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276화 (276/379)

276화

[어젯밤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서 어드벤처 길드의 길드장인 코르벤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시신은 목이 잘린 채 발견되어 경찰 측은 타살이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수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문, 채모, CCTV 영상 하나 발견되지 않아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어젯밤 살해된 코르벤 헌터의 범죄 자백이 담긴 녹음 파일이 경찰에게 전해졌다고 합니다. 코르벤은 어드벤처 길드의 헌터 일부를 차출해 온갖 끔찍한 범죄를 조직적으로 저질렀다고 합니다. 자세한 사실은…]

“뭐… 잘됐네.”

태운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태운이 일을 크게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아무런 흔적도 찾아내지 못했다.

사실 경찰들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태운을 찾아내는 것은 굉장히 힘들 것이다.

태운은 투명화를 사용하고 마스커레이드까지 사용한 상태에서 일을 벌였다.

게다가 CCTV가 있을 수 없는 하늘을 날아 그 호텔까지 접근했고 그 이후에도 투명화를 웬만해서는 해제하지 않았다.

지문과 채모도 절대 남겨두지 않았고 목격자라고 해봐야 태운이 코르벤을 끌고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의아함을 느꼈던 경호원뿐이다.

그마저도 태운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지만 태운은 그 작은 흔적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코르벤을 죽이고 나오는 길에 그 경호원을 찾아 기억을 조작해두었으니까.

그 경호원은 코르벤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경호원의 입장에서도 크게 기억에 남는 사실은 갑질이었기에 아무 일 없이 지나간 의아한 기억은 사라져도 큰 위화감이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났네.’

태운은 이 일에 대해 뭔가 문제가 생기면 미국과 중국, 한국의 헌터 협회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미국, 중국, 한국의 공조 수사로 코르벤의 범죄 사실을 알아냈고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저항이 거세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느낌으로 말을 맞춰달라고 하면 어드벤처 길드가 있던 러시아도 별말 할 수 없겠지.’아무리 러시아라고 해도 헌터 강대국인 3개국을 상대로 문제를 삼기는 곤란할 테니까.

그리고 태운은 미국, 중국, 한국의 헌터 협회의 협회장은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대형 헌터 길드의 비호를 받으며 음지에서 활동하던 범죄 조직을 소탕한 공적을 나눠주겠다고 하면 거절할 협회장은 없을 테지.’아무것도 안 하고 협회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인데 협조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일이 잘 풀렸으니 귀찮은 일을 안 해도 돼서 좋네.’태운은 싱가포르 헌터 협회에서 지원해준 비행기 안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은 태운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와… 어드벤처 길드가 상도덕 없이 공격적인 전략으로 덩치를 불렸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길드장 갑질 논란이 종종 터져서 이미지가 좋은 길드는 아니었는데 이건 진짜 충격이다….

└애초에 사람이면 저럴 수 있냐? 진짜 엄청 악랄하네….

└어드벤처 길드는 어떻게 되려나? 길드 주요 인사들은 거의 전부 연관되어 있는 거 같던데.

└주요 인사들 전부 각성자 교도소에 들어가서 길드 공중분해 날 것 같던데?

└정상적인 사업체들은 정부에서 흡수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코르벤 죽이고 범죄 증거 경찰에 넘긴 사람은 누구임?

└원한 있는 사람 아닐까? 범죄 피해자의 가족이라든가…└코르벤이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잖음. 코르벤은 A급 헌터임. 저항한 흔적도 크게 없다고 하던데 그럼 정말 압도적인 힘으로 짓눌렀다는 건데 코르벤이 바보도 아니고 그런 힘을 가진 헌터의 가족을 건드렸겠음?

└네네, 아주 명탐정 납시셨네요.

└수준;;

“참… 어딜 가나 싸우네.”

태운은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내가 관련된 기사의 댓글에 싸움이 안 나는 꼴은 본 적이 없네.”그래도 이번 사건으로 사람들이 어드벤처 길드의 끔찍한 범죄 행위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후….’

이번 회담이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가면 태운은 더욱 바빠질 것이다.

‘길드를 더욱 키울 기반을 마련했으니 헌터들을 더 영입해야 하기도 하고. 내가 직접 키워주기로 했던 헌터들도 한 번씩 봐줘야 하고… 힘들게 얻은 한계 돌파를 완전히 써먹기 위해 스킬 숙련도도 올리고… 미뤄두었던 마정석 흡수도 끝내야 하니까.’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하지만 할 일이 많다는 건 태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가 될 수 없었다.

태운은 항상 바빴고 바빠야만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느꼈으니까.

오히려 하는 것 없이 쉬고 있는 것이 태운에게는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내가 쉬는 일은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있을 수 없어.’모우데라투스에게 칠죄종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이어받았다.

이 세상의 존망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멈출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빨리 한국에 돌아갔으면 좋겠네.’

태운은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의 태운은 알지 못했다.

칠죄종의 재림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일이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강해진 이후 신경도 쓰지 않았던 그 사람에 의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 * *

태운이 한국에 돌아온 날, 명운 헌터 길드의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의 곡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으그그그극….”

“요새 일이 진짜 많지 않아요?”

“길드장님이 사고를 워낙 많이 치고 다니셔서 그렇지, 뭐….”명운 헌터 길드의 규모는 벌써 소속 헌터들만 100명이 넘을 정도로 커졌다.

사무직만 해도 30명이 넘으니 이제 슬슬 대형 길드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었다.

“뭐, 그래도 길드가 커지는 게 뿌듯하기도 하잖아요.”

“그것도 그렇긴 해.”

