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끄아아악!!!”
신성력을 담고 있는 초고열의 불꽃에 의해 벨페고르의 권속들이 대거 소멸되었다.
절반 정도의 권속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공격을 피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러지 못했다.
“반응이 빠른 녀석들도 꽤 있네.”
[이놈….]
단번에 권속 절반을 잃어버린 벨페고르는 강태운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권속들에게 내렸던 강태운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철회했다.
[그래, 네놈은 내가 직접 상대해주마.]
벨페고르는 자신과 강태운 사이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치워 버렸다.
“마법사들! 모두 공격해라!”
전대섭이 명령을 내리자 마법사들은 일제히 벨페고르에게 마법을 쏘아냈다.
[이놈들이 귀찮은 짓거리를….]
그들의 공격은 항상 활성화되어 있는 벨페고르의 방어막도 뚫지 못했지만 벨페고르의 신경을 분산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벨페고르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네놈들은 빠져 있거라!]
벨페고르의 말에는 엄청난 힘이 담겨 있었다.
단순히 마기를 담고 있다든가 위압감이 느껴졌다든가 하는 게 아니었다.
“아…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갑자기 너무 피곤한데….”
“이런다고 바뀌는 게 있어…?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는 게….”갑자기 태운과 몇몇 헌터들을 제외한 모든 헌터들이 극심한 무기력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무기를 떨어뜨리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는 전장을 이탈하려는 사람도 보였다.
“이거 봐라….”
이런 저주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금 태운은 신성 지역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 안에 있는 헌터들은 웬만한 저주에는 걸리지 않는 저주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태운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정진의 신, 부탁해도 되겠지?’
태운은 정진의 신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물론이다.]
정진의 신은 나태의 벨페고르를 굉장히 싫어하는 신 중 한 명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걷는 사람들에게서 존재의 의미와 힘을 얻는 신이 정진의 신이었으니까.
벨페고르에 의해 나태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진의 신은 점점 약해진다.
정진의 신은 아주 약간의 근원의 신성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태운의 몸에 엄청난 신성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피해가 올 상황이나 이득이 될 상황에서는 근원의 신성력을 내어주는군.’태운은 그동안 신의 행동으로부터 그들과 자신이 후원 관계가 아닌 계약 관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는 악마들을 마계로 처넣는 것을 대가로 태운에게 힘을 내어준 것이다.
하지만 딱 그것뿐이다.
그들은 태운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든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힘 이상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필요 이상의 힘을 내어주는 것에는 신의 존재력이 사용되니까.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말이 달랐다.
나태의 벨페고르가 헌터들을 나태함에 빠지게 했으니까.
헌터들이야말로 자신의 힘을 갈고닦기 위해 ‘정진’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정진의 신은 그들을 나태함에서 꺼내줘야만 했다.
그들이 결국 나태함에 빠져 자신의 길을 걷는 일 자체를 잊는다면 정진의 신은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니까.
“완전한 축복의 지대.”
태운은 정진의 신의 힘으로 헌터들이 서 있는 땅에 완전한 축복을 내렸다.
“어…? 내가 왜 무기를….”
“왜 내가 빠져나가려고 했던 거지?”
그러자 무기력증에 빠진 헌터들은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다시 의욕을 되찾기 시작했다.
“무기를 들어라!”
그때, 타이밍을 잡은 전대섭이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칠죄종을 직접 상대할 수 있는 힘은 없지만, S급 헌터인 강태운 헌터의 앞길을 열어줄 수 있다. 아니,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여기 있는 우리들뿐이다!”전대섭은 나태함과 무기력증에 빠졌다가 돌아와 혼란스러워하는 헌터들을 단번에 규합했다.
[기분 나쁜 신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벨페고르는 자신의 저주가 해제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권속과 몬스터들을 돌격시켰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벨페고르의 한마디에 몬스터들이 죄다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방의 헌터들! 모두 충격에 대비해라!”
전대섭은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공격 준비나 하세요.”태운은 순식간에 그림자 방패병을 소환해 헌터들을 향해 돌격하는 몬스터들을 가로막았다.
수백의 몬스터들이 모두 B급 몬스터들이었기에 전력상 질 리는 없겠지만 이대로 격돌한다면 피해가 클 것이다.
한국의 헌터들은 앞으로도 계속 싸워야 하니 피해를 최소화해야만 한다.
돌격하는 기세를 줄여야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쿵!
몬스터들은 돌격 중 갑자기 나타난 방패병들의 방패에 부딪혀 기세를 잃었다.
“지금입니다! 공격하세요!”
태운의 명령에 헌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저는 그럼 벨페고르를 상대하러 가겠습니다. 예정대로 일반적인 A급 헌터들은 5인 1조로 권속 하나를 상대하고 전대섭 대장님과 구찬영, 허덕륜 선생님은 각자 권속 하나를 상대하면 될 것 같습니다.”예상보다 권속의 수가 많아서 당황했지만, 태운의 공격으로 권속의 수를 줄일 수 있었기에 원래 작전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래, 알겠다. 조심하거라.”
“네. 전대섭 대장님도 조심하세요.”
태운은 그렇게 말하고 벨페고르를 향해 날아갔다.
“드디어 두 번째 칠죄종을 몰아낼 기회가 왔네.”강태운은 벨페고르의 앞에 서서 말했다.
벨페고르는 그런 강태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꽤 하는구나. 내 권속이 될 생각은 없나? 네가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이 무색할 정도의 힘을 내어줄 수 있다.]
벨페고르의 권속은 마계의 악마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은 자리다.
별 노력을 하지 않고도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태운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태운의 심기만 거스르는 일이었다.
“스페이크 커터.”
서걱!
태운의 한마디에 벨페고르의 팔이 잘려 나갔다.
