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화
[이 세상에서 인과를 벗어난 일들이 다수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한해 ‘인과의 사슬’이 발동하는 조건이 상향 조정됩니다.]
[그에 따라 ‘강태운’에게 발동하고 있던 ‘인과의 사슬’이 해제됩니다.]
의식이 천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던 태운의 귓가에 들린 소리였다.
‘인과의 사슬?’
태운은 방금 그 소리를 들은 뒤 신의 특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걸 알아차린 태운은 즉시 지식의 신의 특전을 사용했다.
인과의 사슬, 그게 무엇인지 알아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크윽…!’
태운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정보들이 빨려들어 왔다.
모두 인과의 사슬에 대한 정보였다.
들어온 정보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이랬다.
인과의 사슬은 생명체가 세상의 원칙과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모두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일종의 방어책이다.
인과의 사슬은 모든 인간들에게 하나씩 할당되어, 그 인간이 세상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그 사슬이 조여진다.
즉, 태운은 인간의 힘으로 성검을 만들어 내는, 세상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했기에 인과의 사슬에 의해 페널티를 받아 의식을 잃은 것이다.
실제로 태운이 성검을 만드는 데 재료가 되어준 미스릴 검을 만든 임정국 장인도 성검이 만들어지는 순간에 쓰러졌다가 다음날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성검의 몸체가 되어줄 미스릴 검을 만든 사람이 임정국이었으니 적지만 성검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판단해 인과에 사슬이 조여진 것이다.
‘빨리 일어나야 해.’
하지만 강태운은 아직 일어나지 못했다.
모종의 일로 인과의 사슬이 해제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조여졌던 인과의 사슬까지 완전히 풀어내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운은 희망을 보았다.
자신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아직까지는… 답이 보이질 않아.’
지금 태운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다수의 사람들이 세상의 원칙을 어겨주기를 기도하는 것 말고는.
지금 태운은 세상에 원칙에 관여하는 것은커녕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몸이었으니까.
그 시각, 전장에서는 자하르가 만들어 낸 무기가 큰 활약을 하고 있었다.
각성자가 아닌 이상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을 깨부숴 버린 파격적인 무기, 마법 견인포는 크라켄뿐만 아니라 자잘한 몬스터들에게까지 효과가 컸다.
“제2형 포탄 변경 후 장전!”
자하르의 명령에 따라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새로운 모양의 큐브를 장전했다.
“발사!”
펑!
포구에서 쏘아져 나간 마법들은 크라켄에게 쏜 것과 달리 수십 갈래로 퍼져 나가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곳을 타격했다.
그리고 그 마법들은 곧바로 폭발해 넓은 범위의 폭발을 일으켰다.
“다시 장전!”
자하르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하지만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눈앞에 자신이 만들어 낸 성과만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만들어 낸,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헌터 이상의 효율을 보이고 있다니.
자하르는 생각했다.
조금 건방질지는 모르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과학과 기술이야말로 최강의 힘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자신이야말로 신에 가장 근접한 사람인 것이 아닐까.
“그럴 리가.”
자하르는 스스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자하르는 모르고 있었다.
그 생각이 아주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하르의 발명품에서 쏘아지는 마법 포격이 한창인 가운데 셀과 연정아는 마몬과 마주하고 있었다.
“셀 헌터님, 괜찮으십니까?”
“덕분에 괜찮네. 고마워.”
셀은 마몬의 변칙적인 공격에 한순간에 죽을 뻔했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정아가 마몬의 마기를 흡수해준 덕분에 살 수 있었다.
“후우….”
셀은 다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두근.
셀의 심장이 크게 한번 뛰었다.
셀은 그것으로 자신의 몸이 얼마나 더 움직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고작해야 1분. 아니, 그것보다 더 짧다.’
남은 시간은 고작 1분
그 안에 마몬을 쓰러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남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연정아, 마몬은 네가 쓰러뜨리는 거다.”
“네…?”
셀은 그렇게 말하고는 단번에 튀어나가 마몬을 공격했다.
하지만 마몬의 마기는 순식간에 셀의 손목을 붙잡아 검의 궤도를 틀어버린 뒤 사라졌다.
