이왕 여자애가 되었으면 옷 좀 이쁘게 입어야지.”

전직 남정네한테 뭘 바라시는 건가요. 아니 전직 인간인가. 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백화점으로 향했다. 화사한 조명에 감싸이니 어쩐지 움츠러든다. 온통 어두온 옷으로 도배해서 그런가, 엄마의 시선이 따갑다.

아들일 때도 우중충만 옷만 입고 다닌다며 등짝스매싱을 당하곤 했는데, 여자가 되어도 달라질건 없나보다. 뭐, 겉은 바뀌었지만 속은 그대로니까.

백화점이라...솔직히 짐꾼으로 끌려다닐 때 빼고는 가본적이 없다. 아마 2년정도는 백화점에 발을 들인적이 없었다. 옷 같은거 신경 잘 안쓰는 스타일이고, 솔직히 백화점 옷들은 가격이 좀 비싸고.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의 월급쟁이였던 나에겐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그래도 이정도 외모라면 왠만한 복장은 다 소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거의 원래 나이에서 –10살정도 빠진 몸이다 보니 피부도 매끈하고 풍만하다고는 말 못하지만, 몸의 굴곡은 확실하게 있으니 라인은 예술적이다.

모가지만 안떨어졌다면 말이야. 그 어떤 패션이라도 소화할 수 있는 몸매라도 머리가 목에 안붙어있는데 소화가 가능할 리가 없다. 목없는 마네킹 생각하면 어쩌면 충분히 매력적일지도 모르지만, 무기물인 마네킹이랑 유기물인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는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내 몸뚱아리는 모두가 ㅜㅑ를 외칠법한 섹시한 비주얼을 ‘끼야아악!’을 외치게 만드는 충격적인 비주얼로 만들어내는 재능이 있다.

심장을 놀라게 하는 천재! WA!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멍하니 걷다보니 어느샌가 백화점 앞이었다. 여기서 내 첫 정장을 맞췄던 것 같은데. 이제는 여성복을 맞추러 오다니,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구나. 목을 움직일 수가 없어 눈알을 뒤룩뒤룩 굴린다. 어쩐지 머리와 목 사이에 땀이라도 난 듯이 불쾌한 느낌이다.

마치 붙어있으면 안될 부위를 억지로 붙인 것처럼.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자 화사한 조명이 내 눈을 간지럽혔다. 여성복은 3층이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목이 뒤틀릴까 조심스럽게 걸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다.

“엄마가 평생 여성복 사주러 올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세상일은 참 모르는 일이지 않니?”

“나도 엄마랑 백화점에 옷 맞추러 다시 올거란 생각은 못했어.”

그리고 모가지가 떨어진 상태로 말이야.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머리가 엇나가지 않았나, 혹은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신경을 쓰니 머리가 아프다. 안그래도 일할때나 친구 만날 때 빼면 거의 집에서 안나가는 프로 집돌이가 나다. 아 이제 집순이지.

어쨌든, 나는 엄마를 따라 3층에 도착했다.

어...음...어...음...어...

눈앞이 핑핑 돈다. 여성복 정장부터 캐주얼한 복장, 유니섹스 캐주얼등 수많은 옷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할말을 잃고 여성복의 숲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까짓거 입어보면 되겠지 뭐,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오니 엄청나게 긴장된다. 흡사 첫 수능때가 생각나는 긴장에, 손이 축축해진다. 이유모를 죄책감과 부끄러움, 껄끄러움이 이리저리 뒤섞여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내가 망부석마냥 굳어있자, 엄마는 혀를 차며 내 손을 잡고 매장안으로 이끌었다. 나는 멍하니 엄마의 손길을 따라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나를 이끄는 손길도, 여자가 되었다는 현실도.

일주일동안 나를 거의 다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선 갑작스레 바뀐 몸에 맞추어 변해가는 정체성에 대한 저항이 끝나지 않은 듯 하다. 그런 나에게 옷 하나가 내밀어진다. 비교적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 옅은 회색 셔츠.

“입고 나와보렴.”

거부는 선택지에 없다는 듯 나에게 옷을 떠넘긴 엄마는 다른 옷을 찾으러 매장 깊숙이 들어간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탈의실로 들어갔다.

나는 옷을 벗으려다 흠칫했다. 생각해보니 저번엔 무슨일이 있었던가. 아무생각없이 무지성 옷벗기를 시전하다 머리가 뽁하고 빠지지 않았던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게 사회적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더더욱.

조심스럽게 붕대를 풀고 머리를 선반에 올려놓는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내 몸으로 향하게 맞춰놓고, 후드를 벗는다. 후드를 벗으니 스포츠브라만 입은 내 몸뚱아리가 보인다. 아직도 내 몸 같지가 않은데, 공기가 서늘해서 그런지 좀 그렇다. 곧이어 셔츠를 입고 다시 머리를 목위에 놓고 붕대를 감았다. 이거 불편하네.

“옷이 날개네 날개야. 진작에 꾸몄으면 좀 좋니?”

“어머, 따님이 엄청 이쁘시네요. 와.”

