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6화 (6/500)

6화. 복수 (2)

“유언은 그게 끝이냐?”

“콩알만 한 놈이 감히……!”

빠각.

“끄아악!”

고함을 지르던 울프의 오른쪽 무릎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돌진한 타이니의 작품이었다.

그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지는 순간, 울프의 왼쪽 발목 또한 타이니의 작은 손에 잡혀 으스러졌다.

와드득.

“끄아……!”

뒤이은 비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울프의 육중한 몸이 커다란 호를 그리며 반대편으로 휘둘러져 돌바닥에 처박혔다.

콰앙!

“……끄, 끄륵.”

요란하던 비명은 낮은 신음과 함께 뚝 끊겼고, 이내 그는 게거품을 문 채로 발작하듯 간헐적으로 몸을 떨어 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타이니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쉽게?’

자신이 전생에 비해 너무 강해졌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 버리면 분이 풀리지 않는다.

으스러진 놈의 발목을 손에서 놓은 타이니가 성큼성큼 걸어가 신음을 흘리는 놈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컥!”

찰진 소리와 함께, 아예 넋이 나가 뒤집히려던 푸른 눈에 다시금 희미한 빛이 돌아왔다.

그런 놈을 내려다보며 타이니는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야지. 네 밑천이 이게 전부가 아니잖아. 변신을 해야지.”

그 말에 빛이 돌아오는가 싶던 울프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렸다.

울프 패거리를 정리할 때 넘어야 할 세 가지 난관. 그중 두 가지를 처리했으니, 이젠 마지막 하나가 남는다.

바로 그 두목, 울프. 놈이 수인족에 속하는 늑대인간이라는 것이다.

전생에도 그를 직접 대면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로. 놈이 왜 울프라는 가명을 썼는지, 그가 변신한 모습을 보고 나서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마 마지막 남은 자부심일까?’

수인족. 동물과 사람의 형상, 그리고 그 중간 형태인 ‘크로스 폼(Cross-form)’까지 취할 수 있는 종족.

신체 능력만으로는 모든 아인종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종족이었다. 그런 만큼 자신들의 종족에 대한 자부심도 강해서, 다른 국가에 가더라도 굳이 정체를 숨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이 필레스 영지가 속한 아스란 제국이 대다수 수인족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웨어비스트 왕국과 수백 년째 대립 중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수인족이 정체를 숨길 수밖에 없는 유일한 나라.

“아스란의 구석진 영지에서 포주 노릇을 하는 수인족이라. 그 사실이 알려지면 곱게 죽긴 힘들걸?”

냉소적인 말과 함께, 타이니는 울프의 손을 밟고 선 발에 한층 힘을 더했다.

콰직.

“끄아아아!”

짓밟힌 손가락 뼈가 수수깡처럼 쉽게도 부러지자, 놈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골격이 통째로 변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박살 내 버린 두 다리의 뼈까지 재생되는 믿지 못할 광경에, 타이니는 오히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있는 힘껏 발악해 봐라.’

놈이 모든 능력을 끄집어내도록 유도한 뒤에, 그것을 처참하게 무너트리기 위한 자극이었다. 놈을 죽이기 전에 처참한 절망감을 심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건 방심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어차피 전생에서도 한 번 죽여 본 적 있는 상대이니, 더 강해진 지금 상태에선 못 이길 리 없었으니까.

그런데.

“크륵, 크르르.”

정작 놈의 상태가 이상했다.

전생에는 분명 2m가 훌쩍 넘는 거대한 덩치의 은빛 늑대인간으로 변신했었는데…….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나?’

순간 자신의 기억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놈의 모습이 전생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희번덕거리는 눈동자에 이성의 빛이 사라져 버린 것은 그렇다 치고, 체격이 커지기는커녕 본래의 체격 그대로 등만 비스듬히 굽어진 모습은 오히려 덩치가 줄어든 듯한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기억 속 은빛이 아니라 검붉은 털이 듬성듬성 나 있는 꼴은 마치 늑대가 아니라…….

“……개 같은데?”

비웃는 게 아니라, 정말이지 병든 개와 같은 몰골이었다.

“크아아앙!”

무심코 뱉은 혼잣말이 자극이 되기라도 했는지, 그 순간 놈이 붉은 눈깔을 번득이며 괴성과 함께 돌진해 왔다.

문을 가로막고 있던 쌍둥이 형제보다는 확연히 빠른 속도였다.

게다가 작은 단검처럼 날카롭게 돋아난 손톱들은, 연약한 인간의 몸 따위는 단번에 찢어 버릴 듯한 살벌한 기세를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임이 단순해.’

파아아앙.

