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원로들이 생각보다 더 강해졌다.’
태운이 직접 원로들을 상대해보고 알아차린 사실이다.
물론, 태운이 상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정도긴 했으나, 다른 A급 헌터들이 상대하기에는 조금 벅찰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로들은 이 세상에 칠죄종이 강림할 날이 머지않아 그들의 마기를 더욱 많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칠죄종이 이 세상에 강림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은 결국, 칠죄종의 힘이 이 세상에 많이 침투해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말이니까.
‘칠죄신교 녀석들이 강해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군.’태운은 움직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원로들을 보았다.
“뭐 해? 안 들어와?”
원로들도 공포라는 것을 느낀다.
물론, 칠죄종에 대한 광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은 공포라는 감정을 버리기도 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들어오나 안 들어오나 죽는 건 매한가지일 텐데….”공포는 전염이라는 게 되는 감정이다.
주변에서 너도나도 무서워한다면 무서워하지 않던 사람이라도 약간의 공포심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너도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공포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그 공포심이 사라지거나 그 정도가 약해진다.
‘군중 심리라는 거지.’
과거, 개인이 집단을 따르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약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감정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공포다.
그렇기에 군중 심리가 가장 크게 발현되는 감정은 공포일 수밖에 없었다.
“피어.”
태운은 피어를 사용했다.
자신이란 존재 자체를 공포의 주체로 만들어 버리는 스킬이다.
“큭….”
원로들은 피어를 사용한 태운을 보고 몸이 굳어 버렸다.
“…….”
마치 대원로가 화났을 때와 비슷한 위압감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한 위압감이었다.
“그대로 굳어 있어라.”
태운은 메테리얼을 만들었다.
“내가 급해서 너희를 최대한 빠르게 죽여줄 테니까.”태운은 메테리얼로 라바 랜스를 사용했다.
“다중 시전.”
만들어진 라바 랜스를 복제하자 용암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창이 태운의 주변에 떠올랐다.
“쉽게 죽여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라.”
스윽.
푸푸푸푸푹!
태운이 손을 들어 올리자 라바 랜스들이 원로들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갔다.
그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가 관통되어 죽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두 명의 원로가 있었으니.
그들의 이름은 벨과 밀레였다.
그 둘은 이미 태운과도 구면이었다.
“네가 강해졌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벨은 팔에 감아두었던 붕대를 풀어 두꺼운 팔 수십 개를 펼친 후 그것으로 벽을 만들어 자신과 옆에 있는 밀레를 보호했다.
“미친놈아…. 그러니까 내가 진즉에 도망가자고 했잖아.”
“너는….”
“기억해준다니 영광이네.”
과거 태운이 F급 헌터 판정을 받고 E급 던전에 들어갔을 때 만났던 칠죄신교 원로다.
밀레는 그때 죽을 뻔했던 벨을 살려주었던 사람이다.
태운은 모르고 있었지만 김현우와 자신을 포함한 헌터 협회의 헌터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검사, 김상연에게 태운의 위치를 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혓바닥에 칠죄신교의 문신이 있었던 사이코 검사 말이다.
“너한테는 한 수 배웠다.”
“아, 그래? 아주 영광이네.”
벨은 태운을 비꼬며 자극했다.
“그렇지만 널 살려둘 생각은 없다.”
태운은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벨을 놔둘 생각이 없었다.
‘전 공격보다 더 확실한 방법으로.’
태운은 에테르 블레이드를 시전했다.
“죽어라.”
태운은 벨에게 달려들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음…?”
뭔가를 베는 감각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딜 공격하는 거야?”
태운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베었는지 알 수 있었다.
“시체?”
태운은 방금 자신이 죽인 원로의 시체를 반으로 벤 것이다.
‘내가 이걸 왜….’
마기는커녕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벨과 시체의 위치를 바꿀 수단은 생각할 수 없었다.
“왜 얼타고 있어.”
