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후… 일단 좋게 해결된 것 같긴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게 하나둘이 아니야.”태운은 수인족
몬스터들이 해산했다는 사실을 헌터들에게 알려주었다.
헌터들은 접근하는 일부의 몬스터들에게 빅포의 사체를 내어주고 멀리 떨어져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하….”
헌터들은 마음 편히 휴식을 취했지만 태운은 그럴 수 없었다.
따로 본 게 있었고, 떠오르는 게 있었으니까.
‘아직 이 던전의 보스는 밝혀지지 않았어.’던전에 들어서고 약 30분 정도가 지나면 보스에 대한 갈피를 잡을 수 있는 게 보통이었다.
B급 이하의 던전들은 고유의 테마를 가지고 있다.
곤충형 몬스터가 많이 나타나는 던전이면 보스도 곤충형 몬스터다.
만약 오크가 많이 나타나는 던전이면 같은 인간형 몬스터인 트롤이나 오크의 진화 형태의 몬스터인 엠페러 오크가 그 던전의 보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A급 던전은 던전의 크기도 크고 나타나는 몬스터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 때문에 보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던전의 보스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태운은 방금의 몬스터들의 행동으로 던전의 보스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던전의 보스는 아마도… 라이칸일 거야.’과거 데블스 에이지 당시, 식탐의 죄, 벨제부브의 선봉대장 역할을 했었던 종족의 이름이 라이칸이었다.
라이칸은 자신의 힘도 강했지만 그의 무서움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라이칸은 수백 킬로미터 밖에 있는 수인족
몬스터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고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즉, 몬스터들이 조직력을 갖추게 한다는 말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직접적인 전투력 버프는 아니지만 그 차이는 굉장했다.
통일된 의지로 달려드는 괴력의 웨어울프들에 의해 데블스 에이지 당시에 인류들은 큰 피해를 입기도 했었다.
그 때문에 라이칸이 가장 상대하기 성가셨던 적 중 하나라고 했던 최초의 헌터들이 인터뷰 내용도 있었다.
강한 힘 때문에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웨어울프들은 하나로 뭉쳐지자 엄청난 힘을 보여줬다.
실제로 전대섭도 그들을 막기 굉장히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라이칸이라….’
처음에는 트롤크의 상위 개체가 보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라이칸이 튀어나오자 태운은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트롤크보다 강한 개체가 분명히 존재하긴 할 거야. 트롤도, 오크도 힘으로 우두머리를 정하는 몬스터들이니까. 그러면 트롤크의 상위 개체도 존재는 할 거라는 말인데….’트롤크들을 견제하면서 라이칸을 죽일 수 있을 것인가?
그게 문제였다.
라이칸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트롤크의 수장까지 견제해야 한다니.
마치 던전 두 개를 동시에 공략하는 듯한 느낌에 태운은 막막해졌다.
‘마지막 수를 써야 하나?’
태운이 서너 일에 걸쳐서 던전을 박살 내며 라이칸과 트롤크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신들의 세상과의 경계를 부숴 버리면 모두 죽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전에는 큰 문제점이 있었다.
‘에테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신들의 세상의 영향력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문제야.’A급 던전은 보스를 죽이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
즉, 태운이 신들의 세상과의 경계를 부순 직후에도 헌터들은 던전 안에 남아 있어야 했다.
‘모든 감각을 차단하라고는 말했지만….’
신들의 세상에 영향을 받는 요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신을 인지했는가 인지하지 못했는가다.
마법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아 신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면 그 점은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태운은 신들의 세상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요건이 그것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에테르를 실험하던 그 던전. 그 던전은 등급이 높지 않은 던전이라 넓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신들의 세상을 열고 난 후에 던전 안에 살아 있는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어.’그 수많은 몬스터 중 신을 인지하지 못한 개체가 없었을까?
분명 한 마리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던전 안에서 살아 있는 몬스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신을 인지하는 것 말고 다른 요건이 또 있다는 말이지.’하지만 태운은 그 요건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신들의 세상에 들어간 본 경험이 한 번밖에 없었으니까.
자세히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놈들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었지.’신들의 입장에서 벌레 같은 존재일 뿐인 인간을 기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태운은 이미 한번 경고를 받은 몸이다.
다시 그들의 눈에 보였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때처럼 다시 살아나올 수 없을지도 몰라.’지금 태운은 스스로의 가치를 아주 잘 알고 있다.
태운이 에테르를 얻은 이후, 태운은 공식적으로 헌터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 중 3~4위에 달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전대섭, 셀과 힘의 차이는 좁히는 데 성공했지만 실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게 나는 탓에 아직은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이미 허덕륜과 하오는 확실하게 뛰어넘었다.
즉, 지금의 태운은 칠죄신교의 대원로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헌터라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있을 칠죄신교와의 전쟁에서 태운은 아주 중요한 역할 해주어야 한다.
태운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건 똑같으니….’태운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이건 최후의 수단이니까 벌써 고민하지 말자.”어차피 이 수단을 사용하게 될 상황까지 몰린다면 헌터들 모두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일 것이다.
“일단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태운이 그렇게 결정을 내렸을 때 밖에서 누군가가 태운을 불렀다.
“태운아, 시간 있니.”
“허덕륜 선생님?”
지금 태운을 부르는 사람이 허덕륜이라는 사실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예, 시간은 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나?”
“네.”
허덕륜이 텐트의 입구를 열고 들어왔다.
“선생님도 쉬셔야죠. 언제 이 기후가 끝날지도 모르니까요.”“괜찮다. 두 시간 정도 쉬고 나니 이미 체력은 전부 회복됐으니까.”“뭐… 저도 사실 이미 체력은 전부 회복됐습니다.”허덕륜은 어깨를 풀면서 말했다.