슬쩍 비켜선 것만으로 허공을 가르며 빗나가는 손톱들.

가뜩이나 작고 기민한 타이니의 몸은 절묘한 스텝을 밟으며 손쉽게 옆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캬아악!”

파바박.

늑대인간의 손은 연신 허공을 난도질했다.

“여기다, 멍청아.”

뻑.

“캥!! 크아앙!”

엉덩이를 걷어차 주니 그제야 다시 목표를 찾아 달려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마리의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한심한…….”

뿌드득.

이런 걸 기대한 게 아니었다.

타이니가 원한 것은 이런 형편없는 모습이 아니었기에 절로 이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변신 전에 너무 큰 타격을 입혔나? 아니, 아니야. 그렇다고 늑대인간이 털 빠진 개가 된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는데. 털 색깔도 다르고.’

전생에 봤던 울프의 변신한 모습은 분명 은빛 털의 늑대인간이었다. 한데 지금은 검붉은 털이 돋아난 개에 가까웠다.

‘물론 그것도 이상하긴 했지만…….’

순수한 은빛의 웨어울프(Werewolf), 혹은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라고도 불리는 이 수인족은, 힘의 강약과는 상관없이 웨어비스트 왕국 내에서도 특별 취급을 받는 종족이었다.

전설상으로는 수인족의 기원으로 알려진 데다가, 웨어비스트 왕실의 직계들이 주로 가지는 특성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고작 필레스 영지의 뒷골목 주인이 수인의 왕족이라니.

그것은 타이니의 전생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였는데, 현생에서도 그 의문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더하게만 생겼다.

‘뭐든 간에.’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놈이 이성이 날아갔을 때 죽여 버리면 너무 자비로운 처사가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주마.”

- 어린 동족들은 변신할 때 종종 광기에 사로잡히기도 하지. 만월에는 특히나. 그럴 때 우리가 주로 쓰는 방법은…….

전생의 동료 중 한 명인 달빛의 기사, 실버팽의 말이 떠올랐다.

과연 울프가 그의 ‘어린 동족’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제쳐 두고, 일단 그 말에 따르자면…….

“매가 약이라더라.”

까득.

타이니의 작은 몸이 늑대인간의 발광 같은 손짓을 피해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뻐어억.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아직은 짧은 다리가 늑대인간의 고간을 거칠게 차올렸다.

“캬아…… 아……”

털썩.

거품을 문 채 쓰러진 늑대인간.

이미 전투 능력을 상실한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변신은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수인족은 재생 능력이 뛰어나다지? 부디 죽지 마라.”

까드득.

다시금 이를 간 타이니의 자그마한 손이 놈의 한쪽 발목을 다시 으스러트렸다.

쾅.

콰아앙!

쾅!

그 후로 몇 번이나 더 패대기를 쳤을까.

이미 몸이 반쯤 뭉개진 것 같은데도 울프의 변신은 풀리지 않았다.

그게 이상하다 싶어질 때쯤.

땅.

데구르르.

울프의 품속에서 빛나는 돌멩이 하나가 튀어나왔다.

“……?”

다소 거친 질감의 은색 표면에 미미하게 검붉은 기운이 감도는 돌멩이.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 돌멩이의 모습에 타이니가 시선을 빼앗긴 것도 잠시.

푸스스스.

울프의 몸에 자라났던 털이 사라지고 튀어나온 주둥이도 다시금 제자리를 찾더니, 이내 회색 머리 사내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래, 돌아왔구나.”

“끄, 끄륵…….”

이미 발목의 뼈부터 골반, 갈비뼈까지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는 놈의 입가에선 진득한 핏물이 흘러내렸다.

변신은 풀렸지만, 이성이 돌아올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 바람직한 모습에 타이니가 살벌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엔 쉽게 보내지 않을 거다, 쓰레기.”

놈을 보던 시선이 방 한쪽 벽에 걸린 그림으로 향했다.

쾅.

가볍게 뻗은 발길질에 무너지는 벽. 그리고 그 안에 보이는 웬만한 성인의 몸보다도 큰 금고.

타이니는 이음새조차 찾을 수 없는 금속 상자를 보며 코웃음을 치고는, 울프의 몸을 질질 끌어와 놈의 손을 상자 표면에 갖다 대었다.

우우웅.

그그그극.

이내 묘한 소음과 함께 금속 상자가 그 내부를 드러냈다.

타이니는 그 안에 가득 쌓인 은화와 금화, 휘황찬란한 보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구석에 숨겨져 있던 푸른빛의 이파리들을 한 움큼 꺼내 쥐었다.

각성용 마약, 겔로의 잎사귀.

그 푸른 잎사귀를 쥔 그의 손이 잠시 가늘게 떨렸다.

