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복수 (1)
전생에 들었던 말.
-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이면, 영혼이 오염됩니다. 죄책감에 괴로워할 날이 반드시 찾아올 테고요. 손에 자비를 두심이 어떠십니까?
아마 의뢰를 받고 상업 도시 타란에 있던 마약 조직 놈들을 박살 내던 때였을 것이다.
괴력의 기사라는 고상한 이명보다는, 마수 도살자나 악인 분쇄기라는 흉흉한 이명으로 더 많이 불리던 시절.
당시 임무를 함께했던 고위 사제의 그 말에, 자신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 그럼 전 괜찮겠네요.
- ……예? 조, 조금 전에도 살상을 꽤…….
당황하는 사제의 얼굴을 보며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 나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인간쓰레기들을 처리한 적은 많아도요.
사제가 끔찍한 농담이라도 들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은 진심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이 울프 패거리는 그가 살면서 인간쓰레기를 분류하는 데 확실한 기준이 되어 준 놈들이었다.
저 투실투실한 살덩이나 근육은 전부 유민들을 노예로 팔고 빈민가의 아이들을 거지나 창녀로 만들어 쥐어짠 결과물이니까.
‘다 죽어 마땅한 짐승들, 아니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지.’
개인적인 원한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타이니가 그렇게 살벌한 생각을 하며 남은 쓰레기들을 바라보자, 그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사람을 휘둘러 사람을 박살 내 버리는 엄청난 퍼포먼스의 심리적 임팩트는 언제나 확실했다.
특히나 그 동료들에게는.
“두, 두목은 아, 안에 있다.”
“있다?”
“이, 있습니다!”
“사, 살려 주십시오!”
“그래……. 살려는 줄게.”
반항을 포기한 나머지 셋은 사이좋게 한쪽 팔다리를 완전히 박살 내 주었다.
다시는 회복할 수 없도록.
“끄으으! 왜, 왜! 우린 덤비지도 않았는데……!”
놈들은 억울해하는 듯싶다가도.
“응? 모가지도 비틀어 달라고?”
“…….”
금세 입을 다물었다.
‘쓰레기들.’
반항하지 않기에 죽이지 않은 것뿐이다.
그리고 그 생사여탈의 기준은 저택 안에 있는 놈들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될 것이었다.
‘울프, 그놈만 빼고.’
저택을 바라보는 검은 눈에 다시금 불꽃이 피어올랐다.
“정문에 무슨 소란이야! 알아봐!”
“예.”
명령을 내리는 붉은 머리와 고개를 숙이는 건달 두 놈.
붉은 머리의 얼굴도 익숙했다.
누나가 죽었을 때, 대머리와 같이 있던 놈.
“어이, 꼬마 너 뭐야!”
“비켜!”
“울프, 2층에 있나?”
“뭐……?”
이상하리만큼 당당한 타이니의 태도에 순간 멈칫하던 건달들은, 이내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옷차림을 보고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지었다.
“이 거지새끼가……!”
이럴 땐 몸집이 작은 덕을 좀 봤다.
이 쓰레기들이 자신을 칠 때면, 항상 공이라도 차듯이 발부터 내밀었으니까.
아직은 손이 작은 탓에 성인의 발목이 한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너무 커서 손에 안 들어오면.’
콰직.
“끄아악!!!”
으스러트려서 압축하면 되니까.
‘손잡이’를 잡는 순간 터져 나온 비명을 비웃어 준 타이니는 새로 얻은 ‘무기’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꽝!
사람과 사람의 몸이 부딪칠 때도 폭음이 날 수 있음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물론, 그 증명을 훌륭하게 도와준 망치와 못은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게 망가졌지만…….
뭐 ,알 바 아니었다.
“너, 너, 너. 뭐, 뭐야!?”
비명과 폭음이 만들어 낸 기가 막힌 하모니는 아주 듣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누가 복수가 허망하다 했던가.’
이리도 달콤한 것을.
살벌한 미소를 지어 보인 타이니는 다시금 붉은 머리를 향해 다가갔다.
“왜 네놈들은 한 번 물으면 대답을 안 할까?”
“오, 오지 마, 이 새끼야!”
그가 다가가는 만큼 뒷걸음질 치던 붉은 머리는 이내 뒤쪽에 있는 계단의 턱에 걸려 멈춰 섰다.
그 꼴이 스스로의 추태를 깨닫게 해 주었을까.
창백해진 얼굴이 일순 붉어지더니, 고함이 터져 나왔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울프네 집 아냐? 그래서 묻잖아. 그놈 2층에 있나?”
