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6. 엄마
* * *
저런...좆됐나봅니다.
앞으로 어찌될까요?
상상하고 싶지도 않네요.
내 손바닥을 간질이는 진동에 정신을 차린다. 받지 않는 다는 선택지는 없다. 지금 받지 않는 다고 해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전화기를 아예 끄고 살아도 그걸 이상하게 여긴 부모님이 경찰에 신고하거나 아니면 직접 찾아오시거나. 어느쪽이던 나에게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건 명백했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혈액검사? 과연 지금의 나와 부모님의 DNA가 같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설령 유전자가 일치 하더라도 우연의 일치거나 조작이라고 생각할만큼 공통점 하나 없는 외모로 변한 내가? 전형적인 동양인인 부모와 유럽쪽, 아일랜드계가 연상되는 백인이 되어버린 내가? 심지어 머리도 없는데? 평범하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은 하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머리가 떨어진걸 어떻게 설명해야 돼?
이해심이 많고 적고 여부를 떠나서, 인간은 머리가 없는 것을 ‘시체’로 간주한다.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주가 아닌 것이다.
최악의 경우엔 좀비 비스무리한걸로 판정되서 공격당하는 것이다. 아마 잘 설명하면 그 정도 까지는 아니겠지만, 부모님이 충격을 받는건 당연한 수순이고, 나는 어떻게든 머리가 제대로 붙어있는 정상인을 연기함으로써 최대한 충격을 줄여야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내가 ‘이유진’임을 증명해야 한다.
은발 미소녀로 변한 것도 이미 상식의 범주를 일탈했는데 생명체의 기본 법칙마저 일탈해버린 모습을 보여주면 부모님이 감당하실 수 있을까? 나조차도 며칠동안 패닉에 빠져있었는데? 주어진 현실이 녹록하지 않았다면 몇날 며칠을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진동은 계속된다. 목소리, 어떡해야 할까. 여친이라는 설정이라도 밀어? 하지만 그래봐야 ‘나’에게 바꿔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전화를 받는 대상에서 전화를 건네주는 대상이 되는 것 뿐이니까. 다시 전화한다고 말하고 끊어볼까? 될까?
진동이 울린다.
손에서 식은땀이 휴대폰을 불쾌하게 적신다. 다한증도 아닌데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이 불쾌하다. 옷에 땀을 쓱쓱 닦으며,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유진아 ,요즘 왜이렇게 전화를 안하니? 엄마가 일주일에 한번은 꼭 연락하라고 했지?]
“...아.”
[...죄송해요. 전화를 잘못걸었나 보네.]
내 목소리를 들은 엄마는 당황하는 목소리로 나에게 사과했다. 생전 듣도보도 못한 여성의 목소리라 전화를 잘못 건 것으로 착각하셧나 보다.
역시 이렇게 되는건가. 이대로 전화가 끊기길 기다릴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유혹했다. 아주 달콤한 유혹이었다. 지금 전화를 끊는다면 아주 잠깐은 유예가 생긴다. 그럼 그 사이에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근거 없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근거 없는 희망만큼 사람을 유혹하는 게 있을까?
이대로 조용히 넘어가면 된다. 집은 이곳에서 꽤 멀다. 오시는데는 시간이 걸리겠지. 그럼 며칠 정도는 평화롭게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만!”
하지만 그게 나중에 더 큰 폭탄이 되어 돌아올거라는걸 난 알고 있다.
지금 문제를 회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해결할 수 있을 때 해결한다. 부모님이 나에게 자주 말했던 것이 아닌가. 내 잘못이던 아니던 문제는 최대한 빠르게 해결되어야 한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엔 나를 집어삼킨다.
[네? 혹시 유진이 여자친구인가요?]
“...나야. 엄마. 이유진.”
[너 또 휴대폰에 목소리 변조어플 같은거라도 깔았니?]
몇 년 전에 장난으로 목소리 변조 어플을 썼다가 혼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철없던 시절의 기억이다. 하지만 대화의 물꼬를 어떻게든 틀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아니야. 나...여자가 됐어.”
[나잇살도 먹은애가 그런 장난 치면 안되지! 어서 어플인가 뭔가 끄고 제대로 말해.]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먼 곳에서 자취하던 아들이 갑자기 여자가 된다는 말을 누가 믿겠어? 요즘은 트렌스젠더에 대한 이야기가 TV에서 꽤 나오다보니 어쩌면 그쪽으로 생각하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으신 듯 했다.
“아니, 진짜야. 나 일주일전에 갑자기 여자가 됐어.”
[...장난치는거 아니지, 아들?]
“정말이야.”
