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촤-악!
“더 끌어와야 할 것 같다.”
“알겠다.”
정일준과 시저는 수십 마리의 키메라를 순식간에 처리하고 다른 키메라들을 물색했다.
‘강태운… 너는 어디까지 내다본 거냐.’
정일준은 처음에 전대섭과 국내 상위 15개 길드과 중소 길드 연합만으로도 충분히 칠죄신교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과 시저를 A급 던전 공략대에 넣어달라고 말했지만 강태운은 들어주지 않았다.
정일준은 강태운이 칠죄신교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하늘에서 칠죄신교의 전사들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까지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강태운도 이런 상황을 정확히 예상하지는 못했을 거다.’하지만 태운은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 A급 던전에서 큰 도움이 될 전력까지 서울에 배치한 것이다.
그의 선견지명은 감탄스러워질 정도였다.
태운에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적에 대한 인정과 신중함 덕분이었다.
태운은 칠죄신교가 서울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때 바로 연정아에게 달려갔다.
태운이 아는 한 칠죄신교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연정아였으니까.
연정아는 칠죄신교 대원로회의 수장인 쟝이 칠죄신교 전사들의 수준이 낮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태운에게 알려주었다.
태운은 그 정보로부터 전사들의 수준을 올리기 위해 전사들 위주로 테러를 감행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전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원로들도 내려보낸다고 해도 전대섭과 15개 길드의 2~3군 공격대 정도면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태운은 쟝을 무시하지 않았다.
쟝을 본 것은 한 번뿐이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뒤통수를 얻어맞은 그가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예감이 들었기에 A급 던전 안에서도 큰 활약을 할 수 있는 정일준과 시저를 서울에 배치하고 협회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믿음직한 중소 길드들을 서울에 배치했다.
물론, 칠죄신교에 대한 이야기는 그중 극소수의 인원에게만 전달했다.
‘강태운… 대단한 놈이야.’
보통 실전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나이의 인물이 지휘권을 잡게 되면 자신의 책략에 취해 상대가 어떻게 대응해올지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태운은 달랐다.
그는 수백 번의 전투를 헤쳐나온 경험 많은 노장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태운의 그런 판단 덕분에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정일준! 이 구역에 있는 괴물들을 다 끌어왔다! 이놈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다른 구역으로 넘어간다!”시저는 정일준이 있는 광장으로 광진구의 모든 키메라들을 끌어 왔다.
약 100마리로, 전보다 서너 배는 되는 수였다.
“시저! 너무 많이 데려온 거 아니냐! 체력도 생각하란 말이야!”“시간이 없다! 강동구는 가온 길드가 커버해주고 있다곤 하지만 중랑구에는 중소 길드 연합밖에 없어!”“칫… 알았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보자고!”지금 서울에 낙하하고 있는 키메라들의 힘은 최소 C급 헌터와 비견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간간이 보이는 강한 키메라는 약한 A급 헌터와 비슷할 정도. B급 헌터의 수도 많지 않은 중소 길드 연합이 그들을 마주친다면 큰 사상자가 날 것이 분명했다.
“후….”
정일준은 시저에게 탱킹을 맡기고 검을 검집에 넣었다.
“크… 크윽….”
시저는 백여 마리의 키메라들의 공격을 온전히 받아내고 있었다.
적의 수가 많아질수록 강해지는 신체와 말도 안 되는 도발 범위를 가진 시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저가 키메라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을 때 정일준은 검집에 검을 넣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고는 스프링처럼 다리를 당겨 단번에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정일준은 과거부터 공전하의 발도술을 유용한 검술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 이후로부터 정일준은 공전하의 발도술을 연구해왔고 2차 각성을 마치고 A급 헌터에 오르면서 그의 발도술을 뛰어넘었다.
“발도, 백설난무(白雪亂舞).”
정일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마자 시저는 도발을 풀고 옆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정일준은 키메라들을 향해서 쏘아졌다.
촤자자자작!
키메라들의 한가운데에 들어간 정일준은 검로를 수없이 어지럽혔다.
그 직후, 마치 검로가 흰 눈이 춤을 추듯 움직이며 키메라들을 베었다.
정일준의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키메라의 피와 육편만이 남았다.
“절반 정도 처리했네…. 시저! 도와라!”
“알았다!”
정일준의 공격이 끝나자 시저가 나섰다.
시저는 도발 스킬을 사용하고 들고 있던 방패를 땅에 내리쳤다.
그러자 거대한 방패는 반으로 갈라져 시저의 양손에 들렸다.
반으로 갈라진 방패를 양손에 든 시저는 키메라들의 머리통을 부수기 시작했다.
정일준이 빠른 속도로 50여 마리의 적을 처치한 후 공격 태세로 전환한 시저까지 가세하자 키메라들은 순식간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정일준과 시저는 빠르게 키메라를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정일준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포션을 들이켰다.
최근에 발명된 스태미나 회복 물약이었다.
“후….”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 정일준, 빨리 중랑구로 넘어간다.”
“체력 괴물 같으니라고….”
정일준이 처음에 사용했던 ‘발도 백설난무(白雪亂舞)’는 사람의 신체로는 구조적으로 할 수 없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정일준이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2차 각성을 하면서 얻은 특성 덕분이었다.
그가 얻은 특성은 ‘선골화(仙骨化)’.
그 특성의 효과는 양날의 검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없는 움직임을 하려 할 때 체력을 소모해 신체의 구조를 일시적으로 바꿔 그 움직임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 특성이 발동될 때 소모되는 체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게 문제였다.
까딱하다간 적들 사이에서 체력을 모두 소모해 그 자리에서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될 수도 있었다.
“후… 일단 빨리 가지.”