[……!]
“까고 있네. 그딴 건 너희들이나 해.”
태운은 에테르로 공간 자체를 잘라내며 벨페고르를 공격한 것이다.
칠죄종의 악마는 마계에서는 신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에 강림하며 공간, 시간 등에 제약을 받게 되었다.
공간에 제약을 받는 한 벨페고르도 공간 자체를 찢어 공격하는 태운의 공간 마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력이 무색해질 정도의 힘을 줄 수 있다고? 그게 나를 포섭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냐?”나태의 벨페고르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노력에 의한 성취감과 거기서 이어지는 엄청난 만족감을.
“그걸 나한테서 빼앗아 간다는 건데 내가 좋아할 줄 알았어?”
[…네놈….]
벨페고르는 잘려 나간 팔을 바라보며 태운에게 말했다.
[내 제안을 이렇게 차 버린 놈들의 끝은 그리 좋지 못했다.]
“협박도 강한 놈이 해야 통하는 법이지.”
[그래, 그 끔찍한 끝을 네놈에게 직접 보여주마!]
벨페고르는 마기로 땅에 떨어진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려 다시 붙인 뒤 태운에게 저주를 내렸다.
“나태의 저주, 무기력의 저주, 파괴 저주, 약화 저주….”벨페고르의 저주가 태운에게 쏟아졌다.
평범한 헌터였다면 그것만으로 미쳐 버렸을 법한 저주들이었지만 태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완전한 축복.”
태운은 완전한 축복으로 벨페고르의 저주를 풀어내고 벨페고르에게 달려들었다.
“신의 인정을 받고 신성력을 다루는 사람한테 그딴 저주가 통할 것 같았어?”태운은 달려가는 도중에 미스릴 검을 뽑아 들고 벨페고르에게 휘둘렀다.
하지만 칠죄종이라 불리는 벨페고르 본신의 힘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니었다.
“앱솔루트 페인.”
꽈드득!
“끄아아아악!!”
절대적인 고통.
벨페고르는 태운이 검을 쥔 오른팔에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환상통일 뿐이었지만 지금까지 온갖 고통을 겪어왔던 태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고통이었다.
그 고통 탓에 순간적으로 근육이 뒤틀리며 태운의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박살 났다.
“이런 개 같은….”
[고통에 꽤나 익숙한 것 같더니… 허접하구나.]
벨페고르는 태운을 조롱했다.
[강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아스모데우스를 이겼다고 꽤나 기세등등한 것 같은데, 그게 얼마나 건방진 생각이었는지 알려주마.]
사실이었다.
칠죄종 중 하나인 아스모데우스를 쓰러뜨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으니 다른 칠죄종들도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태운의 만용이었다.
칠죄종은 마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
아스모데우스를 상대했을 때는 지구에 마계의 파편조차 존재하지 않았었다.
하지마 지금은 칠죄종이 담당하는 공간의 중심이 지구에 현현해 있다.
즉, 아스모데우스보다 지금의 벨페고르가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 내가 방심하긴 했나 보네.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몇 번째인지.”꾸득. 꾸드득….
태운은 부러진 팔을 회복시키며 천천히 말했다.
“벨페고르, 네놈이 내가 싸웠던 아스모데우스보다 강한 건 알겠어.”그렇다고 이길 수 없는 상대냐?
그건 결코 아니었다.
“난 너한테 절대 안 져.”
태운은 지금까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해내 왔으니까.
‘통각 차단.’
태운은 모든 신경의 통각 신호를 차단했다.
통각을 차단한 채로 싸운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지만 괜찮았다.
육감과 초감각으로 자신이 얼마나 다쳤는지 고통보다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으니까.
[앱솔루트 페인을 파훼할 방법을 찾아냈나 보군.]
벨페고르는 태운의 기세를 보고 태운이 자신의 공격을 파훼할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에게 공격 수단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벨페고르의 주변으로 가지각색의 수십 가지 기운이 떠올랐다.
[다음은 시각을 통제해 주마.]
벨페고르는 태운의 시각을 앗아갔다.
[다음은 청각, 후각, 촉각 모두를 앗아갈 것이다. 네놈이 이 세상을 느낄 방법을 모두 없애 버릴 것이야.]
벨페고르는 다른 세계를 침략할 때마다 강한 적에게 이 저주들을 사용해 왔다.
자신의 근원의 마기를 사용하기에 신이 근원의 신성력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용사는 모든 감각을 통제당한 상태로 싸워야만 한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해도 자신이 어디 있는지, 서 있는지, 누워 있는지, 공격을 당하고 있는지, 공격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결국에는 죽은 것인지 살아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벨페고르의 최강 저주였다.
“뭐야. 고작 이거야?”
촤악!
[무슨…!]
하지만 태운은 정확히 벨페고르의 가슴을 베어 냈다.
[어째서….]
다른 세계의 용사들도 이 저주에 걸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공에 공격 몇 번 하다가 땅에 쓰러져 허우적거리며 결국에는 벨페고르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하지만 태운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정확히 위치를 파악하고 벨페고르에게 달려들었다.
[감인가…?]
가끔 이런 경우도 있다.
자신의 신체에 완벽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무인들이 가끔 감각 차단의 저주에 걸리고도 몇 합 정도는 정상적으로 움직이곤 했다.
그럴 땐 보통 땅을 무너뜨린다든가 조금의 변수를 주면 다른 사람들처럼 허우적거리다 죽고 만다.
[대지 파괴.]
벨페고르는 태운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땅을 부수었다.
하지만 태운은 조금도 방해받지 않았다.
오히려 파괴된 땅 파편을 밟고 벨페고르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무슨…!]
벨페고르의 코앞까지 접근한 태운은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이게 전부라면 오늘 넌 다시 마계로 돌아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