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51화 (51/305)
  • 제51화

    “전혀 보지 못한 형식의 마도 골렘이 등장했다고?”

    정하 그룹 오너 가문.

    정수기는 방금 들은 말을 한참이나 의심했다.

    “아니, 사지로 간 새끼가 대체 어떻게 살아서 돌아온 거야?”

    정수기의 주변으로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이름처럼 물과 얼음을 다루는 능력이 주인의 감정에 동조한 것이었다.

    “크으… 그게…….”

    비서들 역시 모두 능력자들. 거기다가 평소보다 두꺼운 방한복을 입었지만 그의 힘을 이겨내기가 쉽지가 않았다.

    ‘더 강해지셨다!’

    ‘괴물인가?’

    그의 아버지는 정하 그룹 오너인 정만득의 장남 정한택.

    정만득의 아들 중에서 가장 강한 힘을 물려받았다는 사내다.

    거기에 강력한 능력자를 배우자로 맞아 태어난 아이가 바로 정수기.

    “호오, 거참 신통방통하네. 그걸 살아 돌아왔어? 꼴랑 20레벨 언저리가.”

    언론에 비치는 정수기의 모습과 실제 모습은 달랐다.

    물을 정화하고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 거기에 겸손한 이미지까지 더해져 순수 청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실제 그의 모습은 달랐다.

    ‘인생 제멋대로 사는 인간이지.’

    단 한 번도 약자인 적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아랫사람의 입장 같은 건 그리 공감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약자를 괴롭히는 걸 즐기는 성격은 아니다.

    그저 신경을 쓰지 않을 뿐.

    “정수기 님…… 잠시 힘을 거둬 주십시오.”

    “아, 맞다. 하긴 힘들겠네. 생각해 보니 나 그사이에 더 강해졌으니까.”

    그는 그제야 힘을 거두었다.

    서리가 걷힌다.

    마치 북극의 심해 속에 있는 것 같았던 중압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비서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수기는 비서들이 가져온 데이터들을 빠르게 읽고는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이미 다른 애들이 수작질을 했었나 보네. 1억 2천? 통상 20레벨짜리 처리 자금치고는 나쁘지 않은데? 얘는 지금 보통 20레벨이 아니라는 거잖아?”

    “추정으로는 그렇습니다. 여론 조작 비용을 생각하면 그 배는 들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싸.”

    정수기는 턱을 문질렀다.

    정지한과는 정반대의 인상의 사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생겼다.

    “이런 인재는 정지한에게는 돼지 목에 진주지. 영리한 친구 같아 보이는데 왜 하필 그쪽 파벌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네~”

    “조건이 좋았습니다.”

    “음. 그래. 우리도 그때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가 만든 룰 때문에 방법이 없었어.”

    정만득은 인재 영입으로 가족끼리 싸우는 걸 싫어했다.

    그렇기에 첫 영입은 끼어들지 않기로 룰을 정했다.

    “하지만 이미 들어온 인간 스카우트는 괜찮지.”

    “그렇다는 말씀은…….”

    “재미있는 애잖아? 내 쪽으로 영입이 되는지 알아봐. 돈이든 힘이든 세력이든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그 말에 비서들의 눈이 커졌다.

    “그 정도로 대단한 인재라는 뜻입니까?”

    지금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손꼽히는 이가 바로 정수기.

    본인이었다.

    그런 자가 손을 내밀려 하고 있다.

    그 의미는 상당했다.

    정수기가 말했다.

    “응. 느낌이 좋아. 스타성도 있고, 뭔가 숨기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

    그는 상쾌하게 한마디를 하고는 서류를 던지듯 돌려주었다.

    “뭐, 정지한이한테 원망 좀 사겠지만 어때? 우리 아버지 오른팔 칼빵 놓은 게 그놈인데 이참에 빚 좀 토하라고 하지 뭐.”

    “하지만 그건…….”

    “그래 나도 한몫 거들었지. 하하하. 어쩌겠어? 자꾸 내 뒤통수를 치려 했는걸. 그래도 잘된 거 아니야? 엄지척이 좋은 집을 얻었으니까.”

    그는 너스레를 떨고는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다.

    잘 단련된 두꺼운 근육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비틀린다.

    “그러면 가 봐. 나는 다시 수련해야 하니까.”

    ‘그렇게 강해져 놓고 얼마나 더 강해지시려는 걸까.’