쿠-웅!
“크윽….”
고작 원로 주제에 성장한 태운의 성벽 갑주를 한 번에 깨버리고 타격까지 주었다.
태운은 급하게 뒤를 돌아 한 번 더 공격을 했지만 그곳에 벨은 없었다.
태운이 방금 한 번 더 베었던 시체를 한 번 더 베었을 뿐이었다.
“이것 봐라….”
태운은 그 순간 그들의 목적을 알아차렸다.
“시간 끌려고?”
태운은 이들에게 쓰러지거나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냐고 한다면 아니었다.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벨과 시체의 위치를 바꾸는지 알아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지 하지 않아도 벨과 밀레를 빠르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긴 하다.
‘에테르 익스플로전을 사용하면 되긴 하지만….’그렇게 되면 인천의 절반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릴 것이다.
“우리가 받은 임무는 널 상대로 시간을 끄는 거였거든.”“당연하지. 미친놈아, 우리가 대원로도 아니고 널 어떻게 이기겠어?”
“넌 왜 말할 때마다 욕을….”
벨은 한 번 더 태운을 공격했다.
“두 번은 안 당하지.”
태운은 에테르 건틀릿을 사용하고 공격해오는 수십 개의 팔을 파고들어 복부를 노렸다.
쾅!
하지만 이번에도 벨은 공격에 당하지 않았다.
쓰러져 있던 시체와 벨의 위치는 또 바뀌었다.
“하… 거슬리네.”
태운은 여기서 시간을 이렇게 쓸 수 없었다.
정일준과 시저가 바이튼과 싸우고 있고 강일환이 도우러 가긴 했지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태운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정일준과 시저가 바이튼과 싸우고 있을 곳에서 엄청난 양의 마기가 폭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느낀 태운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쉽게도 너는 내가 직접 죽이지는 못하겠네. 너랑 여기서 놀 시간이 없어서.”태운은 검을 검집에 넣고 뒤를 돌아 바이튼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가만히 둘 것 같아?”
벨과 밀레는 강태운을 놔줄 생각이 없었다.
대원로에 버금가는 엄청난 힘, 그 정도의 힘을 가진 태운이 바이튼에게 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니까.
어떻게든 태운을 붙들어 놔야 했다.
“너희는 내 병사들이랑 놀고 있어. 그림자 방패병, 그림자 창병 소환.”태운의 그림자에서 큰 덩치의 병사들이 25명이나 소환되었다.
그림자 방패병과 그림자 창병은 B급 헌터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병사들이다.
특히나 그림자 방패병은 방어에 특화된 병사로 벨의 공격을 몇 번은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의 A급은 10명의 B급 헌터를 상대할 수 있는 수준. 이 정도면 이길 수도 있어.’확실히 죽이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었으니까.
“비상의 룬”
태운은 뒤로 돌아보지 않고 바이튼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하… 얕보였네….”
벨은 근육질의 팔, 수십 개로 이루어진 자신의 팔을 하나로 합쳤다.
그러자 마치 조강현이 거인화를 사용한 것과 같은 거대한 크기의 팔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조강현의 팔보다 근육이 더욱 단단하게 압축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 그래도 나름 다음 대원로 후보들인데.”콰-앙!
벨의 주먹이 움직이자 그림자 방패병 셋이 동시에 소멸했다.
다른 병사들도 팔다리가 날아가긴 했지만 금세 회복했다.
“하… 밀레 너도 가만히 있지 말고 도와줘라.”
“알았어. 미친놈아.”
고등학생 무렵의 여자처럼 보이는 밀레는 보랏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마기를 축적했다.
그리고 한순간에 그것을 폭발시켰다.
“공간 파괴.”
쩌적.
그림자 병사들이 서 있는 공간이 유리가 깨지듯 파괴되었다.
“잘했어.”