거기 입좀 다물어 주시면 안될까요. 얼굴이 뜨겁다. 목이랑 떨어진 주제에 이런 부분은 그냥 보통 사람이랑 다를바 없다. 그냥 붙어주면 안될까. 직원눈나가 내 얼굴을 보고 감탄하는것도 잠시, 엄마는 꽤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나를 훎어보더니, 가져온 옷가지들을 나에게 떠안겼다.

이게 몇벌이야.

그렇게 탈의실을 드나들며 몇벌이나 되는지 모를 옷을 갈아입으며 눈요깃거리가 되고 있으니, 어느새 직원들이 늘어있었다. 언제 입소문이 난걸까. 어차피 평일 오후, 코로나 시국이라 사람도 없다 구경이라도 하겠다는 걸까. 직원 유니폼들 사이에 드문드문 다른 복장이 보이는 것을 보니 손님중에서도 나를 구경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저 구경거리 아니거든요?

그만 갈아입고 싶다...

수많은 시선에 노출되니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숨겨야 할게 있는 만큼 시선이 부담스럽다. 아, 수군수군 대는 이야기를 슬쩍 들어 보니 내 목에 있는 붕대가 화제에 오른 모양이었다.

확실히 붕대가 옥의 티긴 하지. 외출하기 직전에 새로 갈아 깨끗하기는 하지만, 붕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처를 감는데 사용하는 물건인 것이다. 그런데 그 붕대가 목에 감겨있다? 깁스라면 차라리 사람들이 덜 관심을 가지겠지만, 붕대만 덜렁 감겨있는 목은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부정적인 결론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내가 그럴리는 없지만. 애초에 이제 교살하고는 영원히 연이 없는 몸이다.

목 매면 머리만 달랑달랑 매달려 있을텐데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만 갈아입고 싶다. 30벌즈음 갈아입었을까, 나는 엄마에게 슬슬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엄마도 주변 사람들이 모인게 부담스러웠는지, 입어보았던 옷가지중에 몇 개를 쓱 빼고는 나머지를 계산했다. 나는 후드티를 입고 나오려고 했지만, 엄마가 그런 우중충한 꼴은 못본다며 산 옷중에 그나마 캐주얼해 보이는 셔츠와 청바지와 자켓을 입혔다.

거울을 슬쩍보니 왠 외국 모델이 서있네. 얼굴이 받쳐주다보니 붕대도 일종의 패션 아이템처럼 느껴졌다.

“힘들어...우리 잠깐 카페에서 쉬고 가자.”

“어휴, 이게 뭐가 힘들다고 그러니.”

30벌 갈아입는게 힘든일이 아니야...?

백화점을 나오니 4시. 뭘 하던 애매한 시간이다. 밥을 먹기엔 이르고, 그렇다고 집에 다시 들어가기엔 좀 아쉽다. 엄마와 나는 이야기 끝에 이 근처에 있는 공원을 거쳐 집에 돌아가기로 합의했다.

시간이 시간이라 그런지, 공원은 한산했다. 딱 적당한 밀도여서, 백화점 속의 숨막히는 시선들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엄마와 함께 공원을 걷는다. 적당한 크기의 가로수들과,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런데 왜 나를 볼때마다 짖는거야.

개는 귀신을 볼 수 있다더니 진짜인가?

개들이 하나같이 나를 볼때마다 겁을 먹거나 짖어대니 나는 개주인들에게 무수한 사과세례를 받아야 했다. 아니 얌전하던 애가 왜이래, 라며 말하던 사람이 6번정도 지나갔을 즈음에, 사건이 일어났다.

“어, 어? 루비야 왜 그래?”

아, 또 짖네.

나름 개를 좋아하는 편인데, 개들이 나만 보면 경계하기 바쁘니 슬슬 우울해지려고 한다. 이번에는 꽤 덩치가 큰 개였던지라, 나와 엄마는 잠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대형견 까지는 아니지만 몸길이가 1미터를 좀 넘어보이는 충분히 사람 목덜미 정도는 물어뜯을 수 있는 몸집이라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이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무서운건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 나와 외견상 연령이 나름 비슷해 보이는 여자애다. 통제가 되나? 다른 개들과는 다르게 저 귀여운 이름과는 다르게 험악한 인상을 가진 개는 목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나를 노려본다.

주인이 목줄을 필사적으로 당기고 있지만, 여자애가 무슨 힘이 있어서 중형견을 당길 수 있을까.

“아, 시발.”

나는 결국 주인을 끌고오면서까지 나에게 달려드는 개를 보며 육두문자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개같은.

개의 아가리가 눈에 들어온다. 침으로 가득한 입 속의 이빨들은 당장이라도 내 몸을 갈기갈기 찢을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워 보였다.

아 내 등짝. 땅바닥에 부딪힌 등에 화끈한 통증이 올라온다. 돌에 찍힌거 같은데. 존나 아파. 내 얼굴이 개의 침으로 젖었다. 입냄새 좆같네. 개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밀어내고 있지만 자세가 불안정해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이 미친개가 누구 딸을 건드려!”

깨갱,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가벼워 졌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으니 핸드백이라도 휘두르신 건가?

나는 그제서야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려 했지만, 엄마의 우악스런 손길과 함께 내 얼굴에 무언가 덮어씌워 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진짜 ㅈ됐다.

아무래도 나는 진짜 ㅈ된 모양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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