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화
“고생했어.”
태운은 연정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왔구나….”
연정아는 강태운의 등장에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런데 어떻게 깨어난 거야?”
“오면서 봤는데… 자하르 박사님 덕분에 깨어난 거 같아.”태운은 급하게 날아오면서도 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부 확인했다.
전대섭은 권속들과 싸우면서 수적 열세에 살짝 밀리긴 했지만 마몬이 죽으면서 권속들의 힘이 확 줄어들어 반격을 시작한 상태였다.
크라켄의 눈 안에 파묻혀 멀리 날아갔던 구찬영은 다시 돌아오고 있었고 허덕륜은 여전히 고전하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허덕륜이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하르가 가지고 온 마법 견인포가 가장 훌륭한 역할을 해주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나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겠지.”자하르의 마법 견인포는 각성자가 아닌 기계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다.
생명체가 아닌 무생물이 주체가 되어 마법을 사용한다?
이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아니, 세상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원래는 자하르의 인과의 사슬이 조여져 쓰러지거나 죽어야만 했다.
하지만 마나 견인포는 자하르뿐만 아니라 다수의 군인들이 함께 운용했기에 인과의 사슬의 페널티를 나눠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원칙을 어기자 인과의 사슬은 스스로 잘못 설정된 것으로 착각해 세상 전체의 인과의 사슬 발동 조건을 바꾼 것이다.
그 이후, 자하르의 마나 견인포에서 쏘아진 마법이 마몬에게 상처를 주면서 그 작용이 한 번 더 일어나 태운이 깨어날 수 있던 것이다.
“참….”
태운이 느끼기에 자하르는 참 대단한 사람 같았다.
자신이 에테르를 얻고 나서야 겨우 해냈던 일이다.
그런데 마나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마나를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이 오로지 지식과 설계도에 의지해서 이런 물건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얘기는 나중에 하고 눈앞에 있는 놈 먼저 정리하자고.”
“알았어.”
태운은 연정아와 함께 사탄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사탄은 신체 능력만 따지자면 칠죄종 중에서 가장 강한 편에 속한다.
게다가 사탄은 이 세상에 어중간하게 강림해 숨어 있으면서 힘을 엄청나게 모은 상태였다.
권속도 데리고 오지 않았기에 지구의 마기 중 자신에게 할당된 마기를 모두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오히려 완전하지 않게 이 세상에 강림한 것이 사탄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스릉.
태운은 병원에서 급하게 나오긴 했지만 챙길 건 다 챙겨 나왔다.
“이것 때문에 두 달이나 누워 있었는데 놓고 나오면 안 되지.”태운의 성검이 밝게 빛나며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이게… 레비아탄 녀석을 지워 버린 검인가?]
“맞아. 그리고 이제 너도 이 검에 죽게 되겠지.”사탄은 강태운의 검을 바라보았다.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신성력에 놀라긴 했지만 그건 상정한 일이었다.
레비아탄은 본모습을 드러내면 파괴력과 맷집 하나만큼은 엄청난 녀석이 된다.
애초에 덩치가 산처럼 거대해지는데 파괴력과 맷집이 약할 리가 있겠는가.
솔직히 본신의 힘을 드러낸 레비아탄은 사탄도 죽일 자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 산만 한 녀석이 비늘도 두껍고 회복력도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인간이 레비아탄의 본신을 죽였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 일단 쪽수는 맞춰야겠지.”
수만 마리의 몬스터들은 사탄과 태운, 연정아가 대치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헌터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스-윽.
강태운은 성검에 신성력과 에테르를 불어넣은 뒤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한 번 휘둘렀다.
쾅!
그리고 신성력과 에테르가 쏘아져 나가 수천 마리의 몬스터들을 단번에 태워 버렸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태운의 그림자가 넓게 팽창하면서 전장을 가득 채웠다.
“나와.”
스르륵.
태운의 그림자 안에서 수천 기의 그림자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몬스터들을 쓸어버려라.”
[허….]
사탄은 이 작전을 세웠을 때 한 가지 간과하고 있던 게 있었다.
태운이 깨어나더라도 수많은 몬스터들이 헌터들을 공격하면 강태운은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조급함을 파고들면 유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생각하지 못했다.