그리고 벨이 한 번 더 주먹을 날리자 유리처럼 깨져 버린 공간은 공간의 빈틈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 안에 있던 그림자 병사들은 공간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촤르르륵.
그런 후 공간은 빠른 속도로 재생되었다.
“이제 15명 남았나? 빨리 처리해 버리자고.”“재생되니까. 한 번에 완전히 부숴 버려야 해. 미친놈아.”
“그래. 알았어.”
외견만 보면 언제나 밝게 웃고 있어야 할 어린 나이의 여자아이처럼 보였지만 밀레는 입에 항상 욕을 달고 살았고 얼굴 또한 펴진 적이 없었다.
항상 어딘가에 불만이 있는 듯, 화가 나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간다. 밀레, 따라와.”
하지만 벨은 수년간 같이 지내며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았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본인도 정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 * *
콰자자자작!
“크윽….”
“이 버러지 같은 놈들아! 방금처럼 나대보라고!”고작 수 분간의 싸움으로 인해 바이튼이 지내던 모텔 전체가 파괴되었다.
시저가 피해를 늘리지 않기 위해 다른 건물들을 보호하고 있었던 덕분에 피해가 적은 것이었다.
“정일준, 저런 녀석에게 어떻게 검상을 입힌 거냐.”
“저도 모르겠네요.”
강일환이 가세하긴 했지만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수십 미터의 연검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자유자재로 다루는 바이튼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들 지쳤어.’
시저는 방패로 연검을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이미 둘 중 하나의 방패는 너덜너덜해져 곧 박살 날 것 같았고 시저의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바이튼이 휘두르는 것이 연검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에 담겨 있는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한국 헌터 중 버티는 힘이 가장 강하다 평가받는 시저도 날려 버릴 정도였고, 그 때문에 시저의 몸은 이곳저곳이 부러져 있었다.
“허어… 허억….”
정일준은 숨을 거칠게 내쉬며 검을 고쳐 쥐었다.
강일환도 자신의 건틀릿을 고쳐 끼우며 바이튼을 주시했다.
이렇게 자신의 무기를 한 번 점검하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단순히 긴장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의 사소한 실수로 목이 달아날 수 있는 그런 싸움이었으니까.
“하아… 이 버러지들…. 날 언제까지 귀찮게 만들 셈이냐!”바이튼은 엄청난 양의 마기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때.
“늦어서 미안합니다.”
정일준, 시저, 강일환의 등 뒤로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들의 부상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가기 시작했다.
“뭐야…?”
성능 좋은 회복 마법을 많이 받아보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회복 마법을 받으면 상처는 회복되지만 스태미나는 크게 떨어지니까.
하지만 지금 받은 회복 마법은 아니었다.
상처도 회복되고 스태미나까자 회복되었다.
게다가 왠지 모를 따스한 기운까지 느껴져 정신까지 말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건 신성력을 얻은 태운의 회복 마법의 위력이었다.
“네놈이구나…. 그 더러운 기운을 내뿜는 게!”바이튼은 태운의 등장과 함께 느껴지는 신성력에 분노했다.
“죽어라… 죽어!”
콰자자자작!
전보다 더 강력하고 빨라진 연검에 땅이 울렸다.
쿵!
시저의 방패를 때린 연검은 더 이상 연검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연검의 탈을 쓴 예리한 둔기라고 볼 수 있었다.
“크윽…. 이걸 어떻게… 막으라고….”
시저가 그 공격을 한 번 받아내며 신음을 흘리자 태운은 한 가지 수를 사용했다.
“디바인 인챈트.”
태운은 시저의 방패에 신성력을 주입해 주었다.
그러자 시저의 방패에 닿은 바이튼의 연검이 짧은 순간 동안 약해져 시저가 공격을 막기 쉽게 해주었다.
“이제 싸우기 한결 편해질 겁니다.”
태운은 에테르로 메테리얼을 만들며 말했다.
“바이튼, 2차전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