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남인철, 120번 지원자였다.
태운이 직접 그의 실력을 보고 싶어 일부러 마지막 지원 번호를 주었고 1차 인성 평가에서 일부러 합격 인원을 홀수로 정해놓아 그를 혼자 남게 만들었다.
그렇게 되면 마지막 번호인 남인철은 파트너 없이 2번째 대련 전투 평가를 치러야 할 것이고 그럼 자연스럽게 직접 대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태운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결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왜 마기가…?’
게다가 이 마기는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최소 A급 수준, 하위 원로급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옆에 있는 약한 헌터들도 눈치챈 듯했으니 그의 마기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인철 헌터에게 인간 감정을 사용했을 때… 악인은 아니었어.’오히려 선한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데 어떻게….’
태운은 일단 생각을 멈추고 눈앞에 있는 위험부터 배제하기로 했다.
‘일단 죽이지는 말자.’
태운은 ‘신장의 룬’과 ‘신속의 룬’을 사용하고 달려드는 남인철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때, 태운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진검…?’
분명 남인철 헌터는 목검을 들고 태운에게 달려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남인철 헌터가 들고 있는 것은 굉장히 예리하게 갈려 있는 진검이었다.
게다가 엄청난 양의 마기가 담겨 있어 공격을 허용하면 태운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퍼-억!
태운은 남인철의 손목을 붙잡아 잡아당기며 다른 손 팔꿈치로 남인철의 명치를 가격했다.
“커억!”
태운에게 맞자 남인철 헌터는 쿨럭이며 그대로 쓰러졌다.
“뭐야…? 그렇게 강하게 때리지도 않았는데….”태운은 치명상을 입지는 않도록 힘 조절을 했다.
그런데도 정신을 잃을 정도면 그가 뿜어내는 마기의 양에 비해 신체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듯했다.
‘마기의 양만 보면 최소 A급 헌터 수준인 하위 원로였는데… 신체 능력으로만 보면 남인철 헌터의 등급인 D급 헌터 수준이었어.’그 묘한 불균형 덕분에 남인철 헌터를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에테르 로프.”
태운은 지금까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었던 에테르 로프로 남인철 헌터를 묶었다.
“가, 갑자기 뭐죠?”
지원자 중 한 명이 태운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도 남인철 헌터에게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양의 마기를 눈치챘을 터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이런 일이….”태운은 일단 남인철 헌터를 완전히 속박한 뒤, 돔 형태의 방어막을 만들어 격리했다.
“남인철 헌터가 칠죄신교였다니….”
“충격적이야….”
지원자 중 남인철 헌터와 같이 던전 공략을 하거나 일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남인철 헌터는 본래 친화력이 좋고 성격이 유쾌해서 사람들과 두루 어울렸었다고 한다.
D급 헌터임에도 던전 공략대의 대장을 맡은 경험이 있는 것도 그것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칠죄신교의 전사였다고…? 그것도 원로급?’이해가 되지 않았다.
칠죄신교의 전사가 되는 의식인 ‘세례’를 받게 되면 해당 칠죄종의 성격을 일부 물려받게 된다.
예를 들어 분노의 좌를 맡고 있는 사탄의 대원로에게 세례를 받게 되면 화가 많아진다.
그뿐만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생기기 때문에 성격이 좋을 수가 없다.
“음… 일단 입단 테스트는 끝났으니 다들 돌아가 보셔도 좋습니다.”원래는 한 개의 테스트를 더 준비했지만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테스트를 더 진행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마지막 테스트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태운은 모든 지원자들을 돌려보내고 남인철 헌터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칠죄신교의 문양… 목덜미에 있네. 아까는 없었던 것 같은데…. 잠깐. 문양의 모양이 뭔가 다른데?”칠죄신교의 문양은 보랏빛의 화려한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남인철 헌터의 목덜미에 그려져 있는 문양은 지금껏 봐왔던 문양과는 달랐다.
본래는 칠죄종을 상징하는 7종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지만 남인철 헌터의 목에 그려져 있는 문양은 심장에 사슬이 뒤엉켜 있는 모양새였다.
“뭔가… 불안한데?”
태운은 남인철 헌터를 일으켜 세웠다.
“으윽….”
그렇게 5분이 지났을까.
남인철 헌터가 정신을 차렸다.
“어…? 강태운 헌터님? 이게 무슨….”
하지만 남인철의 반응은 태운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기억이 안 나는 겁니까?”
“그게 무슨…. 제가 이상한 짓이라도 했습니까?”“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겁니까? 절 공격하지 않았습니까.”“그거야… 대련이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하….”
남인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태운은 남인철에게 자세한 정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인철 헌터님이 절 공격하실 때 엄청난 양의 마기가 감지되었습니다. 목검도 진검으로 바뀌어 있었구요.”
“네…?”
“그 위력 또한 절 죽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고작 D급인 제가 그런 공격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기라뇨? 제가 무슨 마기를… 전 칠죄신교의 세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거짓말 탐지 마법을 계속 남인철 헌터에게 사용하고 있었지만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즉, 남인철 헌터가 한 말은 전부 진실이라는 것이다.
“진정하세요. 당신의 말을 못 믿는 건 아니니까요.”
“휴…. 예… 알겠습니다.”