“왜, 생각대로 안 됐어?”
태운은 성검의 위력에 감탄하면서도 사탄을 도발했다.
“내가 이곳에 있는 한 수적으로 밀리는 일은 없어.”태운이 강력한 몬스터들과의 전투에서 허덕륜이 밀리고 있는 것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림자 기사 3기는 허덕륜 선생님을 찾아서 도와라.”수많은 그림자 병사들 중에 그림자 기사 3기는 빠르게 전선에서 이탈해 허덕륜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림자 병사들이 소환되자마자 헌터들은 강태운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사기가 하늘을 뚫을 정도로 높아졌다.
아슬아슬하게나마 전선을 유지하고 있던 헌터들은 그림자 병사들의 가세로 빠른 속도로 전선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이제 급한 건 네 쪽이야.”
[이 개자식아!!!]
자신의 수를 완전히 파악당한 사탄은 격노하며 강태운에게 달려들었다.
어차피 빠르게 전투를 끝내야 하는 것은 사탄이었기에 사탄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강태운을 공격했다.
연정아와 강태운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허덕륜과 전대섭마저 지금 상대하고 있는 놈들을 처리하고 이곳에 합류한다면 그때는 답이 없다.
퍼억!
강태운에게 달려든 사탄은 강태운에게 닿지도 못했다.
사탄의 얼굴에 연정아의 주먹이 정확히 맞아 들어갔고 사탄의 자세가 무너진 틈을 타서 강태운의 검이 사탄의 몸을 베었다.
[크윽!]
사탄은 몸을 회전시켜 상처를 최소화했다.
“오, 꽤 하네.”
지금까지 칠죄종들은 자신의 힘으로 찍어누르는 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레비아탄은 자신의 덩치로 찍어눌렀고 마몬은 몬스터들의 수로 찍어눌렀고 다른 칠죄종들도 자신의 강점을 사용해 적을 찍어누르는 방식의 전투를 주로 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까지 언제나 강자의 입장에 있었으니 싸우는 방식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탄은 아니었다.
사탄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항상 누군가와 싸워왔다.
마계에서도 다른 악마들과도 계속 싸웠기 때문에 싸우는 기술에 있어서는 다른 칠죄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방금 그 공격을 그대로 허용했으면 큰일 났겠는데….]
방금 강태운의 공격이 적중했다면 부상을 입고 두 명의 합공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한 채 죽어 마계로 돌아갔을 것이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가야 했었군.]
사탄은 마기를 끌어 올려 자신의 몸을 강화했다.
아니, 단순히 자신의 몸을 강화한 것이 아니었다.
페널티까지 두고 자신의 본신에 있는 마기까지 끌어온 것이다.
사탄이 이 상태로 강태운에게 진다면 존재력에 큰 타격을 입겠지만 리스크가 큰 만큼 리턴도 확실했다.
쾅!
사탄이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고
“크윽!”
강태운은 멀리 떨어져 휘두른 사탄의 주먹에 영향을 받아 뒤로 멀리 날아갔다.
“무슨….”
사탄의 주먹이 공기를 때렸고 그 공기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태운을 타격한 것이다.
“강태운!”
“난 괜찮아! 집중해!”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것이냐!]
쾅! 콰콰쾅!
사탄은 연속으로 주먹을 휘둘렀고 연정아는 그 공격을 재빠르게 움직여 피해냈다.
‘속도는 반응할 만해. 하지만….’
[어딜 가는 거냐!]
쾅!
사탄은 빠른 속도로 연정아에게 다가가 연정아를 공격했다.
연정아는 팔을 X자로 만들어 막아내려 했지만 강화된 사탄의 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뿌득!
“끄아악!!!”
사탄의 공격을 직접 받아낸 연정아의 오른팔은 공격 한 번에 부러져 버렸다.
[그대로 머리통을 부숴주마!]
사탄은 공격 한 번에 바닥에 처박힌 연정아의 위에 올라타 머리에 주먹을 휘둘렀다.
“연정아, 눈 감아!”
강태운은 성검에 신성력을 잔뜩 불어넣은 뒤 사탄에게 휘둘렀다.
푸욱!
