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52화 (52/305)
  • 제52화

    신주란이 말했다.

    “내 이상형 알잖아.”

    정비가가 사탕을 입에서 뽑으며 말했다.

    “그래. 착하고, 집안일 잘하고, 너를 최고로 서포트해 줄 것 같은 남자.”

    “엄지척은 아니지. 저런 놈을 애인으로 삼으면 제명에 못 살 거야.”

    “순수하게 덕질?”

    신주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비가가 말했다.

    “일단 지분 내놓으라고 했으니 곧 반응이 오겠지. 그리고 지분 내놓으면 너도 껴.”

    “한몫 챙기겠네.”

    “신주란 넌 꽤 진지하다?”

    “응. 진지해. 헌터 엔터테인먼트는 돈이 되거든. 기왕 덕질하는 김에 돈도 벌고. 얼마나 생산성 있니?”

    신주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정도……?”

    “응. 엄지척은 그 정도 스타성을 가지고 있어! 동기 때 내가 어떻게 사람들을 픽했는지 알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누구보다 자신하는 신주란이었다.

    “그러니까 비가야, 정지한보고 지분 내놓으라고 압박해 봐. 내 자본으로 서포트 좀 할 수 있게.”

    * * *

    엄지척은 오늘 촬영한 영상을 돌려 보았다.

    라이브만으로 7만 따봉을 받았다. 신들이 준 따봉 수는 2만.

    이번 라이브 한 번에 벌어들인 따봉 숫자가 총 9만!

    조회 수에 비해 따봉 비율이 높은 게 신기했다.

    거기다가 신주란의 난입.

    썬주란은 신주란이 쓰는 아이디다.

    그녀가 별다방 커피로 얼마를 썼는지 알 수 없지만 교환권 하나당 5,000원 정도.

    1,000명이면 500만 원, 10,000명이면 5,000만 원이다.

    10만 명이면 5억.

    “……설마 내 팬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진 않았겠지.”

    이제 겨우 서포터즈를 창설한 곳이다.

    라이브는 본인 시간을 비우고 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이런 바쁜 일상에 인기 시간대도 아니었는데 라이브를 챙겨 보는 팬들이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영상 업데이트나 맡기자. 업데이트 다 되면 따봉 더 받겠지.’

    엄지척은 영상 파일을 편집 팀에 보냈다.

    편집 팀이 이 영상을 편집하고, 흔들리거나 흐린 부분은 보정하는 과정을 거칠 거다.

    “이번 전투에서 내가 모자랐던 게 뭐라고 생각해?”

    그의 질문에 척량이 답했다.

    “모자란 건 없습니다. 반년도 안 된 헌터가 레벨 80대 보스 몬스터 포함, 부락 전체를 일소하는 건 아무나 못 하는 일이니까요.”

    “그렇군.”

    “하지만 책사로서 간언을 드리자면 앞으로 좀 더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주목을 받은 만큼 적이 생길 테니까요.”

    예상은 했다.

    그러나 엄지척의 능력은 따봉을 받아 능력을 올리는 것.

    주목을 받지 못하면 성장이 불가능하다.

    적을 만드는 건 필연적이다.

    그걸 알기에 척량도 더는 뭐라고 하지 못하고 조심하라고만 말하고 있다.

    “그러면 뭐가 더 필요할까? 다가올 적이 누구든 지지 않고 싶은데 말이야.”

    강해지는 법.

    심플하게 물어보는 엄지척을 보며 척량이 말했다.

    “주인님은 책사에게 참 이상적인 주군이십니다.”

    “무슨 뜻이지?”

    “키우는 보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이다음은 검기를 뽑아내는 걸 목표로 삼으셔야 합니다.”

    “검기? 그건 왜?”

    “검기를 자유자재로 쓰셔야 원거리 공격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검기는 상대의 방어력을 상당 부분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거라면 모노 블레이드로 가능해.”

    “제한 시간이 치명적입니다. 방어력이 높은 원거리 적에게는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도망치면서 주인님을 공격한다면 상대하기 귀찮아질 것은 당연지사죠.”

    “10초가 지난 후, 다시 쿨 타임이 돌아올 때까지 적의 공격에 노출될 테니 말이지?”

    “이해가 빠르시군요. 동 레벨 적을 상대하는 거라면 주인님의 능력만으로 상관없습니다만…….”

