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4화 (4/305)
  • 제4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숨이 막힌다. 저녁에 먹은 것들이 위장을 휘젓는다.

    ‘아파!’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버스가 뒤집어진다!

    ‘뭔가 잡아야 해!’

    그것도 찰나, 앞이 새카매져서, 눈을 뜨니 뒤집어진 버스 천장에 등을 대고 있다.

    “크으…… 으으으…….”

    아파서 죽을 것 같다. 그것보다 멍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겠고.

    ‘이, 일단 스킬 안마.’

    -본인에게 시전합니다.

    -체력과 정신력이 서서히 회복됩니다.

    왼손으로 부은 오른팔을 붙잡아 안마했다.

    하찮은 기초 회복 스킬이지만 나도 어제 각성한 헌터.

    피통이 적으니 금방 차는걸. 거기다…….

    ‘이거 상처 치료도 되잖아?’

    안마 랭크도 D급이 되니 출혈이 멈추기 시작했다.

    이 정도쯤 되니 안마가 아니라 응급처치 스킬 같네.

    ‘크윽, 정신이 돌아오니 주변을 좀 볼 수 있겠는걸.’

    버스 기사님까지 합쳐서 여덟 명.

    충격으로 바디 캠이 켜져 있는 상태다.

    강한 충격. 또는 지척에서 몬스터의 자취를 감지했을 때, 바디 캠은 자동으로 켜지니까.

    어느 쪽일까.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이렇게 소리쳤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했다.

    * * *

    그동안 내내 어느 쪽이 내게 유리할지 생각해 왔다.

    하지만 눈앞에서 사람들이 쓰러져있는 걸 보니 계산은 무의미했다.

    ‘잔머리를 굴려 봐야 결국 나도 평범한 시민이네.’

    누구라도 나처럼 행동했을 거다.

    나는 한 명씩 찾아가 안마 스킬을 시전했다.

    “정신이 드세요? 드셔야 합니다.”

    “크윽…… 으…….”

    -대상자의 HP가 차오릅니다.

    -상태 이상 기절이 풀립니다.

    -안마 숙련도가 크게 증가합니다!

    -안마 랭크가 한 단계 더 성장합니다.

    -안마 랭크가 C가 되었습니다.

    -핵심 속성 [응급처치]를 획득합니다.

    -지금부터 스킬 안마를 사용 시, 응급처치 효능이 추가됩니다.

    쓰러진 승객들의 의식을 회복시키고 부러진 곳에 스킬을 시전하기를 반복했다.

    “여기가…… 어디예요?”

    “버스 안입니다. 바깥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원래라면 밖으로 달려 나가 도움을 요청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바디 캠이 켜진 게 충격 때문이 아니라 몬스터 때문이라면 이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게 맞아.

    이 자체만으로도 일종의 벙커가 될 수 있으니까.

    -스킬, 안마의 레벨 업으로 추가 효과를 획득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안마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따봉을 자동으로 획득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10따봉을 받았습니다!

    실질적으로 목숨을 구하기 때문일까?

    안마를 하는 것만으로도 따봉을 받기 시작했는데.

    특히 상태가 심각한 부상자들은 자동으로 따봉이 크게 상승해서 들어왔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치료계 각성자님이 마침 같은 버스에 있어 주시다니…….”

    의식을 되찾은 승객들 모두 불행 중 다행이라며 약간의 안도를 했다.

    -10따봉을 받았습니다!

    큰 감사에도 따봉 수치가 증가했다.

    따봉이라는 행위가 아닌, 감사만으로도 따봉을 받는다.

    이거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시스템이야? 아니. 따봉이 느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그나저나.

    이게 단순 어깨를 풀어 준 것과 목숨을 구한 것의 차이구나.

    기왕 목숨을 구한 거면 조금 더 주지 싶은 마음과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는 따봉 수치에 놀라는 마음, 두 가지가 함께 밀려오네.

    “일단 제가 각성자니 밖의 상태를 살피고 오겠습니다.”

    내가 한 건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일 뿐, 이 사람들 모두 병원에 가야 한다.