“몸 상태는 멀쩡하지만 뇌가 좀 굳은 거 같구나. 이런 전투 상황을 겪은 게 벌써 3년 만이니…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구나.”“하긴… 평소에는 혼자 움직이셨으니까요. 뒤처리만 헌터 협회의 손을 빌리셨었죠.”전대섭은 자신이 서울에 남는 대신 허덕륜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한국 헌터 협회의 인재 중 모든 사람들의 신뢰와 리더로서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허덕륜밖에 없었으니까.
심중현이나 강일환이 리더를 맡을 수도 있었지만 명분상 허덕륜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머리가 많이 굳어서 판단을 바로 하지 못할 때마다 네 조언이 도움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허덕륜은 그 말을 하고 조금 고민을 하다가 태운을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네가 마지막 작전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거… 혹시 ‘그거’냐.”태운은 허덕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운도 허덕륜이 말하는 ‘그것’의 의미를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네, 맞습니다.”
“하긴… 네가 던전을 부숴 버리겠다고 말한 이상 에테르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거고 그렇게 과격하게 에테르를 사용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던전 외벽을 부수게 되겠지.”태운은 거기에선 고개를 저었다.
“계획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던전 외벽을 부술 겁니다.”
“뭐…?”
허덕륜은 태운의 폭탄선언에 놀란 것 같았다.
“제 추측으로는… 이곳에 있는 보스 몬스터는 라이칸일 것 같습니다.”“라이칸… 라이칸이라…. 확실히 그때 그 수인족
몬스터들의 행동이 이상하긴 했다.”허덕륜은 그 말에 심각한 얼굴을 하고 태운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제가 던전 외벽을 부수겠다고 말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트롤크의 수장과 라이칸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에테르를 사용해도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던전 외벽을 부숴 버리고 ‘그곳’에 녀석들을 처넣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허덕륜은 순간 어지러워졌는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래… 그런 생각이었단 말이지….”
허덕륜은 태운이 자신의 생각보다 큰 결심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내 현실을 자각하고 라이칸의 강함에 대해 말해주기 시작했다.
“라이칸이라면 너를 제외한 모두가 힘을 합쳐도 상대하기 힘들겠군.”
“그 정도입니까?”
라이칸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생각지 않았던 태운은 허덕륜의 말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래, 나와 하오 헌터가 전성기 시절이었다면 두 명이서 막을 수 있었겠지만… 나는 과거에 있었던 큰 부상으로 기량이 크게 떨어졌고 하오 헌터도 전성기 시절과 비교했을 때 기량이 떨어진 건 사실이니까. 뭐, 조금 더 노련해진 것은 맞지만 말이야.”“그래도 두 분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그만큼 라이칸이 강하다는 말이다. 수인족
몬스터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다룰 수 있다는 게 라이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들었겠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녀석이 성가신 가장 큰 이유가 따로 있다.”
“그게 뭐죠…?”
허덕륜은 데블스 에이지 시절 라이칸과 싸웠던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라이칸이 수인족
몬스터의 수장인 것은 알고 있나?”“네, 알고 있습니다. 전대 라이칸의 척수를 마시면 라이칸의 능력을 계승 받는다고….”허덕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말하는 라이칸의 능력은 개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엄청난 생명력과 회복력을 말한다.”엄청난 생명력과 회복력.
말만 들어서는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네 아버지, 강철운 대장님이 벨제부브와 싸우고 서로 큰 부상을 입고 전투가 끝난 적이 있었다.”
“예.”
태운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자 귀를 쫑긋 세우고 허덕륜의 말에 집중했다.
“그때, 대장님을 치료하기 위해 후방으로 보내고 치명상을 입은 벨제부브를 마무리하기 위해 전대섭 형님과 내가 헌터 연합을 데리고 벨제부브가 숨어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라이칸을 만났다.”허덕륜은 순간 몸을 떨었다.
“그때 보았던 라이칸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라이칸은 벨제부브를 지키기 위해 수인족들도 데리고 오지 않고 급하게 단신으로 우리의 앞에 섰다. 그때 우리 쪽에 있던 헌터들은 수가 200명에 달했지. 지금으로 따지면 A급 헌터 수준에 달하는 사람도 10명이나 있었다. 나름 정예를 모은 거라 나머지도 전부 B급 헌터 수준은 되었어.”
“큰 피해 없이 처리할 수 있었겠는데요?”
전대섭과 전성기 시절의 허덕륜, A급 헌터 10명, 나머지는 모두 B급 헌터.
지금 이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 헌터들보다 강력한 전력이었다.
그 정도면 웬만한 몬스터들은 전부 잡을 수 있는 전력이다.
“그래… 큰 피해는 없었지. 라이칸에게는 고작 12명이 죽었으니까.”하지만 허덕륜의 얼굴은 어두웠다.
“라이칸… 그 녀석은 나와 전대섭 형님 그리고 200여 명의 헌터, 그 공격을 단신으로 나흘이나 버텼다.”
“나흘…?”
허덕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간 동안 벨제부브는 몸 상태를 수습할 수 있었고… 몸을 회복한 벨제부브는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흘간의 전투에 지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나와 전대섭 형님만 살아서 그곳을 빠져나왔다.”태운은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나흘이라니.
4시간도 아니고 4일이라니.
“알겠느냐. 라이칸이란 그런 몬스터다. 아니, 몬스터가 아니라 칠죄종의 괴수, 그들의 직속 부하라고 생각해라. 단순히 강함만 따지자면 대원로급, 혹은 그 이상의 강자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