    정수기는 그 말을 끝으로 비서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혼자만 남은 트레이닝 룸.

    거기서 정수기는 작게 중얼거렸다.

    “기존과 다른 스킬과 기존과 다른 능력…… 싸우면 재미있겠는걸? 물론 아직은 햇병아리지만.”

    대련해 보고 싶다.

    정수기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 * *

    정지한은 엄지척의 라이브를 본 후, 한참이나 깊은 생각에 잠겼다.

    “20레벨로 80레벨을 잡았다는 건…….”

    영상을 돌려보길 수차례.

    의문점은 점점 더 커져 갔다.

    엄지척의 전투력은 그만큼 이례적이었다.

    파티플도 아니고 솔로 플레이.

    첫 솔로 플레이, 그것도 필드를 뛰겠다고 했을 때 정지한은 무척이나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안전을 위해 그를 막는다?

    하지만 그가 그런 것에 막힐 사람이었나.

    ‘빠져나가서 눈에 안 닿는 곳으로 가겠지. 그렇게 되면 더 위험해진다.’

    애초에 엄지척이라는 인물을 제어할 생각은 진즉에 포기했다.

    그저 눈에 닿는 곳에서 서포트할 수 있는 건 모두 서포트할 생각이었다.

    그는 안경을 벗고 눈가를 문질렀다.

    “소방관이 되어서 아이를 구하다가 죽거나, 밀려오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동료를 구하다가 죽거나, 나를 구하려다가 죽거나, 동생을 구하려다가 죽거나, 자연재해를 상대로 시간 벌이를 하다 죽는 패턴보다는 낫긴 한데…….”

    엄지척의 예상 패턴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꼽다가 그는 피식 웃었다.

    ‘누군가가 죽는 게 이렇게 익숙할 줄이야.’

    왠지 어깨가 무거웠다. 세계의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역시 적당히 돕고 방관하는 게 정답이었나…….”

    정지한은 이미 지쳐 있었다. 선택은 쉬웠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정비가]

    그는 곧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

    [너, 주식 상장 안 할 거야?]

    “음……?”

    뜬금없는 소리에 정지한은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허투루 쓸 수는…….

    [끊지 말고 답해.]

    “아직 계획은 없습니다만 나중에는 할 수도 있겠죠.”

    [그렇군. 고마워! 계획 있으면 나한테 가장 먼저 말해 주기다. 알았지?]

    기계와 차원 연구 말고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진성 머신 오타쿠가 이런 소리를 하다니.

    정지한은 흥미가 생겼다.

    “재테크에 관심 있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재테크? 주식질보다 내 특허권이 더 많이 벌릴걸?]

    그녀의 재무회계 팀은 미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팀으로, 전설의 투자가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그들이 그녀의 자산을 굴려서 벌어들이는 1년 수익만으로도 이미 대대손손 놀고먹어도 남는다.

    그러나 그녀의 특허가 벌어들이는 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인공지능 드론, 던전 탐사 장치, 헌터 능력 계측 기기…….

    머신 마스터라는 위명에 걸맞게 인공지능과 드론, 차원 관측에 관련된 크고 작은 특허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풀어놓았다.

    그게 그녀가 정하 그룹 경영권에 별생각이 없는 이유였고.

    가주인 정만득이 혼외 자식인 손녀딸만은 특별 대우를 하는 이유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또 다른 특허를 낼 예정이다.

    지난번 엄지척의 헌터 시험에서 일어났던 던전 그로잉 사태.

    그때 계측한 자료는 모두 그녀 손에 있으니까.

    “그러면 그건 대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먹방 찍어야지. 그게 약속이거든.]

    “경영권을 원하시는 겁니까?”

    [응~ 기술 줄게. 지분 내놔.]

    무슨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도 아니고.

    그녀의 요구는 심플했다.

    ‘대체 왜 이리 엄지척에게 관심을 갖는 거지?’

    이미 그녀는 엄지척의 동생인 엄무척을 실험체로 삼았다.

    엄지척도 노리는 걸까?

    ‘그건 아니다.’

    그녀는 호기심을 숨기지 않는 편이다.

    이런 건 늘 심플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던가.

    즉, 원하는 것을 주고 실험하게 양해를 구한다는 뜻.

    돈이든 권력이든 기술이든 다 있는 여인이니까.