    승객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끄집어냈다.

    가솔린 타는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아비규환이었다.

    나동그라진 차들 사이로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나마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패닉 상태로 소리를 질렀다.

    아기 울음소리가 칼처럼 밤을 찢었다.

    탄 살점과 피 냄새와 휘발유가 만들어 낸 아비규환 속에서 이성을 찾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찾아야 해.

    일단 최대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단순한 추돌 사고면 다행인데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먼 곳에서 흰 빛이 보였다.

    성스러울 정도로 찬란한 빛의 구멍이 마치 후광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이형의 존재들이 기어 나왔다.

    케륵- 케르르륵-

    가장 먼저 튀어나온 건 초록색 난쟁이.

    놈은 곤봉을 흔들며 구멍 밖으로 기어 나왔다.

    “게, 게이트…… 게이트 사태다.”

    초창기에 있던 몬스터 웨이브 시대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머리가 쭈뼛 곤두섰다.

    손끝에 땀이 저릿하다.

    ‘배운 걸…… 배운 걸 되새기자.’

    헌터만큼은 아니더라도, 나 같은 처리반도 몬스터에 대해 배워야 한다.

    아니 어떤 의미로 헌터들보다 더 많이 알아야 생존할 수 있는 게 나 같은 직업이다.

    ‘눈앞에 있는 고블린은 척후병이고, 저 고블린이 게이트 안으로 돌아가면 곧 본대가 곧 나온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니야, 서울 한복판이야.

    곧 정부에서 실력 있는 헌터들을 수배해서 게이트를 막으러 올 거야.

    그때까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괜찮을까. 할 수 있을까.’

    몬스터가 서울 안으로 들어와 흩어지게 되면 그들을 추적하는 동안 많은 사상자가 생긴다.

    비유하자면 댐에 균열이 생긴 셈이다.

    누군가는 주먹을 넣어서 막아야 했다.

    ‘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생각 속에서 몸은 움직였다.

    “지금 나가셔야 할 거 같아요. 최대한 멀리 도망치셔야 해요.”

    나는 승객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머리는 한없이 어지러웠지만 몸은 끊임없이 사지로 가고 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인 걸까. 아니면 본능인 걸까.

    승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한 것은 이 상황에서 혼자 살겠다고 달려가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기사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크게 부상당하신 분들 손 드세요. 혼자 못 움직이시는 분!”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픈 이를 업었다.

    질서 정연하게 한 명씩 버스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상점을 불렀다.

    상점이 떠오르며 광고 문구가 울렸다.

    띠링-

    -상점 오픈!

    -헌터님 따봉이 곧 힘입니다! 인망을 얻어 대박을 노리세요!

    오늘도 제정신이 아니다.

    나는 미리 봐두었던 것들을 빠르게 구매했다.

    “초보자 패키지 구매!”

    -초보자 패키지를 엽니다. 세트 구성물을 확인하세요.

    “남은 포인트 잔액 전부 근력으로!”

    원래라면 마력을 찍겠지만 당장 전투를 해야 하니 그쪽으로 올인.

    당장 나타나는 적들이 고블린 같은 종류이니 어쩔 수 없다.

    고블린 하면 보통은 떼거리로 나타나는 몬스터로 알려져 있기 때문.

    광역 공격이 가능한 마법이나 스킬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은 근력이 더 중요하다.

    -근력 랭크가 상승합니다!

    D-랭크의 근력이 한 단계 상승. D랭크가 된다. 그것만으로도 근육이 불끈거리는 감각이 확 하고 느껴졌다.

    D랭크면 적어도 헬스 트레이너 수준의 근력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좋아. 고블린 뚝배기를 박살 내는 데는 이 정도면 됐겠지?

    그렇게 생각한 다음 초보자 패키지를 확인하려고 시스템을 불렀다.

    초보자 패키지에는 초보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헌터들이 초보자 패키지를 구매하지 못한다.

    이유는 다른 게 없다.

