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안녕하십니까, 인간 여러분. 저는 위대한 오만의 루시퍼 님의 권속인 마리아네트라고 합니다.”마리아네트의 등장에 연정아와 강태운은 뒤로 물러났다.
‘지금 당장 싸운다면… 될까?’
강태운은 사탄과의 전투에서 힘을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금 마리아네트가 보여준 힘은 예사롭지 않았다.
‘나와 연정아가 힘을 많이 빼놓았다고는 하지만 사탄을 단번에 죽여 버렸어. 분명 사탄보다 낮은 급을 가진 마족일 텐데… 어떻게?’인간 전체를 뒤져봐도 칠죄종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고 마계로 돌려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연정아와 강태운밖에 없었다.
그만큼 존재의 격이라는 것은 넘기 힘든 벽이었다.
에테르와 신성력을 동시에 다루는 강태운이야 필멸자의 벽을 넘고 있는 중이기에 존재의 격을 뛰어넘을 수 있고 연정아는 칠죄종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반 마족
출신으로 칠죄종에게 인정을 받아 권속이 된 마리아네트가 존재의 격을 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태운과 연정아가 마리아네트를 경계하며 뒤로 물러서자 마리아네트는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이곳에 루시퍼 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무슨 말을….”
적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움직임에도 태운과 연정아는 조금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적이고 사탄을 마계로 돌려보낸 장본인이다.
경계하지 않았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녀가 갑자기 돌변해 둘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경계가 무색하게도 마리아네트는 연정아와 강태운에게 조금도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곧 싸우게 되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니까요.”
“흠….”
마리아네트의 말이 거짓 같지는 않았다.
공격의 전조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때, 태운은 고민에 빠졌다.
‘녀석을 지금 죽여야 하나…?’
남은 칠죄종은 이제 오만의 루시퍼 하나뿐이다.
그리고 마리아네트는 루시퍼의 권속이고 지친 사탄을 마무리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때, 태운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마리아네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지만 그렇게 싸우고 싶다면 저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습니다.”마리아네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기를 끌어 올렸다.
“……!”
마리아네트의 마기를 보자마자 그녀가 어떻게 사탄을 마무리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마기는 평범히 강한 수준이 아니었다.
강하다고들 하는 권속들을 상대해본 태운은 알 수 있었다.
이건 강한 권속 수준의 마기가 아니었다.
“빌려왔군.”
“내려주신 겁니다.”
지금 마리아네트가 사용하고 있는 마기는 마리아네트의 것이 아니라 그녀가 따르는 칠죄종인 루시퍼의 마기였다.
‘사탄을 죽일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겠네.’
마리아네트가 사탄을 죽일 때 사용한 힘이 그녀의 힘이 아니라 같은 칠죄종의 힘이었기에 사탄을 죽일 수 있던 것이다.
“할 말이나 해봐.”
“루시퍼 님께서는 전면전이 아닌 대표전을 하고자 하십니다.”
“대표전?”
마리아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루시퍼 님께서는 강태운 님과의 결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하십니다. 그래서 강태운 님을 포함해 5명의 대표를 정해 대표로 전투를 치르기로 했습니다.”즉, 5 대 5로 전투를 치르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운은 굳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 우리가 좋을 게 뭐지?”“현재 루시퍼 님께서 이 세상에 데리고 오신 권속의 수는 180명입니다. 이기실 수 있겠습니까?”
“…….”
180. 아무리 강태운, 전대섭이 다수를 상대하는데 능하다고 해도 권속 수백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권속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권속을 상대한 뒤에 루시퍼까지 상대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무슨 짓을 해도 루시퍼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태운은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치자. 너희들이 제안을 지킬 거라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지?”“합리적인 의심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루시퍼 님께서 맡고 계신 죄악은 오만. 오만의 루시퍼 님께서 이런 제안을 깬다면 존재력에 큰 타격을 입게 될 테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이런 제안을 했는데 질 것 같아 추하게 먼저 약속을 깬다면 그만큼 큰 손실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쪽에서 제안을 깬다면… 어떻게 되실지는 아시겠죠?”알고 있다.
강태운이 먼저 약속을 깬다면 루시퍼는 약속을 깨도 존재력에 타격을 입지 않게 되고 루시퍼의 권속들이 모두 강태운을 공격할 것이다.
“음… 알겠다. 제안은 받아들이지.”
“감사합니다. 날짜는 10일 뒤, 장소는 미국에 나타날 오만의 성입니다.”
“알겠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마리아네트는 강태운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모습을 감췄다.
“…….”
연정아와 태운은 마리아네트가 사라지자 왜인지 모를 허탈감에 빠졌다.
그리고 곧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걱정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태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여기 정리부터 하자.”
그리고 연정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걱정은 나중에 하자고.”
태운은 옆에 있는 몬스터들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태운의 그림자 병사들로 인해 빠른 속도로 정리되고 있던 몬스터들이었다.