[뭐 하는 것이냐! 크라켄을 죽였을 때의 그 움직임은 어디간 거지?]
마몬은 셀의 움직임을 비웃으며 다시 마기를 쏘아냈다.
‘젠장….’
셀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마기를 눈으로 좇았다.
마몬이 쏘아낸 마기는 굉장히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보인다.
한순간이라도 눈을 떼는 순간 어떤 공격을 해올지 알 수 없었다.
서걱!
오러가 실린 검은 마기를 베어 내는 데 성공했고, 셀은 그것을 확인한 뒤 마몬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절망적인 수의 탐욕의 마기였다.
“아….”
눈앞을 가득 채운 탐욕의 마기.
마기들이 셀에게 한 번에 달려든다면 그중 2~30개 정도는 벨 수 있겠지만 나머지 80여 개는 살아남아 셀에게 들러붙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마기들은 셀의 사지에 들러붙어 셀의 온몸을 찢어 버릴 것이다.
그때.
호로록!
마치 음료라도 먹는 듯한 소리를 내며 마기들이 연정아의 손바닥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것을 본 마몬은 살점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얼굴로 연정아를 노려보았다.
[연정아…! 네년이….]
“뭐? 마음에 안 들어?”
연정아는 최근에 한 가지 마기를 더 깨우쳤다.
그것은 바로 ‘텅 빈 마기’.
아스모데우스를 자신의 손으로 이긴 뒤 자신의 마기에서 색욕의 특성을 지우고 무속성의 마기를 사용하다 보니 얻은 것이다.
텅 빈 마기는 주변의 마기를 계속해서 빨아들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마몬의 마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텅 빈 마기는 다른 종류의 마기를 빨아들인 뒤 그것을 온전히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뱉어낼지 정할 수 있다.
“네 마기는 맛없어.”
연정아는 흡수한 마기를 손에서 그대로 쏘아냈다.
쾅!
마몬의 안면에 적중한 마기 탓에 마몬은 뒤로 넘어갔고 마몬의 마차를 들고 있던 몬스터들은 마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그대로 깔려 죽었다.
“와… 얼마나 무거우면 오크 10마리가 버티질 못하고 죽어 버리냐. 대단한데.”
[개념 없는 버러지 년이…!]
연정아는 마몬을 자극했고 마몬의 시선이 연정아에게로 향한 순간, 셀은 다시 마몬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방금의 공격은 한심했어.’
마몬의 말대로다.
방금 공격은 크라켄을 상대했을 때보다 훨씬 한심한 공격이 분명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집중해서 검을 휘두른다.’셀은 달려가는 것부터 걸음마 떼듯 집중하며 움직였다.
보폭, 속도, 무게중심, 자세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마몬에게 공격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러자 이 세상이 멈춰 버린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벅.
한 걸음을 내딛자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반발력과 근육의 힘이 모두 느껴졌다.
그 당시의 셀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건 스탯 초감각의 발현이었다.
터벅.
두 번째 걸음을 내디딘 순간, 셀은 검을 천천히 휘두를 준비를 했다.
타악.
세 번째 걸음을 내딛자, 마몬은 그제야 셀의 공격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연놈들이 쌍으로 돌아서….]
하지만 지금 눈치챈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미 셀은 마몬의 팔을 잘라 버리는 이미지를 완성했으니까.
타탁!
셀은 네 번째 다섯 번째 걸음을 내디디고 그대로 도약해 마몬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학습 능력이 없는 것이냐!]
마몬은 수십 개의 마기를 쏘아냈다.
평소, 아니, 방금의 셀이었다면 지근거리에서 쏘아지는 이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서거걱!
셀은 빠른 속도로 서너 개의 마기를 베어낸 뒤, 그 사이로 몸을 집어넣어 마기를 피해냈다.
[멍청한 놈들…!]
자신의 마기를 피한 셀을 보고 당황한 마몬은 마기들에 명령을 내려 다시 셀을 공격하도록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서걱!
