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하… 머리 아파 죽겠네….”
태운은 길드 입단 테스트를 끝마치고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일단 헌터 협회에 말은 해놨지만 언제 해결될지도 모르겠고….”방금 헌터 협회에서는 남인철 헌터와 함께 던전에 들어갔던 헌터들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들에게서도 남인철 헌터와 똑같은 모양의 문신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남인철 헌터에게서 나타난 증상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 문신은 칠죄신교 쪽에서 일반 헌터를 컨트롤 하는 데에 쓰이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이 문제는 해당 헌터들의 신병을 확보했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남인철 헌터가 변이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대상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기를 사용하게 되고 잠시 이성을 잃어버린다.
공격성도 엄청나게 강해졌고 신체 능력도 조금이지만 늘어났다.
‘세례도 받지 않은 헌터가 마기를 사용하는 원리는… 아마 그 문신에 있겠지.’죽은 남인철 헌터는 엄청난 양의 마기를 뿜어낸 후 눈에 띄게 지친 것처럼 보였다.
묶을 필요도 없었을 정도로 지친 상태였다.
태운의 예상으로는 문신을 매개로 대상의 체력을 사용해 마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사실 그것 말고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한편, 태운의 머리를 더욱 아프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게다가 오늘 A급 던전 레이드 일정이 잡힌다고 했는데….”태운도 잠시 잊고 있었지만 한국에 열린 A급 던전이 곧 브레이크를 일으킬 때가 되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던전 브레이크 예정일까지 약 2주 남았다.
적어도 그전에는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들을 줄여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야 한다.
던전에 들어가면 적어도 2주 동안은 A급 던전에 있어야 한다.
즉, 2주 동안은 한국의 A급 헌터들이 죄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일단 전력 자체는 나쁘지 않아. 클리어는 할 수 있을 거야.’태운은 A급 던전에 들어갈 멤버들을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일단 전대섭 선생님이랑 허덕륜 선생님.’
그 두 명은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의 최강자들이다.
사실 이 두 명이 없었다면 A급 던전 공략은 한참이나 더 뒤로 미뤄졌을 것이다.
‘그리고 나랑 우리 1군 공격대.’
명운 길드의 1군 공격대는 한국 최고 길드의 1군 공격대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수적으로는 밀릴지언정 질적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
특히 태운은 이제 전대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헌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구찬영도 최근에 있었던 일 덕분에 A급 헌터 수준에 도달했다.
거기에 약간의 깨달음 즉, 구찬영이 오러를 깨우친다면 셀 못지 않은 전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찬영의 말을 토대로 생각해본다면 찬영이 오러를 얻게 되는 것은 그리 머지않은 날의 일이 되리라.
태운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대형 길드 3곳, 그들도 당연히 참여할 테니 A급 헌터 6명은 확보됐어. 거기에 구찬영까지… 중국의 창공 길드와 금호 길드도 이번 던전 공략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으니… 좋아. 이 정도면 큰 무리 없이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거야. 방심은 하면 안 되겠지만.’과거 드래이그 고흐 공략 당시 중국에 빚을 지워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빚을 지워두었던 30여 개의 중국 길드 중 고작 두 곳의 길드만 참여 의사를 내비쳤지만 말이다.
‘뭐, 참여 의사를 보여준 두 길드가 중국 최강 길드에 속한다는 게 중요하지.’특히 하오는 허덕륜에 비견되는 강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걱정되는 건… 역시 던전 안에서 우릴 공격할 가능성이지. A급 던전의 괴물들과 싸우고 있을 때 칠죄신교를 만난다면… 많이 힘들어지겠지.”칠죄신교가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으니까.
태운은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리다가 헌터 협회에서 온 문자를 받았다.
“9일 뒤… 준비해야겠네.”
A급 던전 공략 일자는 9일 뒤로 정해졌다.
“그 전에 전대섭 선생님하고 이야기 좀 해봐야겠다.”
* * *
“하아… 하아….”
오만의 의식이 끝난 후 쟝은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리고 누워 있는 알리제에게 물었다.
“강태운, 죽일 수 있겠나?”