그들은 인사팀의 원년 멤버로 처음에는 단기 알바로 고용되었다가 실력을 인정받고 정규직으로 채용된 사람들이었다.

“경희 언니, 오늘 퇴근하고 뭐 할 거예요?”

“난 딱히 일 없는데…. 같이 술이나 한잔할까? 형식아, 너는?”

“네?”

인사팀 원년 멤버 중 유일하게 남자인 이형식은 쉬는 시간에도 일을 하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듯 대답했다.

“하여간, 쉬는 시간에는 좀 쉬지.”

“하하하… 아시잖아요. 제가 일하는 속도가 좀 느린 편이라는 거….”

“그래서 오늘 퇴근하고 술 마실래?”

이형식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오늘은 오랜만에 여자친구 만나는 날이라… 요새 일 바빠서 자주 못 만났더니 조금 서운해하는 것 같더라구요.”“이야… 이런 거 보면 사람은 연애를 하긴 해야 하나봐. 퇴근하고 나면 헌터 덕질만 하던 놈이 운동도 하고 여친이랑 데이트도 하고….”

“하하….”

“알았어. 오늘은 민주랑 둘이서 술 마셔야겠네. 하던 일 마저 해.”

“네.”

이형식은 짧은 대화를 끝내고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 사람은 민첩이 괜찮은데 근력이나 체력이 너무…. 그래도 실력이 나쁘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길드 차원에서 케어해 주면 등급이나 평가 이상의 효율을 보여줄 것 같기는 해. 일단 넘겨보고…. 이 사람은….’인사팀의 인원은 6명, 이형식은 그중에 나이는 가장 적었지만 팀장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형식을 제외한 5명은 스탯과 특성을 점수로 매겨 최저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을 잘라낸다.

그리고 기준에 합격한 약 2~30%의 이력서를 이형식에게 전송해 이형식이 특성과 스탯, 실력, 평판 등을 종합해 길드장인 강태운에게 최종적으로 검수를 받았다.

그렇게 쉬는 시간에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던 이형식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이력서가 하나 떠올랐다.

“어…? 잠깐만…. 아니….”

이형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니, 왜… 마이클 케이 헌터가 명운 길드에 이력서를 넣었지…?”마이클 케이와 마운틴 길드의 계약 기간은 아직 2년이나 남아 있었다.

“잠시만요. 여러분. 여기 마이클 케이라는 헌터 기준치 통과시킨 사람 누구예요?”

“어, 접니다.”

새로 들어온 인사팀원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안경을 쓰고 곱슬머리를 한 남자 직원이었다.

“이거 진짜 마이클 케이 맞아요?”

“어… 그렇지 않을까요?”

“아니… 이 정도 수준의 헌터가 1,000억이 넘는 계약금의 절반을 포기하면서까지 명운 길드에 들어오려고 한다…?”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A급 헌터가 이력서를 넣는 일이 아주 없는 일도 아니어서 그냥 올리긴 했는데… 죄송합니다.”“아니에요. 지금 나무라는 게 아닙니다. 저 스스로도 좀 놀랐거든요. 일단 알겠어요.”이형식은 다시 자리에 앉아 태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드장님, 지금 혹시 통화 가능하십니까?”-네, 혹시 마이클 케이 헌터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전화하신 건가요?

“네…? 그걸 어떻게….”

-이미 소문은 들었거든요. 마이클 케이 헌터가 마운틴 길드 탈퇴했다고…. 일단 결재 올려놓으세요. 제가 직접 만나보고 계약하겠습니다.

“어… 네, 알겠습니다.”

이형식은 전화를 끊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헌터님이 외국만 나갔다 오면 무슨 일이 이렇게 터지냐….”이형식은 태운을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 * *

“외국만 나갔다 오면 항상 사고를 치고 다니는구나.”

“네?”

태운은 한국에 돌아온 후 길드의 업무를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자하르의 연구소로 왔다.

마이클 케이는 이런저런 문제에 부딪혀 일주일 뒤에나 한국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시간은 넉넉했다.

그런데 간만에 본 자하르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모를 것 같았나. 코르벤 녀석 죽인 거, 너 아니냐?”

“어… 네? 설마요….”

태운은 시치미를 떼보았지만 자하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나한테 거짓말할 것 없다.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옛날부터 마음에 안 들었던 녀석이니까.”

“어… 음…. 어떻게 아셨어요?”

“얼마 전에 코르벤 녀석이 나에게 연락을 취했었다. 나에게 이상한 연구를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었지. 나는 바로 거절했지만 뭔가 의심스러워서 뒤를 조금 캐보았지.”코르벤의 범죄 조직 중 인충회라는 사이비 교단을 세워 마력 증강 마약을 팔았던 Z처럼 마약을 개발하는 조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마 그것 때문에 자하르를 끌어들이려 했던 것이겠지.

“조사를 하던 중에 네 길드에 들어간 창영우라는 녀석의 동생의 사연을 알게 되었지.”

“아….”

“네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 사실 안다면 가만히 있을 녀석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이렇게 사고를 벌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큼….”

태운도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범죄 조직을 거느린 코르벤은 평소에 수많은 경호 인력을 데리고 다녔다.

그렇기에 경호원을 많이 데리고 다니기 힘든 타이밍을 노려야 했고 그 타이밍이 회담이 끝난 날의 밤이었다.

태운은 그 기회를 날리기 싫었고 즉흥적으로 계획을 짜서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래, 오늘은 어떻게 할 거냐?”

“당연히 마정석 흡수를 해야죠.”

“그래, 준비하고 캡슐에 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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