바로 코앞에서 말을 하려니, 고개를 쳐들어 올려다봐야 했다.
아직은 이 몸이 너무 작다.
그래서.
“이, 이…….”
콰직.
대답을 망설이는 놈의 자세를 친절하게 낮춰 주었다.
“끄아아악!”
두 무릎이 동시에 박살 난 붉은 머리가 요란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자 놈이 해 주지 않은 대답이 위층에서 들려왔다.
“침입자다! 대인께 알려!”
“예!”
다다다.
“네 대답이 필요 없어졌네?”
“으, 으아, 으아아. 악!”
“닥쳐.”
뻐억.
이번에 알 수 있었던 건, 아이의 작은 주먹도 성인 수준의 체중과 마나의 힘이 더해지면 사람의 두개골을 부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계단 위와 저택의 좌우에서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양아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뭐, 뭐야!?”
“애새끼 하나뿐인데!?”
“저 애새끼가 적이라고!?”
“저 피……! 설마 진짜!?”
“뭐야, 이거!?”
열여섯 살임에도 엄청나게 덩치를 키웠던 전생과는 반응이 전혀 달랐다.
물론 그렇다고 봐줄 마음은 없었지만.
쿵.
내디딘 발에 힘을 더해 튀어 나가듯 돌진한 그의 손이 가장 앞에서 주춤하던 건달의 발목을 순식간에 잡아챘다.
콰직.
“끄아악!”
꽈아앙!
“뭐, 뭐……!?”
“뭐야!”
한 놈을 휘둘러 전열의 깡패 다섯 놈을 박살 내 버리는 순간에도, 건달들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뭐……!?”
“이게 뭔……!?”
무언가 번쩍하더니 동료들이 박살이 나 쓰러지는 모습.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광경을 만들어 낸 당사자는 연달아 같은 광경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것이 현실임을, 그들이 지옥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왔음을 강제로 깨닫게 해 주었다.
꽈아앙!
“괴, 괴물이다!”
“으아아악!”
한 번의 휘두름에 패거리 네다섯 명이 피 보라를 일으키며 터져 나가고.
꽈아앙!
“히이익!”
“괴물 꼬마다!”
두 번의 휘두름에 뒤를 노리던 놈들까지 한 방에 쓸려 나갔다.
결국.
“흐, 흑엑!”
“뒤, 뒤로……!”
“도, 도망 가!”
“악마다!”
별의별 소리가 다 튀어나오더니, 이내 다가오던 깡패들이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불과 다섯의 건달을 휘둘러 20명의 추가 피해자를 만들어 내자, 대다수의 깡패들은 달려오던 기세보다 훨씬 빠르게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타이니는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과했나.”
쯧.
“어쩔 수 없지.”
스스로가 만들어 낸 참상을 일견한 그는 짧게 혀를 차며 손을 풀었다.
연달아 사람을 휘두르는 것은 아직 작기만 한 이 몸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과격하게 마나를 썼더니, 너무 화끈한 결과가 나온 듯했다.
‘이거, 뒷수습에 시간 좀 걸리겠군.’
울프의 조직을 정리해야 인베어가 깨끗해지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
그래야 엠마를 비롯한 비슷한 처지의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누나도 웃을 수 있을 테고.’
하늘에 있을 누나를 떠올린 그가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금 돌아가게 되겠지만,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은.
‘울프부터.’
다시금 각오를 다진 타이니는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울프 패거리를 무력으로 정리하려면 세 가지 난관을 넘어야 했다.
첫 번째는 기백에 달하는 놈의 부하들. 그중 절반이 놈의 근처에 상시 몰려 있다는 것.
하지만 그놈들은 이미 와해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쌍둥이 형제였다.
2m에 가까운 키에 험상궂은 얼굴, 푸르스름한 스킨헤드에 흉터투성이 상반신을 상시 드러내 놓고 다니는 놈들.
‘이름이 뭐였더라?’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함인지 굳이 상체를 드러내 놓고 다니는 한심한 놈들이지만, 용병 출신이라 칼질도 꽤 하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마나유저였다.
늦은 나이에 각성한 탓에 수련 기사가 될 수는 없었겠지만, 어쨌건 마력 사용자다.
아무리 1단계 마나유저라 한들 B급 용병 수준은 될 터.
그들이 왜 남작령 뒷골목 거지패 두목 겸 포주인 울프의 손발이 되어 따라다니는지는, 그들을 아는 모든 이의 의문이기도 했다.
“아, 맞다. 랜더스 형제.”
타이니는 뒤늦게 떠오른 이름을 중얼거리며 놈들에게 태연히 다가갔다.