울프는 죽어 가는 여자들이나 아이들한테 이걸 먹여 가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일을 시켰었다.

“……이제는 네가 처먹을 차례다.”

타이니는 잎사귀를 울프의 입 안에 거칠게 쑤셔 넣고는, 화병을 들어 그 안의 물을 놈의 목구멍에 쏟아부었다.

“끄륵, 끄르륵.”

제대로 뭘 삼킬 만한 상태가 아닌 것 같긴 했지만, 가볍게 마나를 동원하여 식도를 벌리고 강제로 삼키게 만들었다.

그렇게 겔로의 잎사귀를 대량으로 삼킨 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약한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정신이 든 것 같아 다행이네.”

타이니는 그를 만난 이래 처음으로 진심에서 우러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 너…… 으, 으으으.”

“너무 기쁘다고? 그래, 나도 기쁘다.”

우드득.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와 살이 분리되는 밤이 시작되었다.

전생에 못다 푼 한까지 듬뿍 담긴 기나긴 밤이.

“에, 에리나…… 끄륵, 님 잘못했…….”

숨이 붙어 있는 게 신기한 몰골이 된 울프 앞에서, 타이니는 무심한 표정으로 손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전문 고문 기술자는 아니지만, 사람이나 몬스터를 무수히 박살 내 본 전생의 경험 덕에 깊은 한을 털어 낼 만큼의 요령은 갖출 수 있었다.

전생보다 확실하게.

“에……리나 님. 저, 정말 자, 잘못했…….”

반복해서 들려오는 울프의 목소리.

이미 세상을 떠난 누나에게 연신 사과하는 말. 공포에 굴복했을 뿐 그 말에 진심 따위는 1%도 없겠지만, 아무렴 어떠랴.

“저, 정말 잘못…….”

목을 잘라다가 누나의 무덤에 바칠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누나가 죽어서까지 이 흉악한 놈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 누나, 이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

하늘 대신 천장을 올려다보며 성호를 그은 타이니는 바들바들 떠는 울프를 그대로 둔 채 돌아섰다.

‘숨통을 끊어 주는 게 오히려 자비지.’

놈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통을 느끼다 죽어 가야 마땅했으니까.

그렇게 방을 나서려는 순간, 바닥에 나뒹구는 은빛과 검붉은 빛이 섞인 돌멩이가 보였다.

빛이 들지 않는 밤이 되자 오히려 선명해진 빛깔. 분명 전생에 놈을 죽였을 때는 보지 못한 물건이었다.

더구나.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데…….’

이렇게 기묘한 빛을 뿌리는 돌멩이에 관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저 돌멩이가 놈의 품에서 튀어나온 뒤에야 변신이 풀린 것은 착각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지.’

천천히 걸어가 돌멩이를 주워 드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 낯선 이미지가 떠오르며 거친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크와아아앙!

검붉은 사슬에 묶여 있는 은빛 늑대의 포효.

“……뭐지?”

담대하다 자부하는 괴력의 기사의 영혼도 흠칫 놀랄 만한 기이한 일.

더구나 어딘지 모르게 께름칙한 이 붉은 기운은 분명…….

‘……마기(魔氣).’

인세의 몬스터나 마수, 그리고 마계의 존재들만 가지고 있는 최악의 기운이었다.

심지어 그 안에서는 순수한 마나의 기운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 아!’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순간 그의 뇌리에 떠올랐던 낯선 이미지가 언젠가 들어 본 적 있는 정보 하나를 상기시켰다.

검붉은 사슬 안에 갇힌 은빛 늑대.

검붉은 사슬은 분명히 마기였다. 그런데 그 안에서 마나가 느껴지는 은빛 늑대가 갇혀 있는 모양새라니, 돌멩이 안에 대체 무슨…….

마나를 품은 동물과 돌멩이?

“아……!?”

- 극히 보기 드문 것이야. 아주 오래 산 동물이나 식물이 정도 이상의 마나를 농축하여 남긴 그들의 정수 혹은 실체화된 혼이지. 다른 말로는…….

“……정령석.”

스스로 말을 뱉어 놓고도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귀한 게 왜 울프의 품속에서?

더구나 그가 아는 바에 따르면, 정령석에 마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대로 검붉은 사슬이 마기라면, 없앨 수는 있다.

우우웅.

‘꺼져라.’

이미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약해져 있던 검붉은 사슬이 그의 마나에 반발하며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그 순간.

- 아우우우우우우우!

뇌리를 울리는 늑대 울음소리와 함께,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모습의 거대한 늑대가 나타났다.

그리고.

- 크르르르.

다 죽어 가는 울프를 향해 맹렬한 적의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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