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태운의 등장으로 바이튼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
화를 낼 줄 알았던 바이튼은 조용했다.
오히려 바이튼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허공으로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촥!
그때, 눈치도 채지 못한 짧은 순간에 바이튼의 연검이 빠른 속도로 날아와 태운의 팔을 잘랐다.
“크윽….”
“태운아!”
“난 괜찮으니까 정신 차리세요!”
태운은 큰 상처를 받아도 어차피 재생이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태운을 신경 쓰다가 재기 불가능한 부상을 입으면 그것만큼 손해가 없다.
“에테르 건틀릿”
태운은 그들이 걱정할 새도 없이 하늘로 떠오른 바이튼에게 날아들었다.
잘린 오른팔 대신 왼팔로 에테르 건틀릿을 사용했다.
“일단 한 방 먹어라.”
쾅!
태운은 에테르 건틀릿을 사용한 왼 주먹을 바이튼의 안면에 박아넣었다.
“맞았… 음…?”
분명 녀석을 때렸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다.
‘사람을 때린 게 아니라 그냥 철 덩어리를 때린 듯한….’보통 맷집이 강한 사람을 때리면 철이나 바위를 때린 것 같다고 말을 한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사람을 때리면 어찌 됐든 피부를 때린 듯한 느낌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정말 금속을 때린 듯한 느낌이었다.
“이거 봐라…?”
에테르 건틀릿의 충격으로 만들어진 먼지가 걷히자 태운은 그 감각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촤륵.
바이튼이 자신의 무기를 붕대처럼 몸에 둘러 갑옷같이 사용한 것이다.
티틱….
촤르르르륵!
그 직후, 바이튼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연검이 수십 개로 나뉘어 태운에게 쇄도했다.
푸푸푸푸푹!
“크윽!”
반응조차 하지 못할 속도로 지근거리에서 쏟아진 공격에 태운의 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났다.
“바이튼!”
태운은 신성력을 몸에 두르고 자신의 몸에 꽂힌 연검을 소멸시켰다.
“이대로 맞기만 하고 물러날 수는 없지.”
한번 당했으면 그만큼 돌려줘야 하는 법.
이대로 그냥 뒤로 물러나 태세를 정비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열화, 에테르 건틀릿.”
신성력과 에테르의 합작.
신성한 기운을 담은 에테르 건틀릿이 바이튼의 명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
바이튼도 뭔가 위험함을 느끼고 마기로 형성된 연검으로 자신의 몸을 휘감았다.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태운이 사용한 에테르 건틀릿에는 신성력이 담긴 열화가 덧씌워져 있었다.
프스스스…
에테르 건틀릿과 연검이 맞닿는 순간 마기로 만들어진 연검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바이튼은 태운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퍼억!
바이튼은 태운의 공격을 맞고 그대로 멀리 날아갔고 태운은 그 자리에서 천천히 떨어져 땅에 착지했다.
“후….”
지금 태운의 모습은 오른팔이 잘린 데다가 온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당장 쓰러져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태운에게는 리제너레이션이 있었다.
태운이 리제너레이션에 마나를 투자해 회복 속도를 끌어 올리자 잘린 팔에선 뼈가 솟아났고 그 뼈를 근육 다발이 휘감으며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꿰뚫린 상처도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관통상 정도는 태운에게는 경상이었으니까.
“괜찮은 거냐…?”
정일준이 태운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태운의 재생력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잘린 팔이 재생되는 모습을 직접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끝난 거 아니니 조심….”
“하.”
그 순간, 일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기가 찬다는 듯한 바이튼의 짧은 헛웃음.
그 위압감은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을 굳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태운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괘, 괜찮나?”
순간 위축된 강일환은 멀쩡한 태운에게 물었지만 태운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자신보다 약한 놈한테 두려움을 느낍니까?”태운은 오른손을 들고 에테르를 모았다.
‘전력 파악은 끝났어.’
그는 분명하게 쟝보다 약하다.
약 반년 전의 태운이 쟝과 호각을 이뤘는데 더 강해진 지금 바이튼에게 질 리가 없었다.
“스페이스 디스트럭션.”
태운은 바이튼이 서 있는 공간을 파괴했고 바이튼은 파괴된 공간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크윽!”
쟝조차 대응하지 못했던 공격이다.
바이튼은 대응할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 개 같은 놈이!!!”
바이튼은 파괴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며 태운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바이튼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으아아아!!!”
바이튼은 마지막 발악으로 수십 갈래의 연검을 쏘아냈지만 태운에게는 닿지 않았다.
“파마의 영역.”
콰칭!
태운에게 다가오는 연검들은 파마의 영역을 전개한 태운에게 닿지도 못하고 소멸했고 바이튼은 살갗이 뜯겨나가면서까지 파괴된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버텨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의 완력으로 세상을 이루고 있는 공간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고 바이튼은 점점 파괴된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바이튼은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듯 발버둥 쳤지만 그곳에서 탈출할 수는 없었다.
“끄으으….”
바이튼의 살갗이 찢어져 날아가고 탈진할 때쯤 태운이 나섰다.
태운은 에테르로 파괴된 공간을 임시로 수리하고 바이튼은 끄집어냈다.
“흐어…흐어억….”
바이튼이 제대로 정신도 못 차리고 어버버하고 있을 때, 태운이 에테르와 신성력을 사용해 만든 밧줄로 그를 속박했다.
“안 죽여도 되겠어?”
정일준이 태운에게 물었다.
정일준도 원래 계획이 바이튼을 제압해 하늘섬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힘을 직접 목도하니 그를 기회가 될 때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요.”
하지만 태운은 제압된 바이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녀석은 한동안은 마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태운은 바이튼의 상의를 확 찢어 버렸다.