거기에 강태운과 연정아, 권속들과의 전투를 끝마치고 온 전대섭,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마친 허덕륜까지 합류하자 빠른 속도로 몬스터들이 정리되었다.
그때, 태운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대표전으로 데려갈 4명을 골라야 했으니까.
가장 강한 순서대로 4명을 선정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5명 모두가 상대방을 이기면 좋겠지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즉, 그곳에 간 사람은 완전히 목숨을 내놓고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투와는 차원이 다른 위험일 거야.’특히 마리아네트의 수준을 생각해 보았을 때 만약 그녀와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진 권속들이 루시퍼의 아래에 4명이 존재한다면 전력상으로 따져 봤을 때 분명히 밀린다.
‘그 제안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났을 뿐, 불리한 상황인 건 바뀌지 않아.’태운은 몬스터를 처치하면서 계속해서 고민했다.
* * *
“내가 간다.”
“저도 가겠습니다.”
“나도 데려가야 하지 않겠나.”
태운과 연정아가 마리아네트가 했던 제안에 대해 헌터들에게 말하자 모두가 자신이 가겠다고 말했다.
전대섭과 허덕륜, 구찬영은 물론이고 이번에 큰 부상을 입은 셀과 힘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하오도 마찬가지로 자원했다.
“셀 헌터님, 몸도 성치 않으실 텐데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대신 다녀오겠습니다.”구찬영의 말에 셀은 자존심이 상한 듯 반론했다.
“아니네. 나는 아직 싸울 수 있….”
“셀 헌터님, 허덕륜 팀장님께 이미 들었습니다. 기혈과 마나 회로가 뒤틀려 마나를 회로에 회전시키기만 해도 엄청난 고통을 느끼신다고….”
“…….”
셀은 허덕륜을 노려보았지만 할 말은 없었다.
이렇게 된 것도 자신이 원한 것이었고 허덕륜의 진단에는 조금도 틀린 부분이 없었으니까.
그때, 강태운이 입을 열었다.
“결전의 날은 10일 뒤이고 미국에 다시 생긴 오만의 성이 그 위치입니다.”즉, 컨디션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최소 일주일 안에 완전한 몸 상태를 갖출 수 있는 사람이 전투에 참여해야 했다.
“저는 무조건 갈 겁니다.”
강태운이 말하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운이 헌터 중 가장 강한 사람이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빠질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저는 이 제안을 강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리아네트가 말한 대표전의 의미는 5명의 대표가 상대를 정해 싸우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을 이겼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도와 상대의 대표를 동시에 상대할 수도 있었다.
즉, 대표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난전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 난전의 상황에서 서로를 돕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즉, 그곳에 가면 처음에 믿을 것은 자신의 실력뿐.”시간이 지나 도움이 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적의 도움이 올 수도 있다.
“그런 극한의 상황이 오면 정말로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여태까지 있던 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질 수도 있다.
“적들의 수준이 마리아네트라는 권속과 비슷하다면 이곳에서 저를 제외하고 일대일로 권속을 압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오만의 마기를 빌린 마리아네트의 수준은 연정아와 비슷했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연정아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거나 연정아보다 약한 사람들뿐이었다.
“즉, 한 번만 삐끗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고, 한 명이 목숨을 잃으면 다른 사람들까지 연쇄적으로 목숨이 위험해집니다.”태운은 일부러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내심 그들이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태운은 잠시 그들에 대해 잊고 있었다.
“목숨, 그런 건 데블스 에이지가 다시 터졌을 때 내놓은 지 오래다.”전대섭은 과거 수많은 사람의 죽음에 분개하며 칠죄종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어떻게든 칠죄종에게 복수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수십 번이고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허덕륜은 과거 힘만을 바라보며 칠죄신교에 들어갔다가 처음으로 만난 진정한 스승을 잃고 강철운의 밑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칠죄종의 추악함과 잔악함을 알게 되어 데블스에이지 때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러던 중 부상을 크게 입고 회복 기간을 거친 뒤 세상에 나왔을 때는 데블스 에이지가 끝나 있었다.
자신이 회복에 전념하던 중에 벌어진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전우들의 목숨을 등에 짊어진 허덕륜은 자신의 목숨 따위는 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가 그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발을 뺄 수 있겠냐.”강태운은 힘에 대한 책임감과 지금까지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그리고 그건 구찬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후 미래 세대를 책임질 인재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 말에 걸맞은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힘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미친 사람들뿐이네….”
그들의 말을 듣고 행동을 본 태운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이렇게 내거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미치지 않으면 헌터 일은 할 게 못 되지.”
전대섭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10일 뒤, 미국에 가는 사람은 강태운, 나, 허덕륜, 구찬영, 연정아로 정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명단이 정해지자 그들은 모두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구찬영은 부모님을 만나러 갔고 전대섭은 자신의 재산을 정리해 자신의 비서인 바리에게 맡겼다.
그리고 허덕륜은 간만에 과거 전우들의 묘에 찾아갔다.
태운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은 바로 자신의 동생인 강윤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