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274화 (274/379)

274화

신태연이 칠죄신교의 하늘섬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끝난 건가…?”

“수고했다.”

신태연은 일주일간의 칠죄신교의 일원으로서 기본 훈련을 거친 후 대원로가 되는 의식을 받았다.

신태연은 자신의 몸을 둘러보다가 의아해하며 쟝에게 말했다.

“뭔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만.”

쟝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조금 멀어져서 말했다.

“마기를 한번 끌어 올려 보지 않겠나?”

“마기를 끌어 올리라고? 알겠어.”

신태연은 자신의 심장 한켠에 뭉쳐있는 마기를 천천히 끌어 올려 보았다.

“크윽…!”

그러고는 신태연은 심장을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당히 고통스러웠지만 신태연은 웃고 있었다.

뿌득… 뿌드득.

신태연의 몸이 갑자기 뒤틀리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시절 게으르게 한 훈련과 오랜 기간 방탕하게 살아왔던 시간 탓에 각성자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신태연의 몸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지금 마기에 의해 몸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형편없었던 과거의 몸은 사라졌다.

“이게… 나라고?”

“호오… 이건 기대 이상인데.”

신태연의 몸은 거의 두 배 이상 부풀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팔다리에 징그러울 정도로 혈관이 도드라졌다.

“신태연, 자네는 마기에 대한 감응력이 뛰어난 것 같군.”

“그런가?”

이 말은 진심이었다.

대원로가 되면 마기에 의해 신체가 변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사람의 특성이나 스킬을 반영해 신체가 변화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거르고 거른 끝에 남은 대원로 후보도 절반은 이런 일을 겪지 않는다.

특성이나 스킬을 사용하기 더욱 편한 신체로 변한 경우는 레이지와 바이튼, 쟝, 마르기가스 정도밖에 없었다.

‘예상 밖의 수확이군.’

쟝은 신태연을 고작 사나흘 정도 쓰다가 버릴 생각이었다.

더 써먹고 싶어도 써먹을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정도로 마기 감응력이 좋다니… 10번의 전투 정도는 버틸 수 있겠는데…?’싸움을 하거나 마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신태연이 마기에 잠식당해 폭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급하게 먹을 필요는 없었다.

천천히 여유롭게 녀석을 사용할 기회를 엿보다가 적절한 기회에 사용하면 된다.

‘의외의 수확이군.’

그렇게 생각한 쟝은 페이지에게 신호를 보냈고 페이지는 쟝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쟝 녀석… 귀찮게 하는군. 하지만… 이건 기회다.’이번 하늘섬 타격 작전으로 인해 생긴 피해를 메우고도 남을 혼돈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페이지는 신태연을 써먹을 방법을 다시 구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헌터들의 전력을 깎기 위해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 이상 조금 더 확실하게 써먹을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잘만 하면 그분들의 강림을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을 것 같군.’어차피 버릴 패, 써먹을 거면 제대로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쟝과 페이지는 신태연을 잘 써먹고 그가 죽었을 때 그 뒤를 이어 대원로가 될 사람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크흐흐흐….”

그것도 모르는 신태연은 자신의 힘에 취해 힘을 여기저기 사용해보고 있었다.

신태연의 돌출된 핏줄에서 대량의 피가 흘러나왔고 그의 몸에서는 대량의 마기가 방출되기 시작했다.

그 힘은 오만의 힘을 해제하고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 쟝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두 가지 죄악의 좌에 앉았기에 가질 수 있는 힘이었다.

“대단하군. 아주 훌륭해.”

쟝은 박수를 치며 신태연을 바라보았다.

그 박수의 의미는 신태연이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달랐지만 말이다.

* * *

“후… 그래도 잘 끝났네요.”

태운과 전대섭, 허덕륜은 회담을 끝내고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태운의 안도의 한숨에 전대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황이 그렇게 됐는데 저들이 뭘 하겠어. 꼬리를 내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거다.”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태운과 협력하기로 한 4명의 헌터는 그들 하나하나가 헌터계를 뒤흔들 수 있는 권력과 힘을 가진 헌터들이었으니까.

길드에 몸담고 있는 헌터들의 입장에서는 적대하기 까다로웠을 것이다.

“이젠 뭘 할 생각이냐.”

허덕륜은 태운에게 회담 이후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음… 만나야 할 사람이 좀 있어서요. 그 사람들을 좀 만나보려고 합니다.”

“정아는 안 만나봐도 되겠나?”

“괜찮습니다.”

지금 연정아는 숙소에서 쉬고 있다.

회담장에서 헌터들이 말하는 내용 중에는 연정아를 자극하는 내용이 한가득일 것이라 예상하고 숙소에 두고 온 것이다.

‘연정아 성격이면 이러나저러나 화를 냈을 거고 그랬으면 어쨌든 상황은 더욱 안 좋게 흘러갔겠지.’당사자가 있으면 대놓고 옹호해주기 민망하기도 하니까.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 보아도 전대섭이 연정아를 숙소에 떼어놓고 온 것이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정아는 나중에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지금 만날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말이죠.”두 명뿐이었지만 그중 한 명은 만나려면 준비가 필요했으니까.

