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정말 괜찮겠나?”
“네, 이미 각오한 일입니다.”
던전 공략대는 태운만 놔두고 던전 출구로 갈 준비를 마쳤다.
강태운은 떠날 준비를 전부 마친 허덕륜에게 말을 걸었다.
“이미 헌터들 전부 알았죠?”
“던전이 클리어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거라면 그렇다.”
“뭐… 어쩔 수 없죠.”
하오와 같이 출구로 향했었던 정찰대의 B급 헌터들도 던전의 출구가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굳이 입막음을 하지 않았으니 소문이 퍼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다들 알게 될 사실이니 혼란을 막기 위해 소문의 형태로 알게 해두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뭐… 그렇죠.”
“음… 던전 출구까지는 일주일 정도가 걸릴 것 같다.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몸을 사려야 한다.”
“네, 알고 있습니다.”
하오의 정찰대는 던전 출구의 상태만 확인하러 간 것이 아니고 던전 출구까지의 최단 루트를 찾는 역할도 수행했다.
“그래도 길은 잘 찾았네요. 원래 왔던 길로 돌아갔으면 두 배는 더 걸렸을 텐데.”“네 짐에 지도를 넣어놨다. 일을 마치고 그대로 돌아오면 돼.”
“알겠습니다.”
강태운과 허덕륜은 그렇게 대화를 마쳤고 강태운은 명운 길드의 멤버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갔다.
“태운아, 정말 괜찮은 거지?”
태운이 명운 길드원들에게로 오자 신가연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다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저도 나름대로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걱정을 안 하냐?”
“그러니까. 이런 던전에 혼자 남겠다니… 처음 들었을 때는 미친 거 아닌가 생각했었다니까.”공전하와 조강현도 거들었다.
“이 던전에 들어왔을 때부터 생각했던 겁니다. 물론, 이 방법을 사용할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했지만 처음부터 생각해왔던 만큼 계획은 구체화되어 있어요.”“우리가 해야 할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태운의 말에 구찬영이 말했다.
“그럴 생각이야. 그런데 오늘 내가 부탁할 일은 하나뿐이야. 무조건 살아서 던전 밖으로 나가는 거.”
“말을 말자….”
이설아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태운은 그들의 안일함을 지적했다.
“제가 한 말을 지키지 않으면 무조건 죽을 겁니다.”
“어… 어, 알겠어.”
갑자기 정색하는 태운을 본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태운이 이렇게 정색할 때는 정말 목숨이 위험할 때였으니까.
“제가 말한 대로 제가 신호를 보내면 마법으로 귀와 눈을 막으세요. 제 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궁금해하지 말고 밖으로 나갈 생각만 해야 합니다.”“하… 알겠어. 네 말은 알겠는데 어떻게 그러냐고.”구찬영은 태운에게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너도 생각이 있다는 걸 우리라고 모르겠냐고. 너도 지금 심란한 걸 알고 있는데 우리 생각도 좀 해줘.”
“…….”
찬영은 물론이고 길드원들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구찬영은 아카데미에 있던 동안 태운과 친구이자 라이벌로 서로 큰 도움을 주고받았다.
창영우는 태운 덕분에 어드벤처 길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설아와 조강현이 전 길드에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것도 태운이었다.
공전하도 최근에 발도술에 대한 고민을 태운과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태운에게 고마움을 넘어선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길드원들의 입장에선 태운이 이 위험한 던전에 혼자 남는다는 게 굉장히 큰 불만이었다.
“왜 하필 너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지만 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네가 한다고 한 거겠지.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으려 했어. 그런데 네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구찬영이 지금까지 쌓아 왔던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찬영아, 진정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신가연이 둘의 사이에 끼어들어 찬영을 말렸다.
“하….”
찬영은 한숨을 쉬고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태운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내가 많이 예민했던 것 같아.”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겨우 나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친구인 강태운이 던전에 남는다는 말을 들으니 잠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게다가 2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동을 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런 미친 기후에서 예민해지지 않는 게 이상하기도 하다.
“아니야. 내가 이기적이었네.”
태운도 방금 찬영의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은 공적인 자리고 생사가 오가는 장소다.
“미안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는 이곳에서 살아나간 후에 해도 될까.”아직은 그들이 기다려줬으면 했다.
“그래. 그 사과 받기 위해서라도 네 말 따라 잘 살아나가야겠네.”창영우의 장난스러운 마무리로 대화가 끝이 났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태운은 차라리 지금 터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마음의 골이 깊어지면 틀어지는 게 인간 관계였으니까.
“다들 준비되었겠지?”
그때, 허덕륜이 헌터들을 모아놓고 작전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태운은 그것을 보고 허덕륜의 옆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다들 소문을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던전은 아직 클리어되지 않았고 출구는 열리지 않았다.”그 말에 헌터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소문으로만 알고 있던, 설마 했던 이야기가 사실이 된 것이니까.
혼란스러워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네들은 살아나갈 수 있게 할 것이다.”던전이 클리어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가게 해준다는 것인가?
헌터들은 그런 의문을 허덕륜에게 보냈다.
“우리에겐 닫힌 던전의 출입구를 부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바로 하오 헌터였다.