태운은 일단 흥분한 남인철 헌터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천천히 질문을 다시 시작했다.
“칠죄신교와 접촉한 적은 없는 겁니까? 단 한 번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칠죄신교와 접촉한 적이 있습니까?”
“예, 예전에 던전 안에 들어갔을 때 어떤 여자 칠죄신교의 전사를 만났습니다.”태운은 이번 사건의 원인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그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실 수 있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태운은 남인철 헌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저는 D급 헌터 10명으로 이루어진 던전 공략대의 대장으로 D-급 던전에 들어갔습니다.”D급 헌터 10명으로 D급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돈이 필요한 헌터들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공략법이 확립된 던전의 경우 위험성이 덜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E급 던전에 들어가는 것보다 공략법이 확립된 D급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벌이도 훨씬 많았다.
“던전 공략은 순조롭게 이뤄졌습니다. 그 던전이 D급 던전치고는 규모가 큰 편이다 보니 3일 동안 몬스터를 잡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죠. 그런데… 3일 차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슨 일이죠?”
“칠죄신교의 여자 전사를 만난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죠?”
“그 여자는 푸른색의 머리에 눈동자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눈빛은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죠.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저는 온몸에 서리가 끼며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와 같이 던전에 들어갔던 헌터들은 모두 얼어붙었죠.”그런 종류의 스킬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다니.
“칠죄종이었다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녀의 이마에 칠죄종의 문양이 박혀 있었거든요.”
“음….”
이마에 칠죄종의 문양이 박혀 있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칠죄신교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전투를 목적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과 마기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세례를 받는 연구원.
즉, 그들이 만난 사람은 칠죄신교의 연구원이라는 뜻이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죠?”
“그다음, 저희는 기절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그 여자는 저희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았고 몇 시간 후에 그대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눈을 떴을 때, 그 여자는 그 자리에 없었죠.”“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구요…? 혹시 목덜미가 뻐근하다거나 따끔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셨습니까?”
“그, 그런 건 없었습니다….”
기절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칠죄종의 세례는 강제로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럼 일단 그때 같이 던전에 들어갔던 헌터들의 명단을 불러주실 수 있으십니까? 혹시 모르니 그들도 알아둬야겠습니다.”“예, 알겠습니다. 제가 대장이었고 탱커로는 김판석, 한중희….”그때, 갑자기 남인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윽…!”
그러더니 갑자기 고통스럽다는 듯이 온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왜 그러세요!”
태운이 마법으로 그의 상태를 확인하려 한 순간퍼-억.
남인철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남인철 헌터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태운이 그의 상태를 확인해보았지만, 그의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이런 미친….”
그때, 앞으로 고꾸라진 남인철의 목덜미에 그려진 문양이 태운의 눈에 들어왔다.
“잠깐 모양이 달라졌어.”
태운은 그 자리에서 쪼그려 그의 목덜미에 있던 문양을 바라보았다.
심장에 사슬이 뒤엉켜 있던 모양의 문양은 어느새 사슬이 옥죄여져 터져 버린 심장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태운은 이를 갈았다.
대충 이 사건의 경위가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칠죄신교 이 자식들….”
* * *
“알리제, 저번에 했던 실험은 어떻게 됐나.”칠죄신교의 본거지인 하늘섬.
오만의 좌를 맡고 있는 쟝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밑에는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은 검은 눈동자 없이 온통 흰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알리제라 불린 여인이 입을 열었다.
“실험은 성공적이지만 뒤처리가 미흡했습니다.”
“무슨 뜻이지?”
“D급 헌터였던 남인철 헌터의 몸에 ‘죄악의 사슬’을 그려놓아 강태운을 강제로 공격하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강태운은 그를 손쉽게 제압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남인철 헌터에게 ‘사슬 죄기’를 사용했지만 무엇인지 모를 강력한 힘에 의해 발동이 늦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제 외견상 특징이 강태운에게 알려졌습니다.”쟝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괜찮다. 어차피 강태운이 수사를 시작했다면 네 외모 정도는 금세 알아냈을 테니까. 그것보다 강력한 힘이라고?”알레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전 처음 느껴보는 힘이었습니다. 오러도 마기도 마나도 아니었습니다.”그 말을 듣고 쟝이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혹시… 뭔가 느껴지는 건 없었나?”
“모자란 저의 느낌을 말씀드리자면… 흰 도화지 같은 느낌의 힘이었습니다. 뭐든지 그릴 수 있는….”쾅!
쟝은 들고 있던 술잔을 그대로 벽에 내던졌다.
금속으로 되어 있던 술잔은 그대로 벽에 박혀 버렸다.
“에테르… 에테르를 그 녀석이 가지게 되었다고…?”쟝은 과거 에테르에 의해 고전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바로 강철운이었다.
강철운의 얼굴이 떠오르자 쟝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내 쟝의 표정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알리제.”
“네.”
알리제는 처음 보는 쟝의 일그러진 표정에 벌벌 떨었지만 최대한 얌전히 입을 열었다.
“너에게 내 힘을 나눠주겠다. 침대로 올라오거라.”
“감사합니다.”
쟝은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하는 중에도 강철운과 강태운에 대한 악의를 조금도 죽이지 않았다.
알리제가 일어나자 쟝은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준 힘으로 강태운을 죽여라.”