사탄은 성검을 팔로 막아냈고 성검은 사탄의 팔에 박혔을 뿐 잘라내진 못했다.
[그런 급조된 성검으로는 나의 단단한 근육을 베어낼 수는 없다!]
“그럼 한번 받아봐라!”
강태운은 에테르를 주입하고 검에 더욱 힘을 주었다.
하지만 사탄은 싸우는 방식에 있어서는 굉장히 영리한 자였다.
퍼억!
사탄은 강태운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내가 팔이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아?]
“크억….”
강태운의 복부에서 피가 역류해 입에서 쏟아졌다.
금방 회복될 상처이긴 했지만, 그 공격은 강태운의 틈을 유도하기에는 충분했다.
꾸드득….
사탄은 강태운을 완전히 죽여 버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팔에 집중했다.
‘피하는 건 늦었어. 어서 막아야….’
하지만 성검은 사탄의 팔에 박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어 마법을 사용해도 눈앞의 공격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터업.
연정아가 부러진 팔로 사탄의 팽창하고 있는 팔을 잡았다.
그 순간.
스스스스슷!
사탄의 팔에 있던 마기가 빠른 속도로 연정아에게 빨려들어 갔다.
[……!]
사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연정아를 집어 던졌다.
그 덕분에 강태운은 성검을 사탄의 팔에서 뽑아내며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네년…. 무슨 짓을 한 거냐!]
“보면 몰라?”
연정아는 자신이 흡수한 마기로 부러진 팔을 수복했다.
그리고 마기로 자신의 몸을 강화했다.
“네 마기를 흡수한 거지.”
연정아는 오른팔의 수복이 끝나자마자 사탄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사탄은 연정아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연정아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한 번의 공방을 끝내고 감이 돌아와 합이 완전히 맞게 된 둘의 협공은 제아무리 사탄이라 해도 쉽게 파훼할 수 없었다.
촤악!
강태운의 검이 사탄의 등을 베었다.
덕분에 연정아를 향한 사탄의 공격은 타이밍이 어긋나게 되었고.
콰앙!
연정아는 그 순간 타격점에서 벗어나 애꿎은 바닥만 박살이 났다.
[강태운!]
부웅!
사탄은 강태운을 향해 뒤를 돌아보며 주먹을 휘둘렀다.
강태운은 고개를 숙여 그 공격을 피해냈고 연정아는 그 타이밍에 사탄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윽…!]
위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거슬리는 수준.
상대적으로 잡기 쉬운 연정아를 먼저 잡자니 강태운의 공격이 너무 위협적이고 강태운을 먼저 잡자니 연정아의 견제를 신경 쓰면서 강태운을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으으… 으아아아아!!!]
“미쳐 버렸네.”
퍼억!
연정아는 그 순간에도 사탄을 공격하고 있었고 강태운도 천천히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사탄과 둘이 싸우고 있던 그 순간에도 헌터들과 그림자 병사들은 전선을 꾸준히 밀어내고 있었다.
전대섭과 허덕륜도 각자의 싸움을 끝마치고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젠장!]
사탄은 도망을 선택했다.
꼴사납게 도망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쾅!
사탄은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모든 마기를 폭발시킨 뒤 도망치려 했다.
그때.
“안녕하십니까. 분노의 사탄님.”
인형과 같은 외모에 인형 옷을 입은 듯한 모습을 한 여인이 사탄의 앞길을 막았다.
[너, 너는….]
“먼저 마계에 돌아가서 쉬고 계시지요.”
[이런 X발, 루시퍼 새….]
서-걱.
인형 옷을 입은 여인이 손을 휘두르자 사탄의 목이 달아났고 사탄은 그대로 죽어 마계로 돌아갔다.
“사탄이… 죽었어…?”
아무리 약해진 틈을 타서 공격한 거라고는 하지만 칠죄종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인류 안에서는 강태운과 연정아 둘밖에 없을 정도니까.
그때, 인형 옷을 입은 여인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인간 여러분. 저는 위대한 오만의 루시퍼 님의 권속인 마리아네트라고 합니다.”그 여인의 정체는 오만의 칠죄종인 루시퍼의 권속이었다.
“저는 오늘 이곳에 루시퍼 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