허덕륜의 말에 한 B급 헌터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하오 헌터도 A급 던전의 출구는 부술 수 없었습니다!”하오와 함께 정찰대로서 던전의 출구에 다녀온 사람이었다.
물론, 허덕륜도 예상한 일이었다.
“그것도 알고 있다. 하오 헌터는 던전의 출구가 닫혀 있는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던전의 입구를 부숴보려 했지만 A급 던전의 입구는 마나 농도가 너무 강해 실패했다고 보고받았지.”
“그럼 뭘 어떻게 하려고….”
“그것도 다 계획이 있다.”
그때, 태운이 허덕륜의 옆에 도착했다.
“강태운 헌터가 이 던전에 남을 것이다.”
“예…?”
그 말에 다시 한번 헌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강태운 헌터가 홀로 남아 던전 자체를 무너뜨릴 것이다.”그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게… 무슨….”
“강태운 헌터가 던전을 무너뜨리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면 던전의 고유 마나 파장이 흔들리면서 닫힌 던전 출구에도 틈이 생길 것이다. 그 틈에 하오 헌터가 던전 출구를 찢어 버리고 모두 탈출하는 거다.”
“…가능한 겁니까?”
이론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검증된 방법은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살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은 이거다. 자네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이대로 이동 중에 큰 트롤크 무리를 만나 전투를 벌이면 그대로 던전 공략은 실패라는 사실을.”
“…….”
헌터들도 알고 있었다.
적지 않은 사망자와 부상자, 사기 저하와 체력적인 문제로 전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게. 내 판단하에 작전을 바꿀 수도 있으니 말이야.”허덕륜의 말이 끝났을 때는 더 이상 이 작전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헌터들은 강태운을 남겨두고 던전 출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후….”
헌터들이 던전 출구로 향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태운은 그동안 비상의 룬을 사용해 던전 상공을 날아다니며 에테르 익스플로전을 마구 쏘고 다녔다.
그 덕분에 던전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되었고 대부분의 생명체가 죽거나 태운이 의도한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찌-익.
태운은 마지막으로 남은 육포를 뜯어 먹으며 에테르 익스플로전을 사용했다.
퍼-엉!
“슬슬 신호가 올 때가 되었는데 말이지.”
태운은 봉지 안에 남아 있는 육포 부스러기들을 입에 털어 넣으며 에테르 익스플로전을 한 번 더 사용했다,
“진짜 위력 하나는 괴랄하다니까….”
태운은 일주일 사이에 트롤크들의 왕을 만났다.
그의 힘은 라이칸 못지않게 강력했으며 트롤크들에 대한 통솔력도 상당했다.
물론, 천재지변에 가까운 태운의 힘에 속수무책으로 피난을 갈 뿐이었지만 말이다.
지금 피난 간 트롤크들은 다른 몬스터들을 처리해주고 있을 것이다.
태운은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위해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태운은 폭발로 인해 난장판이 된 땅 위에 겨우 숨을 쉬고 있는 몬스터 하나를 발견했다.
“질기네.”
에테르 익스플로전에 직격당하진 않았지만 폭발로 인해 사지가 전부 타버렸음에도 숨을 쉬고 있었다.
“뭐… 몬스터에게 동점심을 가질 만큼 인정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빨리 끝내주긴 해야겠네.”태운은 돌검에 에테르를 불어넣고 몬스터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지면이 길게 갈라지며 몬스터도 반토막이 나 죽었다.
그 순간, 태운의 숨이 턱 막혔다.
‘……!’
약하긴 했지만 이건 분명 ‘신들의 세상’에서 겪었던 고통과 느낌이 유사했다.
‘던전 외벽이 부서질 정도의 공격이 아니었는데…?’지속적인 에테르 익스플로전으로 인해 던전 외벽에 손상이 가 있던 것일까?
“후…우….”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숨은 쉴 수 있었다.
‘신들의 세상에서 느꼈던 감각과 다르진 않지만… 던전 외벽이 손상된 거라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야.’던전 외벽이 무너져 신들의 세상과 연결되면 숨이 턱 막히고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공포가 한순간에 닥쳐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감각은 뭐지?’
숨을 쉬는 게 답답할 정도의 감각
이것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모르면 지금부터 알아내면 되겠지.”
태운은 염력을 사용해 지면을 조심스럽게 파냈다.
“후… 긴장되네.”
태운은 과거 신들의 세상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필멸자가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것이지?]
……
[그런데 ‘저 녀석’에게서 ‘그 녀석’의 흔적이 보이는군.]
[돌아가려는 건가.]
[‘그 녀석’만큼 멍청하지는 않은 것 같군.]
[다시는 돌아오지 말거라, 필멸자여.]
태운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대화였다.
공포의 기억이기 때문일까?
그들의 대화는 태운의 기억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남아 있었다.
평범하게 말하는 것이었지만 인간인 태운에게는 치명적인 피해가 가해졌다.
신이라는 존재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상대해야 한다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그때, 태운은 흙과 바위를 염력으로 모두 파헤치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태운은 입을 막고 경악했다.
“이런 미친….”
태운이 파낸 지면 아래에서 본 것은 신들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것.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는 거대한 눈동자.
그것이 던전의 아래에 묻혀 있었다.
꾸물.
그리고 태운은 그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