    그렇다면 정말로 다른 의미로 엄지척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뜻.

    ‘설마하니 정말 먹방을 보고 싶어서 그럴 리는 없겠지.’

    정비가 같은 타입은 심계를 읽기가 힘들다.

    “일단……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 * *

    “거참 비싸게 구네.”

    정비가는 툴툴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드론이 그녀 앞에 커피를 따랐다.

    “왜, 잘 안 됐어?”

    그녀 앞에 앉은 사람은 신주란.

    신성 그룹의 차기 후계자다.

    엄지척의 방송을 본 후, 그녀는 정비가에게 접촉했다.

    “그냥 네가 정지한을 직접 만나지 그래?”

    “가뜩이나 콩가루인 정하 그룹이야. 정지한에게 섣불리 접촉했다가는 다른 세력을 자극할 테니까…….”

    “그런 애가 덕질을 하시겠다?”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들어 봐. 병아리 같은 새끼가 바이크 타고 죽겠다고 비탈을 달리더라. 그렇게 놀도 치고, 나도 치고 가는데 어쩌라고.”

    신주란은 인정하기로 했다.

    자신은 덕통사고(덕질+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원래 그런 것은 예기치 못하게 치고 가는 법 아닌가.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차라리 마음은 가벼워졌다.

    문제는 그거다.

    영상을 계속 보고 싶지만 정지한의 세력을 보니 불안해지는 것.

    정비가가 물었다.

    “혹시 남자로 보이는 건……?”

    “난 너밖에 없잖아, 비가야.”

    “그치. 네가 날 두고 다른 남자를 생각할 리가 없지.”

    둘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작게 웃었다.

    “졸업하기 전까지 참 너랑 많이 싸웠는데…….”

    미국에 있을 적에 둘은 같은 대학, 같은 기수, 심지어 둘 다 파티의 여왕이었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돈은 넘치도록 많았고, 둘 모두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신주란은 인맥을 위해 파티를 주최했다.

    쓸 만한 놈은 아군으로 만들었고, 필요 없는 놈은 그녀의 클럽에서 제외시켰다.

    그녀의 파티에 초대받기 위해 많은 이들이 공을 들였다.

    그녀는 까다로운 정원사였다.

    그녀의 정원에는 훌륭한 것, 그리고 쓸모 있는 것만이 존재할 수 있었다.

    신성 그룹은 유통이 핵심인 그룹.

    정하 그룹이나 대헌 그룹처럼 생산업이 아니다.

    중간 유통이 바로 정체성인 만큼 기업 간의 인맥은 중요했다.

    한편 정비가는 달랐다.

    그녀가 주최하는 파티에서는 언제나 펑크나 끈적한 랩이 흘러나왔다.

    아무나 왔다 갈 수 있었지만 약이나 폭력,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정비가는 남자든 여자든 구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잤다.

    나쁜 소문은 언제나 정비가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실력은 진짜였기에 신주란은 정비가를 몹시 탐냈다.

    두 사람이 우정 비슷한 것을 나누기 시작한 것은 졸업을 앞두었을 때쯤.

    신주란은 조급해졌다.

    여기서 정비가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드론 기술이 필요했다.

    그것만 있다면 신성 그룹은 더 커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그녀를 압박했다.

    큰 결심을 하고 신주란은 정비가가 머무는 자택으로 향했다.

    문은 열려 있었다. 그곳에서 나체로 남녀와 뒤엉켜 있는 정비가를 본 게 첫 만남이었다.

    ‘예쁘네. 내 타입이야. 잘됐다. 너도 낄래? 침대는 넓으니까…….’

    그녀는 약에 취해 몽롱한 목소리로 신주란을 유혹했다.

    신주란은 남녀 둘을 모두 내쫓고는 정비가의 집을 치웠다.

    약은 죄다 버리고 사람을 불러서 청소를 시키고, 그리고 술 대신 따뜻한 우유를 건넸다.

    신주란은 정비가의 뇌세포가 너무 아까웠다.

    그런 천재적인 뇌를 약물과 알코올로 파괴하고 있다는 게 미친 듯이 아까웠다.

    ‘그럴 거면 그 뇌 나 줘. 너는 쓰레기처럼 굴리고 있는 그 뇌 말이야. 나는 보물처럼 잘 쓸 거니까. 그냥 내놓으라고!’

    질투가 분노로 변했다.

    그게 우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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