최대한 단호하게, 감정을 담아서 이야기한다.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내 진지한 목소리에 전화기 너머에는 당혹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라도 그럴거다. 아들이 갑작스레 ‘나 딸이 됐어요!’하는데 담담하게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내가 엄마였어도 못믿을거란건 누구보다 잘 안다. 엄마의 경계심 섞인 목소리에 왠지 모를 우울함이 밀려왔다. 무조건 적인 내편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듣는 의심 가득한 목소리는 너무 낯설었다.
“...진짜야. 나 여자가 됐어. 그리고...”
나는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말해도 될까?
이미 엄마의 머리는 내가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복잡하다. 나는 책상위에 널부러진 붕대 끝자락을 잡았다. 숨겨야 할까, 알려야 할까? 이보다 더 난해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 트렌스젠더가 알려진지는 오래되었으니 그건 어찌어찌 납득할 수 있다 쳐도, 내 머리가 목과 분리된채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건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은 미지의 영역이다.
숨긴다. 어색하겠지만, 붕대를 감고 다쳐서 그렇다는 변명을 하면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속일 수 있을까? 밖에서야 후드티와 캡모자, 마스크로 머리와 목을 최대한 노출 시키지 않을 수 있었지만, 집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역시 말할까?
[...알았어. 내일 당장 갈테니까 어디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어...엄마 사랑해.”
전화를 끊는다. 더 이상 감정이 북받쳐서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엄마의 목소리가 낯설다. 언제나 듣던 걱정어린 목소리가 아닌 의심과 경계가 섞인 목소리는 내 멘탈을 박살내기에 충분했다.
눈 앞이 흐리다. 나는 머리를 품에 껴안고 울었다.
“...정말 유진이니?”
“응.”
너무 세게 묶었다. 붕대로 묶인 목이 답답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붕대를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현관문에 서서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엄마를 보며 웃었다. 내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여자도 홀릴 아름다운 미소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마일, 스마일.
“엄마 생일은 3월 13일. 좋아하는건 봄나물, 싫어하는건 생선...맞지?”
여전히 미심쩍은 시선을 숨기지 못한채로, 엄마는 마지못해 수긍했다.
“그걸 어떻게...?”
반신반의한 목소리.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엄마가 내 말을 믿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느꼈다.
“정말이야. 일주일 전에 이렇게 변했고, 못 믿을까봐 말 못했어. 미안해.”
“아이고, 우리 아들...아니 이젠 딸이라고 불러야 되니?”
“편한대로 불러줘.”
딸이던, 유진이던, 결국 나니까. 자아 정체성이니 뭐니를 따지기 이전에 나는 변한 나도 받아들였다. 별다른 수가 없었으니까.
“...유진아, 어쩌다가 그렇게 변했는지 짐작가는건 없니?”
“하나도 없어.”
“그럼 그동안 옷은 어떻게 했니?”
“속옷가게에서 속옷을 사고 옷은 그냥 내걸 입었어. 좀 크긴 하지만 입을만 했어.”
누구에게 보여줄건 아니니까. 일주일 동안 집구석에서 한거라곤 방송뿐이니 누구에게 보여줄 만한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택배도 문앞에 내려놓으라고만 했으니까. 엄마는 걱정 가득한 눈길로 내 몸을 훎었다. 헐렁한 티셔츠에 흘러내리지 않도록 벨트로 꽉 조인 청바지가 엄마 눈에는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했다.
“아이구...그럼 옷도 다 새로 사야겠구나.”
“응.”
“지금 당장 사러가자꾸나.”
“지금? 나 혼자 사러가도 되는데?”
“귀찮다고 사주는 옷만 입던 애가 옷을 볼줄은 아니?”
아, 아앗. 정곡을 찔린 나는 할말을 잃고 수긍했다. 그제서야 내 목의 붕대를 눈치챈 엄마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쳤니?
네.
“병원에 가야하지 않겠니?”
“괜찮아. 크게 다친것도 아니고.”
“그렇게 둘둘 말아놓은게 크게 다친게 아니라고? 헛소리 마렴.”
“진짜야.”
내 강경한 거부에 엄마는 마지못해 추궁을 그만두었다. 애초에 내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병원에 함부로 가기도 그렇다. 나는 지금 무국적자에 신분없는 불청객인 것이다.
“신분증부터 다시 만들어야 겠구나.”
신분증. 한국에서 일을 하던 어떤 일을 처리하던 신분증은 필요하다. 근데 내 신분증을 만들 수 있을까. 관공서에 ‘아들이었는데 갑자기 딸이 돼서 신분증을 바꾸러 왔어요!’라고 할 수는 없는데.
“엄마가 아는 사람중에 구청장이신 분이 계시니까 그분에게 부탁드려볼게.”
“고마워. 엄마.”
“고맙긴, 내 아들인데 엄마가 챙기는게 당연하지.”
밥은 먹었니?
안먹었어.
그럼 밥부터 먹자. 많이 배고프지?
...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