“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리제는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오만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이 힘과 자신의 기술을 잘 조합하면 강태운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빨리 일어나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이냐.”
“예… 알겠습니다.”
알리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정돈했다.
그리고 다시 쟝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할 말이 있는 것 같군.”
쟝은 알리제의 표정을 읽고 그녀가 궁금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경한 질문일 수 있지만… 강태운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대원로님의 상대가 아닐 것으로 사료됩니다. 한데 어째서 직접 나서지 않으시는 건지…. 죄송합니다. 멍청한 저의 궁금함일 뿐입니다.”쟝이 알리제의 질문에 잠시 얼굴을 구겼다.
그것을 본 알리제는 바로 사죄하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흐음… 물론, 강태운은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강태운만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단 말이다. 만약 전대섭이나 허덕륜 같이 대원로나 상위 원로급의 강함을 가진 적과 마주친다면 도리어 내가 위험해진단 말이지.”
“아….”
“곧 있으면 죄악의 문이 열려 지구와 연결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 손짓 하나에 온몸이 바스라질 놈들인데 고작 변수 하나 없애자고 몸을 망칠 필요가 있겠느냐.”
“저의 짧은 생각을 용서해주십시오.”
“걱정 말거라. 충분히 가지고 있을 법한 의문이었으니. 다만….”쟝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강태운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 멍청한 질문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
알리제는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쟝은 다시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한국에 열린 A급 던전 기억나나?”
“네, 그렇습니다.”
“곧 있으면 그 던전에 한국의 정상급 헌터들이 모두 들어갈 것이다. 그럼 너는 오만, 분노, 식탐의 원로들을 데리고 던전으로 들어가라. 던전에 들어가기 직전에 신호를 보내고.”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전사대를 서울로 보내겠다. 전면전을 일으키기 전에 전사들의 수준을 끌어 올려야 하니까.”쟝은 A급 헌터들이 모두 던전에 들어가고 나면 무방비한 서울을 습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구수에 비해 인구 밀도가 굉장히 높은 편에 속하는 서울을 습격해 학살을 일으킨다면 전사들의 수준을 빠르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기간트 에이지 이후 큰 타격을 입은 것처럼 소극적으로 행동한 것 또한 모두 이것을 위한 계획이었다.
“알겠습니다.”
“이번 작전으로 강태운과 강한 헌터들을 모조리 죽이고 강한 전사를 육성한다. 그것이 이번 작전의 목표다.”
“그럼 전 이만….”
“준비를 단단하도록 해라. 이번 작전은 실패하면 안 되니까.”이번에는 전사들과 원로들을 섞어서 보낼 생각이다.
A급 던전 공략에 참가하지도 못하는 어중이떠중이들로는 결코 수천의 전사와 백여 명의 원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쟝은 이미 불지옥이 된 서울을 상상하고 있었다.
* * *
“다들 준비됐어요?”
태운은 명운 길드 1군 공략대를 데리고 A급 던전의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안에 거대한 세계를 품고 있는 A급 던전의 입구에 걸맞은 거대한 크기의 게이트였다.
태운의 질문에 공전하가 대답했다.
“뭐, 준비랄 게 있냐. 네가 다 챙겨줬잖아.”“그런 것 말고도 준비라고 할 법한 건 많으니까요. 예를 들어… 마음의 준비라든가.”“그래도 A급 던전이라니까… 뭔가 평소보다 더 긴장이 되긴 하네.”공전하 옆에 있던 조강현이 자신의 장비를 손질하며 말했다.
“A급 던전이야. 순식간에 죽기 싫으면 몸이 굳지 않을 정도로는 긴장하고 있어.”맞는 말이었다.
방심하는 것보다 긴장하는 편이 더 살아남기 유리하다.
조강현의 말에 이설아도 동참했다.