오른쪽에 있던 거한이 타이니를 노려보며 십자 흉터가 남은 볼살을 씰룩였다.
“……아래층의 소란이 정말 네놈 짓이냐?”
“그래, 그리고 여기도 곧 소란스러워지겠지.”
쌍둥이 형제가 자리한 뒤쪽의 휘황찬란한 문을 보는 타이니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형, 마나유저야.”
“알고 있다. 저 나이에……. 믿을 수가 없군.”
이내 타이니가 한 걸음을 더 내딛자 랜더스 형제가 바로 칼을 빼 들었다.
챙.
롱소드 형식의 길쭉한 검이 아니라 완만하게 휘어진 곡도.
동방에서 전래되었다는 카타나(katana) 형식의 검 같았지만…….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확실히 조잡하군.’
수준 있는 동방의 장인이 제대로 제련한 명품 카타나는, 대리석 정도는 검 자체의 예기(銳氣)만으로도 잘라 낸다고 하는 보물이다.
당연히 이런 놈들이 그런 보물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제대로 만들어진 물건을 쓸 줄 알았다.
하지만 겉모습만 그럴 듯한 하급품이었다.
무늬를 보니 접쇠나 단조로 제련을 거친 것도 아니고, 주조로 대충 찍어 낸 것 같은 느낌.
‘틀에서 찍어 낸 휘어진 칼날이라니.’
어디서 장식품을 사 왔나.
일반 롱소드보다 부러지기 쉬운 싸구려를 들고 자세를 잡고 있는 놈들을 보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물론, 그렇다 해도 마나유저가 휘두른다면 사람 목 정도는 쉽게 베어 버릴 테니 방심할 수는 없었다.
“방 안에 있는 니네 주인도 같이 덤비라고 하지, 왜? 다 듣고 있을 텐데?”
“……꼬마 놈 하나 처리하는 데 대형께서 나서실 필요는 없다.”
“그게 아니겠지.”
“뭐?”
울프의 비밀에 대해서는 전생에도 한 번 겪어 봐서 알고 있었으니, 낚시에는 아주 적합한 떡밥이었다.
“남한테 싸우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어서는 아니고?”
“!?”
“너……!?”
쌍둥이의 눈동자가 동시에 흔들리는 순간.
탓.
자세를 낮춘 타이니가 그들의 무릎 아래쪽으로 번개같이 파고들었다.
“이놈!”
까아아앙!
황급히 내려친 형의 카타나에 돌바닥에서 불똥이 튀고.
일순간 방향을 바꾼 타이니의 움직임에 낚인 동생의 카타나가 애꿎은 형의 카타나를 후려쳤다.
쩡!
그리고 그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소년의 짧은 다리가 정면에 보이는 쌍둥이의 왼쪽 무릎과 오른쪽 무릎을 동시에 강타했다.
우드드득.
“억!”
“아악!”
꺾여선 안 되는 방향으로 꺾인 다리들.
하지만 용병 짬밥을 꽁으로 먹지는 않았는지, 쌍둥이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본능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당황해서 허를 찔린 첫 격돌과는 달리, 흐트러진 자세에도 쌍둥이의 칼은 앞뒤로 퇴로를 막으며 사선으로 정확하게 휘둘러졌다.
하지만 그 순간.
스각.
허공을 가르는 두 자루의 카타나 사이로 조그만 인영이 반 박자 빨리 공중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동시에.
뻐벅!
작은 발에 강타당한 쌍둥이의 머리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목이 크게 꺾일 정도의 충격에 그들이 눈동자가 멍하니 풀리는 순간.
콰드득.
무언가 짜부라지는 소리와 함께 형의 입에서 소름 끼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악!”
그리고 그 비명의 울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꽈아아아아앙!
어느새 번개처럼 휘둘러진 놈의 몸이 동생을 강타하더니, 방금 전까지 형제가 지키고 섰던 화려한 문을 부수며 사이좋게 방 안으로 날아갔다.
우당탕탕탕.
“끄으으.”
“끄르륵.”
마나유저답게 즉사하지는 않은 모양이었지만, 한눈에 봐도 전투 불능. 앞으로 사람 구실이나 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이 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참상을 만들어 낸 장본인은.
탁. 탁.
“오랜만에 손맛 제대로구나.”
호쾌하게 손바닥을 털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갑작스레 날아온 두 놈을 구겨진 안색으로 바라보던 남자가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꼬마, 네가 어떻게……?”
신음처럼 튀어나오는 회색 머리 거한의 목소리.
자기가 지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울프의 말에 타이니는 차가운 미소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