    “그랬다가는 주목도가 떨어지겠지.”

    더 큰 이슈, 더 큰 따봉이 필요하다.

    “내 문제는 그거지. 조회 수가 아닌 ‘좋아요’를 눌러준 숫자로 받는다는 것.”

    당장 어지간히 재미있게 본 영상도 ‘좋아요’를 누르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허다하지 않던가.

    다음 영상을 보고 싶으면 기껏해야 구독을 눌러 놓는 정도?

    ‘단순히 사람이 많이 들어오는 것뿐만 아니라 만족까지 시켜야 해.’

    약한 적으로는 누구도 ‘좋아요’를 누르지 않으리라.

    척량은 양 앞발을 모은 상태로 엄지척의 능력을 진단했다.

    “6개월 경력의 어떤 헌터도 근거리로 주인님을 이기기 어려울 겁니다. 분석하기로는 한 번에 싸울 수 있는 몬스터는 인간형 개체일 경우 3마리, 보스 같은 대형 개체는 1마리 정도…….”

    “말만 들어도 엄청나군.”

    “모노 바이크로 기동력을 확보해 어느 정도 해소하셨습니다만 그래도 더 나은 공격 수단이 있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결국 통나무를 잘라서 창처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답답하긴 했다.

    [라이트 블레이드] 스킬로 보완해 보려고 했지만 창만큼 닿진 않았다.

    더 나은 공격 수단이 필요했다.

    “적들도 주인님의 약점을 알고 있을 겁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검기가 최우선이다?”

    “네. 검기를 사용하게 되면, 원거리 공격 및 광역 공격이 가능해집니다. 검기 자체를 창 길이만큼 늘릴 수 있고요.”

    척량의 분석은 정확했다.

    “답은 수련뿐이겠네.”

    “네. 그것만은…… 저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책사는 방향을 조언하는 것뿐, 주인 대신 노력을 해주지는 못하지.

    말이 쉬워 검기지, 무공 계열 스킬은 워낙에 성장 속도가 제각각인 데다가 무공 자체에 대한 심득도 있어야 하니 더 어렵겠네.

    ‘단순히 무식하게 휘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 무식하게 휘두르면서 머리로는 고찰을 해야지.’

    생각은 길지 않았다.

    “할게.”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앞으로의 수련은 더 가혹할 것으로…….”

    “괜찮아. 한다고. 척량은 내 책사잖아? 가장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걸 제시했겠지.”

    “주인님…….”

    너무 즉답을 한 걸까?

    척량은 목소리를 울먹이며 꼬리를 바르르 떨었다.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검기를 수련하시는 과정에서 육체의 능력 역시 크게 성장할 겁니다. 건곤신공 자체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거기다가 건곤신공과 짝이 되는 무공을 익히면 배가되겠지요.”

    “그런 것도 있어?”

    “네. 지금 쌍검술이 나쁜 건 아니지만 스킬로 습득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실제 하나하나 수련하며 자세를 점검하는 무공에 비해 심득이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스킬에 의존하지 말고 검술도 처음부터 제대로 배워라? 미친…….”

    제정신이 아닌 노가다다.

    척량의 귀가 축 늘어진다.

    “얼마나 힘들어질지 알고 있습니다. 편의를 버리고 가는 길이니까요.”

    “할게.”

    “주인님!”

    이번에는 꼬리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렇게 일일이 감동받지 마. 나는 내 책사를 믿으니까.”

    지옥 훈련의 시작이다.

    하지만 척량의 생각과는 달리 내 기분은 무척이나 좋았다.

    ‘옛날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지 않았어. 하지만 이젠 달라.’

    헌터가 되기 전, 나는 매일이 전쟁이었다.

    마치 바다 위에서 구명보트 하나 타고 노를 젓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고, 얼마나 저어야 뭍에 닿는지도 알 수 없는 나날.

    그 속에서 하루를 살아야 했다.

    나는 척량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헷, 주인님!”

    기분이 좋아졌는지 꼬리를 살랑거렸다.

    ‘이제는 다르다.’

    노력하는 법을 알고, 그 보상까지 알게 되었는데 멈출 이유는 없었다.

    * * *

    집에 도착하니 동생 녀석이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형, 미쳤어?”