“던전이라는 게 애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긴 하지만 A급 던전은 비교도 할 수 없어. 1억 마리 규모 거충 파도 들어봤지? 그건 일단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수준의 재난이야. 그것도 A급 던전에서 일어난 거고. 같은 양의 물이 쏟아져도 사람들이 쓸려나갈 텐데 그게 거충이라고 생각해봐. 긴장하지 않으면 위험할걸.”“아, 알았어. 적당히 긴장하고 있을게. 하여간 잔소리는….”공전하와 이설아가 투덕거리고 있을 때 구찬영은 조용히 자신의 무기를 닦고 있었다.
“긴장되냐?”
“아무래도 그렇지. 최초 A급 던전 클리어 당시에 들어갔던 공략 대원 중 40%가 죽었으니까.”“그때랑은 상황이 다르잖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A급 던전이 처음 발견되어 공략했을 당시 10명의 A급 헌터와 50여 명의 B급 헌터가 던전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정보 부족과 호화롭다고 할 정도의 던전 공략대 전력 때문에 생긴 방심.
그것들이 원인이 되어 수많은 헌터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A급 던전에 대한 정보도 쌓였고 헌터들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크게 상승했다.
그럼에도 방심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저도 긴장되는지 배가 조금 아프네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공대장 브리핑 때 없어도 걱정하지 마요. 전 이미 작전 다 들었거든요.”
“그래? 알았어.”
태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태운이 임시로 만들어진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지 2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때, 임시로 만들어진 단상 위에 전대섭이 올라갔다.
“오늘 공기가 좋지 않아서 마스크를 쓰고 브리핑을 진행하겠다.”전대섭은 마스크를 쓰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일단 다들 긴장해야 할 거다. A급 던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니까. 일단 던전 안에 들어가면 최소 1시간 동안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진형 짤 생각이다. 그 진형은….”약 30분에 걸친 전대섭의 브리핑이 끝났고 전대섭은 다시 단상 아래로 내려가 협회 소속 헌터들 사이로 들어갔다.
“다들 기억했지? 중요한 브리핑이었으니까 기억 안 나는 거 있으면 얘기해. 다시 알려줄 테니까.”모든 브리핑 내용을 기억하고 있던 이설아가 말했다.
하지만 공전하는 그 말을 들은 체도 않고 태운만 기다리고 있었다.
“태운이 얘는 변비야? 무슨 30분 넘게 안 오고 있냐.”
“그러게 말이야. 어, 저기 온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태운이 저 멀리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많이 늦었죠?”
“그래, 많이 늦었다.”
그때, 헌터 협회의 대표로 참가한 김현우 헌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입장합니다! 다들 따라 들어오세요!”
“빨리 가죠. 정신 바짝 차리고.”
한편, 헌터들 사이에 숨어 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알리제였다.
‘지금 입장합니다. 1분 뒤 습격을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알리제는 쟝의 말대로 헌터들의 던전 입장을 알렸고 쟝은 그 신호를 받았다.
서울의 아득한 상공, 그 위에 하늘섬을 정지시킨 쟝은 연병장으로 나섰다.
“오늘부로 너희들은 이름뿐인 전사가 아닌, 진정한 전사로 다시 태어난다! 원로 100명! 전사 6,403명! 내가 너희들의 이름을 기억하마! 산 자들은 진정한 전사가 되어 죄악의 나라로, 죽은 자들은 죄악의 땅에서 안식을 맞이할 것이다!”쟝의 연설을 들은 전사들을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돌격! 텅 빈 서울을 공격하라!”
그 말에 전사들을 연병장 밖, 하늘섬의 아래로 떨어졌다.
“어…? 저, 저게 뭐야!”
“사람이 떨어지는데?”
서울 시민들은 수천 명의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 시민들이 떨어지는 그것들이 자신들을 죽일 거라는 사실을 머지않아 깨닫기 시작했다.
“저, 저것들 전부 칠죄신교야!”
“뭔 소리야?”
“사진 확대해보니까 저놈들 가슴에 보라색 문양이….”
“뭐, 뭐라고?”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엄청난 규모의 테러가.
하지만 그들에게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에테르 스파크, 에테르 네트.”
서울 상공에 거대한 그물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그물에 닿은 전사들은 전부 감전되어 재가 되었다.
“이놈들… 역시 태운이의 말을 듣길 잘했군.”그는 바로 A급 던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던 전대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