    그냥 오지게 비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살 수 있는 포인트가 모였을 때는 이미 초보자 레벨을 넘어서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수호신이 작정하고 키울 생각으로 자기 돈으로 사 주는 거 아니면 이걸 쓸 일이 없다.

    그런데 나는 따봉 덕에 빠르게, 레벨 1에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초보자 패키지 오픈!”

    띠링-

    -초보자 기간 동안 스킬 2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본 장비 세트가 생성됩니다!

    -아이템 드롭률 부스터가 함께 적용됩니다!

    -스킬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그 순간, 내 손에 칼과 방패가 하나씩 들렸다.

    [초보자 스킬 : 견고한 마음]

    등급 : 초보자 프리미엄 (비성장형 A)

    전투 시에 이성을 잃지 않는다.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하며 싸울 수 있다. 최하급 정신계 마법에도 저항한다.

    [초보자 스킬 : 검과 방패술]

    등급 : 초보자 프리미엄 (비성장형 A)

    초급 검술과 방패술. 방패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공격한다. 많은 공격을 막아낼수록 방어력과 지구력 스텟이 증가한다. 많은 적을 공격할수록 힘과 속도가 증가한다.

    -초보자 패키지를 사용하였기에 초보자 이팩트가 적용됩니다.

    내 머리 위에 초보자를 상징하는 새싹 마크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는지 모두가 놀라서 내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새싹?”

    “초보……자?”

    “아빠, 저 아저씨 머리 위에 떡잎이 떠 있어.”

    “그런 소리 하지 마. 도와주시는 분이야.”

    상황은 참 병맛인데 웃을 수도 없다.

    이 많은 사람들이 대피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륵- 그르르-

    척후 고블린이 게이트 안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나는 놈을 향해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고블린도 나를 발견하고 소리 질렀다.

    키샤아아!

    녀석이 나보다 더 민첩해서 그런 것인지 놈의 곤봉이 먼저 날아왔다. 하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방패로 곤봉을 막았다.

    몸에 밴 것 같은 자연스러움. 그리고 녀석의 몸이 휘청거리는 사이, 내가 휘둘렀던 검이 녀석의 머리를 쪼갰다.

    퍽!

    수박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놈이 쓰러진다. 그리고 내 마음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도리어 평온한 내 상태가 너무 놀랍고 신기할 지경.

    ‘이게 되네? 견고한 마음 스킬 때문에 하나도 안 놀라는 건가? 개꿀이네. 헌터들이 어떻게 그리 잘 싸우나 했더니 이런 거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였나? 그런 이야기는 못 들은 거 같은데.’

    견고한 마음.

    뭔가 정신계 스킬로 보이는데.

    나도 헌터계에서 구른 짬이 있어서 무슨 스킬이 좋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초보자 패키지에 이런 스킬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뭐지? 갓튜브 스타라는 웃기는 직업이라 뭔가 다른가……. 검과 방패술 같은 건 들어 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고블린의 괴음이 들려온다.

    키이이이샤아아-.

    ‘엄청 튀어나왔잖아! 젠장. 망했다.’

    게이트에서 또 다른 고블린들이 기어 나왔다.

    그 숫자는 3마리.

    이놈들도 척후병이다. 그리고 내버려 두면 계속 기어 나올 거다.

    고블린들이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며 주저 없이 달렸다.

    ‘일단 선빵!’

    그리고 아직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고블린 중 한 놈에게 검을 쑥 내밀었다.

    푹!

    고블린의 목에 검을 정확하게 꽂아 넣었다.

    ‘한 놈 잡으시고!’

    “키에엑!”

    “키르륵!”

    막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세 놈 중 가운데 놈이 축 늘어지는 사이.

    양옆의 두 놈이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둘 다 짧은 단검을 들고 넝마 같은 가죽을 입은 상태.

    한 놈은 개구리처럼 뛰어서 나를 덮치려고 했고, 한 놈은 아래에서부터 칼을 들이밀었다.

    찰나의 순간에 나는 빠르게 반응했다.

    찔렀던 검을 뽑으며 뒤로 재빠르게 두 걸음 물러서면서 방패를 든 손을 크게 휘두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