매일 잠만 자고 논다던 그의 일과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가꾸어진 근육이 눈에 들어왔다.
“앞에는 없는 거 같고… 등에 있나.”
태운은 발로 바이튼을 뒤집었다.
그러자 그의 오른쪽 등에 커다란 문신이 드러났다.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겠지만 한동안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을 겁니다.”태운은 손에 신성력을 두르고 문신에 손을 댔다.
치이이익….
그러자 대원로의 문신은 태운의 신성력과 반응해 천천히 그 빛을 잃기 시작했다.
“뭐, 뭐 하는 거냐….”
아직 기력을 되찾지 못한 바이튼은 태운이 하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수분이 지나자 대원로의 문신은 완전히 빛을 잃어버렸다.
“뭐야…. 끝난 거야?”
“다들 다친 곳은 없냐!”
같이 인천을 수색하던 다른 헌터들이 그제야 나타났고 태운은 마기를 잃어버린 바이튼을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헌터 협회 지하실에 감금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심문은 나중에 하죠.”바이튼은 이미 쓰러져 다시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앞으로 4시간 동안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음 하늘섬 작전을 위한 초석은 마련이 되었어. 이제 실행만 하면 된다.’하지만 태운은 모르고 있었다.
칠죄종의 짐승이 만들어낸 혼돈 에너지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칠죄종의 강림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
* * *
“휴… 미친놈들…. 다 잡은 거지?”
“그런 거 같은데?”
벨과 밀레는 태운이 소환했던 그림자 병사들을 모두 처치하고 잠시 숨을 돌렸다.
“어떻게 할 거야?”
밀레가 벨에게 물었다.
그들이 받았던 임무는 태운이 바이튼과 싸우는 헌터와 합류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그 임무가 실패해 태운이 바이튼과 싸우러 갔으니 바이튼을 지원하러 가는 것이 당연하다.
“지원하러 갈 거야?”
“아니, 가도 의미가 없을 거 같은데.”
벨은 고개를 저었다.
“바이튼 님의 기운이 사라졌어. 죽은 거야.”
“…….”
벨은 태운이 바이튼의 마기를 지우자 그가 죽었다고 착각했다.
“바이튼 님이 죽은 이상 우리가 가 봐야 개죽음일 뿐이야.”
“확실히 그럴 것 같긴 하네.”
밀레는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슬슬 복귀 시간도 다 됐으니 돌아가서 보고나 해야겠네.”
“알겠어.”
밀레는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해 자신과 벨을 하늘섬으로 순간이동 시켰다.
“그런데 이제 어쩌지?”
“뭘?”
밀레가 시무룩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껏 몇 번 보지 못한 그녀의 모습에 벨은 조금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입에 미친놈이라는 말을 붙이고 살았던 밀레가 언젠가부터 욕을 하지 않고 있었다.
“최근에는 두 명의 대원로가 목숨을 잃었고 새로 들어온 최초로 두 개의 죄악을 짊어진 대원로도 죽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나태의 좌까지….”계속되는 패전에 밀레는 굉장히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전력상으로 밀리고 있었고 게릴라전을 펼쳐 그들을 겨우 상대하고 있던 것이었으니까.
본거지가 밝혀진 이상 계속해서 밀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벨은 칠죄신교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칠죄종님들이 강림한다면 우리의 힘도 강해질 거야. 칠죄종님들을 모시는 몬스터들도 가세할 거고 인류는 더욱 많은 리스크를 안고 싸우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이길 수 있어. 이 세상을 부숴 버릴 수 있다고.”그렇게 말하는 벨의 말에 왠지 분노가 느껴졌다.
밀레는 그런 그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인간과 그것을 방관한 이 세상은 무너져야 마땅해.”지금의 벨에게 여태껏 보여준 장난스러운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가 내뿜고 있는 감정은 바로 이 세상 자체를 향한 증오와 분노였으니까.
“벨….”
밀레와 벨은 어렸을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다.
둘은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마치 친오빠, 친동생처럼 지냈었다.
그러던 중 12살이 된 밀레를 입양하겠다는 부부가 나타났다.
벨은 더 이상 밀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했지만 부모가 생긴다며 들떠 있던 밀레에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반년 후, 벨은 고아원에 있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나 세상에 나왔고 세상을 살아가던 중 밀레 생각이 나 그녀를 찾아갔다.
하지만 밀레를 입양했던 부부의 가족
중에는 밀레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부부가 밀레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 부부에게는 이미 한 명의 아들이 있었고 아파트 분양을 더욱 싼 금액에 받기 위해 밀레를 입양한 것이었다.
아파트를 분양받자 밀레는 눈엣가시가 되었고 그들은 밀레에게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고 방도 벽에 있는 붙박이장을 사용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쓰레기 부부의 쓰레기 같은 아들은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밀레를 상대로 몹쓸 짓까지 했다.
이 일의 전말을 알게 된 벨은 분노했고 밀레를 입양한 부부가 잠들었을 때를 노려 밀레를 데리고 도망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밀레에게 몹쓸 짓을 했던 남자의 눈알을 뽑고 물리적 거세를 가했다.
그놈이 절대 죽지 않기를 바랐다.
그 녀석은 밀레보다 더 끔찍한 세상을 살아야 했으니까.
도망 끝에 밀레와 벨은 붙잡혔고 최종 판결로 벨은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밀레의 인생을 끔찍하게 만든 쓰레기 같은 가족들은 고작 벌금형만 받고 끝났다.
그런 판결을 받은 벨과 밀레의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벨과 밀레의 분노를 눈여겨본 쟝이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전부 죽일 수 있는 힘을 주겠다. 칠죄신교에 오겠느냐?”이것이 벨과 밀레가 칠죄신교에 들어오게 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