마몬의 마기는 급하게 선회했지만 선회하면서 속도가 떨어진 마기들은 셀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마기들이 가속 구간을 끝내고 다시 빨라진 시점에서 이미 마몬의 왼팔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어…?]
지금까지 마몬은 직접 공격을 당한 적이 많지 않았다.
항상 몬스터들을 대신 내보내 아주 편하게 세상을 점령했을 뿐이다.
과거 강철운이라는 괴물이 나타났을 때는 녀석이 자신의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모습에 질려 스스로 돌아갔었으니까.
그런 마몬에게 왼팔이 잘리는 경험은 실로 끔찍한 것이었다.
[끄아아아악!!!]
마몬은 자신의 왼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피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됐다….”
털썩.
셀은 어린애처럼 우는 마몬을 보며 쓰러져 눈을 감았다.
연정아는 급하게 달려가 셀의 상태를 확인했다.
셀은 다행히 아주 편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연정아는 셀에게 방어막을 쳐주고 마몬에게 걸어갔다.
[끄윽… 끄아악!!!]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는 마몬에게 연정아는 조소를 보냈다.
“한심한 놈. 팔 하나 잘렸다고 질질 짜는 꼬라지라니.”
[끄아아악!!! 용서 못 해! 죽여 버릴 거야!!!]
덥석!
갑자기 마몬의 그림자 안에서 믿을 수 없는 양의 마기들이 쏟아져나와 연정아의 팔다리를 붙잡았다.
“마기는 어차피 나에게 안 통…. 어?”
연정아는 다시 마몬의 마기를 흡수해 벗어나려 했지만 마기를 흡수할 수 없었다.
“무슨….”
[근원의 마기다…. 필멸자인 네놈은 가지고 있지도 않은 대단한 힘이지…. 그런 힘을 네놈이 흡수할 수 있을 리가.]
“미친…. 근원의 마기까지 사용한다고…?”
어느새 지혈을 마친 마몬은 잘린 왼팔을 부여잡고 연정아에게 말했다.
[팔 하나 잘렸다고 질질 짜는 꼬라지? 그래, 너는 어디 안 울 수 있나 보자고.]
꾸드드….
마몬의 마기들은 연정아의 팔을 부여잡고 한 번에 뽑아 내려 했다.
연정아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그때.
쾅!
그때, 마몬의 안면에 마법이 쏘아졌다.
“적중!”
확성기를 타고 들려오는 자하르의 목소리.
“한 번 더 쏜다!”
쾅쾅쾅!
마몬의 얼굴에 마법들이 날아와 그대로 꽂혔다.
‘통할 리가 없는데….’
필멸자들이 사용하는 마나로 만들어진 마법은 칠죄종처럼 격이 높은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게 정상이었다.
‘그게 정상일 텐데….’
하지만 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필멸자인 인간이 아닌, 과학과 공학으로 만들어진 ‘기계’.
격 따위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마나로 쏘아진 마법은 마몬에게도 통했다.
스륵.
연정아는 느슨해진 탐욕의 마기를 풀어내고 마몬을 공격하려 했다.
그때.
쾅!
하늘에서 누군가가 날아오며 마몬의 머리를 짓밟아 터뜨려 버렸다.
당연히 마몬은 죽어 마계로 돌아갔고 연정아는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크하하하하!!! 멍청한 마몬 녀석이 무대를 아주 잘 꾸며놨어!]
붉은 피부의, 염소의 뿔, 근육질 몸을 가진 칠죄종.
사탄이 마몬을 죽이며 이곳에 등장했다.
[덕분에 아주 일이 쉽게 되겠어!]
마몬이 시켜놓은 일 때문에 몬스터들은 계속 헌터들을 공격할 것이고 헌터들은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권속과 세력이 강하지만 본신의 힘이 약한 마몬 대신, 세력과 권속들이 약하지만 본신의 힘이 강한 사탄이 들어선다면?
[멸망의 시작이다!]
“아니, 2 페이즈 시작인데.”
그때, 익숙하면서도 믿음직스러운, 그리고 엄청나게 기다려왔던 목소리가 연정아의 뒤에서 들려왔다.
“늦어서 미안하다.”
그는 바로 강태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