“저 아이는?”
시저는 정일준이 넝쿨로 만든 천막 안에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괜찮아. 저 넝쿨은 키메라들이 한참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을 테니까. 이번 일이 정리되면 와서 꺼내주면 돼.”
“그렇군. 그럼 빨리 가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일준은 그 아이가 조금 신경 쓰였다.
떨어지는 키메라에 깔려 죽은 그 아이의 부모님을 생각해보면 아이가 겪을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일단… 이 난리통을 정리하자.’
그 이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정일준과 시저는 키메라들을 처치하기 위해 계속 움직였다.
* * *
“젠장…!”
“저 키메라는 도대체 뭐야…!”
중소 길드 연합 2팀. B급 헌터라고는 한 명밖에 없는 20인의 작은 팀이었다.
지금까지는 B급 헌터와 나머지 C급 헌터들의 연계로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이젠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이 자식…. 다른 키메라들과 달라!”
칠죄신교의 키메라들은 수십 명의 사람과 마기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기에 침식되어 더욱 강력한 키메라들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칠죄신교에서는 그들을 ‘특수 키메라’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금 중소 길드 연합 2팀의 앞에 나타난 키메라도 그 ‘특수 키메라’였다.
“아무리 검으로 베어도 금방 재생된다고…!”
“이건 트롤보다도 심하잖아!”
트롤은 신체 부위를 절단하면 조금이나마 재생을 늦출 수 있었지만 이 키메라는 사람을 뭉쳐놓은 살덩어리처럼 생겼다.
어딘가를 절단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크윽….”
하지만 녹아내리는 살덩어리처럼 생긴 모습과 달리 그 키메라는 공격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캬햐아악….]
키메라는 몸에 있는 구멍에서 독성 가스를 분출했다.
“숨을 참아라! 저 가스를 들이마셔서는 안 돼!”이미 저 독성 가스에 6명이나 중독당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키메라가 내뿜는 독성 가스는 산소에 노출되면 빠르게 없어지기는 했지만 독성 가스 때문에 키메라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휘-릭!
“크억!”
하지만 키메라는 살덩어리 안에서 촉수를 쏘아내 헌터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
공격하기 위해 다가가면 독성 가스를 내뿜고, 독성 가스를 피하기 위해 거리를 벌리면 촉수로 공격한다.
굉장히 단순한 패턴이었지만 압도적인 강자가 없는 중소 길드 연합에게는 굉장히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미쳐 버리겠네….”
그사이에 팀원 중 한 명이 더 당해 버렸고 이제 서 있는 헌터들은 팀장 현우중의 길드인 현웅 길드의 멤버들뿐이었다.
중소 길드 연합 2팀의 팀장인 현우중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생각나는 모든 수를 동원해 보았지만 상황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촉수가 닿지 않는 곳까지 거리를 벌려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 것이었는데 그 방법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키메라는 주변에 적이 없어지자 주변 건물로 눈을 돌렸다.
키메라는 촉수로 건물 기둥을 파괴하며 건물을 무너뜨리려 했다.
이곳은 서울 한복판. 이 주변에 있는 20~30층 짜리 건물만 수십 개다.
하나의 건물이 무너지면 건물의 연쇄적인 파괴가 벌어질 것이고, 그러면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날 것이다.
현우중은 키메라의 촉수를 겨우 피해내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현우중은 지키는 것이 있는 싸움이 이렇게까지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하지만 이대로면 전멸이야….’
이들이 전멸하면 키메라는 다시 건물을 부수기 시작할 것이고 그럼 이 주변에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제발…. 나에게 왜 이런 선택을….’
현우중은 선택을 해야 했다.
건물이 무너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녀석을 처치할지, 아니면 팀원들을 사지로 몰아넣어 키메라를 처치할지를 말이다.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현우중은 팀원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미안하다. 너희는 오늘 나와 함께 죽어줬으면 좋겠다.”현우중은 지금까지 5년 동안이나 자신을 믿고 따라준 길드원들에게 함께 죽어달라고 부탁했다.
‘이 말에 충격을 받고 뒤돌아 도망갈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죽어서 그들에게 저주를 받더라도, 팀원을 죽음에 몰아넣은 최악의 대장이 되더라도….
현우중은 그들을 붙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팀원들의 반응은 현우중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하… 무섭네.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알았어요. 형, 같이 죽죠.”
“이거 누가 영상으로 남겨줬으면 좋겠네. 이런 희생을 하고도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잊히고 싶지는 않아.”현우중은 그들의 반응을 보고 더욱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벌벌 떨리는 양손과 다리를 애써 감추며 아무렇지 않아 하는 그들을 보니 숨이 턱 막혔다.
“다들 그동안 고마웠고 재밌었다.”
현우중은 먹먹한 목소리를 애써 숨기며 소리쳤다.
“중소 길드 연합 2팀… 아니, 현웅 길드! 전원! 독성 가스 안으로 들어가 녀석을 죽인다!”중소 길드. 모두가 인정하지 않는 약한 길드의 수장이었다.
모두가 멍청하다고 말했었다.
B급 헌터면 대형 길드의 2군 공격대로 들어가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으니까.
돈이 없어 라면으로 식사를 때우고 수십 번이나 죽을 뻔하면서도 현우중은 자신이 길드를 만든 것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을 앞둔 지금조차 길드를 만들기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오오오!!!”””
현웅 길드의 멤버들이 모두 키메라에게 달려든 순간.
“백독불침의 룬.”
현웅 길드의 멤버들의 몸에 보랏빛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러자 독성 가스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
“월령, 가세해!”
룬의 사용자, 장현수가 익스퍼트 골드 B반의 멤버들을 이끌고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