    아니다. 착각이었다.

    놈은 나를 향해 레슬링 기술을 걸었다.

    “크어억, 동생아.”

    “아니, 분명히 정지한 팀에서 서포트 갈 거라고 했잖아. 혼자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몰래 안전장치 다 해놨다며?”

    나보다 20센티는 큰 거구가 클러치 기술을 거니 죽을 맛이다.

    “아고고, 미안해. 미안.”

    “생방송을 아무리 돌려 봐도 서포터는 안 보이더라. 형. 이상하잖아? 아무리 숨어 있어도 이렇게까지 안 보일 수가 없는데 기척도 없었어.”

    “미안해.”

    동생 녀석도 알 거다.

    내가 이놈 클러치에 당할 인간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이렇게 당해 주는 건 그만큼 미안한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형 올 때까지 한숨도 못 잤어. 그때와 똑같은 걸 또 느낄 줄 알았겠냐고.”

    “…….”

    녀석의 팔이 느슨해졌다.

    나는 슬쩍 빠져나왔다.

    “그래도 성공했어.”

    “그래. 멋지게 해냈더라.”

    “너무 걱정하지 마.”

    “형이라면 내가 거기 가서 혼자 싸운다고 걱정 안 하겠어?”

    윽, 정곡을 찌르는군.

    어쩔 수 없나. 시청자와 가족은 또 다르니까.

    시청자는 즐기면 되지만 동생은 그게 아니었을 거야.

    아마 기도하는 심정으로 모니터를 봤겠지, 물론 형을 욕하면서.

    “다시는 하지 마.”

    “약속은 못 해.”

    단호한 대답에 동생이 말문이 막혔다.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헌터로 살기로 결심했을 때 이미 각오한 일이야.”

    녀석의 눈썹이 삐딱하게 움직인다.

    내가 되물었다.

    “너도 각오했잖아.”

    “그래. 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형.”

    “나 배고파.”

    결국 마법의 단어를 꺼냈다. 동생 무척이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그렇게 내달렸으니 배고팠겠네. 뭐 먹고 싶어?”

    다행이다. 넘어가 주는구나.

    “햄계란부침.”

    “그건 밑반찬이잖아.”

    “그러면 닭. 닭고기. 아무거나.”

    “마침 재료 사놔서 다행이네.”

    * * *

    8첩 반상이 웅장하다.

    그것도 하나하나 맛있고 살찌는 것들만 모아 놓았네.

    구석에 있는 김치, 시금치, 연근이 최후의 양심이리라.

    이런 식단으로 한 달만 살면 초고도 비만은 따 놓은 당상이다.

    무척이 목표는 아마 나를 살찌워 잡아먹는 것임이 틀림없다.

    “닭튀김, 닭도리탕은 알겠는데 돼지 갈비는 왜 있어?”

    “마침 어제 재워 놨거든. 그냥 먹어. 안 그러면 나 또 잔소리할 거니까.”

    화난 게 안 풀렸군.

    으음, 어쩐다.

    거짓말을 하고 나온 터라 이번만큼은 꽤나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척량이도 먹어. 신공정령이 뭘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우가 좋아할 걸로 만들었으니까.”

    “닭! 닭입니까요?”

    “응. 갓튜브에 애견 보양식으로 나온 레시피가 있어서 그대로 해 봤어. 아마 먹을 수 있을 거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척량이 와구와구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미미(美味)!!”

    대체 저 말은 어디서 배운 걸까.

    맛있기는 한 모양이다.

    “역시 주군의 동생이십니다. 요리 솜씨가 끝내주십니다!”

    “우리 형이 보통 입이 짧은 게 아니라서 언제나 연구해야 했거든.”

    “나 편의점 음식도 잘 먹어. 왜 그래?”

    “먹기는 하지. 안 죽으려고 먹는 수준이라 문제지.”

    왜 이렇게 뾰족할까.

    아무래도 평소보다 많이 먹지 않으면 잔소리를 어마어마하게 들을 것 같다.

    마침 역대급으로 배고팠고 맛도 끝내주니까 괜찮다.

    “너 근데 닭 잘 튀긴다? 껍질은 바삭바삭하고 속살은 육즙으로 촉촉한 게 치킨집 해도 되겠다, 야.”

    “형이 헌터 그만두면 내가 차릴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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