“그래. 너도 생각이 있겠지. 그럼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간만의 휴식을 즐겨야겠구나.”“네, 지금까지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건 앞으로도 똑같을 거다.”

태운은 고개를 숙였다.

“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허덕륜과 전대섭은 기간트 에이지가 끝나고 쉬지 않고 드래이그 고흐를 상대했다.

그 이후에도 태운이 찾아낸 마약 조직을 잡겠다며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시간을 내서 도와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섬 타격 작전이 시작됐다.

전대섭과 허덕륜은 최근 몇 달간 굉장히 바쁘게 살아왔다.

그건 태운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뵙겠습니다.”태운은 그 말을 하고 둘과 헤어졌다.

그리고 태운은 그 후 바로 한 병원으로 향했다.

그 병원은 바로 태운이 회담 시작 전에 기절시킨 마이클 케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이었다.

“아, 강태운 헌터님 오셨군요.”

병원 입구에서는 헌터 협회의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에 태운은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하… 말도 마십쇼. 케이 님이 기절하고 일어나자마자 강태운 헌터님을 데려오라고 난리를…”“별일 아니었네요. 병실로 안내해주세요.”

“네…?”

별일 아니라는 태운의 말에 협회 직원은 조금 의아해했지만 케이를 진정시킬 방법은 강태운을 데려가는 것밖에 없었기에 그를 케이의 병실로 안내해줬다.

“강태우우우운!!!”

“케이 님! 병원에서는 조용히 해주세요…!”태운이 해당 병실의 문을 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헌터들이 사용하는 1인 병실은 방음이 기가 막히게 잘 되는데 이 정도 크기라니….’목청 하나는 참 대단한 것 같았다.

드르륵.

태운은 병실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침대에 누워 있는 케이와 눈이 마주쳤다.

“강태운!”

케이는 자신의 팔에 꽂혀 있는 링거 주사를 뽑고 바로 태운에게 걸어왔다.

“강태운…!”

케이가 강태운에게 천천히 걸어오며 팔을 풀었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때릴 것 같은 기세에 케이를 말리고 있던 간호사와 뒤에서 보고 있던 협회 직원이 기겁을 했지만, 둘이 걱정하는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슨…?”

“죄송합니다.”

케이가 태운의 앞에 도착하기 전에 태운이 케이를 향해 고개를 숙인 것이다.

“제이크 케이, 미국의 마운틴 길드의 일원으로 참가해 전사 12명을 쓰러뜨리고 원로와 혈투 중 상대하던 원로를 죽인 후 같이 전사했습니다.”태운은 고개를 숙인 채 제이크 케이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말해주었다.

“갑자기 무슨….”

케이는 예상치 못한 태운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것 같았다.

“제이크 케이 헌터님은 하늘섬 타격 작전에서 큰 공을 세우셨고 명예롭게 전사하셨습니다. 그런 위대한 헌터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죄송합니다.”태운은 진심이었다.

인류를 위해 싸웠고 그 전투 중 사망하였다.

이처럼 위대한 헌터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회담 시작 전에 했던 발언들에 대해 모두 사과드리겠습니다. 그 자리에는 저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랬기에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제이크 케이 헌터님을 모욕하고 그의 유가족인 마이클 케이 님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사죄드리겠습니다.”

“…….”

마이클 케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원했던 것은 강태운을 때리고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번뿐만이 아니다.

케이가 바라는 것은 따로 있었다.

제대로 된 대우, 일한 만큼 버는 것, 진심이 담긴 사과.

하지만 그것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망나니가 되기로 정했다.

압도적인 힘으로 행해지는 폭력.

그것만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받아내기 쉬웠으니까.

“…아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는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100번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은 눈앞의 남자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약자는 강자에게 굽히고 살아야 한다.’

강태운은 그런 힘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과는 받아주겠네…. 그런데 혼자 있고 싶네. 다들 나가주게.”갑자기 침울해진 마이클 케이는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낯선 케이의 모습에 태운과 간호사, 헌터 협회 직원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지금껏 뭘 한 거지?’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힘의 논리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니.

“하….”

케이는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 가지 결심을 하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케이가 고심 끝에 전화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매니저였다.

“마운틴 길드와 했던 전속 계약을 해지한다. 위약금은 합의가 가능한 선에서 제시해.”-네…?

“그리고 한국의 명운 길드에 연락을 넣어봐. 헌터 자리 하나 남냐고.”마이클 케이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원수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은인이 되어 버렸군.”케이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퇴원할 시간이 되었으니까.

그때, 태운은 병원에서 빠져나가 한적한 골목에서 자신의 아공간 벨트에 들어 있는 물건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 물건들은 하나같이 기척을 감추는 아티팩트들이었다.

‘나는 마법을 사용해도 마나 감지에 잡히지는 않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태운은 기척을 감추는 장비를 착용하고 필요 없는 물건들을 다시 아공간 벨트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골목에서 나왔다.

‘두 시간 정도만 더 있으면 하늘이 어두워지겠네.’태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투명화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태운이 지금 향하고 있는 장소는 바로 어드벤처 길드의 길드장인 코르벤이 묵고 있는 숙소였다.

‘오늘 끝장을 보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